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총선에선 의석수 3위 저력
‘분노하는 사람들’ 포데모스 탄생 모태
여러 형태 시민참여 이끄는 데 성공
오프라인에선 ‘서클’ 통해 활동 활발
정당운영 자금 ‘크라우드펀딩’ 충당
집권·대안 만들지는 아직은 미지수
금강초롱 블로그 스페인, podemos, 포데모스, 그리스, syriza, 급진좌파 연합, 시리자, 진보정당, 진보주의자, 선거를 통한 혁명, 베네수엘라, 통합사회당, PSUV, 진보적 민주주의 세상아 덤벼라!!! 다함께 즐겁게 살아보자
번역: 김영익
《인터내셔널 소셜리즘》 136호(2012년 가을)에서 리처드 시모어와 파노스 가르가나스는 그리스 좌파를 위한 서로 다른 정치 전략을 내놓았다.1 이 논쟁은 그리스뿐 아니라 다른 지역의 혁명가들에게도 중요한 함의가 있다. 가르가나스는 반자본주의 좌파가 안타르시아를 통해, 곧 시리자와는 별도 조직으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정치적 투쟁에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시모어는 시리자를 “비판적으로 지지”하고 “좌파 정부” 구호를 “전폭” 지지하자는 전략을 제안했다. 시모어는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시리자를 “좌파 개혁주의”고 규정한2 것도 비판했다. 그 용어가 “중요한 세부 사항을 간과”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도 구체적이고 세세한 사실에 관심을 두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이 글의 목적도 해외 동지들이 그리스 상황을 상세히 평가하고자 할 때 고려해야 할 구체적 사실들을 제공하려는 데에 있다.
시모어가 내놓은 정보 가운데 특히 몇 가지는 정정해야 한다. 시모어는 “2009년 학생 반란”이라는 말을 썼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정부의 교육 개혁에 맞선 학생 반란은 2006년과 2007년에 일어났고, 가장 유명했던 대규모 청년 반란은 2008년 12월에 일어났다. 그런데 2009년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 시모어는 시나스피스모스(시리자 안에서 가장 큰 정당)가 2006년에 그리스 사회포럼에 참가했다고도 했는데, 이것도 틀린 사실이다. 그리스 사회포럼은 시나스피스모스가 반자본주의 운동에서 주도력을 장악하려고 2004년에 만든 연대체다. 그러니 자기가 만든 조직에 나중에 합류한다는 것은 분명히 말이 안 된다. 그리스 사회포럼은 2006년 아테네에서 열린 유럽 사회포럼을 조직하는 데 참여했고, 영국과 유럽의 많은 동지들도 이 포럼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오류들은 사소한 것이다. 더 크고 더 중요한 오류들이 있다.
시모어는 다른 글에서 시리자를 “전형적이지 않은” 개혁주의라고 불렀다.3 시모어는 이 규정에 설득력을 싣기 위해 시리자 안에 혁명적 좌파 조직들이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시나스피스모스의 좌파와 함께 활동하는 이 조직들이 시리자의 정치를 상당히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함축하는 것이다. 시모어는 캘리니코스가 시리자 내 혁명적 좌파를 “공정하게” 다루지 않는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상황을 더 구체적으로 봐야 한다. 시리자 안에 혁명적 좌파 조직과 시나스피스모스의 좌파 경향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는 시리자의 정책 결정이 얼마나 바뀔 수 있을지 확신하기는 힘들다. 예를 들어, 1980년대 영국 노동당 안에는 강령한 좌파 경향은 물론이고 조직된 혁명적 단체들도 있었다. 그러나 노동당 내 좌파들은 노동당의 정책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게다가 노동당 내 좌파와 우파의 세력 관계는 그 뒤 10년 동안 상황에 따라 달랐다. 그렇다면 시리자는 어떠한가?
시리자 내 극좌파는 2012년 총선 전에 시나스피스모스 지도부에 맞서(따라서 시리자에 맞서) 역대 가장 중요했던 정치적 도전을 벌였다가 참패했다. 이 도전은 2010년에 있었는데, 시나스피스모스의 전 대표 알레코스 알라바노스가 이끈 ‘연대와 파열 전선’MAA, Front of Solidarity and Rupture이 주도했다. 시모어가 언급한 두 조직, 즉 마오주의 조직인 그리스 공산주의자단체KOE와 트로츠키조직인 국제주의노동자좌파DEA, Internationalist Workers’ Left가 이 도전을 지지했다. MAA는 시리자 지도부의 온건화 방향과 유럽연합·유로화 친화적 노선을 부각해 비판했다. 그러나 MAA는 주로 시나스피스모스 안에서 동맹을 찾으려 했고, 특히 좌파경향Left Current과 그 조직의 지도자 파나이오티스 라파자니스와 동맹을 맺으려 주력했다. 그러나 라파자니스는 시나스피스모스와 결별해 MAA로 가지는 않았다. 이는 예상 못할 결과는 아니었다.(라파자니스가 시나스피스모스와 결별할 것이라는 가정을 정치 전략의 중심에 놓았던 사람들은 실망했겠지만 말이다.)
MAA가 시리자를 분열시킬 만한 대중적 기반을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이 명백해진 뒤로는 오히려 MAA를 지지하던 조직들이 MAA를 내팽개치고 다시 시리자를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그런 조직들의 정치적 입장은 MAA보다 취약하고 온건했지만 말이다. KOE는 이런 급격한 전환기에 분열을 겪었다.(지도부의 절반이 조직을 떠났다. 그들은 한때 낡은 공산당식 사투리를 썼어도 유럽연합과 유로존을 반대한 것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유럽연합과 유로존은 주요 쟁점이 아니다” 하고 주장한다.) KOE의 현재 정치 노선은 시나스피스모스의 좌파라고 하기 힘들다. KOE는 [그리스 정부가 국제 채권단 트로이카(유럽연합, 유럽중앙은행, IMF)와 체결한] 양해각서에 반대하는 “국민적” 전선을 결성하는 데 강조점을 두면서, 심지어 우파 정당(반反터키 민족주의자이자 전에는 신민당 소속 국회의원이었던 파노스 카메노스 — 영국 보수당에 있다가 탈당해 영국독립당을 설립한 우파 정치인 나이절 패라지와 비슷한 인물 — 가 이끄는 그리스독립당 같은 정당)들과도 협력하자고 한다. 다행히도 시나스피스모스(와 시리자)는 현재까지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그럼에도 이 우파 정당의 “비판적 지지”를 얻어 좌파 정부를 구성하자는 제안에는 시나스피스모스가 동의할지 모른다는 얘기가 있다.)
그렇다면 시모어가 언급한 또 다른 조직 DEA는 어떠한가? 시모어가 인용한 안토니스 다바넬로스의 2008년 기사가 많은 것을 알려 준다.4(무슨 이유에서인지 시모어는 이 기사를 두 번 언급했다.) 그 기사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바넬로스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시나스피스모스의 대표 알레코스 알라바노스가 한 제안의 핵심은 “반신자유주의와 반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강령을 가진 좌파 정부”다. 많은 단체들과 마찬가지로 DEA도 시리자가 신자유주의 정책의 반전을 목적으로 한 선거적 야당으로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이런 제안에 반대한다. 이 쟁점에 관해서는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고 앞으로 토론할 여지가 있다.
그런데 왜 DEA는 2008년에는 시리자의 당시 지도자 알레코스 알라바노스가 한 이 제안에 반대했으면서 2012년에는 시리자의 현 지도자 알렉시스 치프라스가 한 제안에 찬성했을까? 시나스피스모스의 새 지도부가 좌선회해서 그런 것은 확실히 아니다. 시나스피스모스의 아주 충성스러운 당원들조차 알라바노스가 치프라스보다 좌파라는 사실은 인정할 것이다. 현실에서 시리자의 좌파(와 시리자 내 혁명적 좌파 조직들)는 시리자 지도부의 “좌파 정부” 전략에 딸려 간 것이다.
2012년 총선이 끝난 뒤 몇 달 동안 여러 사건에서 내가 묘사한 [시리자 내] 세력 관계가 옳았음이 드러났다. [시리자 내] “강력한” 좌파에 대한 추상적 얘기와 대조적으로 말이다. 최근에 열린[2012년 11월 30일~12월 2일에 열린] 시리자 대의원대회에서 지도부는 당 전체를 더 온건한 방향으로 끌어당겼다. 이제 시리자의 주안점은 “일방적으로” 급진적 결정을 하지 않을 “구국” 정부를 구성해 그리스가 유럽연합·IMF와 체결한 양해각서에 대해 재협상하자는 쪽으로 옮겨 갔다. 이 대의원대회에서 시리자 내 좌파들은 ‘좌파적 강령’Left Platform이라는 분파를 결성해(시모어가 언급한 KOE는 지도부 편을 들었다) 25퍼센트의 지지를 얻었다. 이 수치는 좌파경향이 평소 시나스피스모스 안에서 받는 지지율보다 작은 것이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은 시리자 내 좌파가 시리자의 정치 노선에 영향력을 거의 미치지 못한다고 본다. 적어도 시리자의 경제정책 생산 기구에서 시리자 내 좌파의 영향력은 아예 없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제 시리자의 주요 과제는 “통치 능력”을 입증하는 것이 됐다. 치프라스는 라틴아메리카로 가서 브라질의 룰라와 아르헨티나의 키르치네르를 만나고, 독일 재무장관 볼프강 쇼이블레를 만났다. 더 최근에는 미국으로 가서 IMF와 자유주의 성향의 연구소(브루킹스연구소[오바마 정부 들어 급부상한 민주당계 연구소]를 포함해)들을 만나 그들의 환심을 사려고 이 전략을 거듭거듭 밝혔다. 치프라스는 그리스의 주요 보수 정치인 콘스탄티노스 카라만리스(전 총리 코스타스 카라만리스의 삼촌)의 “현대화”, “헤게모니” 전략이 우파로 가는 표를 좌파로 끌어올 수 있을 것이라며 칭찬해서, 자신의 가장 충실한 지지자들조차 깜짝 놀라게 했다. 시리자 내 좌파가 야당의 처지에 있는 현재 시리자의 노선을 좌지우지할 수 없다면, 집권당이 된 이후(곧, 국가, 부르주아적 합법성, 지배계급이 가하는 커다란 압박을 받는) 시리자의 행보가 어떨지는 함부로 예단할 수 없을 것이다.
