제가 학교에서의 역사 수업 때에 배운 가장 끔찍한 단어는 "untermensch"이라는 독일어이었습니다. "열등 인간", "인간 이하의 것", 1941년에 우리 사회주의 조국을 침략한 파쇼들은 동구의 인구 절대 다수를 그렇게 불렀습니다. 물론 untermenschen 중에서는 아주 많은 하위 범주들이 있었죠. 당장 잡아서 죽일 "열등 인간" (공산당원, 군의 정치위원, 군직에 있는 유대인), 수용소에 보내서 끝에 가서 죽일 "열등 인간" (유대인, 집시 등등), 노예노동자로 만들어서 죽도록 부려먹을 "열등인간" (일반 슬라브인들)...뭐, 굳이 그렇게 생각해보면, 일본제국의 충실한 신민이고 파쇼 독일의 렬렬한 친우, 1940-44년간의 백림교향악단 지휘자인 안익태 같은 "동맹국 국민"들도 아주 궁극적 의미에서는 파쇼들에게 그저 untermenschen이었을 것입니다. "열등 인간"들의 범주들이야 천차만별이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습니다. 세상은 위대한 아리아 종족의 주인과 "열등 인간"이라는 이름의 언제든 죽어도 되는 노예로 갈라져야 하고, 이 갈리짐이 세습적이라는 것입니다. 이건 인류가 여태까지 본 최악의 괴물, 파시즘의 얼굴이었죠.
종족 민족주의인가, 경제적 우열과 학력에 의한 차별인가 라는 차이는 있는데, 과연 지금 대한민국은 파시스트들의 암흑천지와 무엇이 다른지, 우리가 꼼꼼히 생각해봐야 할 듯합니다. 이번 9월16일에 일어난 일을 한 번 보시죠. 어떤 40대의 남성이 비무장지대를 통해 북조선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가 누구이었는지, 왜 하필이면 이런 선택을 했는지, 저로서는 판단할 만한 자료는 없습니다. 한 번 일본에서 망명 시도한 것으로 봐서는 아마도 인생이 많이 꼬이신 분이었던 듯하고, 또 중국을 통해서 안정적으로, 별탈없이 월북하지 않고 위험천만의 DMZ월북의 길을 택한 것으로 봐서는 모종의 어려움이 많은 듯한 삶이었던 모양입니다. 중국행 비행기표를 살 만한 돈이 모자라서이었을까? 좌우간, 어렵고 꼬인 인생을 살아오신 그 분을 초소병들이 수백발의 총탄으로 당연히 (?) 죽이자 그 다음 일어난 일을 한 번 보시죠. 군은 군대로 "잘했다"고 자평하고, 죽임 당한 사람에 대한 애도의 뜻을 전하기는커녕 오히려 "철통같은 경계 태세"를 자랑합니다. 사람 죽여놓고 이렇게 자축하는 이 존재들은 정말 인간 맞나 싶어요. 보수 언론은 물론 "진보"언론마저도 이 사태를 그저 "기이한 뉴스" 정도로 다루어줍니다. 역시나 죽임 당한 사람에 대한 유감이나 애도의 뜻이라고 추호도 안보입니다. 네티즌의 일부는, 이렇게 "월북 시도자"를 무참히 죽이는 대한민국이 과연 북조선과 무엇이 다를까, 그래도 자문하긴 합니다 (
http://www.dailian.co.kr/news/view/386765/?sc=naver). 두 개의 병영사회 사이의 차이는? 여러 차이 중의 하나는, 남한에서 이런 사회를 바로 "자유민주주의"로 부른다는 점입니다...
