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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15일 월요일

논쟁 1:그리스 시리자와 좌파 개혁주의의 한계

논쟁 1:그리스 시리자와 좌파 개혁주의의 한계

그리스, 정치, 마르크스주의 전략

타나시스 캄파지아니스 
 

번역: 김영익

필자인 타나시스 캄파지아니스는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 SEK의 당원이다.

《인터내셔널 소셜리즘》 136호(2012년 가을)에서 리처드 시모어와 파노스 가르가나스는 그리스 좌파를 위한 서로 다른 정치 전략을 내놓았다.1 이 논쟁은 그리스뿐 아니라 다른 지역의 혁명가들에게도 중요한 함의가 있다. 가르가나스는 반자본주의 좌파가 안타르시아를 통해, 곧 시리자와는 별도 조직으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정치적 투쟁에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시모어는 시리자를 “비판적으로 지지”하고 “좌파 정부” 구호를 “전폭” 지지하자는 전략을 제안했다. 시모어는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시리자를 “좌파 개혁주의”고 규정한2 것도 비판했다. 그 용어가 “중요한 세부 사항을 간과”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도 구체적이고 세세한 사실에 관심을 두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이 글의 목적도 해외 동지들이 그리스 상황을 상세히 평가하고자 할 때 고려해야 할 구체적 사실들을 제공하려는 데에 있다.

시모어가 내놓은 정보 가운데 특히 몇 가지는 정정해야 한다. 시모어는 “2009년 학생 반란”이라는 말을 썼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정부의 교육 개혁에 맞선 학생 반란은 2006년과 2007년에 일어났고, 가장 유명했던 대규모 청년 반란은 2008년 12월에 일어났다. 그런데 2009년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 시모어는 시나스피스모스(시리자 안에서 가장 큰 정당)가 2006년에 그리스 사회포럼에 참가했다고도 했는데, 이것도 틀린 사실이다. 그리스 사회포럼은 시나스피스모스가 반자본주의 운동에서 주도력을 장악하려고 2004년에 만든 연대체다. 그러니 자기가 만든 조직에 나중에 합류한다는 것은 분명히 말이 안 된다. 그리스 사회포럼은 2006년 아테네에서 열린 유럽 사회포럼을 조직하는 데 참여했고, 영국과 유럽의 많은 동지들도 이 포럼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오류들은 사소한 것이다. 더 크고 더 중요한 오류들이 있다.

시모어는 다른 글에서 시리자를 “전형적이지 않은” 개혁주의라고 불렀다.3 시모어는 이 규정에 설득력을 싣기 위해 시리자 안에 혁명적 좌파 조직들이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시나스피스모스의 좌파와 함께 활동하는 이 조직들이 시리자의 정치를 상당히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함축하는 것이다. 시모어는 캘리니코스가 시리자 내 혁명적 좌파를 “공정하게” 다루지 않는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상황을 더 구체적으로 봐야 한다. 시리자 안에 혁명적 좌파 조직과 시나스피스모스의 좌파 경향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는 시리자의 정책 결정이 얼마나 바뀔 수 있을지 확신하기는 힘들다. 예를 들어, 1980년대 영국 노동당 안에는 강령한 좌파 경향은 물론이고 조직된 혁명적 단체들도 있었다. 그러나 노동당 내 좌파들은 노동당의 정책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게다가 노동당 내 좌파와 우파의 세력 관계는 그 뒤 10년 동안 상황에 따라 달랐다. 그렇다면 시리자는 어떠한가?