좌파 활동가들이 이런 사태 전개를 보면서 곧장 떠올릴 질문은 이렇다. 이런 일은 항상 일어날 수밖에 없는가? 좌파 정당이 권력에 다가가면 급진성이 자연스럽게 탈색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역사적 법칙인가? 다행히도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로버트 미헬의 “과두제의 철칙”이 아니라, 정치 전략의 문제에서 찾을 수 있다. 나는 전략이라는 말을 노동운동이 끊임없이 고심할 문제(개혁이냐 혁명이냐 하는 문제)뿐 아니라 특정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들을 가리키는 뜻으로 썼다. 그리스에서 핵심 쟁점은 유로존이다.
유로존 문제에 대한 좌파들의 관점과 제1차세계대전에 대한 당시 좌파들의 관점 사이에는 비슷한 구석이 많다. 전쟁 책동에 반대할 것이냐 아니냐는 당시 좌파들의 재편에서 핵심 쟁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평화를 지지한 사람들이 모두 마르크스주의자였다는 뜻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유로존에서 벗어나자고 하는 사람들이 모두 혁명적 사회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시모어가 언급한 코스타스 라파비차스의 “그렉시트”Grexit[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강령은 급진적 반신자유주의 강령이다. 유로존의 구속에서 벗어나 그리스 통화의 가치를 떨어뜨려 그리스 자본주의의 경쟁력을 회복시키자는 내용이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이탈하는 것이 긴축을 끝장내고 노동계급 친화적 정책을 추진하고자 하는 반자본주의 정치에 꼭 필요한 단계라는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시리자 지도부의 유로존 친화적 노선은 운동의 급진성을 길들이고 운동을 온건하게 만들려고 하는 그리스 지배계급에게 유용한 수단이 돼 왔다. 시모어의 주장과 달리, 유로존 탈퇴 주장은 시리자가 선거에서 한 제안[좌파 정부 구성]을 거부하는 것을 정당화하려고 내놓은 혁명적 좌파들의 이데올로기적 우회로가 아니다. 시리자의 유로존 친화적 노선이 시리자 지도부가 노동계급의 현재 의식 수준을 측정해 내놓은 전술적 결정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유로존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은 운동에 맞서 지배계급이 내놓은 정치적·이데올로기적 협박이다. 지배계급은 기업주와 정치인들이 부채를 줄여야 한다며 늘어놓는 얘기들의 정당성이 운동 때문에 크게 훼손되자 그런 협박을 해댄 것이다. 따라서 유로존 문제에서는 대담한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 시리자 자신의 유로존 친화적 입장은 시리자가 오랫동안 고수한 유럽연합 친화적 전략, 즉 유럽연합이 국민국가보다는 국제주의적이고 진보적이라고 보는 유러코뮤니즘의 오래된 신념의 귀결이다. 유로존이 강요하는 제약을 받아들이며 그리스의 경제 위기를 해결하자고 하는 것은 미국 공화당 우파가 “재정적자”와 “과잉 지출”을 “대폭 감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시리자의 지도적 경제학자들은 점점 더 그렇게 하고 있다. 반면, 안타르시아의 반자본주의 좌파는 부채 탕감과 양해각서 무효화, 은행 국유화, 투자 통제를 주장하는 강령을 내놓았다. 이 요구들은 모두 유로존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한다.
핵심적 질문은 이렇다. 누가 위기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반자본주의 강령을 실행할 것인가? 시모어는 “좌파 정부” 구성을 “의미 있는 단계”로 보며 시리자의 전략을 찬양했다. 그가 반복해서 말했듯이, 당장은 소비에트가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런 주장의 발전 과정에서 놀라운 것 하나는 “좌파 정부” 전략 옹호자들이 1922년 코민테른 4차 대회에서 있었던 논의를 끌어다 쓴다는 것이다. 그것도 레닌주의 정치를 대체로 낡은 것으로 여기는 좌파들이 그러니 더 놀랍다. 초기 코민테른이 남긴 혁명적 교훈에 대한 내 신념은 여전히 확고하다. 하지만 시리자가 내놓은 전략은 1920년대보다는 1970년대의 경험과 훨씬 더 관련이 있어 보인다. 우리가 지금 다루고 있는 “좌파 정부” 전략은 과거 프랑스 공산당PCF이 내놓은 유러코뮤니즘적 “좌파 정부” 노선을 포장만 바꿔 다시 내놓은 것이다.(그럼에도 당시 PCF가 오늘날의 시리자보다 노동계급에 훨씬 더 깊이 뿌리 내리고 있었음을 기억하자.) 나는 “좌파 정부”가 운동을 위한 “교육 과정”의 일부가 될 수 있고, 노동계급에게 득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다. 바로 노동운동의 선진 부위가 그 정부로부터 정치적으로 독립적이어야 하고 그 정부의 등장은 운동 자체의 활동 결과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5 그렇다고 해서 정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뜻하는 정치는 정부 인수를 바라는 “현실주의”의 정치와도 다르고 혁명적 낭만주의의 정치와도 다른 종류의 정치다. 지금 혁명적 좌파가 노동자 투쟁에 강조점을 두는 이유는 미래에 급진적 강령을 실행할 때 결정적일 주체적 역량을 구축하기 위해서다. 주체적 역량의 구축은 지배계급의 반혁명적 반발에 맞설 때뿐 아니라, 노동계급이 자신의 기관을 통해 마침내 권력을 획득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가 될 때도 사활적으로 중요하다.
안타깝지만 “좌파 정부”를 둘러싼 혁명적 좌파 내의 논쟁을 보면, 일부는 정치가 무엇인지에 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시리자의 스타니스 쿠벨라키스가 그리스에 관해 한 연설은 그런 관점을 아주 잘 보여 준다.
그리스 상황에서 충격적인 사실은 총파업이 24번이나 일어나고 2011년 봄 수많은 사람들이 몇주 동안이나 광장을 점거했는데도 눈에 보이는 성과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양해각서에 명시된 극도로 야만적인 긴축정책 꾸러미 중 단 하나도 철회시키지 못했다. 따라서 긴축정책을 막아 내고 사태를 뒤집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정치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6
이것은 정치에 관한 뒤틀린 관점이다. 정치를 운동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한계가 있는 운동을 대체할 수단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잘못된 개념은 그람시의 “통합국가”Integral State 개념을 곡해해서 사용하는 관점과 정치를 오로지 국가 내부의 투쟁이나 국가를 장악하기 위한 투쟁으로만 보는 관점에서 나타난다. 국가는 정치의 핵심적 부분이 응축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가가 정치와 같은 것은 아니다.
황금새벽당의 부상에 맞선 투쟁 경험이 좋은 사례인데, 이 경험은 운동(과 그 운동 속의 혁명적 좌파들)이 “좌파 정부” 입각이라는 의제를 받아들이지 않아도 어떻게 정치를 할 수 있는지 아주 잘 보여 줬다. 올해[2013년] 1월 19일 반파시즘 시위가 성공적으로 치러진 것을 포함해 반파시스트 운동이 일반적으로 성장한 것은 그리스의 반자본주의 좌파와 그 안에서 지도적 구실을 하는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SEK이 함께 일군 중요한 정치 행동이다. 다음 선거를 기다리며 이런 운동에는 나타나지 않는 시리자보다 이런 요소들이 정치 지형에 훨씬 더 크고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황금새벽당을 분쇄하는 것은 이제 사마라스 정부에 맞서 싸우는 데 꼭 필요한 단계가 됐다. 그리고 파시스트와 국가 탄압에 항의하는 대중 운동이 일어나며 청년들이 새롭게 급진화한 이래 투쟁에 걸린 판돈은 그 전보다 훨씬 더 커졌다. 좌파의 정치적 단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는 노동계급과 급진화하는 청년들 사이의 사회적 단결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시리자가 파시스트에 맞서는 전선을 회피하는 것은 전략적 분열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반자본주의 좌파 세력들이 그것을 막으려 애쓰고 있다.
결론을 내야겠다. 자본주의의 위기로 과거의 사회적·정치적 동맹 관계가 매우 불안정해지고 있다. 위기의 속도가 모든 곳에서 같지는 않지만, 위기는 전 세계적 현상이다. 이 때문에 옛 세대 활동가들, 핵심으로는 노동계급이 우파 사회민주주의와 결별했고, 좌파 개혁주의 조직들이 부상했다. 그런데 대다수 좌파 개혁주의 조직들은 “늙은 좌파”들이 이끌었다. 이 “늙은 좌파”들은 다시 민중의 호민관을 자처하고 있다. 독일 디링케(좌파당)의 오스카 라퐁텐, 이탈리아 재건공산당의 파우스토 베르티노티, 영국 리스펙트의 조지 갤러웨이, 프랑스 좌파전선의 장 뤽 멜랑숑, 그리스 시리자의 알렉시스 치프라스가 그런 사례다.(물론 치프라스 개인은 매우 젊지만 그 뒤에는 가장 늙은 정당이 있다.) 아랍의 봄 후에 떠오른 “민중의” 정치인들도 이 명단에 넣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 세대 활동가들(특히 청년들)은 거리의 정치, 학생운동의 분출, 자율주의 사상, 억압에 맞선 새로운 급진적 운동 등으로 이끌렸다.7 혁명적 좌파는 이런 발전 과정에 도움이 될 귀중한 이데올로기적 자산이 있지만, 그런 잠재력을 발현하려면 힘들더라도 끈기 있게 활동해야 한다.
혁명적 좌파는 급진화하는 청년들을 포용해야 하지만, 그들이 청년 집단 사이에서 여전히 득세하는 비정치적 운동주의를 넘어 정치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그러려면 전통적인 좌파 개혁주의 정당(또는 가장 급진적 버전의 좌파 개혁주의)보다 훨씬 더 급진적인 이론과 실천이 필요하다.
동시에 혁명가들은 이 급진적 세대와 불만에 찬 노동계급을 연결시켜야 한다. 기성 개혁주의 정당들에 대한 노동계급의 오랜 충성심을 깨고, 그들에게 진정으로 좌파적인 선택지를 제시하려면 말이다. 그러려면 우리는 좌파 개혁주의 조직(어떤 형태이든)들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으면서도 그들의 전략을 꽁무니 좇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에 있는 우리가 투쟁에 개입한 경험을 돌이켜보면, 혁명적 좌파는 [좌파 개혁주의로부터]이데올로기적·조직적으로 독립적이어야 한다. 혁명적 좌파의 독립성을 물신화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최근 격동의 몇 년 동안 투쟁에 참여하며 어렵게 배운 교훈이다.
