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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3일 일요일

[신희철님의 블로그에서 퍼옴] 브라질 시민기본소득 소책자


[출처 : 신희철님의 블로그에서 퍼옴,http://blog.daum.net/commune96/85 ]

아래는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13차 대회에 참여한 사회당 최광은 대표가 올린 글과 직접 스캡해서 올리고 번역도 한 브라질시민기본소득 소책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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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13차 대회가 열린 브라질 상파울루 대학 행사장 바깥에 소책자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순간 에두아르두 수플리시 상원의원이 지난 1월 인천공항에 도착해 숙소로 가던 도중에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기본소득 소책자를 만드는 중이라고 하셨죠. 딱딱한 글만 있는 게 아니라 삽화도 많이 넣어 만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것입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걸 한 번 만들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기본소득네트워크 회원분들 중에 혹시 만화가는 없으신가요? 만화가와 친한 분이라도 있으시면...


행복한 이야기 하나: 시민기본소득


우리가 거리를 지날 때 먹을 양식조차 없는 가난한 아이들을 마주치는 게 슬프지 않나요?


이 아이들이 왜 그렇게 가난한 지 여러분은 알고 계신가요?
아이들의 부모가 일자리가 없어서 월급을 매달 받지 못하기 때문이랍니다.


월급이 없으면, 혹은 어떤 소득도 없다면, 무엇을 살 수가 없지요. 그래서 이 아이들이 거리에 살면서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청하는 겁니다.
안타깝게도 브라질은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브라질에는 엄청나게 돈이 많은 소수의 부자들과 생존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수입조차 없는 수백만 명의 가난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정부는 이렇게 가난한 브라질 사람들을 돕지 않는 것일까요?
좋은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에두아르두 수플리시 상원의원은 브라질 의회에 '시민기본소득'을 도입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이 이름이 좀 어려울지 모르지만, 그 핵심은 매우 단순합니다. 시민기본소득은 모든 브라질 사람들이 생존할 수 있도록 받게 될 일정액의 현금입니다. 이것이 주어진다면, 모든 사람은 기본적인 생존 조건을 갖출 수 있습니다. 이는 또한 나라의 부의 생산에 참여할 수 있도록 모두에게 주어지는 권리가 될 것입니다.
"그럼, 모두가 훨씬 더 잘 살 수 있겠군요!"


그러면 더 이상 일할 필요는 없는 건가요?
전혀 아니랍니다.
기본소득은 기본적인 생활 조건을 충족시켜주지만, 더 안락하고, 더 많은 꿈을 성취하며, 더 많은 즐거움이 있는 보다 나은 삶은 모두가 열심히 일을 할 때 성취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모든 브라질 사람들이 이 돈을 받는 것인가요? 부자들도 포함해서요?


그렇습니다! 브라질 사람 모두에게!
브라질에서 5년 동안 혹은 그 이상 살고 있는 외국인들에게도.
부자인건 가난한 사람이건, 어디에서 왔건, 나이가 몇이건, 학생이건, 노동자이건, 퇴직자이건 상관 없습니다. 어떤 제한도, 모든 것을 복잡하게 만드는 많은 규칙도 없이 모두가 받을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소득이나 부의 증거를 보여줄 필요가 없고, 누구도 자신이 이 나라에 살고 있다는 사실 이외의 어떤 것을 증명할 필요가 없으며, 누구도 정부의 돈을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모두가 동등해집니다. 정부는 어떤 사람에 대한 특별한 호의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공평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따를 의무를 갖는 것처럼, 받을 권리 또한 갖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시민이 된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시민의 가장 커다란 권리는 자신의 나라에서 존엄하게 살 수 있는 권리입니다.


하지만 그건 말이 안되는 생각 아닐까요?
아닙니다. 지금도 브라질 정부는 볼사 파밀리아 프로그램을 통해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약간의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가난한 가정들이 등록을 한 다음 아이들이 길거리 생활을 접고 아동 노동에도 종사하지 않도록 하면서 학교에 계속 보내면 돈을 주는 겁니다. (아이들은 물론 공부하고 놀며 행복해야겠지요. 노동은 어른들을 위한 것입니다.)

멋지군요! 그런데 기본소득은 왜 아직까지 시행이 안되고 있나요?
의회가 관련 법안을 승인했고, 대통령은 지난 2004년에 이 법을 공포했습니다. 지금은 이를 실행해서 현실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정부는 모두에게 줄 수 있는 충분한 돈을 갖고 있나요?
그렇진 않습니다. 시민기본소득 제도가 점진적으로 시행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초기에는 각자가 조금씩 받을 것이고, 나라가 성장해 부를 더 키우면, 시민기본소득 액수도 더 커질 겁니다.

세상에는 기본소득에 대한 몇몇 성공적인 경험들이 있습니다.
브라질에서는 상파울루 주에 있는 산투 안토니우 두 핀할이라는 도시가 기본소득 제도를 도입해 시행하는 첫 번째 도시입니다. 이 도시에서 최소한 5년 이상을 살고 있는 시민은 시의 기금에서 나오는 돈을 받습니다.
아프리카의 나미비아에서는 오치베로라 불리는 마을에서 지난 2008년 기본소득 실험 프로젝트가 시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놀라운 결과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곳 시민의 생활 조건은 상당히 개선되었습니다.


모든 곳에서 우리는 각자가 존엄하게 살 수 있고 더 나은 삶을 목표로 할 수 있는 보다 번영하는 공평하고 행복한 브라질을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궁금하신가요? 시민기본소득법에 관해 의문을 갖고 계신가요? 다음 페이지에서는 에두아르두 수플리시 상원의원이 이 중요한 주제에 관한 주요 질문들에 대해 답할 것입니다.

민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요?
공동체, 지역 또는 나라 안에서 만들어진 부로부터 그 일부를 떼어내 기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 기금이 모아지면, 전체 인구에게 시민기본소득을 지급하기 위해 필요한 액수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은 천연자원 개발 수익금,  공공서비스 수익의 일부, 조세, (전자)금융거래, 연방 부동산 임대료, 또는 이러한 수단들의 결합을 통해 마련할 수 있습니다.