시리자 내 좌파

시리자 내 극좌파는 2012년 총선 전에 시나스피스모스 지도부에 맞서(따라서 시리자에 맞서) 역대 가장 중요했던 정치적 도전을 벌였다가 참패했다. 이 도전은 2010년에 있었는데, 시나스피스모스의 전 대표 알레코스 알라바노스가 이끈 ‘연대와 파열 전선’MAA, Front of Solidarity and Rupture이 주도했다. 시모어가 언급한 두 조직, 즉 마오주의 조직인 그리스 공산주의자단체KOE와 트로츠키조직인 국제주의노동자좌파DEA, Internationalist Workers’ Left가 이 도전을 지지했다. MAA는 시리자 지도부의 온건화 방향과 유럽연합·유로화 친화적 노선을 부각해 비판했다. 그러나 MAA는 주로 시나스피스모스 안에서 동맹을 찾으려 했고, 특히 좌파경향Left Current과 그 조직의 지도자 파나이오티스 라파자니스와 동맹을 맺으려 주력했다. 그러나 라파자니스는 시나스피스모스와 결별해 MAA로 가지는 않았다. 이는 예상 못할 결과는 아니었다.(라파자니스가 시나스피스모스와 결별할 것이라는 가정을 정치 전략의 중심에 놓았던 사람들은 실망했겠지만 말이다.)

MAA가 시리자를 분열시킬 만한 대중적 기반을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이 명백해진 뒤로는 오히려 MAA를 지지하던 조직들이 MAA를 내팽개치고 다시 시리자를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그런 조직들의 정치적 입장은 MAA보다 취약하고 온건했지만 말이다. KOE는 이런 급격한 전환기에 분열을 겪었다.(지도부의 절반이 조직을 떠났다. 그들은 한때 낡은 공산당식 사투리를 썼어도 유럽연합과 유로존을 반대한 것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유럽연합과 유로존은 주요 쟁점이 아니다” 하고 주장한다.) KOE의 현재 정치 노선은 시나스피스모스의 좌파라고 하기 힘들다. KOE는 [그리스 정부가 국제 채권단 트로이카(유럽연합, 유럽중앙은행, IMF)와 체결한] 양해각서에 반대하는 “국민적” 전선을 결성하는 데 강조점을 두면서, 심지어 우파 정당(반터키 민족주의자이자 전에는 신민당 소속 국회의원이었던 파노스 카메노스 — 영국 보수당에 있다가 탈당해 영국독립당을 설립한 우파 정치인 나이절 패라지와 비슷한 인물 — 가 이끄는 그리스독립당 같은 정당)들과도 협력하자고 한다. 다행히도 시나스피스모스(와 시리자)는 현재까지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그럼에도 이 우파 정당의 “비판적 지지”를 얻어 좌파 정부를 구성하자는 제안에는 시나스피스모스가 동의할지 모른다는 얘기가 있다.)

그렇다면 시모어가 언급한 또 다른 조직 DEA는 어떠한가? 시모어가 인용한 안토니스 다바넬로스의 2008년 기사가 많은 것을 알려 준다.4(무슨 이유에서인지 시모어는 이 기사를 두 번 언급했다.) 그 기사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바넬로스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시나스피스모스의 대표 알레코스 알라바노스가 한 제안의 핵심은 “반신자유주의와 반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강령을 가진 좌파 정부”다. 많은 단체들과 마찬가지로 DEA도 시리자가 신자유주의 정책의 반전을 목적으로 한 선거적 야당으로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이런 제안에 반대한다. 이 쟁점에 관해서는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고 앞으로 토론할 여지가 있다.

그런데 왜 DEA는 2008년에는 시리자의 당시 지도자 알레코스 알라바노스가 한 이 제안에 반대했으면서 2012년에는 시리자의 현 지도자 알렉시스 치프라스가 한 제안에 찬성했을까? 시나스피스모스의 새 지도부가 좌선회해서 그런 것은 확실히 아니다. 시나스피스모스의 아주 충성스러운 당원들조차 알라바노스가 치프라스보다 좌파라는 사실은 인정할 것이다. 현실에서 시리자의 좌파(와 시리자 내 혁명적 좌파 조직들)는 시리자 지도부의 “좌파 정부” 전략에 딸려 간 것이다.