기성 정치가 불안정해지면 새로운 정치 세력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완전히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전략과 이데올로기적 경향이 다시 나타나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시모어는 “개혁주의적 최소 강령과 혁명적 최대 강령” 사이에서 묘책을 찾아야 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정확히 1920년대의 [개혁주의적]제2인터내셔널이나 [혁명적] 제3인터내셔널이 아니라, [중간주의적] “제2.5인터내셔널”이 하려던 것이다.
그리스 좌파의 전략을 둘러싼 논쟁을 보면, 몇 달에서 몇 년 후에는 국제적으로도 비슷한 논쟁이 벌어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전통에 속해 있음을 당당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자본주의라는 재앙이 없는 세계를 이룩하려면, 그리스의 SEK나 영국의 사회주의노동자당SWP 같은 혁명적 좌파 조직을 건설하는 것이 전략적 핵심 과제다.
1 Seymour, 2012a and Garganas, 2012. 이 글은 ‘Left Flank‘ 블로그에 처음으로 실렸다. ‘Left Flank’의 편집자 Tad Tietze와 Elizabeth Humphrys에게 감사한다. http://left-flank.org/
2 Callinicos, 2012a and 2012b.
3 Seymour, 2012b.
4 Davanellos, 2008 and 2012.
5 이에 관한 세심한 논의로는 Harman and Potter, 1977을 보시오.
6 Kouvelakis, 2012.
7 파노스 가르가나스는 알렉스 캘리니코스, 프랑수아 사바두와 논쟁하며 이 “풍부한 혼합물”(richer mix)에 관해 예측했다. Garganas, 2009.
[참고자료]영국 노동당 강령 2편
*우경화되기 전 옛날의 영국 노동당 총천 강령입니다.
영국 노동당 1945년 총선 강령
“미래를 향하자”
[해설] 1945년 7월 5일의 영국 총선에서 노동당은 48.3%의 지지를 얻어 하원 총 604석 중 393석을 차지하는 대승을 거뒀다. 전쟁 영웅 윈스턴 처칠(보수당)을 물리치고 집권당이 된 것이다. 당시는 유럽 전선에서 포화가 멎은 지 석 달 정도 뒤였고 아시아 전선에서는 아직 전쟁이 끝나기 전이었다. 클레멘트 애틀리를 수상으로 하는 노동당 신정부는 이후 1950년까지 5년 동안 사회 개혁을 단행했다. 지금도 영국 복지제도와 공공부문의 골간을 이루는 것들(대표적으로는, 영국의 무상공공의료제도인 국민보건서비스NHS)이 이때 대부분 만들어졌다. 애틀리 정부는 ‘영국 노동당 역사상 가장 진지하게 개혁을 추진한 정부’로 평가받는데, 이게 결코 공치사는 아니라 할 수 있다. 1945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내건 강령도 그 때까지 노동당 역사상 가장 급진적인 것이었다. 아래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강령은 대공황과 전쟁을 겪으며 완전고용의 달성을 희구하게 된 당시 민중들의 열망을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이때는 (신자유주의 시대인 지금과는 달리) 자본가와 보수세력도 케인즈주의를 수용하여 완전고용을 경제 정책의 목표로 삼았고, 이를 위해 국가가 경제에 적극 개입하는 것을 지지하고 있었다. 단순한 국가 개입 여부만으로는 좌와 우의 차이가 명확히 드러나기 힘든 형편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래의 노동당 강령은 공공부문을 어느 정도나 확대하려 하는지를 통해 그 차이를 드러내려 한다. 공공부문을 최소화하려는 보수당과 달리 노동당은 석탄, 철강 등의 사양 산업에서는 사기업에 대한 국공유화까지 추진하려 한다는 것이다. (전후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는 강령의 앞부분과, 지금은 낡은 내용으로만 보이는 사회복지 관련 부분은 번역에서 제외했다.-인터넷 자료)
만인을 위한 일자리
모든 정당들이 하나같이 다 만인을 위한 일자리를 떠들어댄다. 모든 정당들이 다 국가 구매력을 유지하고 정부 개입을 통해 국가 수지 변화를 통제함으로써 이런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민간부문의 통제 수준을 놓고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완전고용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는 정부가 공공부문뿐만 아니라 민간부문의 투자와 개발 정책까지 이 프로그램에 얼마나 단호하게 그리고 성공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는 게 엄연한 진실이다.
다른 당들[보수당, 자유당-역자]도, 나라가 심각한 실업난에 빠지는 한, 민간부문을 진작하기 위해 국가 개입을 충분히 활용할 태세는 되어 있다. 하지만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민간 영역에서 불황이 너무 심각해져서 지금의 공적 개입 수준으로는 균형을 맞추기 힘들게 될 경우(앞으로 분명히 드러나게 될 텐데), 다른 당들은 공적 개입의 범위가 확대되어 한다는 결론을 내릴 태세는 돼 있지 못하다.
저들은 말한다. “완전고용, 좋지! 민간부문을 너무 간섭하지 않고서 달성할 수만 있다면 말이야.” 반면에 우리는 말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완전고용을 달성해야 한다. 만약 만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산업 전반에 대한 공적 통제력을 강화해야 한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재벌들이 호사를 누리게 하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실업수당이나 타는 신세가 되는 일은 이제 끝장내야 한다. 수백만의 일자리를 뺏고 비참한 상황에 빠뜨리면서 얻어지는 소수의 이른바 ‘경제적 자유’라면, 그것은 너무도 값비싼 것이다.”
노동당은 무엇을 할 것인가?
첫째, 토지, 원자재, 노동 등 나라의 모든 자원을 완전고용해야 한다. 생산을 최고 수준으로 높여야 하며 구매력과 연동시켜야 한다. 과잉생산이 공황과 실업의 원인은 아니다. 그 원인은 바로 과소소비다. 우리나라가 전시(戰時)를 제외하고 과연 생산 역량을 모두 활용해본 적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이런 상황은 교정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인민의 생활수준은 상품을 생산하고 생산물의 공정하고 인간적인 분배를 이룰 수 있는 우리의 능력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둘째, 높은 수준의 견실한 구매력은 괜찮은 임금, 사회적 서비스와 보험, 그리고 저소득 계층에게 부담을 덜 주는 조세를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물가가 오르면 화폐와 저축이 그 가치를 상실하기 때문에 당연히 금리와 생활필수품 가격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
셋째, 핵심 산업과 주거, 학교, 병원 그리고 시민 센터들에 대한 계획적 투자가 자본 지출의 막대한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국민투자위원회(National Investment Board)를 설립해서 사회적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민간부문의 투자 속도를 촉진할 것이다. 적절한 기회를 봐서 효율적인 정부 소유 공장들의 용도를 군수 생산에서 평화 시의 필요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바꿀 것이다. 어디에 새로 공장을 지을지 적절히 통제할 것이며, 꼭 필요한 곳에 정부 소유 공장들을 세울 것이다. 새로운 영국의 그 어느 곳도 낙후 지역이 되어선 안 된다.
넷째, 잉글랜드은행[당시까지만 해도 민간은행 성격을 갖고 있던 영국의 발권은행-역자]과 그 금융 권력은 공적 소유 아래 놓여야 한다. 그리고 다른 은행들의 활동도 산업의 필요에 부응해야 한다.
이상의 수단을 통해 완전고용을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인을 위한 일자리’ 정책은 다음 장에서 설명할, 경제의 전반적 확장과 효율성에 대한 정책과 결합되어야 한다. 실제로, 만인을 위한 일자리를 보장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생활수준이 높아지게 되면(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하는데), 생산 수준도 높아져야 한다. 이것은 국민의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산업 전반이 효율적이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을 위해 복무하는 산업
일부 산업은 전쟁의 시련을 겪으며 효율성과 확장의 풍부한 저력을 입증했다. 반면에 우리 경제 구조에 비해 상대적으로 낡은 일부 산업 설비의 경우를 보면, 전반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성적이 좋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는 경제 강국들과 더불어 살아간다. 이들 나라에서는 해를 거듭할수록 과학 기술이 성큼성큼 도약하고 있다. 영국이 이러한 진보에 뒤쳐져선 안 된다. 영국은 인류 지식과 기술이 제공할 수 있는 최상의 것들을 제공할 수 있도록 산업을 재편해야 한다. 그럴 때에만 우리의 인민은 대발견 시대의 성취를 온전히 수확할 수 있다. 그리고 영국은 강대국의 지위를 견지할 수 있다.
노동당은 영국의 기술자와 설계자들의 기술을 영국 과학자들의 기술과 결합시켜 동포를 위해 복무하도록 만들려 한다. 전파 탐지, 제트 엔진, 페니실린 등을 발명해낸 영국 과학자, 기술자들의 천재성이 평화 시기에도 십분 발휘되어야 한다.
각 산업은 이러한 기술을 국민 경제에 활용하기 위해 시험해보아야 했었다. 좋은 결과가 나오면 그것으로 좋은 것이고, 비효율적이고 성공하지 못한다면 정정하면 된다.
이러한 명제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쟁 전의 반(反)-노동당 정부는 그것을 무시했다. 그래서 영국 산업의 거대한 영역이 불황과 혼란, 퇴보의 상태에 빠졌다. 수백만의 노동계급과 중간계급이 실업과 고용불안의 공포를 겪었다. 이러한 희생을 동정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린 이것이 국민적 수치임을 분명히 확인해야 하며, 행동에 나서야 한다.
노동당은 사회주의 정당이다. 그리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국내에서 노동당의 궁극 목표는 대영 사회주의 연방을 건설하는 것이다. 자유롭고 민주적이며 효율적이고 진보적이며 공공성으로 충만하고 모든 자원이 영국 인민을 위해 쓰이는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주의는 하루밤새 이뤄지는 게 아니며, 주말의 혁명으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노동당원들은 영국 인민이 다들 그런 것처럼 무척 실용적인 사람들이다.(강조는 옮긴이)
국민 경제에 직접 복무시킬 수단으로서 공적 소유나 관리의 대상으로 삼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춘 기초 산업들이 있다. 현재 훌륭한 성과를 보이고 있고 앞으로도 지금 그대로 쓸모 있는 활동을 벌이도록 놔두는 게 좋은 다수의 중소기업들도 있다. 또한 어떤 산업들은 공적 소유의 대상으로 삼기에는 아직 섣부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인의 생활수준을 저하시키면서 자본의 구조와 이윤을 고수하려는 행위, 즉 폭압적인 반사회적 독점이나 카르텔 담합을 통해 국가의 이해에 반하는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막고 국민의 필요에 부응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건설적 감독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노동당은 국민들에게 다음과 같은 산업 프로그램을 제시한다.