이 구상은 지자체 혹은 지역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인가요?
지금은 브라질의 5,565개 지자체 전체에서 실시되는 볼사 파밀리아 프로그램이 이러한 형태로 전국적으로 확장되기 이전까지 1990년대에 지자체에서부터 시작된 교육 관련 최소 소득 보장 사례와 유사하게 시민기본소득 또한 지자체와 지역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상파울루 주에 있는 산투 안토니우 두 핀할의 시장이 기초한 시민기본소득 법안은 시 의회의 승인 이후 2009년에 공포되었습니다. 이 법안은 시민기본소득의 점진적인 실시를 선언하고 있는데, 이는 곧 시작됩니다.


시민기본소득은 가족 수당 프로그램과 상호 배타적인가요, 아니면 상호 보완적인가요?
시민기본소득이 이전의 프로그램에 비해 각자에게 더 많은 이득이 된다면, 이는 그러한 프로그램을 유리한 방향으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시민기본소득을 받는 사람에게 어떤 조건이 부과되는 것인가요?
이 소득은 일정한 기간 동안 아이들이 학교에 출석하는 조건과 결합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의무는 다른 경우라면 교육을 받지 못할 아이들에게 교육상 보탬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점차적으로, 더 부유한 사람들도 물론이고, 모두가 아이들의 학교 출석에 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시민기본소득은 가난한 가정들이 아이를 더 많이 낳도록 하지 않을까요? 
가구 소득이 높아질수록, 정보와 교육, 그리고 가족 계획에 대한 접근도 향상됩니다. 브라질의 발전과 함께 출산율은 더 낮아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소득 분배가 더 나은 것입니다.

시민기본소득은 게으름을 북돋우지 않을까요?
아무런 벌이가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많은 일을 하기를 좋아하고 많은 과제를 수행하는 것에 대해 책임감을 느낍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아이를 돌보는 일, 혹은 그들 자신의 부모와 조부모를 돌보는 일, 이웃 단체나 교회에서, 그리고 학교 안내책자처럼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의 자원 활동 등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든 활동들을 하고 우리는 그것이 쓸모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헌법은 재산권을 보장합니다. 이는 농장, 공장, 은행, 기타 자산 등의 소유자들이 스스로 일을 하고 있거나 자신의 아이들이 학교에 출석하는지를 증명할 필요 없이 이윤을 획득하고 이자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늘 일을 하고 아이들은 보통 학교에 갑니다. 우리가 더 부자인 사람들에게 조건 없는 소득을 받을 권리를 보장한다면, 이러한 원리를 가난한 사람과 부자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러한 원리를 시민기본소득을 통해 나라가 공유하고 있는 부에 최소한 조금이라도 참여할 수 있는 권리로 확장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시민기본소득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입니까?
가장 큰 장점은 모든 사람에게 더 많은 존엄과 실질적인 자유를 가져다준다는 점입니다. 다른 대안이 없기에 성매매를 하고 있는 소녀를 위해, 갱 단원이 되도록 부추겨지는 소년을 위해, 반 노예처럼 일하지 않고는 살 방도를 찾지 못하는 시골 노동자를 위해
시민기본소득은 앞으로 모든 사람이 위에서 언급된 일들을 거부할 수 있는 자유를, 아마 교육 과정을 밟고 있다면, 자신의 소명과 조화를 이루는 일을 기다릴 수 있는 자유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노동자 정치신문 89호] 기본소득제 비판(2) -이른바 ‘좌파’ 기본소득제의 반동성

제목 : [89호] 기본소득제 비판(2) -이른바 ‘좌파’ 기본소득제의 반동성
노정협  2012-10-31 23:39:58, 조회:811, 추천:35
기본소득제 요구에 대해 “전술이 없는 전략주의이자 초현실주의적 급진주의”(임승철)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현실성이 없다는 점에서 현실을 초월해 있는 잠꼬대 같은 요구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기본소득제는 현실성이 없을뿐더러 반동적이기 조차 하다.

현재 한국사회의 좌파들이 공유하는 기반은 현실 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 모두를 비판하는 것이다.(권문석 [기본소득위원회(준), 정책위 ], 기본소득 이야기① 기본소득 운동을 하는 개인적 이유, 진보신당 사랑과 혁명의 정치신문, 2012/08/17)

기본소득론자들은 현실 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 모두를 비판하면서 ‘제3의 길’ 노선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영국 노동당 블레어 정권 하에서 안소니 기든스가 주창한 ‘제3의 길’이 결국 새로운 길이 아니라 개량주의 노선이듯, 기본소득론자들의 제3의 길 역시 자본주의 내에서 개혁을 외치는 사민주의 노선에 불과하다. 기본소득론자들이 주로 ‘신좌파’진영이라고 했는데 이들은 자본주의에 깊이 포섭돼 있는 반면에 쏘련 사회주의와 현실 사회주의에 대해 극도로 혐오감을 보이고 있다.

역사적으로 현실사회주의 국가에서 강제적 일자리 늘리기를 했으나, 인간의 자유를 제약하는 강제노동이라 오래갈 수 없었다.(진보신당기본소득위원회, 기본소득노트)

물신 숭배의 대상은 화폐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였으며, 역사적으로 현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공산’당(黨)이 그런 지위를 가졌다.(권문석, 기본소득 이야기 ② 좌파는 마르크스와 노동을 물신숭배하는가, 진보신당 사랑과 혁명의 정치신문, 2012/08/23)

마르크스와 노동이 물신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경계의 의미를 담았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마르크스와 노동에 대한 새로운 의미 규정은 기본소득 이야기의 출발이다.(같은 글)

노동을 함으로써 인간의 해방을 이룰 수 있다는 세계관은 뿌리깊은 토대를 가지고 있다....헤겔은 소위‘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서 노동의 긍정성을 이야기했다....이런 논리가 헤겔좌파들에 의해 노동만이 인류를 촉진하여 해방시킨다는 선언으로 이어지고 맑스주의는 이것을 계승했다. 레닌도 그런 철학하에 게으름을 쁘띠부루조아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철의 노동규율과 테일러주의에 열광하여 적극 도입을 서두른다. 이것은 스탈린에 의해 완성되는 데 결국 노동은 생산력이고 자본주의의 모순은 생상(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며 자본주의적 소유관계가 나쁜 것은 생산력자체를 질곡으로 하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여기서 사회주의란 생산관계의 소유구조를 바꾸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현실사회주의는 따라서 노동 그 자체에 대한 분석과 대안까지로는 발전하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기존 사회주의가 추구했던 해방전략은 진정한 노동해방, 인간해방으로까지 나가지 못하고 단지 노동에 주인이 자본가에서 국가로 변하게 한 것에 불과했다는 주장까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어쨌던(든) 적어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외형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양자가 공유했던 가치관이 있다면 그것은 거칠게 말해서 긍정적 노동관이라 할 수 있다.(민주노총 정책연구위원장 이수봉,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을 위하여, 2009년 2월) 


