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하라, 참여하라…‘포데모스’ 정치판 흔들다
등록 :2016-01-24 19:56수정 :2016-01-25 09:49
포데모스
국제 초점 I 스페인 신예 정당 ‘포데모스’의 성장 비결
“마드리드시에서 투우를 금지하자. 동물도 인간처럼 고통을 느낀다는 점은 분명하다. 마드리드시를 동물 보호 도시로 만들자.”
최근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시가 운영하는 시민 참여 온라인 사이트인 ‘마드리드 디사이드(Decide)’에 시민이 올린 제안 중 하나다. 약 7300개 지지를 받은 이 제안에 대해 시민들은 댓글로 다양한 찬반 의견을 내놓고 있다. 마드리드 디사이드의 시민 제안은 제안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시민들의 투표로 실행 여부가 실제로 결정된다. 제안 주제가 마드리드 인구의 2%(5만3000명) 이상의 지지를 얻으면 시 당국의 연구 주제가 되고, 이후 온라인 주민투표로 시민 제안을 실행할지 말지가 최종 결정된다.
마드리드시의 이런 열린 온라인 시민 참여 프로그램은 최근 스페인 정치를 뒤흔들고 있는 신예 좌파정당 포데모스(Podemos, ‘우리는 할 수 있다’는 뜻)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유럽 재정 위기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탄생한 포데모스는 시민 참여를 적극적으로 끌어내면서 성장했다. 2014년 1월에 창당한 포데모스는 지난해 5월 열린 지방선거 당시 자신들이 참여하는 좌파연합 후보를 스페인 양대 도시인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시장에 당선시키는 저력을 보였다. 이렇게 마드리드 시정을 이끌게 된 포데모스 출신들이 만든 오픈 소스 온라인 플랫폼이 바로 마드리드 디사이드다.
작년 5월 선거 양대도시 시장 배출
지난달 총선에선 의석수 3위 저력
‘분노하는 사람들’ 포데모스 탄생 모태
여러 형태 시민참여 이끄는 데 성공
온라인에 토론 플랫폼 깔고
오프라인에선 ‘서클’ 통해 활동 활발
정당운영 자금 ‘크라우드펀딩’ 충당
기존 양당체제 흔들기 성공했지만
집권·대안 만들지는 아직은 미지수
포데모스는 창당한 지 2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인 지난해 12월 총선에서 스페인 현대 정치를 30년 이상 지배해왔던 양대 정당인 우파 국민당(PP)과 중도좌파 사회노동당(PSOE)에 이어 3위에 올랐다. 국민당이 123석을 차지해 1위는 했어도 과반 의석에 한참 못 미치기 때문에 연정을 구성해야 하지만, 아직까지도 연정 구상 협상에 뚜렷한 성과가 없다. 총선 뒤 두달이 지나서도 정부 구성이 실패하면 다시 선거를 치를 수 있다.
포데모스가 짧은 시기에 급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실업률이 21.6%에 이를 만큼 좋지 않은 스페인 경제 상황이 큰 배경이지만, 시민들의 참여를 다양한 형태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포데모스 탄생의 모태는 이른바 분노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인디그나도스’ 운동(또는 15M운동)이다. 이는 2011년 5월15일에 마드리드 시민들이 마드리드의 대표적 광장인 ‘푸에르타 델 솔’(태양의 문)을 점거한 시위를 일컫는다.
당시 시민들은 광장 곳곳에서 총회를 열어 다양한 토론을 했다. 시위 한달 뒤인 6월에 점거 시위를 끝낼 때도 총회를 열어 만장일치로 해산을 결정했을 만큼 토론 문화가 뜨거웠다.
포데모스는 이런 토론 문화를 온라인과 연결해 중요한 성장 동력으로 삼았다. 대표적인 도구가 ‘레딧’(Reddit)이라는 소셜 뉴스 웹사이트였다. 레딧에서는 사용자가 글을 등록하면 이 글이 다른 사용자들의 선호 순위에 따라 주제별 섹션이나 메인 페이지에 올라가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2014년 세금을 회피한 카탈루냐 지역 정치인 조르디 푸욜을 고발한 사건은 대표적인 사례다. 푸욜은 조세 회피처인 안도라 등에 1억4000만페세타(스페인 옛 화폐 단위, 현재 기준으로는 120만달러)를 30년 동안 숨기는 방식으로 조세를 회피한 혐의를 받았다. 당시 포데모스는 레딧에서 토론을 거친 뒤 그를 고발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그의 부패 스캔들은 큰 정치적 논쟁거리였다. 그는 카탈루냐 민족주의 아버지로 불리는 거물 정치인이었기 때문에, 카탈루냐 분리 독립 운동이 타격을 받을 우려도 있었다.