1. 연료와 전력 산업의 국공유화. 지난 이십 여 년 동안 영국의 가장 소중한 원자재를 생산해온 석탄산업은 수백 개의 잘게 쪼개진 기업들의 소유 아래 혼란을 거듭했다. 이들 기업을 공적 소유 아래 합병하면, 규모의 경제를 이루게 될 것이며, 전국 모든 탄광에서 생산 수단을 현대화하고 안전 수준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가스와 전력 사업을 공적 소유로 만들면, 가격은 낮추면서 낭비의 경쟁을 막고 연구 개발 협력의 길을 열게 될 것이며 그래서 결국은 분배의 비경제적 영역에서 개혁이 이뤄질 것이다. 이로써 다른 산업들이 이득을 볼 것이다.
2. 육로 운송의 국공유화. 철도, 도로, 항공 그리고 운하 같은 교통 서비스들을 하나로 통합하지 않고서는 이들을 조정한다는 게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들 서비스를 국공유화하지 않고서 통합하려 한다면, 민간 독점기업의 분파적 이해나 거드름에 맞서 끊임없는 투쟁을 벌여야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다른 산업들이 위협을 받게 될 것이다.
3. 철강과 제철 산업의 국공유화. 민간 독점기업은 높은 가격을 유지하면서 비효율적인 고비용 공장을 존속시킨다. 오직 민간 독점기업을 국공유화할 때에만 이 산업 영역은 효율화될 수 있다. 철강․제철 산업을 적절한 보상을 지불한다는 조건 아래 사회화한다면, 이들 산업은 노동자들의 적절한 지위와 노동 조건을 보장하면서도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하도록 효율적으로 작동하게 될 것이다.
4. 독점과 카르텔의 공적 감독. 이것은 산업 효율성을 높여 국민 경제에 복무하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다. 반사회적인 폭압 행위들은 금지될 것이다.
5. 수출 교역을 위한 단호하고 선명한 프로그램. 우리의 수출 교역을 정상화하고 영국의 생존과 번영에 필수 불가결한 식량과 원자재를 구입하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어떠한 형태로든 국가의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의 지원에는 조건이 있다. 효율적이며 진취적인 산업에 한해 지원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게으름뱅이와 훼방꾼은 더 나은 길로 인도되어야 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실패할 여유가 없다.
6. 적절한 경제 통제, 물가 통제의 확립. 이것은 전시 경제를 평화 경제로 전환하는 데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며 또한 모든 시민(전역한 남성과 여성들을 포함하여)에게 공정한 역할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다. 원자재 사용에는 우선순위가 있어야만 하며, 식량 가격은 동결되어야 하고, 소수의 사치재가 아니라 인민의 주택 건설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난 번 전쟁 때 그랬던 것처럼 짤막한 호황 뒤에 붕괴가 닥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물가의 급상승과 인플레이션에 뒤따라 도산과 실업 대란이 발생하는 것을 원하지도 않는다. 건전한 경제 통제, 그것이 아니면 파산뿐이다.
7. 위와 같은 목표들을 이루기 위한 정부 부처 및 행정 업무의 개선. 정부 경제정책의 목적은 산업을 진작시키는 것이어야지 관료주의로 얽매이는 것이어선 안 된다.
영국 노동당 1974년 2월 총선 강령
“우리 함께 일하자
- 위기에서 벗어날 노동당의 길”
[해설] 1974년 2월 총선을 앞두고 영국은 심각한 경제․사회 위기에 빠져 있었다. 바야흐로 전후 자본주의의 황금기 이후 최초의 전 세계적 불황이 오일 쇼크(에너지 위기)라는 형태로 닥쳐오고 있었다. 그리고 대처 정부의 정책들을 예고하는 전임 히드 보수당 정부의 반(反)노동조합 정책 때문에 노자간의 대결도 심각한 양상을 보였다. 이런 가운데 실시된 총선에서 노동당은 37.1%를 얻어 보수당보다 지지율은 조금 뒤쳐졌으나 (소선거구제의 영향으로) 의석수는 보수당보다 앞선 301석(총 623석)을 차지했다. 그 결과, 1970년까지 수상을 역임한 바 있는 헤럴드 윌슨 당수를 중심으로 노동당 신정부가 구성됐다. 하지만 원내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불안한 집권일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여덟 달 뒤인 10월에 다시 총선이 실시됐다. 이때는 노동당이 39.2%의 지지로 총 319석을 확보해 과반수를 넘겼다. 그런데, 2월 총선이든 10월 총선이든 노동당이 내건 선거 강령은 내용상 큰 차이가 없었다. 그것은 이제까지 노동당의 선거 강령으로는 가장 급진적이며 사회주의적인 것이었다(심지어는 1945년 선거 강령보다도 더). 1970년 총선 패배 이후 노동당은 3년 동안 당내 좌파(토니 벤 하원의원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와 TUC(노동조합총평의회, 말하자면 영국 노총)를 중심으로 열띤 노선 논쟁을 벌였고, 그 토론 결과가 1973년 당대회에서 당 공식 입장으로 채택됐다. 1974년 두 차례 총선 당시 노동당 선거 강령은 바로 이 당대회 강령을 반영하고 있었다. 이들 강령의 급진성은 공세적인 국공유화 정책에 있다. 초국적 자본으로부터 비롯된 영국 경제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거대 독점 자본을 과감히 사회적 소유와 통제의 대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 원래 1973년 당대회 강령은 25대 대기업을 ‘국민기업위원회’를 통해 국유화하겠다고 명시하기까지 했다. 1년 뒤의 선거 강령에서는 그 내용이 좀 더 온건하게 표현되었지만, 그래도 고수익 사기업까지 국공유화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입장만은 계속 견지했다. 그러나 막상 노동당 신정부는 선거 강령의 내용을 실현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국공유화 정책을 앞장서 추진하던 토니 벤은 정부 내에서 주변화됐고, 1976년 외환위기가 닥치자 정부는 오히려 선거 강령의 사회주의적 원칙과는 정반대인 시장지상주의 정책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 좌파의 도전이 좌절되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가 열리는 순간이었다(이러한 역사적 과정에 대해서는, 고세훈의 영국 노동당사[나남출판, 1999] 제9장과 제10장을 참고하라). 한편 아래의 강령은 그밖에도 개발용 토지의 국공유화, 산업 현장과 국가 수준에서 노동자의 참여를 강조하는 산업민주주의 등의 주목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영국의 당시 경제 위기에 대해 설명하는 앞부분, 그리고 유럽경제공동체에 대한 입장 등 우리에게는 좀 낯선 내용들은 번역에서 생략했다.)
사회 정의
영국의 위기에 신선한 처방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노동당은 이것이 사회 정의의 요구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인식과 함께 시작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련의 긴급 행동이 필요하다. 그것은 물가 상승과 대결하는 것이고, 최악의 빈곤을 그 뿌리부터 해결하는 것이며, 우리나라를 보다 공정한 삶의 터전으로 확연히 바꾸는 것이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 노동당 신정부는 임기 초기에 다음의 정책들을 추진할 것이다.
1. 새 정부의 첫 의회 회기 내에 독신 가구에는 10파운드씩, 기혼 가구에는 16파운드씩 연금과 기타 수당을 인상하여 연금 생활자, 미망인, 환자, 실업자를 즉각 지원한다. 이후 매년 연금과 수당을 평균 국민 소득의 증가와 비례해서 인상할 것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보수당 정부의 불충분하고 불공평한 장기 연금 제도를, 자산 실사가 폐지되고 여성에게 완전한 동권을 부여하도록 재설계된 포괄적 연금 제도로 바꿀 것이다.
2. 장애인을 위한 새로운 지원 제도를 도입한다.
3. 새로운 아동 현금 수당 제도를 도입해서 빈곤 상태에 있는 저소득층 가구를 지원한다. 이 수당은 첫째 자녀를 포함한 모든 자녀를 대상으로 하며, [자동적으로 가장이 수령하는 방식이 아니라-역자] 어머니도 수령할 수 있도록 한다.
4. 핵심 서비스와 재화에 대해 엄격한 물가 통제를 실시한다. 대량 구매와 새로운 판매 협정을 통해 물가 상승을 안정화시킬 것이며, 가계에 가장 심각한 부담을 안겨주는 품목들에 대해서는 선택적으로 보조금 제도를 적용할 것이다.
5. [보수당 정부의-역자] 주택금융법을 폐지하고, 임차인을 이윤 추구의 대상으로 삼지 못하도록 임대료를 동결할 권한을 지방자치단체에 되돌려준다. 가구 딸린 임대 주택에서 임차인이 강제 퇴거 당하는 것을 막을 것이며, 가구가 딸려 있든 그렇지 않든 임대 아파트의 임대료 인상을 제한할 것이고, 민간 임대 주택을 지방자치단체가 인수하는 것을 장려할 것이다(임대인이 임차인과 함께 사는 실거주자인 경우는 제외). 자가 소유를 원하는 가구에 적절한 금리의 담보 대출이 안정적으로 이뤄지도록 보장하는 방안을 취할 것이며, 농지에 부속된 별장 주택을 철폐할 것이다. 또한 자가 소유자의 대출금 상환을 보장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의 주거 보조금을 인상할 것이다.
개발용 토지는 국공유화할 것이다. 그래서 신규 주택, 학교, 병원과 여타 목적을 위해 대지가 무상 혹은 저렴한 비용으로 공급되도록 만들 것이다. 토지의 국공유화는 토지를 통한 이윤 추구를 중단시킬 것이다. 단, 이것은 절대로 실거주용 소유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6. 소득과 자산을 재분배한다. 부유층을 대상으로 하는 부유세를 도입할 것이며, 일정액 이상의 개인 자산의 양도에 대해서도 새로운 세제를 도입할 것이다. 또한 자산 투기에 무거운 세금을 물릴 것이다. 여기에는 자산 관리 회사에 대한 새로운 과세도 포함된다. 그리고 조세의 모든 영역에서 탈세를 근절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노사관계
물가 및 조세 정책과 관련한 이상의 조치들은 영국에 새로운 사회적, 경제적 평등의 길을 열려는 노동당 신정부의 결의를 행동으로 입증할 것이다. 소득 정책에서 수많은 실패가 있었기 때문에(노동당 정부 때도 그랬지만 보수당 정부의 강제적 임금 통제는 더욱 심각했다) 오직 행동만이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 국민적 부의 보다 공정한 분배를 이루려는 정부의 실질적 행동만이 ‘소득 정책’이란 것이 기만적 억압책이 아니라는 점을 노동자들과 그 가족, 그리고 노동조합에 설득할 수 있다. 특히 국가 부채의 원흉으로 공격당하는 공공서비스나 공기업에서 일하는 경우라면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정부가 (저소득층과 연금 생활자에게 가장 심각한 고통을 안겨주는 고물가, 고금리 그리고 여타 부담들에 맞서) 행동할 태세가 돼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노동조합은 분명히 자발적으로(자유로운 사회라면 오직 이러한 자발적인 방식으로만 일을 성사시킬 수 있다) 이 모든 정책의 성공을 위해 협력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제안한 물가 정책이, TUC[영국 노총-역자]와 우리 당이 이미 합의한 공동의 이해를 통해, 생산에 비례해 화폐 소득이 오르는 올바른 경제 풍토를 조성할 것이라 믿는다. 이것이 바로 노동당이 TUC와의 오랜 협의를 통해 합의에 도달한 새로운 사회 계약의 핵심이다. 이것이 노동당 신정부의 새로운 경제 정책에서 중심적 지위를 차지해야 한다.