수정주의가 판치고 시장사회주의 조치가 극에 달하여 실업, 인플레이션 등 자본주의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80년대 중반 이후 상황을 예외로 한다면 그전까지 착취가 사라지고 실업을 일소했던 쏘련 사회주의에서 국가가 강제적 일자리 늘리기를 하고 강제노동을 했다는 주장은 그 동안 반공주의자들이 쏘련 사회주의 역사를 왜곡하면서 주구장창 했던 이야기다. 심지어 이들은 맑스가 자본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화폐물신성을 주장한 것을 가지고 현실 사회주의 국가에서의 공산당도 그러한 물신주의를 가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공산당이 노동자 민중들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졌는데 혁명 이후에 노동자를 지배하고 군림하는 지배계급 정당으로 타락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인류에게 거대한 진보를 가져다주었던 쏘련 사회주의 역사에 대한 진지하고 과학적인 평가 대신에 제국주의자들이 심어 놓은 왜곡된 관점과 진실 왜곡을 바탕으로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변혁적 전망을 상실했다.

이른바 ‘신좌파’라 일컬어지는 개량주의자들의 이념 전개 방식은 동일하다. 그것은 바로 스탈린 시대의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해서 레닌과 볼셰비키의 전위정당이 독재정권의 씨앗을 뿌렸다고 비판하고 결국은 맑스주의 자체를 공격하여 맑스레닌주의의 변혁적, 과학적 사상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수행하고 나서 바로 자신들의 개량주의 사상을 펼치는 것이다.


화폐물신주의와의 결전을 회피하는 ‘노동물신화’ 주장

맑스는 자본주의를 물신주의라고 비판했다. 마치 인간이 만들어낸 신과 종교가 인간을 지배하는 물신주의로 나타나는 것처럼,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으로 만들어낸 자본이 노동자를 억압하고 지배하는 힘이 되는 것이 바로 화폐물신성, 자본 물신성이다. 쉽게 말해 돈이 인간을 지배하는 사회라는 말이다. 기본소득론자들은 맑스의 이러한 자본주의의 물신주의 비판으로부터 ‘노동 물신성’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내고 있다.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들은 잔업, 특근에 매달리고 장시간 노동을 자청하는 일중독에 걸렸다. 심지어 유럽에서는 정년연장 반대를 내걸고 싸우고 있는 반면에 한국사회에서는 정년연장이 노동자의 사활이 걸린 요구가 될 정도로 지독한 일중독에 걸렸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일중독에 걸린 것은 기본소득론자들이 사용하는 ‘노동 물신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물론 조합주의에 빠진 노동운동이 기본급 대신에 수당에 매달리고 성과금에 집착하고 물량이 넘쳐날 때 특근을 허용해왔기 때문에 그런 측면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일중독은 자본주의 이윤체제가 강요하는 저임금과 고용불안정, 장시간 노동의 산물이다.

일중독은 바로 자본주의 체제가 노동자에게 강요하는 물신성의 산물이라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자본주의 물신주의를 극복하고 노동자가 진정으로 해방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착취체제를 박살내고 노동자가 생산수단이 주인이 되어야 한다. 생산수단의 주인이 된 노동자계급이 사회의 중심이 되어 생산력 발전을 이룩하고 전체 산업의 합리적인 계획체제를 통해 노동자 민중 전체의 물질적, 문화적 발전을 달성해야 한다. 자본주의 이윤체제가 사라진 사회주의 생산관계에서 생산력 발전은 자본주의처럼 적대적 모순이 아니라 노동자 민중의 해방과 인류의 진보적 발전을 위해 복무한다.

이 과정에서 레닌이 주장한 테일러주의는 착취가 사라진 사회주의 생산관계에서는 착취의 수단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생산을 조직하는 생산조직 방식이 된다. 사회주의 생산관계에서 신기계, 신기술 도입과 합리적 생산방식은 노동시간 실질적 단축으로 노동자의 인간다운 노동과 풍요로운 삶을 일구는 해방의 무기가 된다.(물론 현실 사회주의에서 이윤과 화폐시장 관계를 강화하는 수정주의가 득세함에 따라 사회주의 생산관계와 생산력은 점점 더 자본주의처럼 적대적 모순으로 변해 갔고 이것이 결국 현실 사회주의를 내부로부터 붕괴시켰다.)

노동해방은 기본소득론자들의 주장처럼 노동으로부터 해방이 아니라 자본가계급의 착취와 억압으로부터 노동자계급의 해방이다. 노동자들은 노동 일반의 거부가 아니라 착취 없는 노동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 노동은 인류가 원숭이로부터 진화하는 결정적 일보의 계기가 됐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자연법칙을 인식하고 개조해 들어가는 핵심 수단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노동이 없이는 생존 자체를 하지 못했을 것이고 한 사회를 안정적으로 유지해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자 계급은 노동 자체가 안정적인 생존의 수단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삶의 욕구가 되고 즐거움이 되는 착취 없는 해방된 노동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기본소득론자들은 화폐와 자본물신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에게 장시간 노동과 일중독을 강요하는 자본주의 체제와 맞서 싸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자본주의 체제와 결전을 회피하기 위해 도리어 ‘마르크스와 노동에 대한 새로운 의미 규정’을 들고 나왔던 것이다. ‘마르크스와 노동에 대한 새로운 의미 규정’은 쏘련 사회주의와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인 동시에 맑스주의의 변혁적, 과학적 사상에 대한 부정이기도 한 것이다.


이행을 거부하는 자본주의 포섭노선

기본소득제는 사회주의 전망을 상실하고 맑스주의의 원칙을 부정하기 때문에 결국은 자본주의를 인정하고 자본주의에 포섭되는 개혁 노선으로 귀결되는 반동적인 노선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진보신당 정책위의장인 장석준은 기본소득제가 ‘과도전략’이라고 주장한다.