포데모스는 온라인상 토론 도구로 ‘루미오’(Loomio)라는 애플리케이션도 활용하고 있다. 루미오는 세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월가 등에서 벌어진 ‘오큐파이(Occupy) 월가’ 운동을 계기로 태어난 앱이다. 뉴질랜드 웰링턴에서 이 운동에 참여했던 벤 나이트 등 젊은이들이 토론 과정에서 일부 목소리가 큰 사람들이 토론을 주도하는 의도하지 않은 독재가 벌어지는 것을 보고, 온라인에서 모든 사람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앱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오픈 소스 형식으로 해서 개발된 앱이 루미오다. 루미오는 토론하고 싶은 주제를 누군가 제안하고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이 그룹을 만들며, 이후 사람들이 찬성·반대·유보·차단 형식으로 투표를 해서 결정한다.
포데모스는 또 ‘아고라 보팅’이라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서 선거에 나설 후보자를 시민들이 직접 뽑는 방식도 채택하고 있다. 포데모스는 ‘분노하라 운동’으로 탄생한 또다른 정당인 파르티도 에키스(X 정당)와 함께 후보자 선출 때 당원 외에 일반 국민의 참여를 허용하는 오픈 프라이머리를 도입한 보기 드문 정당이었다.
포데모스는 정당 운영 자금도 시민 모금 방식인 크라우드펀딩 등으로 충당하고 있다. 포데모스는 독립성 확보를 위해서 은행이나 경제단체의 지원에 의지하지 않고, 크라우드펀딩 등 기부로 자금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5월 기준 수입의 98%가 기부에서 나온다.
포데모스는 시민 참여를 이끌어내고자 오프라인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자신들의 등뼈라고 일컫는 지역 단체인 ‘시르쿨로스’(서클)를 스페인 전역에 900개 이상 만들었다. 이곳에서 정기적인 모임을 열고 토론을 하며 각종 정책들을 제안한다.
대학교수 출신의 포데모스 대표인 파블로 이글레시아스(39·사진)는 “포데모스는 진화의 산물이다. 조직을 먼저 만들고 선거에 나설 후보자를 나중에 고르는 게 전통적 방식인데 우리는 그 반대로 했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이글레시아스는 2003년부터 유튜브에서 올리는 토론 프로그램 <라 투에르카>에 출연하며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그는 “사람들은 더 이상 정당을 통해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 미디어를 통해 참여한다고 우리는 가정했다”며 이 토론 프로그램도 포데모스의 중요한 발전 동력이라고 말했다.
포데모스는 긴축정책을 반대하는 좌파 정당이지만 사회주의 같은 이념에 호소하는 대신 기존 기득권층을 일컫는 ‘카스트’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궁극적으로는 1975년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사후 형성된 기존 스페인 정치체제를 부정하고 새로운 질서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포데모스 대변인실은 최근 <한겨레>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포데모스가 유례없이 빨리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스페인 현대 정치의 구조적 위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데모스가 민주주의, 사회경제, 민족 같은 여러 측면의 요구를 함께 묶는 정체성을 창조한 능력 덕이 컸다”고 밝혔다. “우리의 성공은 좌우로 나뉘었던 정치 프레임을 특권을 누리는 상층과 이에 대항하는 하층이라는 수직적 개념으로 바꾼 데 있다”고 했다. 또한 “포데모스의 토론과 대표자 선출에는 당원 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며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전통적 의미의 정당이라기보다는 시민 운동에 가깝다”고 밝혔다. 대변인실은 “우리는 불투명하고 경직된 스페인 양당 정치에서 벗어나려 한다”며 “루미오나 레딧 같은 토론 도구는 우리 조직을 더 투명하게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고 밝혔다.
포데모스가 스페인의 양당 체제를 흔드는 데는 성공했으나 집권을 해서 대안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카탈루냐 지역 정당이었으나 최근 주가가 올라간 우파 정당 시우다다노스(시민들)도 총선에서 4위를 하면서 포데모스를 추격하고 있다. 집권에 성공한다고 해도, 채무 재협상을 외쳤으나 국제채권단의 긴축 요구에 무릎을 꿇었던 그리스 시리자와 비슷한 운명을 되풀이할 수도 있다. 포데모스는 이에 대해 <한겨레>에 “스페인은 그리스와 달리 유로존 4위 경제규모의 국가로 잠재적 협상력이 그리스와 크게 다르다”고 밝혔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지난달 총선에선 의석수 3위 저력
‘분노하는 사람들’ 포데모스 탄생 모태
여러 형태 시민참여 이끄는 데 성공
오프라인에선 ‘서클’ 통해 활동 활발
정당운영 자금 ‘크라우드펀딩’ 충당
집권·대안 만들지는 아직은 미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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