2012년 총선이 끝난 뒤 몇 달 동안 여러 사건에서 내가 묘사한 [시리자 내] 세력 관계가 옳았음이 드러났다. [시리자 내] “강력한” 좌파에 대한 추상적 얘기와 대조적으로 말이다. 최근에 열린[2012년 11월 30일~12월 2일에 열린] 시리자 대의원대회에서 지도부는 당 전체를 더 온건한 방향으로 끌어당겼다. 이제 시리자의 주안점은 “일방적으로” 급진적 결정을 하지 않을 “구국” 정부를 구성해 그리스가 유럽연합·IMF와 체결한 양해각서에 대해 재협상하자는 쪽으로 옮겨 갔다. 이 대의원대회에서 시리자 내 좌파들은 ‘좌파적 강령’Left Platform이라는 분파를 결성해(시모어가 언급한 KOE는 지도부 편을 들었다) 25퍼센트의 지지를 얻었다. 이 수치는 좌파경향이 평소 시나스피스모스 안에서 받는 지지율보다 작은 것이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은 시리자 내 좌파가 시리자의 정치 노선에 영향력을 거의 미치지 못한다고 본다. 적어도 시리자의 경제정책 생산 기구에서 시리자 내 좌파의 영향력은 아예 없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제 시리자의 주요 과제는 “통치 능력”을 입증하는 것이 됐다. 치프라스는 라틴아메리카로 가서 브라질의 룰라와 아르헨티나의 키르치네르를 만나고, 독일 재무장관 볼프강 쇼이블레를 만났다. 더 최근에는 미국으로 가서 IMF와 자유주의 성향의 연구소(브루킹스연구소[오바마 정부 들어 급부상한 민주당계 연구소]를 포함해)들을 만나 그들의 환심을 사려고 이 전략을 거듭거듭 밝혔다. 치프라스는 그리스의 주요 보수 정치인 콘스탄티노스 카라만리스(전 총리 코스타스 카라만리스의 삼촌)의 “현대화”, “헤게모니” 전략이 우파로 가는 표를 좌파로 끌어올 수 있을 것이라며 칭찬해서, 자신의 가장 충실한 지지자들조차 깜짝 놀라게 했다. 시리자 내 좌파가 야당의 처지에 있는 현재 시리자의 노선을 좌지우지할 수 없다면, 집권당이 된 이후(곧, 국가, 부르주아적 합법성, 지배계급이 가하는 커다란 압박을 받는) 시리자의 행보가 어떨지는 함부로 예단할 수 없을 것이다.

핵심 연결 고리인 유로존

좌파 활동가들이 이런 사태 전개를 보면서 곧장 떠올릴 질문은 이렇다. 이런 일은 항상 일어날 수밖에 없는가? 좌파 정당이 권력에 다가가면 급진성이 자연스럽게 탈색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역사적 법칙인가? 다행히도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로버트 미헬의 “과두제의 철칙”이 아니라, 정치 전략의 문제에서 찾을 수 있다. 나는 전략이라는 말을 노동운동이 끊임없이 고심할 문제(개혁이냐 혁명이냐 하는 문제)뿐 아니라 특정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들을 가리키는 뜻으로 썼다. 그리스에서 핵심 쟁점은 유로존이다.