“문제는 기본소득제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어떤 과도 전략들을 통해 실현시킬 것인가”라며 “전 국민에게 비교적 낮은 수준의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데서 출발할지, 아니면 상당한 수준의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데서 출발할지가 쟁점이 된다”(한겨레 21, 전 국민이 넉넉한 월급 받는 세상!, 2010.02.05., 제797호) 

장석준의 과도전략은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철폐하고 이 생산관계를 보호하는 자본주의 국가권력을 타파할 이행전략이 아니다. 장석준의 과도전략은 새로운 생산양식으로 나아가는 과도전략이라는 의미에서의 과도전략이 아니라 전 국민에게 낮은 수준의 기본소득을 먼저 제공하고 나중에 상당한 수준의 기본소득을 제공할지를 가늠하는 의미에 불과하다. 이처럼 기본소득론자들은 역사적으로 개량주의자들이 항상 그랬듯, 자본주의 착취체제와 국가권력과의 일전을 회피하는 자본주의 개혁노선에 불과하다.  

기본소득론자들은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고 금융자본에 대한 역수탈을 강조한다.

금융자본 역(逆)수탈로 재원 조성
재원은 신자유주의 금융수탈체제 종식이란 목표 실현을 위해, 0.15% 세율의 금융거래세와 30% 세율의 자본이득세를 신설해 마련한다.(진보신당기본소득위원회(준), 기본소득 노트)


기본소득제는 투기자본을 통제하고 금융자본 수탈이라는 급진적 주장을 한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금융자본에 대한 수탈은 그 실현가능성도 문제지만 수사의 급진성에 불과하고 자본주의 생산체제를 정면에서 거부하는 주장이 아니다. 원래 금융자본이라는 개념은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은행자본)과 결합으로 금융과두제를 형성하는 독점자본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재벌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이러한 금융자본 체제는 그대로 두고 투기자본을 통제하고 이들 자본에 세금을 때려서 기본소득 재원으로 마련하겠다는 주장에 불과하다. 기본소득론자들은 일관되게 자본주의 생산 자체에 대한 공격은 회피하고 화폐자본의 투기성, ‘기형성’을 바로 잡으려 하는 것이다.

결국 여기서도 기본소득론자들은 자본주의 생산은 그래도 둔 채 자본주의 분배관계의 왜곡만을 바로잡으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모순으로부터 자본주의 분배관계의 왜곡이 나타난다. 자본주의 생산관계는 앞에서 말한 자본물신성처럼 노동자가 착취를 당하고 자신이 만들어낸 노동의 결과로부터 소외된다. 게다가 생산수단을 장악한 자본은 그 힘으로 전체 사회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고 쥐락펴락한다. 여기에는 행정부, 사법부의 고위관료, 입법부의 국회의원도 포함되어 있고 국가기구 자체도 자본의 손아귀에 장악된다. 자본은 노동자에 대한 착취도 모자라서 법인세 감면, 부동산과 주식거래에 대해 세금감면을 하도록 하고, 부가가치세는 올려서 분배관계에서도 자신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와 대결하지 않고서는 분배관계도 개선하지 못할 뿐이다. 복지체제라고 하는 수정 자본주의는 노동자 민중의 격렬한 투쟁의 산물이다. 이러한 복지체제의 역사성을 망각하고 노동자 민중의 투쟁의식을 흐리고 일확천금 식의 한탕주의로 자본주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고 사기치는 기본소득론자의 주장은 그 자체로 유해하고 반동적이다.

노동시간 단축은 상한제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노동시간을 혁명적으로 단축하고 야근, 잔업, 밤샘 등의 초과노동 자체를 금지하는 법을 동시에 만들어야 한다. 최저임금의 획기적 인상과 새로운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 모든 임금 산정의 기초가 되는 최저임금의 기준을 도시 노동자 평균임금이 아닌 상대적 빈곤선 이상으로 정하고, 물가인상률과 자동 연동하는 방식으로 최저임금이 현실화되어야 한다....일자리를 의무적으로 만들어, 단축된 노동시간을 보존해일자리를 나눈다. 일자리 나누기를 위해 감소한 노동시간만큼 의무적 일자리 만들기를 법제화하는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이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고, 충분히 쉬면서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노동시간 단축은 강제적일 수밖에 없다.(진보신당, 같은 글)

이들은 노동자에게 유리한 각종 법률 제정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최저임금을 획기적으로 인상하고 일자리를 의무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처럼 노동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법률을 제정하기 위해 어떻게 투쟁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는다. 

기본소득론자들은 국가의 중립성을 유포하여 노동자의 계급의식을 흐리고 마비시키려 하고 있다. 자본주의 국가는 누구의 국가인가? 국가는 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착취체제의 안정과 재생산에 복무한다. 국가는 독점자본의 국가다. 그것을 우리는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라고 한다. 기본소득론자는 국가권력의 문제를 회피하고 의회를 장악해서 이른바 ‘좌파’ 정치세력들이 기본소득제를 입법화하면 된다는 자본주의 법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고 의회주의를 설파하기 때문에 반동적인 것이다.

이들은 ‘좌파 정권’이 집권하여 기본소득제를 입법화 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에서 노동당, 사회당, 사민당이라는 이름으로 집권했던 ‘좌파정당’들이 결국은 반노동자적이고 반민중적으로 타락해갈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외면한다. 이들은 그리스에서 시리자(급진좌파연합)를 염두에 두고 좌파정당이 들어서면 기본소득제를 실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자본주의와 대결하지 않고 집권으로 자본주의를 개혁하겠다는 그리스나 스페인 양국에서 이미 집권했던 사회당이 반동적인 정권이 될 수밖에 없었던 현실과 근본원인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공황이라는 자본주의 경제위기가 재정적자를 불러오고 이 재정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좌파’정권들 역시 노동자 민중에 대한 복지를 공격하고 정리해고와 임금, 연금을 공격하는 반동적인 공세를 취했던 것이다.

기본소득론자들은 브라질 룰라 정권 하에서 기본소득제가 추진되었고 지금 부분적으로 시행되고 있고 2014년부터 전면적으로 실시될 것이라면서 충분하게 실현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은 기본소득제가 브라질 자본주의의 빈곤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도의 액수인지, 아니면 지금 자본주의에서 계급저항을 막기 위한 조치로 시행하고 있는 기초생활보장비 수준에 그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전면 시행된다고 하더라도 실제 브라질에서 빈곤문제를 척결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더군다나 공황으로 인해 브라질에서 악화되고 있는 노동자 민중에 대한 공세에 대해서도 침묵한다.