이에 따라 노동당 정부는 다음의 정책들을 추진할 것이다.
(ⅰ) 보수당이 설립한 임금위원회 구조를 폐지한다.
(ⅱ) 가장 긴급한 과제로서 [보수당 정부의-역자] 노사관계법을 철폐한다. 그러고 나서, TUC와 토론을 통해 합의한 대로, 고용보호법과 산업민주주의법을 신설해서 인민에 의한 산업 통제를 강화한다.
(ⅲ) 소득 분배에 대해 자문하는 상설 왕립 위원회를 설립한다. 이 기구는 근로 소득과 불로 소득 모두 다루며, 특히 차별과 일자리에 대한 기초 조사를 실시한다.
(ⅳ) 비정부기구로서 ‘화해-중재 서비스’를 설립한다. 이 기구의 임무는 전국적, 지역적 수준에서 벌어지는 노사 분쟁을 다루는 것이다.
고용과 확장
하지만 산업에 새로운 정신을 불러일으키려면 그 이상의 조치가 필요하다. 영국 인민은 노동자로서든 소비자로서든, 현재 우리의 경제생활을 지배하는 막강한 사적 자본에 대해 보다 강력한 통제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다음의 정책들을 추진해야만 한다.
7. 산업 발전과 수출을 지속시키고 확장한다. 그리고 새로 제정할 산업법이 규정하는 권한과, 정부가 재계와 더불어 보다 효과적으로 계획을 입안할 수 있게 만들어줄 계획협약 제도(Planning Agreement system)를 통해 이러한 목표를 추진하는 데 필요한 수단을 확보한다.
기업에 공적 자금을 직접 지원할 경우에는 항상 그 대가로 해당 기업의 일정 소유 지분을 공적 소유로 확보한다.
[해설] 계획협약 제도 - 정부와 민간 대기업 그리고 노동조합 사이에 해당 기업의 제품 가격, 임금 수준, 재투자 방향, 노동 정책 등을 놓고 협약을 체결하는 제도. 이런 방식으로 사적 자본을 정부의 경제 계획 아래 두려 한 것이다.
8. 개발용 토지를 국공유화한다는 위 5항에 담긴 우리의 계획에 더해, 광물 자원에 대한 권리를 활용해서 공기업을 크게 확대할 것이다. 또한 조선, 선박 보수, 선박 설계, 항만, 비행기 기체 및 엔진 제조를 공적 소유와 통제 아래 둘 것이다. 하지만 정부 보조금으로 운영되거나 만성 적자인 산업들에 한해서만 공공부문을 확대하려 해서는 안 된다. 고수익 산업 부문이나 이러한 산업에 종사하는 개별 기업들도 인수할 것이다. 이러한 영역에서 공적 소유는 정부가 물가를 통제하고 투자를 촉진하며 수출을 장려하고 고용을 창출하며 무책임한 다국적 기업들의 횡포로부터 노동자와 소비자를 보호하고 국민의 이익을 위해 국민 경제를 계획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핵심적이다. 따라서 북해와 켈트 해의 석유 및 가스에 대한 우리의 제안에 더해 일부 제약업체, 도로 운송, 건설, 기계 장비 등도 국공유화에 포함할 것이다. 은행, 보험 그리고 주택조합 분야는 아직 논의 중이며 당의 결정이 이뤄지지 않았다.
[해설] 1974년 당시에는 영국의 금융 노동조합들이 금융산업의 국공유화에 반대해서 노동당 선거 강령에 금융산업에 대한 대안이 포함되지 못했다. 참고로, 영국 노동당이 결정적으로 우경화하기 직전인 1983년 총선 강령(「영국을 위한 새로운 희망」)은 다음과 같은 금융 정책들을 제시했다.
- 사적 기관과 정부로부터 (북해산 원유 수익을 포함해서) 새로운 재원을 뽑아내 산업에 투자하기 위해 국립투자은행(National Investment Bank)을 설립한다.
- 잉글랜드은행[영국 중앙은행-역주]을 통해 은행 여신을 보다 직접적으로 통제한다. 은행 및 여타 금융기관들과 정부 사이에 발전 계획을 체결한다.
- 우체국 금융망을 통해 작동하는 공공은행을 창설한다.
- 로이드(Lloyds) 사를 비롯한 런던 금융가를 통제할 증권위원회를 설립한다.
- 지역연금 가입자들이 노동조합을 통해 연금 운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새로운 연금제도법을 도입한다.
- 정부, 재계, 노동계 3자 대표로 구성된 투자 감시 기구를 설립한다.
현 정부가 헤집어 놓은 자산과 면허권들은 공적 소유로 되돌려놓을 것이다. 그리고 노동당 1973년 당대회 강령이 제안하는 구조와 기능을 갖춘 강력한 국민기업위원회(National Enterprise Board)를 창립할 것이다.
[해설] 국민기업위원회(NEB) - 국민기업위원회는 국가 지주회사로서, 민간 대기업의 주식을 사들여 점진적으로 국공유화한다. 국민기업위원회의 이사회는 정부, 재계, 노동계 대표로 구성된다. 만약 민간 대기업이 계획협약을 준수하지 못하면, 국민기업위원회가 해당 기업의 주식을 매입하거나 산하 공기업들의 구매력을 활용해서 견책을 가한다. 국민기업위원회를 통해 창출되는 새로운 공공부문의 정책 목표로는, 고용 창출, 투자 촉진, 기술 개발, 수출 증대, 정부 물가정책 보조, 초국적 기업 견제, 산업민주주의의 확산, 수입 대체 등이 제시되었다.
9. 우리는 현존 공기업들의 사회적 성격을 더욱 강화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노동조합과의 협의를 통해, 현존 공기업이 노동자와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보다 책임 있게 운영되도록 조치를 취할 것이다.
10. 노동당 1973년 당대회 강령이 제안하는 노선에 따라, 새로운 공기업, 선택적 원칙에 입각한 사기업 지원을 통해 지역 발전을 더욱 촉진한다. 우리는 지역고용장려 제도를 유지하고 개선할 것이다. 북해산 원유 수익은 스코틀랜드를 비롯해 지역 발전을 원하는 모든 지방의 고용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일체의 조치들에 투입될 것이다.
11. 강력한 전국노동위원회(National Labour Board)를 통해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전개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정리해고 노동자들이 자동적으로 재훈련을 받을 권리를 가져야만 한다. 즉, 인원 조정은 실업이 아니라 재훈련과 직업 전환으로 이어져야 한다.
사회 진보
이상의 조치들은 영국의 산업을 책임 있는 경제 체제로 바꾸기 위한 것이다. 한편에서는 엄청난 사적 자본이 축적되고 있는 데 반해 다른 한편에서는 우리의 공공서비스를 유지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노동당 정부는 다음의 정책들을 추진할 것이다.
12. 국민보건서비스[NHS, 영국의 무상공공의료제도-역자]를 개정하고 확장한다. 진료비를 철폐하고, 무상 가족계획을 도입하며, 병원 서비스에서 사적 행위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지역 보건 당국을 민주적 기구로 바꾼다.
우리는 또한 장애인 수당을 신설할 계획을 갖고 있다.
13. 주간(晝間) 보육 시설을 포함하는 전국적인 보육원 설립 계획을 통해서, 16-18세 청소년을 위한 교육 시설의 대확장을 통해서, 그리고 특별 지원을 필요로 하는 어린이들을 위한 추가 재정 투입을 통해서 교육 서비스를 확장한다. 중등학교의 완전 보통교육화 속도를 더욱 앞당길 것이다. 사립학교에 대한 모든 종류의 세금 경감과 예외적 처우를 철폐할 것이다.
14. 현재 거의 붕괴 상태에 있는 모든 공공서비스의 고용 인력 확대 필요성에 특히 주목한다. 특히 도시 지역에서 이 문제는 심각하다. 우리의 도시들은 공공서비스를 절실히 요구하고 있으며,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받아야 한다. 적절한 수의 인원이 배치되고 이에 필요한 재원이 투입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제안은 경제성을 기준으로 해서만 평가되어선 안 된다. 어떤 근거에서든 차별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것이 사회주의자들의 의무다. 여기에서 제시하는 우리 제안들 중 상당수는 커다란 경제적 비용을 감수하지 않고도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을 지니고 있다.
15. 어떤 연령대의 여성이든 교육, 훈련, 고용, 사회보장, 공적 보험, 조세, 자산 소유권, 혼인과 가족법 등에서 동등한 지위를 누려야 한다. 일하는 여성들은, 아내든 어머니든 그게 아니면 친척들을 부양하든, 지역사회로부터 더 많은 관심을 받아야 한다. 우리의 차별금지법을 더욱 실질화하는 데 필요한 강력한 법적 기구를 신설할 것이다.
16. 국적법을 개정하여 우리나라의 이주민 정책이 시민권 원칙에 보다 충실하도록 만든다. 특히 피부색에 따른 차별을 근절할 것이다.
17. 전국소비자청(National Consumer Authority)을 설립한다. 이 기구에 충분한 재정을 지원해서 소비자와 제조-판매자 사이의 힘 관계를 교정하도록 만들 것이다.
국민이 결정하게 하라
이 강령에서 제시하는 목표들은 사회주의적 목표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말(‘사회주의’)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우리 젊은이들 사이에서 특히 강렬한 저 이상주의와 고도의 지성을 살려낼 길은 오직,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 위기라는 역경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목표를 보다 드높이 설정하는 것뿐이다. 다음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하는 바다.