그러면 자, 한 번 상상의 날개를 펼쳐봅시다. 만의 하나에 이 월북 시도자는 좀 유명하다 싶은 교수나 목사, 고승이었다면? 물론 그런 "인물"이 월북하려 해도 제3국을 통해 얼마든지 편하게 하겠지만, DMZ를 뚫으려고 시도했다 해도 아마도 그 초소병은 사살하기 전에 두 번, 세 번, 열 번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사살했다 해도 그 다음에 언론의 어조가 얼마나 달랐을 것인지 십분 상상됩니다. "이런 인물"이 왜 남한 사회에 질리고 왜 북조선을 택하려 했는지, 언론마다 문제를 제기하고, 또 비명에 돌아가신 분의 유족들이 오열하는 모습도 보여주었을 것이고요... "인물"이라면 그의 목숨에 상당한 가치가 매겨져, 그 만큼 그에 대한 애도도 공중파 등을 탈 권리가 있습니다. "인물"이 아닌 일개의 일당잡부라면? 백번 사살 당해도, 이건 큰 뉴스 자체도 안됩니다. 참, "민주공화국"다운 "만인의 평등"이죠? 이 나라에서는 삶에서도 죽음에서도 ubermenschen ("우등인간"들)과 untermenschen은 철저하게 분리돼 있습니다. 이 사실을, 파쇼적 사회에서 "진보"를 대체하는 노릇을 하고 있는 명망가 분들도 아주 잘 아십니다. 아무도 죽이지 않은 이석기를 "정신병자"라고 모욕한 진중권 교수는, 이렇게 멋대로 사람을 죽이는 군에 대해서 이와 비슷한 발언을 과연 할까요? 물론 그 자신은 - 명망가 교수인 이상 - 이와 같은 운명을 당하지 않을 것을, 본인이 너무나 잘 알고 있기도 할 것입니다.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외피를 걸쳐 입고 있어도, "한국적 체제"의 진정한 골격은 바로 철저한 경제-사회적 인종주의를 그 주된 내용으로 하는 파쇼적 사회입니다. 그리고 2010년대판 신유신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그 경제-사회적 인종주의는 보다 선명히 드러납니다. 한국의 파쇼적 사회의 "유대인"들은? "혈통"과 무관하게, 한국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만큼 "성공"하지 못한 모든 이들입니다. 집안에 돈이 없고 대학 진학이 어려워서 삼성전자 공장에서 백혈병에 걸릴 위험에 몸을 노출시켜야 하는 여공, 언제 산재사를 당할지 모를 공사장의 일당잡부, 빚더미에 억눌려 있는 영세농민, 파산 직전의 상태에 있거나 파산을 맞이하고 있는 영세상인, 중소기업들의 비정규직, 영어를 배우지 못해 이 사회의 문화적 주류에 끼어들 확률이 없는 모든 "토착적" 인간들....재력, 학력, 영어나 구미유학 경력과 같은 문화자본 등이 결여된 untermenschen 의 목숨들은 이 나라에서 그저 파리목숨들입니다. 더군다나 그들이 만약 같은 untermenschen들끼리, 세계중심축인 우리 상국, 미국의 허가도 없이 감히 만든 반국가집단인 북괴와 동조하거나, 북괴들에게 도망차려 한다면? 아, 이건 殺而無嘆, 죽어도 한탄할 게 없는, 교화가 불가능한 아랫것들인 셈입니다. 북괴와 내통하지 않아도 그렇죠.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이 줄줄이 홧병과 자살로 죽어나가도, 언론들이 약간이라도 신경을 쓰나요? 신경을 그나마 쓰는 것 같은 "진보"진영에서도 사실 보이지 않게 한국적인 "인간 구분법"을 그대로 적용하기도 합니다. 이석기가 만약 구미에 유학가서 거기에서 강단 마르크스주의를 배운 "서구형 혁명가"이었다면 과연 그는 진중권 류의 "진보"들에게 똑같은 경멸을 당했을까요? 그가 만약 영어나 독어에 능해 그 생각을 구미인에게 발표할 줄 알았다면? 한국식 사회-경제적 인종주의는, "진보" 동네에서도 그래도 통합니다. 철저하게 파쇼적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은 좌파는 과연 어느 정도 가능할까요?
다수를 untermenschen으로 만든, 살인성이 가득 넘치는 사회에서는, 과연 이 사실을 무시해서는 진정한 인문학이 성립될 수 있나요? 한국에서 untermensch이 사살 당해도 아무도 끄덕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무시하고서는, 우리가 인간답게 살 수 있나요? 파쇼적 사회에서, 이 사회와 투쟁하지 않고서는 인간으로서의 삶은 어디까지 가능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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