기본소득제를 통한 분배구조의 개선은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실현가능성에 있어서도 망상에 그칠 수밖에 없지만 더욱 더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 공황과 제국주의 전쟁, 제국주의 전쟁 과정에서 발생하는 약소국에 대한 파괴와 대량학살, 부패와 타락으로 얼룩진 자본주의, 인류를 재앙으로 몰아가는 환경재앙, 소외와 범죄의 만연 같이 자본주의의 고유한 모순을 전혀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결국 기본소득제는 자본주의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과학적 이해를 가로막고 혼란스럽게 하고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저항을 가로막는 반동적 요구다. 기본소득제는 ‘좌파’라는 이름으로 은폐하고 있는 개량주의 사상에서 비롯된 소부르주아 잡사상에 불과하다. 기본소득제라는 요구 위에 기초한 개량주의 세력들은 노동자 계급의 변혁적, 과학적 사상으로 일소해야 한다. <노/정/협>  

한심이
2012-11-22 | 23:41:45 댓글 지우기
- "레닌이 주장한 테일러주의는 착취가 사라진 사회주의 생산관계에서는 착취의 수단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생산을 조직하는 생산조직 방식이 된다. 사회주의 생산관계에서 신기계, 신기술 도입과 합리적 생산방식은 노동시간 실질적 단축으로 노동자의 인간다운 노동과 풍요로운 삶을 일구는 해방의 무기가 된다"구요?

- 노동의 구상과 실행의 분리와 노동에 대한 세세한 통제를 의미하는 테일러주의에서 도대체 무슨 해방을 맛봅니까? 자본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일지라도, 테일러주의는 일부 특정세력(관료, 감독관)이 노동에 대한 통제를 하도록 만드는데, 거기서 무슨 해방이 일어납니까? 사회주의 덕분으로 잉여노동을 빼앗기지 않더라도, 테일러주의에서 노동과정 자체는 억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노동 안에서 무슨 즐거움을 찾습니까? (테일러주의는 사실 자본주의와 본질적으로 연결된 생산주의의 도구입니다. 따라서 사회주의에서 테일러주의를 도입한다는 것은 자본주의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 "합리적 생산방식은 노동시간 실질적 단축으로 노동자의 인간다운 노동과 풍요로운 삶을 일구는 해방의 무기"라구요? 이 말은 테일러주의로 통제되고 힘든 노동을 할지라도, 생산성이 증가되니, 노동시간이 단축되고, 해방은 노동 밖, 여가에서 찾으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노정협의 주장은 자신들이 비판했던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주장과 동일하게 됩니다. 즉 해방은 노동 밖에 있다는 주장이 됩니다. 이런 모순적 주장이 어디 있습니까?

- 사회주의에서는 노동과정 속에서도 노동자 자신의 통제가 이뤄지며, 즐거운 노동이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테일러주의를 수용하겠다구요? (물론 기술적으로 어쩔 수 없는 극히 제한적 부분에서는 테일러주의를 관료의 결정이 아니라 해당노동자의 합의 하에 수용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 아이디어는 정말 끔찍하군요. 예를 들어 현대차 공장에서 착취만이 문제입니까? 자본에 의한 노동과정 통제도 문제가 아닙니까? 자본이 관료로 바뀌어 노동과정을 통제한다면 문제가 없는 것입니까? 10시간씩 단순 반복으로 나사 쪼여 봤습니까? 먹물이 이 글 썼습니까? 미국식의 반공주의적 소련 비판도 문제지만, 이런 식의 소련 옹호는 긍정적 대안을 구성하는데 방해만 될 뿐입니다. 정신 좀 차리세요.
/한심이
2012-12-01 | 13:57:32 댓글 지우기
맞습니다. 사회주의 세상에서도 노동이 힘든 것 똑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 글에서 "노동자들이 테일러주의를 도입하여 노동에서 해방을 찾고, 즐거움을 찾는다"고 한 것은 어디까지나 착취가 없어졌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관료주의 문제,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경우 관료주의 문제(부분적인 오류)를 해결하려 노력해야 하는 것이지, 노동자들이 자주적으로 노동과정을 통제하게 되면 결국 본 글에 나왔듯이 "이윤과 화폐시장 관계를 강화하는 수정주의가 득세"할 수밖에 없습니다. 소뼈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이게 되는 어리석음을 범하면 안됩니다.

생산수단을 몰수, 사회화하면 동지가 말한 것처럼 "노동 밖, 여가"시간이 획기적으로 늘고, 실업이 사라집니다. 그만큼 인간이 노동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동지는 특정 어구 몇 개에 얽매여 글을 잘못 해석하신 듯합니다.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보세요.

[노동자정치신문89호]기본소득제 비판(1) - 이른바 ‘좌파’ 기본소득제의 망상성

[[노동자정치신문89호]기본소득제 비판(1) - 이른바 ‘좌파’ 기본소득제의 망상성] 

2012.10월호




기본소득제 비판(1)
이른바 ‘좌파’ 기본소득제의 망상성


빈 수레가 요란한 법이다. 맑스레닌주의의 변혁적, 과학적 사상이 무너진 자리에는 공허한 수사만이 난무하고 있다. 이른바 ‘좌파’, ‘진보좌파’, ‘급진좌파’라는 화려한 수사가 그것이다. 이들 이른바 ‘좌파’ 정치세력들은 2007년부터 ‘기본소득제’라는 요구를 전면에 내걸고 나서고 있다. 장터 사기꾼들이 알약 하나 가지고 만병통치제인냥 사기를 치듯, 이들 ‘좌파’는 기본소득제가 자본주의 모순을 해결하는 만병통치의 요구인 것처럼 떠벌이고 있다. ‘좌파’라는 수사가 이들 개량주의 정치세력들의 외양이고 형식이라면 기본소득제는 이들 개량주의의 내용이다.
지금 진보신당 내부에서 구 사회당과 기존 진보신당 세력들 내에서 심각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그 갈등이 차라리 기본소득제 같은 개량주의 요구를 둘러싼 사상투쟁이라면 그래도 정치적 도약의 계기는 될 텐데, 대선후보 선출을 둘러싼 의회주의적 분열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개량주의 정치세력들이 외치는 기본소득제의 내용을 폭로함으로써 ‘진보’라는 수사로 은폐하고 있는 이들의 망상성과 반동성을 폭로할 것이다. 또한 이를 통해 ‘좌파’라는 수사에 모종의 진보성을 부여하여 노동자계급 ‘변혁정치’의 과학성과 변혁성을 명확하게 세우지 못하는 운동현실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려 한다.
기본소득제는 전 세계적으로는 80년대부터 개량주의자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 한국에 서는 2007년부터 기본소득제가 처음으로 소개된 이래 짧은 시간 동안 새로운 요구로 퍼져나가고 있다. 쏘련 사회주의 붕괴 이후에 운동의 변혁적 전망을 상실하고 20여 년 동안 떠돌던 소부르주아 정치세력들과 학자들은 대거 이 개량주의 신상품에 현혹되어 너나없이 달려들고 있다.