(a) 권력과 부의 불균형을, 일하는 사람들과 그 가족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게 근본적으로 바꾼다.
(b) 영국에 존재하는 일체의 빈곤을 근절한다. 그리고 해외의 빈곤에 맞서는 투쟁에 우리나라의 기여를 실질적으로 늘려 가는 데 앞장선다.
(c) 산업 영역에서 순전히 노동자와 지역사회에만 책임을 지는 새로운 권력을 키운다.
(d) 소득, 자산 그리고 생활수준에서 경제적 평등을 획기적으로 강화한다.
(e) 완전고용, 주거, 교육 그리고 사회적 수당에 훨씬 더 많은 중요성을 부여함으로써 사회적 평등을 신장한다.
(f) 우리 인민이 생활하고 일하며 여가를 즐기는 이 땅의 환경을 개선한다.
물론 이러한 목표들이 이 강령이 제시하는 특정한 항목들처럼 단숨에 완수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단번에 해치울 수는 없다. 게다가 위의 목표들 사이에는 우리가 선택한 우선순위가 있다. 이 총선 강령은 노동당이 지난 3년 동안 민주적 과정을 통해 토론한 새로운 정책들을 담고 있으며, 차기 노동당 정부가 차기 의회 임기 중에 모든 노력을 다해 수행하려 하는 몇 가지 약속들을 선별하여 제시하고 있다.
이 과업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 일각에서, 영국 인민은 더 이상 스스로를 통치할 수 없다고, 개명한 공동체로서 다양한 민주적 기구들을 통해 단결하여 행동할 능력을 상실했다고 훈계를 늘어놓는 저들 절망의 유령들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러한 모욕적인 공격은 다름 아니라 보수당 정부로부터 나오고 있다. 이들은 바로 그 민주적 기구들, 즉 지방자치단체, 노동조합, 그리고 하원의회 그 자체를 부패시키고 파괴하는 책략들을 너무도 많이 저질렀다. 노동당은 다름 아닌 이들 민주적 기구들을 무기로 영국 민주주의의 힘을 복구하고 강화시켜 나갈 것이다.
전신은 ‘마르크스레닌주의 네덜란드 공산당’
조기 총선이다. 자유민주인민당(VVD)이 이끌던 우파 연정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으며 내각을 지지해온 극우파 자유당(PVV)이 지지 입장을 철회해 연정이 붕괴한 탓이다. 쟁점은 긴축정책이었다. 정부가 유럽 재정위기를 고려해 긴축재정을 추진한 게 화근이었다. 채권국인 네덜란드는 그리스나 스페인 같은 채무국과는 다른 상황에 있을 것 같지만 이 나라에도 역시 경제위기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2주 뒤로 다가온 이 나라 총선을 놓고 온 유럽이 다시 술렁이고 있다. 몇 달 전 그리스 총선 때처럼 금융 과두세력이 가슴을 졸이고 있다. 그리스의 급진좌파연합(SYRIZA)처럼 금융자본주의를 정면 공격하며 갑자기 지지세를 늘려가는 한 좌파 정당 때문이다. 토마토를 당의 로고로 사용해서 흔히 ‘토마토당’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사회(주의)당(SP)이 바로 그것이다.
본래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두 정당은 자유민주인민당과 노동당(PvdA)이다. 전자는 총선 전까지 여당이던 보수 우파 정당이고, 후자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다. 이제까지 네덜란드 정치의 상식대로라면 우파 연정의 붕괴로 조기 총선이 열리는 만큼 노동당의 집권 가능성이 높아지거나, 자유민주인민당과 노동당 두 당 사이에 각축이 벌어지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노동당이 아니라 사회당이 좌파 쪽의 최다 지지 정당으로 치고 올라오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제1당 자리를 놓고 자유민주인민당과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그럼 사회당은 도대체 어떤 정당인가? 이름만 들으면 그냥 또 다른 사회민주주의 정당 같다. 프랑스나 벨기에에서는 ‘사회(주의)당’이라는 이름의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좌파의 제1당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당의 애초 창당 당시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듣고 나면 느낌이 달라질 것이다. 바로 ‘마르크스레닌주의 네덜란드 공산당’이었다.
1971년 주로 68세대로 이뤄진 마오쩌둥주의 세력이 친소파 공산당과는 별개로 결성한 정당이 현재 사회당의 모태다. 뿌리만 놓고 보면 자본주의의 발상지인 네덜란드에 이보다 더 어울리지 않는 정치세력도 없는 듯하다. 게다가 바로 전 총선인 2010년 선거 결과를 놓고 봐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때 사회당은 불과 9.9%를 득표해 15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그런데 2년 만에 상황이 돌변해 여론조사에서 20% 안팎의 지지율을 보이는 것이다. 이쯤 되면 그리스 총선 때 한 차례 혼비백산했던 유럽 정치 전문가들이 사회당에서 급진좌파연합의 환영을 보며 경기를 일으키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좌파 노동당, 극우파 자유당 동시 타격
사회당이 주류 여론을 당혹시킨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6년 총선에서도 사회당은 이전 선거에서 거둔 득표율(6.6%)의 거의 세 배에 달하는 16.6%의 지지를 얻어 주목받았다. 이때의 급성장은 1년 전 있은 유럽헌법안 국민투표의 여파 덕분이었다. 이는 근대 네덜란드 역사상 최초의 국민투표로, 프랑스에서 먼저 국민투표를 통해 유럽헌법안이 거부되고 사흘 뒤에 실시됐다. 결과는 프랑스와 마찬가지였다. 63%의 국민이 참여해 62%가 반대표를 던졌다. 두 나라의 국민투표 결과로 유럽헌법안은 휴지 조각이나 마찬가지가 되고 말았다.
사회당은 이때 좌파 쪽의 유럽헌법안 반대운동 중심 세력이었다. 반면 좌파의 다른 두 대표 정당, 노동당과 녹색좌파(GL)는 찬성 입장이었다. 노동당은 다른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들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유럽연합-유로존이 등장하는 데 주축 역할을 해왔다. 1989년 친소파 공산당이 다른 소규모 좌파 정파들과 함께 ‘녹색정치’를 내걸며 창당한 녹색좌파 역시 유럽 통합 프로젝트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 원내 좌파 세력 중에서 오직 사회당만이 분명한 반대 입장이었다. 이에 따라 사회당은 국민투표 뒤 실시된 총선에서 유럽 통합 비판 여론의 좌파 쪽 수혜자가 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비판도 많이 받았다. 극우 인종주의 입장에서 유럽 통합에 반대하는 헤이르트 빌더르스의 자유당과 다를 게 없는 ‘좌파 포퓰리즘’이라는 것이었다. 노동당은 2006년 총선이 끝나자 이런 이유를 들며 좌파인 사회당이 아니라 우파 정당과 함께 연립정부를 구성하기도 했다. 토마토당은 그 괄목할 성공에도 주류 여론에서는 여전히 왕따 취급을 당했다.
그러나 경제위기와 함께 유럽 통합 프로젝트의 모순이 적나라하게 폭로된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사회당의 고집스러운 유럽 통합 비판론은 이제 좌파 성향 유권자들의 지지가 이 당으로 쇄도하는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다. 반면 노동당의 지지율은 사회당에 추월당했고 녹색좌파의 지지율은 2.7%로까지 떨어졌다. 노동당이나 녹색좌파가 온갖 고상한 수사로 포장하던 유럽연합-유로존이 사실은 신자유주의 금융화 물결의 한 갈래에 불과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노동당과 녹색좌파만 사회당 돌풍의 타격을 받은 것은 아니다. 또 다른 피해자가 있다. 극우파 자유당 역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자유당은 2010년 총선에서 15.5%를 얻었다. 그런데 이번 총선을 앞두고는 여론조사에서 계속 10%대 초반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최대 5% 정도의 지지층을 잃은 것이다. 그간 극우 인종주의 정당을 지지하던 일부 하층 노동자 집단이 사회당 쪽으로 이동한 결과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사회당 바람이 극우파 바람을 제압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간 주류 좌파들이 극우파의 약진에 속수무책이었던 데 비하면 주목할 만한 양상이라 하겠다.
다시 좌파의 근본을 생각케 하다
사회당이 이번 총선에서 내건 핵심 정책은 긴축정책 중단과 복지투자 확대다. 이들 역시 정부 재정의 일정한 삭감이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한다. 그러나 이들이 보기에 가위질이 필요한 것은 복지 예산이 아니다. 비효율적인 관료 기구를 손보는 게 우선이다. 국방비도 줄여야 한다. 그리고 고소득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물려야 한다. 반면 위기를 극복하려면 공공투자를 늘려야 한다. 사회당은 그 대상으로 주거, 에너지 절약, 환경 개선, 공공 교통, 보건 그리고 교육을 제시한다. 사회당의 이런 공약이 지금 복지 축소에 반대하는 네덜란드 민심을 결집시키고 있다.
하지만 사회당의 힘은 정책에만 있지는 않다. 또 다른 중요한 요소가 있다. 다름 아닌 이들의 정치활동 방식이다. 사실 68세대가 만든 정당치고 별로 성공한 사례가 없다. 좌파보다는 ‘녹색’을 강조한 독일 녹색당 정도가 거의 유일한 예외였다. 그런데 네덜란드 사회당은 좌파 정체성을 분명히 하며 성공한 또 다른 희귀한 사례다. 그럴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이들의 끈질긴 풀뿌리 정치활동이 있었다.
아직 ‘마르크스레닌주의 공산당’이던 시절부터 이들은 지역사회에 뿌리내리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이들은 가톨릭 성향의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지역 차원의 정치 쟁점에 대해 지속적인 캠페인을 벌였다. 주류 거대 정당들이 중앙정부의 권력에만 관심을 집중하는 상황에서 신생 사회당의 이런 활동 방식은 유권자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덕분에 사회당은 차츰 지방의회 내에 진지를 구축하게 되었다. 노동운동에 대한 이들의 접근법도 철저한 풀뿌리 방식이었다. 노동당은 노총의 조직적 지지를 받았지만 사회당은 그렇지 못했다. 사회당은 이런 약점을 노동자 당원들의 활발한 실천을 통해 극복해나갔다.