유로존 문제에 대한 좌파들의 관점과 제1차세계대전에 대한 당시 좌파들의 관점 사이에는 비슷한 구석이 많다. 전쟁 책동에 반대할 것이냐 아니냐는 당시 좌파들의 재편에서 핵심 쟁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평화를 지지한 사람들이 모두 마르크스주의자였다는 뜻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유로존에서 벗어나자고 하는 사람들이 모두 혁명적 사회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시모어가 언급한 코스타스 라파비차스의 “그렉시트”Grexit[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강령은 급진적 반신자유주의 강령이다. 유로존의 구속에서 벗어나 그리스 통화의 가치를 떨어뜨려 그리스 자본주의의 경쟁력을 회복시키자는 내용이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이탈하는 것이 긴축을 끝장내고 노동계급 친화적 정책을 추진하고자 하는 반자본주의 정치에 꼭 필요한 단계라는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시리자 지도부의 유로존 친화적 노선은 운동의 급진성을 길들이고 운동을 온건하게 만들려고 하는 그리스 지배계급에게 유용한 수단이 돼 왔다. 시모어의 주장과 달리, 유로존 탈퇴 주장은 시리자가 선거에서 한 제안[좌파 정부 구성]을 거부하는 것을 정당화하려고 내놓은 혁명적 좌파들의 이데올로기적 우회로가 아니다. 시리자의 유로존 친화적 노선이 시리자 지도부가 노동계급의 현재 의식 수준을 측정해 내놓은 전술적 결정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유로존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은 운동에 맞서 지배계급이 내놓은 정치적·이데올로기적 협박이다. 지배계급은 기업주와 정치인들이 부채를 줄여야 한다며 늘어놓는 얘기들의 정당성이 운동 때문에 크게 훼손되자 그런 협박을 해댄 것이다. 따라서 유로존 문제에서는 대담한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 시리자 자신의 유로존 친화적 입장은 시리자가 오랫동안 고수한 유럽연합 친화적 전략, 즉 유럽연합이 국민국가보다는 국제주의적이고 진보적이라고 보는 유러코뮤니즘의 오래된 신념의 귀결이다. 유로존이 강요하는 제약을 받아들이며 그리스의 경제 위기를 해결하자고 하는 것은 미국 공화당 우파가 “재정적자”와 “과잉 지출”을 “대폭 감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시리자의 지도적 경제학자들은 점점 더 그렇게 하고 있다. 반면, 안타르시아의 반자본주의 좌파는 부채 탕감과 양해각서 무효화, 은행 국유화, 투자 통제를 주장하는 강령을 내놓았다. 이 요구들은 모두 유로존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한다.

정부 = 정치?

핵심적 질문은 이렇다. 누가 위기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반자본주의 강령을 실행할 것인가? 시모어는 “좌파 정부” 구성을 “의미 있는 단계”로 보며 시리자의 전략을 찬양했다. 그가 반복해서 말했듯이, 당장은 소비에트가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런 주장의 발전 과정에서 놀라운 것 하나는 “좌파 정부” 전략 옹호자들이 1922년 코민테른 4차 대회에서 있었던 논의를 끌어다 쓴다는 것이다. 그것도 레닌주의 정치를 대체로 낡은 것으로 여기는 좌파들이 그러니 더 놀랍다. 초기 코민테른이 남긴 혁명적 교훈에 대한 내 신념은 여전히 확고하다. 하지만 시리자가 내놓은 전략은 1920년대보다는 1970년대의 경험과 훨씬 더 관련이 있어 보인다. 우리가 지금 다루고 있는 “좌파 정부” 전략은 과거 프랑스 공산당PCF이 내놓은 유러코뮤니즘적 “좌파 정부” 노선을 포장만 바꿔 다시 내놓은 것이다.(그럼에도 당시 PCF가 오늘날의 시리자보다 노동계급에 훨씬 더 깊이 뿌리 내리고 있었음을 기억하자.) 나는 “좌파 정부”가 운동을 위한 “교육 과정”의 일부가 될 수 있고, 노동계급에게 득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다. 바로 노동운동의 선진 부위가 그 정부로부터 정치적으로 독립적이어야 하고 그 정부의 등장은 운동 자체의 활동 결과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5 그렇다고 해서 정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뜻하는 정치는 정부 인수를 바라는 “현실주의”의 정치와도 다르고 혁명적 낭만주의의 정치와도 다른 종류의 정치다. 지금 혁명적 좌파가 노동자 투쟁에 강조점을 두는 이유는 미래에 급진적 강령을 실행할 때 결정적일 주체적 역량을 구축하기 위해서다. 주체적 역량의 구축은 지배계급의 반혁명적 반발에 맞설 때뿐 아니라, 노동계급이 자신의 기관을 통해 마침내 권력을 획득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가 될 때도 사활적으로 중요하다.

안타깝지만 “좌파 정부”를 둘러싼 혁명적 좌파 내의 논쟁을 보면, 일부는 정치가 무엇인지에 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시리자의 스타니스 쿠벨라키스가 그리스에 관해 한 연설은 그런 관점을 아주 잘 보여 준다.