곽: 학계에서는 2007년부터 해서 진보학계의 거의 95% 이상 학자들이 지지하는 것 같습니다.
물(음): 반대하시는 분이 거의 없다고 봐도 되겠네요?
곽: 몇 분 있어요. 두 세분 있습니다.
물: 반대하시는 이유는 뭡니까?
곽: 여러 가지죠. (웃음) 반대자는 학계에서는 이채언 교수가 반대하는 글을 썼고요, 학계에 계시는 분은 아니지만 채만수 소장이라고 노동 관련 연구소를 하시는 분이 계신데 반대의 글을 쓰셨고, 다른 분들도 계시지만 대표적으로 그 두 분의 글이라고 생각하고요....
곽: 네. 그런 것도 있을 겁니다. 그런 경우 빼면 굉장히 빠른 속도로 과거에 좌파에 계셨던 분들, 진보라고 할 수 있는 분들 중에 지지자가 늘어나고 있고. 그리고 특기할만한 건 신좌파는 100%에요.
물: 신좌파는 100%다?
곽: 네. 자율평론을 하시는 분들, 또 수유 너머 쪽 운동하시는 분들, 네그리 쪽이나 들뢰즈 쪽 연구하는 분들은 100%고, 구좌파 쪽에서는 좀 갈리는데 그중에서도 대부분이 지지자가 됐다는 게, 저로서는 어쨌든 학계에서는 성과가 컸다고 생각합니다.(기본소득 - 곽노완 교수를 만나다, 딴지일보, 2012년 9월 6일)

소부르주아 개량주의 진영에서는 한국사회당(현재 진보신당과 통합)이 소부르주아 잡사상을 전파하는 개량주의 망상과 반동적 요구를 전파하는 전위대 역할을 하고 진보신당 장석준, 이장규 등이 이 요구를 수용했다. 사회당과 진보신당이 ‘좌파’정치세력이라는 이름으로 통합하게 되는 계기는 반쏘, 반공 ‘좌파’라는 공통의 역사성과 더불어 기본소득제라는 요구도 통합의 주요한 매개체가 되었다. 구 민주노동당과 현 통합진보당 내에서도 기본소득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른바 ‘신좌파’ 정치세력들이 더욱 더 필사적으로 이 요구에 집착하고 있다.
한국사회 ‘진보학계’에서는 곽노완, 강남훈 등을 필두로 ‘진보’를 자처하는 거의 모든 교수들이 기본소득제를 지지하거나 앞장서서 전도하고 있다. 심지어 자본론의 번역자인 김수행과 대표적인 ‘좌파’ 정치학자였던 김세균 마저도 지난 2010년 은평을 총선에서 기본소득제를 전면에 내건 금민 후보를 지지함으로써 소부르주아 대열에 합류하였다.
전 세계적으로도 그렇겠지만 특히 한국사회 이른바 ‘진보진영’ 내에서 진보학자들의 95%, 신좌파 100%가 기본소득제를 동의한다고 했을 때 이를 통해 우리는 한국사회의 지적, 운동적 풍토가 얼마나 과학성과 변혁성을 상실하고 타락하고 저열한지를 잘 알 수 있다. 우리는 기본소득제가 망상적이고 심지어 반동적이라고 주장했는데 이제 그것을 과학적으로, 상식적으로 입증할 차례다.

그 망상성에 대해

먼저 기본소득제가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자!
위키백과를 찾아보면 기본소득은 “재산이나 소득의 많고 적음, 노동 여부나 노동 의사와 상관없이 개별적으로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균등하게 지급되는 소득이다.” 그 동안 자본주의 복지가 사회의 특정 구성원들에게 일정한 제한과 조건 속에 제공되는 선별적 복지라면 기본소득제는 누구에게나 제공되는 보편적 복지이다. 기본소득론자들은 이에 대해 “재벌에서 거지까지 해당되는 보편적 복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이처럼 가난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이건희나 정몽구 같은 재벌들한테도 1인당 50만 원 씩 기본소득을 조건 없이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보편적 복지가 되어야 하는 것은 선별적 복지가 시혜와 동정처럼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4인 가족이면 최소 200만원으로 최저임금 수준을 넘어서는 소득을 무조건적으로 지급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기본소득론자들은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무상교육 전제되어야지만 기본소득제가 더 높은 의미를 가지게 된다고 주장한다. 최저임금이 인상되고 노동시간이 단축되고 무상교육이 이뤄진 것도 모자라서 노동자나 민중 개개인들에게 한 달에 1인당 50만원씩 제공된다면 완전한 해방사회는 아닐지라도 자본주의지만 그래도 일정 정도의 빈곤은 사라지고 그럭저럭 살만한 인간다운 세상이 되지 않겠는가? 기본소득제 같은 만사형통의 방책이 있는데 굳이 그 오랜 시간 구속과 수배를 마다하지 않고 단식에 점거투쟁을 하면서 장기투쟁을 하고 원직복직 투쟁과 비정규직 투쟁을 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런데 아직은 꿈과 희망에 사로잡힐 때가 아니다. 이러한 요구를 실현하는데 필요한 재정을 어떻게 마련하고, 이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기본소득론자들은 이 요구를 실현하는 게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주장한다. 연간 300조를 마련해서 “국세청 컴퓨터에 모든 국민의 예금통장 번호를 입력해놓고 매달 걷힌 세금을 그대로 입금해주면 그것으로 끝이다.”(한겨레21, 전 국민이 넉넉한 월급 받는 세상!, 2010.02.05., 제797호) 유행하는 말로 차~~암 쉽죠~~~잉?
그렇다면 연간 300조를 마련하는데 비용은 어디에서 마련할 것인가? 참 쉬운 것처럼 보였던 기본소득 아이디어는 재정마련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치면서 벽을 넘고 도약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한다.