사회당의 독특한 성장사는 주요 지도자들의 이력에 뚜렷이 새겨 있다. 2008년까지 당 대표를 지내며 오랫동안 당의 얼굴 노릇을 해온 얀 마레이니선은 노동자 출신이다. 그의 정치 이력은 24살 때 지방의원에 당선된 것에서 시작됐다. 이후 그는 17년간이나 지방정치 무대에서 활동했고 이를 바탕으로 1994년 사회당 최초의 하원의원으로 당선됐다. 현재 당 대표로서 선거운동을 이끌고 있는 에밀 루머의 경우도 비슷하다. 그의 전직은 초등학교 교사다. 2002년까지도 학교 현장에 있었다. 그러면서 1994년부터 사회당 소속 지방의원으로도 활동했다. 그런 그가 외치는 ‘교육투자 확대’ 공약은 결코 빈말로 들리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사회당의 이런 당문화에 이 당의 저력이 있다고 지적한다. 네덜란드의 인구 규모에서 이 당의 4만6천여 당원은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더구나 사회당원들은 어느 정당의 당원들보다 일상활동에 적극적이다. 사회당 지역조직들이 이런 당원 활동의 구심 역할을 한다. 사회당 지역조직들은 당원들이 참여하는 지역 사회운동을 조직할 뿐만 아니라 한 세기 전 초기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역센터(‘민중의 집’)를 건설해 노동자들의 일상생활에 접근한다. 이 모든 게 실은 노동당 같은 오래된 정당들이 언제부턴가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좌파 정당의 본래 모습이다.
그러나 좌파 연정 쉽지 않아
현재 사회당은 차기 정부 구성권을 지니는 제1당 자리를 놓고 자유민주인민당과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다. 누구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접전이다. 여기에서 사회당이 승리하더라도 노동당·녹색좌파와 함께 좌파 연정을 구성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몇 달 전 그리스 총선이 그랬듯이 선거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이미 네덜란드 정치권의 혁명은 진행 중이다. 토마토당의 돌풍은 한 세기 만에 좌파의 대표주자 자리가 교체되는 이변의 시작일 뿐만 아니라 좌파정치 문화가 그 근본으로 돌아가는 의미심장한 흐름의 출발이다.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자문위원
3월 14일 토요일의 동포 강연회를 마치고, 3월 15일 일요일에 노회찬-김지선 일행은 공식일정 없이 헤이그 인근을 방문하고 저녁에는 동포 가족을 초대하여 저녁식사를 했다. 유럽 여느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일요일은 대부분의 행사가 자제된다.
네덜란드에는 세 개의 문화가 있다. 그것은 개신교, 카톨릭, 그리고 노동계급(사회주의) 문화다. 여기에 상류문화는 제외한다. 상류문화는 네덜란드 왕실을 정점으로 귀족들의 문화로 물론 일반대중들에게는 베일에 쌓여 있다.
20세기가 오면서 노동자계급이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넓히면서 자신들의 까페와 문화회관(민중의 집과 비슷), 스포츠클럽을 만들었고, 자신들의 신문과 라디오를 듣고, 자신들의 정당에 투표하는 노동자 집단문화를 이루었다.
네덜란드의 개신교도 역시 자신들의 문화를 만들었다. 이들은 주중에는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고, 일요일에는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린다. 일과 가족, 교회, 성경 읽기가 이들의 삶의 양식인 것이다. 이들이 모여 사는 지역에서는 지금도 일요일에는 마을 주민들이 대부분 교회에 가고, 상점들은 문을 닫고, 시끌벅적한 축제는 열리지 않는다. 한마디로 캘비니즘의 전통에 따라 생활한다.
네덜란드의 동부와 남부에는 카톨릭 문화권이다. 그들은 개신교에 비해서 덜 금욕적이고, 카니발 축제도 즐기는 자신들의 독특한 문화를 이루었다. 카톨릭 노동자들은 사회주의적인 노동자들과 별도의 노동조합을 이루고 있다.
카톨릭 교회는 신자는 많지만 개신교만큼 열심히 교회에 다니지는 않는다. 한국에서 크리스마스 때만 교회에 다니는 떡신자라는 말이 있듯이, 이들도 평생 세 번 교회에 간다는 말이 있다. 즉 첫 번째는 애기 때 세례 받으러 가고, 두 번째는 결혼식 때 가고, 세 번째는 죽은 후 관에 들어가서 한번, 딱 세 번 간다는 말이다.
세 문화권 모두 일요일에는 쉬자는 데 의견 통일을 보았고, 대부분의 상점은 일요일에 문을 닫았다. 물론 네덜란드 사회도 점차 미국화되어 일요일 시내에서 쇼핑하는 사람들이 늘어서 암스테르담 시내 중심가는 일 년 365일 옷가게와 관광상품점들이 문을 열고 있지만, 이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노회찬-김지선 일행은 네덜란드식으로 휴식을 취했다.
아침부터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고 시원한 바람이 산들산들 부는 봄날, 우리는 차로 한 시간을 달려 사회당 중앙당사가 있는 아머스포르트(AMERSPOORT)로 갔다. 인구 15만의 작은 도시지만 700년의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곳이었다.
위 사진은 아머스포트의 광장에 시장이 선 날의 광경이다. 가운데 교회종탑이 우뚝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유서 깊은 도시에는 어김 없이 높이 약 백미터의 종탑이 서있다.
위 사진은 아머스포르트의 대표적인 중세 유적인 아치형 수문과 성곽이다.
네덜란드 사회당은 한국 진보정치인 혹은 연구자들이 연구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당이다. 특히 유럽 대부분 나라들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우경화되고 신자유주의적인 경제노선이 여전히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가운데, 사회민주주의정당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대안으로 더 왼쪽에 있던 정당들을 선택하게 되는데 네덜란드 사회당 역시 이런 부류에 속한다.
네덜란드 사회당은 70년대 네덜란드 브라반트지방의 모택동주의 정치서클에서 시작해서 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후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폐기하고 의회민주주의체제를 전면 수용하고, 선거를 통한 집권을 표방한 후 선명한 좌파 노선을 걸으며 약 1.5%의 지지를 받으며 단 두석으로 1994년 처음으로 의회에 진출하였다.
2000년대 복지국가의 후퇴와 미국의 아프간, 이라크 전쟁에 대한 선명한 반대, 유럽경제통합으로 인한 자본의 권력의 강화에 반대했고, 노동자들이 권리를 옹호하여 선거마다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2006년에는 16.6%의 지지로 하원 150석 중 24석을 차지하며 제3당에 오르기도 하였으나, 세대교체 후 지지도가 떨어져 현재는 9.7%의 지지를 얻어 제 4당으로 15석을 확보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사회당(SP)과 한국의 정의당의 만남은 서로 많이 닮았으나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의 만남 같았다.
노 대표는 80년대 전두환의 군사독재시기에 대학을 졸업하고 용접 자격증을 따서 인천의 노동현장에 들어가 노동운동을 했던 이야기를 시작했다. 당시에는 야당들은 독재권력의 들러리에 지나지 않았고, 산업화 과정에서 가장 착취당하고 억압을 받았던 노동자들을 일깨워서 대중이 각성해서 일어나지 않는 한 정치를 바꿀 수 없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번 네덜란드 방문을 함께한 부인 김지선씨 역시 70년대부터 여성노동자로서 노동조합을 만들고 조합원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다 세 차례나 감옥에 간 이야기를 전했다. 한스 반 하이닝언 사무총장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지금 수준으로 발전한 것은 노회찬, 김지선 같은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며 놀라워했다.
70년대 사회당을 창립하고 당을 노동당 다음 가는 좌파정당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당의 대표를 지낸 얀 마라이네스 역시 브라반트지방 작은 공업도시 오스(Oss)에서 노동현장으로 들어가 노동자 신문을 집집마다 돌면서 배포하면서 지역에서 성장해온 정치인이다. 그러기에 사회당은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는 곳이나, 사회적인 약자인 노동자와 서민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운동에는 그들과 함께 힘을 합쳐 싸우는 정당이라고 소개했다.
70년대만 해도 유럽에서는 소련의 체코 침공으로 인해 이에 실망한 68혁명세대들이 마오주의에 관심을 가졌다. 헝가리와 체코의 민주화요구를 탱크로 짓밟고 패권주의적인 태도를 보인 소련에 비해, 중국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민족해방운동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 마오주의는 대중은 물이고 혁명가는 물고기와 같다며 항상 대중과 함께 생활하며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었다.
사회당의 창립자로 당을 오랫동안 이끌어온 얀 마라이네슨은 ‘우리가 무엇을 하려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대중이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냐가 중요하다’며 대중노선을 강조했다. 사회당은 캠페인이나 방송 인터뷰에서 항상 대중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용어와 활동방식을 사용하고 있으며, 지식인의 현학적인 언어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아머스포르트에 있는 사회당 중앙당사 빨간색 탑에는 ‘사람이 우선이다’라는 글이 씌여있다.
사무총장 한스는 80~90년대 8년간 부인과 함께 니카라구아에서 살면서 북부 산간지역에서 니카라구아 주민들을 위해서 의료봉사와 주민 생활여건의 향상을 위해서 노력한 전력이 있었다.
부인의 직업이 의사였는데, 사회봉사를 위해서 멀리 라틴 아메리카의 가난한 나라 니카라구아에 와서 봉사를 하게 되었고, 남편인 한스 역시 80년대 민중혁명으로 처음으로 민주주의를 시험하던 니카라구아에게 산간지역 주민들이 자신들의 공동체를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도우러 갔던 것이다.
그러던 중 한스는 지방정부의 요청으로 자문위원이 되어 사회개혁 정책에 대한 자문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90년대 총선에서 혁명정부가 패배하고 우익정부가 들어섰을 때 그는 정권의 평화적 이양을 위한 작업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그 일을 하게 된 계기는 권력 이양이 잘 안 될 경우 좌우간에 무력충돌이 벌어져 내전이 발생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스 사무총장은 한국의 민주주의와 경제정의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노회찬 대표는 한국은 87년 6월 민주화운동으로 대통령 직선제, 지방자치제, 정치범 석방 및 사면 복권, 언론 출판의 자유 향상 등을 이루었고, 바로 한 달 뒤 7,8,9월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서 대중적 노동운동이 시작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1992년 총선 이후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가 시작되어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과 2004년 원내입성을 거두었으나 진보정당 내부의 갈등으로 현재는 정의당이 국회의원 5석으로 제3당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설명했다.