기본소득제를 실시하려면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다. 따라서 기존 전통적 복지제도에 들어가는 비용을 기본소득으로 모두 전환하더라도 가히 혁명적인 조세제도 개혁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한겨레21, 같은 기사)

기본소득론자끼리 이견이 있는데 윗글처럼 기본 전통적 복지비용을 기본소득으로 전환(이 말은 기존 복지를 없애서 이 비용의 일부를 기본소득으로 돌린다는 말이다.)하자는 주장이 있는데 이렇게 되면 아랫돌 괴서 윗돌 괴는 식이 된다는 비판이 제기되니까 이왕 쓰는 김에 왕창 쓰자는 심정으로 기본소득론자들 다수는 기존 복지를 유지하면서 여기에 더해 기본소득을 제공하자는 주장도 있다.
‘혁명적인 조세제도 개혁’이 기본소득론자들이 처음으로 넘어서야 하는 자본주의의 장벽인데 이들은 재원마련을 위해 주식양도세, 부동산 보유와 거래에서 나오는 불로소득에 대해 세금을 왕창 매기자고 주장한다. 기본소득네트워크 한국대표인 한신대 강남훈 교수는 이 ‘혁명적 조세제도 개혁’의 어려움을 이렇게 고백한다.

강남훈 교수는 “세금을 1∼2%만 올려도 부자들이 ‘세금폭탄’ 운운하며 강력하게 저항하는데, 세율을 1%포인트씩 올리면 기본소득이라는 목표에 도달하는 데 25년이 걸린다. 1% 올리나 25% 올리나 저항하기는 마찬가지니까 점진적으로 부담률을 높이기보다는 한 번에 25% 올리는 것이 더 맞는 전략일 수 있다”며 “점진적 증가는 저항의 장기화를 초래하게 된다”고 말했다.(한겨레21, 같은 기사)

강남훈 교수는 세금 1% 인상에 대한 저항이나 25% 올리는데 저항이나 양적으로 매 마찬가지의 저항이라고 본다. 그런데 기본소득 한국의 ‘국가대표’라는 거창한 직함을 가지고 있고, 학식이 풍부한 ‘진보적 지식인’의 고차원적 사고와 다르게 현실의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평범하고 상식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저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부자들에게 1% 세금 올리는데도 강력하게 저항한다면 한 번에 25%를 올리면 그 보다 최소한 25% 정도 질적으로 더 강력한 반발을 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는가?
더군다나 자본주의 사회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재벌들이 자신들이 보유한 물질적, 정신적 생산수단, 매수한 정치인, 관료들을 총동원해서 이러한 조치를 필사적으로 막을 텐데 어떻게 ‘혁명적인 조세개혁’을 할 것인가?
이제 현실 가능성의 문제 앞에서 이들이 제시하는 첫 번째 대안은 국민들 다수가 이 매력적인 요구를 알고 이해하는 것이다. 기본소득 학술제에서 이들이 발표한 어록을 살펴보자!

“한국은 불로소득 형태로 부가 집중돼 있고, 다수가 찬성하면 기본소득을 충분히 정치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조건이 돼 있다”
기본소득 구상을 설명하면 사람들이 ‘아, 그렇게만 되면 참 좋겠네’라면서도 ‘그런데 과연 그게 될까, 부자들이 그만큼 세금을 더 낼까’ 등의 의문을 단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순식간에 파괴력 있게 전파될 수 있는 힘을 지녔다(강남훈 교수)
“기본소득 개념을 아직 대중에게 공표하고 조직하지 못하고 있을 뿐 가능성은 충분하다”(전 민주노총 대변인 이수봉)

두 번째 주관적 신념으로 실현가능하다고 주문을 거는 것이다.

곽: 제가 낙관적이기도 한데요. 반드시 된다고 봅니다. 문제는 시기죠. 시기인데. 우리나라가 평균이상의 GDP를 벌고 지적 수준이나 정치적인 수준을 감안했을 때 세계 평균 이상인데, 이게 안 된다는 거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고요.
곽: 보통선거권도 19세기의 선물이죠. 지금은 상식이 되었단 말입니다. 그때는 진짜 황당한 주장이었고. 정치적인 평등권이 보통선거권이라고 한다면, 경제적인 평등권, 모든 결과의 동일이 아니라 기회를 공평하게 갖기 위해서 GDP의 30% 이상은 1/n로 하고 시작하자는 거거든요.
곽: 기본소득은 시기의 문제만 남았을 뿐, 반드시 시행된다고 믿고 있고 진심되게 그렇게 설명하고 있다. 그럴 수도 있다.(기본소득 - 곽노완 교수를 만나다, 딴지일보 인터뷰, 2012년 9월 6일)

세 번째 부자들의 반발은 부자들을 고매한 이상으로 교양시킴으로써 잠재울 수 있다.

셋째, 부자들의 행동의 감정적인 측면이다. 어차피 정책의 순 부담은 부자들이 더 크게 부담하는 것인데, 부자라는 이유로 정책 편익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더욱 감정을 자극할 수 있다. 신청한 사람에게는 누구든지 다 지급하지만, 부자들은 신청하지 말아 달라고 도덕적으로 호소해서 성공한 이란의 사례를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인간을 이타적인 존재로 믿어줌으로써 이타적인 행동을 유도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기본소득 노트, 진보신당 기본소득위원회(준), 2012. 10. 7., 엮음:권문석 김성일, 감수:김현우 이선주 이장규 장석준)

심지어 부자에게도 좋을 수 있다. 부자의 삶에서도 최악의 경우를 고려했을 때 일종의 보험 같은 효과가 있기 때문이죠. 만약 사업을 하다 파산을 했어요. 그랬을 때 노숙자가 되는 것보다는 기본소득이 있으니, 삶에 안정감을 주는 거거든요.(곽노완, 딴지일보 인터뷰)
이 대목에서 트윗 공간에서 자본가 봇(@kapital_bot)이 날린 멘션을 하나 소개해 본다.
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교육 해버리면 자본가는 뭐 먹고 사나요? 자본가에게 기본소득을!(곽노완 딴지일보 인터뷰 중 기자의 말)

네 번째 기본소득제를 내건 ‘좌파’ 세력들이 의회를 장악하거나 정치인들을 설득시키는 것으로 가능하다.