한국의 선거제도가 소선거구제로 되어 있어 양대 보수정당이 나눠먹기를 하고 있고, 이런 벽 때문에 진보정당은 비례명부에서는 십 퍼센트 이상의 득표를 하지만 의석수는 훨씬 적다며 진보적 성향의 유권자들의 표가 동등하게 대접받도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참고로 네덜란드는 입헌군주국으로 의회가 상하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실권을 쥔 하원은 전국단일정당명부비례대표제를 택하고 있고, 상원은 광역지방자치의원들의 투표로 결정된다.
노회찬 대표는 또 한국에서 통합진보당이 몇 달 전 해체된 것을 얘기하면서 정의당은 비록 통합진보당과 당내 민주주의에 대한 입장 차이로 갈라지긴 했지만,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을 해산 조치한 것에 대해서 반대했다는 걸 전했다. 국민에 의해서 선출된 정당은 선거에서 국민들의 심판을 받는 것이 올바른 길이지 국가가 나서서 해산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었다.
경제에 관해서 지난 대선에 새누리당과 민주당 모두 경제민주화와 복지의 확충을 공약으로 내걸면서 한국의 정치는 앞으로 누가 더 국민들의 복지 요구를 잘 들어줄 수 있느냐를 놓고 경쟁하는 장으로 변하고 있다고 했다.
한스 사무총장은 미국과 북한 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북이 핵무장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의 전망을 노회찬 대표에게 물었다. 노회찬 대표는 앞으로도 미국과 북한 사이에 긴장이 지속되고 전쟁위험이 증가되거나 감소될 것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평화가 올 것으로 예상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두 사람은 네덜란드 상황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노대표는 네덜란드의 사회적인 합의 모델에 대한 사회당의 입장을 물었다. 한스 사무총장은 노사 간의 사회적 합의는 양자의 이해관계가 서로 맞아 떨어질 때 제대로 굴러갈 수 있으나, 노동자를 대표한 노조대표자들은 노동자들의 요구를 제대로 관철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70년대까지는 노사가 힘의 균형을 이루었으나 80년대 이후 지금까지는 사회 전반에 경쟁의 법칙이 관철되고 노동자의 단체협약을 통한 권리 보호가 점점 약화되어 왔다고 말했다. 이는 노동조합이나 노동당이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데 일방적으로 자본 측의 압력에 한발 두발 양보하며 물러서다 보니 노동자들의 조직력은 약화되고 싸울 의지조차 잃어 버리게 되었다고 말했다.
사회당은 2004년 우파 정부의 광범위한 노동제도 변경 시 강력한 노동자들의 저항이 있은 후 노사 간의 합의기구인 사회경제위원회(Sociaal-Economisch Raad)에서 노사정 3자간의 합의가 이뤄지자 합의안은 노동자들에게는 너무나 미흡한 것이라며 노동조합원들에게 반대표를 던지라고 요구했었다. 사회당에는 노동당에 실망하여 돌아선 활동적인 노동운동가들이 많이 포진해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보면 영국의 노동운동이 80년대 마가렛 대처의 강력한 우파개혁에 맞서다 역사적 패배를 한 것에 비하면 네덜란드 노동운동은 대화와 타협으로 심각한 패배는 피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한스 사무총장은 ‘조금씩 조금씩 빼앗기는 패배의 연속 보다는 완전한 패배가 더 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마치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넣으면 앗 뜨거워 하고 바로 도망나오겠지만, 미지근한 물에 넣고 천천히 데우면 저항도 못하고 잠든 채 죽는 것처럼 말이다.
현재에도 우파인 자유민주당과 좌파인 노동당이 연정을 하고 있지만 노동당이 자기의 지지기반의 이해관계를 반영시키기보다, 자유민주당의 정책을 쫓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창문 밖 길 건너편의 건물이 과거에는 노인 요양시설이었으나, 정부는 이런 시설의 절반의 지원을 중단하여 문을 닫게 하고, 노인들이 일반 주거시설로 옮기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일반 주거지역으로 옮긴 노인들을 보살필 방문 돌봄이 제도를 더 강화해야 하는 게 정상인데, 이런 방문 돌봄이 회사에 대한 지원도 동시에 줄여서 가난한 노인들은 아무런 보호와 보살핌을 받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노동당은 2차 대전 이후 사회복지와 노동권 신장을 가져온 사회민주주의 이념은 이미 그 역사적 임무를 다했으므로 이젠 더 이상 할 역할이 없다고 선언하였지만, 지금 생활인들은 사회민주주의가 후퇴해서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했다. 노동당이 스스로 집권당으로서 사회민주주의를 허물어트리면서도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한탄했다.
그 결과 코앞으로 다가온 3월 18일 광역지방의회선거에서 노동당이 참패를 할 것이고 사회당은 좀 더 성장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18일 선거 결과 노동당은 모든 지방에서 패배하며 1등을 한 지역이 하나도 없는 최악의 선거결과를 받았고, 사회당은 4년 전보다 지지율이 상승하며 최초로 노동당보다 더 많은 득표를 했다. 좌파에서 1, 2위가 바뀐 것은 네덜란드 현대사에서 처음 일어난 상징적인 사건이다. 그리고 북부지방인 흐로닝언에서는 사회당이 1위를 기록하여 최초로 한 도의 집권당이 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한스 사무총장은 사회당이 성장하게 된 것은 네덜란드에 노동-자본의 힘겨루기에서 자본의 힘이 너무 강해진 신자유주의시대에 신물을 느낀 노동자들이 사회당을 찍고 있기 때문이라며, 자기 당이 성장하는 것은 좋지만, 노동자들이 고통이 커지고 있는 현실은 결코 즐겁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1990년대 사회당이 최초로 의회에 들어갔을 때, 노동당의 정책을 비판할 때면 당시 제1당의 대표로 내각의 총리로 있던 빔 콕은 사회당이 대정부 질문에서 노동당을 비판하면 철 지난 맑스주의자들의 잠꼬대인 양 무시하곤 했었다. 그러나 노동당의 우향우가 계속 되고 사회 양극화가 점점 심화되면서 사회당은 어느새 노동당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었다. 아래 표와 그래프는 1994년 이후 양당의 의석수 변동을 보여준다.
자본의 막강한 힘을 잘 통제하여 빈부의 차이를 줄이고, 경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좌파 정부의 집권이 필요하다. 그러나 좌파가 집권하면 거대한 기업들은 해외로 본사를 옮기거나 해외로 자본을 옮기는 일을 하기 마련이다. 이에 대해 사회당은 무슨 대안이 있을까?
한스 사무총장은 그건 기우에 불구하다고 말했다. 자신이 당대표인 에밀 루머와 함께 브라질을 방문했을 때의 일화를 소개했다. 그들이 브라질에서 사업하는 네덜란드 기업인들을 만났을 때, 그들은 브라질 노동당이 집권했다고 해서 기업 활동이 위축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세금은 자기 회사만 더 내는 게 아니라 브라질 회사나 다른 외국회사도 더 내는 것이고, 저소득 노동자들에 대한 복지 정책으로 그들이 소비가 증가하여 회사로서는 더 많은 물건을 팔 수 있어서 좋아졌다고 했다. 좌파의 내수 활성화 정책이 오히려 이들 기업에게는 세금 인상을 상쇄할만한 매력있는 호재로 작용하는 것이었다.
네덜란드 정치상황에 이어 유럽공동체에서 사회당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가 이어졌다. 현재 유로화 위기가 계속 되는 난국에서 유럽연합에서 사회당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 지 노대표가 물었다.
한스 총장은 사회당은 유럽의회에서 GUE/NGL 에 속해 있다. 이 그룹은 SI(사회민주주의정당그룹)보다 왼쪽에 서 있는 좌파정당들의 연합체이다. 독일 좌파당, 프랑스 좌파전선, 그리스 시리자, 영국/아일랜드 신페인당 등 급진적인 좌파 정당들이 들어 있다.
유럽연합의 나아갈 길에 대한 이 정당들의 입장은 약간 차이가 있다. 남유럽 정당들은 유럽연합의 역량을 강화해서 유럽연합 내의 강대국과 약소국, 빈국과 부국 사이의 차이를 줄이고 하나의 연방국가처럼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적 통합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비해 네덜란드 사회당이나 핀란드, 독일 등은 유럽연합의 역할이 너무 비대해지면 회원국의 주권이 축소되고 나라의 민주주의 역시 제약을 받는다고 보고, 회원국의 독립성을 지키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런 입장 차이로 어떤 사안에 대해서 의견 일치를 못 보는 경우도 생기지만 서로 회원정당들의 입장을 존중하면서 최대한 공동입장을 내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한스 총장은 전했다.
한스 사무총장은 사회당이 일본이나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의 좌파 정당들과 광범위하게 교류하고 있다며 앞으로 한국의 진보정당인 정의당과도 꾸준한 교류를 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노회찬 대표는 사회당이 다가오는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얻고 더 성장하길 바라고 한국에 꼭 방문해달라고 말했다.
좌담이 끝난 후 한스 사무총장은 당사 전체를 돌면서 당직자들에게 노회찬 대표와 김지선씨를 소개했다. 당사는 건물 전체를 사회당이 단독으로 쓰고 있었다. 당사를 구입해서 꾸민 비용을 다 하면 한화로 약 30-40억원이 들었다고 했다.
그 많은 돈을 어떻게 마련했는 지 재정은 어떻게 마련하는 지 물었다. 정당명부제로 선거를 하므로 정당보조금 역시 총선 득표율에 비례해서 나오게 되므로 정당보조금이 크고, 약 4만 5천명의 당원들이 내는 당비와 공직자들이 노동자 평균급여만 받고 나머지는 당에 당비로 내는 제도를 엄격하게 시행해서 당의 재정을 마련한다고 했다. 이런 공직자 당비 납부 의무를 어기는 공직자는 출당 조치를 당하기도 한 바 있다.
건물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곳은 옥상과 지하였다. 옥상은 한쪽에는 당직자를 위한 휴게실로 쓰고 있고, 큰 미닫이 문을 열고 나가면 발코니 식으로 되어 있어서 햇볕을 쬐며 담소를 나누게 되어 있었다. 또 한 켠에는 긴 화단이 있어서 거기엔 화초를 재배하고 있었다. 당직자들의 휴식장소로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또 인상적인 것은 지하실의 창고였다. 거기엔 당 캠페인용 시위용품들과 기관지, 선거 홍보물 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회당은 선거 때만 반짝 유권자들을 만나고 평소에는 헤이그의 의회에만 머무르는 제도권 정당이 아니라 사회운동에 기반해 있고, 노동자와 시민의 참여로 움직이는 운동정당임을 증명해 보이는 듯 했다.
두 시간 여의 진지한 환담을 마치고 두 사람은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작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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