현재의 정치 조건과 이후 상황을 봤을 때, 기본소득을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권리로써 지급할 수 있는 정치세력은, 집권한 좌파정당의 정권뿐이다.(진보신당, 기본소득노트)

곽: 정동영 전 의원은 증세 입장이었으니까 다른 방식으로 증세해서 할 수 있겠다고, 훨씬 더 적극적이었어요. 그런데 출마를 포기하셨기 때문에. 그 외에 문재인 후보는 저희가 브리핑을 드린 적이 없어서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 잘 모르고 있을 것 같고요.(곽노완 딴지일보 인터뷰)

이처럼 이들은 기본소득을 대중적으로 알려내서 여론 다수의 지지를 받고, 이를 바탕으로 ‘좌파’ 정치세력들이나 부르주아 정치인들이 여기에 동조해서 ‘혁명적인 조세개혁’이라는 법률제정을 하면 실현될 수 있는 문제로 사고하고 있다. 심지어 부자들 특히 자본가들을 도덕적으로 교화시켜서 기본소득을 받아들이게 하고, 기본소득을 수용하면 부자들한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이르면 이들의 망상성에 놀라 자빠질 따름이다.
노동자 민중이 자본주의 체제를 뒤엎는 투쟁을 할 때 자본가들이 위협을 느껴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양보한 것이 바로 복지다. 개량주의 정치세력들은 법률 제정과 사회복지 자본주의 내에서의 개량적 요구 즉 노동자 민중의 복지를 계급투쟁적 관점으로 안보고 있다. 이들이 기본소득제 실현의 전제조건으로 말하는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무상의료, 무상대중교통 같은 복지요구 조차 자본주의 체제를 뒤흔들 정도의 치열한 계급투쟁이 있어야지만 쟁취할 수 있다. 그런데 기본소득론자들은 노동자 민중의 거대한 투쟁으로 쟁취해야할 투쟁 요구를 이미 쟁취하여 손에 움켜 쥔 것으로 가정한다.
기본소득론자들은 토지세에 대해 세금을 잔뜩 매겨서 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한다고 한다. 여기서도 이들의 망상성과 몰과학성이 잘 드러난다.

토지는 사적으로 소유할 수 없는 공유재입니다. 현재 다양한 형태로 분산된 토지 관련 세금을 단일 토지세로 통합하고, 보유세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토지와 건물을 합하여 계산하며, 1년에 5% 정도의 토지세를 부과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토지 소유로부터 얻을 수 있는 수익과 미래 기대 수익이 모두 사라지면, 점진적인 토지 사회화가 가능합니다. 사람들은 집과 땅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사용료를 내면서 살아가면 됩니다. 물론, 이 사용료는 그 땅의 가치에 따라 차등하게 책정되어야 할 것입니다.(진보신당, 기본소득론 노트)

그러나 이들의 주장처럼 “토지는 사적으로 소유할 수 없는 공유재”가 아니다. 맑스가 자본론에서 말한 것처럼, 토지 사적소유권 때문에 한정된 지구 위에서 토지에 대한 배타적 소유권이 생겼다. 맑스는 “토지소유가 동일인의 수중에서 산업자본과 결합할 때 토지소유는 거대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으며 임금투쟁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거주지로서의 토지 그것으로부터 배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자본주의에서 토지는 매매되기 때문에 점점 더 돈 많은 자본가들한테 토지가 집중되고 있다. 실제 사유토지의 절반 이상은 1% 부자들이 소유하고 있고 5%가 80%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산업자본가들이거나 화폐자본가들이고 일부 지주들이다. 산업자본은 업무용 부동산이라는 이름으로 낮은 세금을 내고 막대한 토지를 합법적으로 소유하고 있다. 업무용 부동산이라는 명목으로 토지를 보유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투자와 투기를 분리하여 토지 투기에 대해 불로소득이라는 이름으로 토지세를 매기는 것도 쉽지 않다. 게다가 토지를 자신들의 손아귀로 집중하고 있는 자본가들한테 토지 보유세를 왕창 올리는 것도 현실성이 없지만, 점진적인 토지 보유세 인상으로 점진적인 토지 사회화를 하겠다는 주장도 망상이다. 토지의 사적소유권이 사라지지 않은 채, 토지의 사회화는 불가능하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이게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맑스의 말처럼 토지 소유권은 “전적으로 자본주의 생산관계에 의해 창조된 것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박살낼 때만 토지 사유권도 박살나고 토지 사회화가 가능하다. 물론 낮은 수준의 공산주의인 사회주의에서는 국유화가 대표적인 사회화의 형태이다.
국영카드 회사를 설립해서 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한다는 발상도 망상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수수료 0%의 국영카드회사 설립, 연기금 등의 사회적 소유의 기금을 통한 금융과 대기업의 사회적 소유 확대등을 동반한다. 이런 방식의 기본소득 재원 정치는, 현재의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 금융수탈체제에 대한 해법이기도 하다.(진보신당, 기본소득 노트)

자본주의에서 독점자본은 은행자본과 산업자본을 다 소유하고 있다. 한국 재벌은 카드사, 단자사, 보험사 등 제2금융권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제1금융권인 은행도 자신들이 소유하겠다고 주장한다. 토지 소유권에 대한 비판과 마찬가지로 재벌이 금융을 지배하고 있는데 자본주의에서 사회적 소유 확대로 기본소득 재원을 어찌 마련할 것인가? 국영카드 회사를 설립한다고 하는데 그 국가는 누가 지배하는가?
기본소득론자들은 공상적 사회주의자인 푸리에의 후예를 자처하고 있다. 기본소득 논의를 처음으로 한 세력들의 이름도 ‘사를 푸리에 서클’이다. 엥겔스는 ‘공상에서 과학으로’에서 1800년대 초 푸리에 같은 사회주의자들을 공상적이라고 비판하면서도 그들의 한계가 자본주의 생산이 덜 발전하여 계급관계가 미발전한 상태에서 오는 역사적 한계라고 했다. 자본주의가 발달하기 시작할 무렵 민중들에게 빈곤과 참상을 가져다준 자본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한 위대한 공상적 사회주의자들과 달리, 그 뒤로 210년이 지나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하고 노동자와 자본가와의 계급대립이 선명해진 21세기에도 여전히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개량주의 세력들은 노동자계급의 계급의식을 흐리고 자본주의 모순을 은폐하는 범죄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기본소득론자들은 푸리에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
기본소득론자들은 망상을 멈추라!
‘좌파’라는 수사로 노동자들을 혼란시키지 말라! 
[노/정/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