그리스 상황에서 충격적인 사실은 총파업이 24번이나 일어나고 2011년 봄 수많은 사람들이 몇주 동안이나 광장을 점거했는데도 눈에 보이는 성과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양해각서에 명시된 극도로 야만적인 긴축정책 꾸러미 중 단 하나도 철회시키지 못했다. 따라서 긴축정책을 막아 내고 사태를 뒤집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정치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6

이것은 정치에 관한 뒤틀린 관점이다. 정치를 운동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한계가 있는 운동을 대체할 수단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잘못된 개념은 그람시의 “통합국가”Integral State 개념을 곡해해서 사용하는 관점과 정치를 오로지 국가 내부의 투쟁이나 국가를 장악하기 위한 투쟁으로만 보는 관점에서 나타난다. 국가는 정치의 핵심적 부분이 응축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가가 정치와 같은 것은 아니다.

황금새벽당의 부상에 맞선 투쟁 경험이 좋은 사례인데, 이 경험은 운동(과 그 운동 속의 혁명적 좌파들)이 “좌파 정부” 입각이라는 의제를 받아들이지 않아도 어떻게 정치를 할 수 있는지 아주 잘 보여 줬다. 올해[2013년] 1월 19일 반파시즘 시위가 성공적으로 치러진 것을 포함해 반파시스트 운동이 일반적으로 성장한 것은 그리스의 반자본주의 좌파와 그 안에서 지도적 구실을 하는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SEK이 함께 일군 중요한 정치 행동이다. 다음 선거를 기다리며 이런 운동에는 나타나지 않는 시리자보다 이런 요소들이 정치 지형에 훨씬 더 크고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황금새벽당을 분쇄하는 것은 이제 사마라스 정부에 맞서 싸우는 데 꼭 필요한 단계가 됐다. 그리고 파시스트와 국가 탄압에 항의하는 대중 운동이 일어나며 청년들이 새롭게 급진화한 이래 투쟁에 걸린 판돈은 그 전보다 훨씬 더 커졌다. 좌파의 정치적 단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는 노동계급과 급진화하는 청년들 사이의 사회적 단결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시리자가 파시스트에 맞서는 전선을 회피하는 것은 전략적 분열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반자본주의 좌파 세력들이 그것을 막으려 애쓰고 있다.

혁명적 좌파를 옹호하며

결론을 내야겠다. 자본주의의 위기로 과거의 사회적·정치적 동맹 관계가 매우 불안정해지고 있다. 위기의 속도가 모든 곳에서 같지는 않지만, 위기는 전 세계적 현상이다. 이 때문에 옛 세대 활동가들, 핵심으로는 노동계급이 우파 사회민주주의와 결별했고, 좌파 개혁주의 조직들이 부상했다. 그런데 대다수 좌파 개혁주의 조직들은 “늙은 좌파”들이 이끌었다. 이 “늙은 좌파”들은 다시 민중의 호민관을 자처하고 있다. 독일 디링케(좌파당)의 오스카 라퐁텐, 이탈리아 재건공산당의 파우스토 베르티노티, 영국 리스펙트의 조지 갤러웨이, 프랑스 좌파전선의 장 뤽 멜랑숑, 그리스 시리자의 알렉시스 치프라스가 그런 사례다.(물론 치프라스 개인은 매우 젊지만 그 뒤에는 가장 늙은 정당이 있다.) 아랍의 봄 후에 떠오른 “민중의” 정치인들도 이 명단에 넣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 세대 활동가들(특히 청년들)은 거리의 정치, 학생운동의 분출, 자율주의 사상, 억압에 맞선 새로운 급진적 운동 등으로 이끌렸다.7 혁명적 좌파는 이런 발전 과정에 도움이 될 귀중한 이데올로기적 자산이 있지만, 그런 잠재력을 발현하려면 힘들더라도 끈기 있게 활동해야 한다.

혁명적 좌파는 급진화하는 청년들을 포용해야 하지만, 그들이 청년 집단 사이에서 여전히 득세하는 비정치적 운동주의를 넘어 정치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그러려면 전통적인 좌파 개혁주의 정당(또는 가장 급진적 버전의 좌파 개혁주의)보다 훨씬 더 급진적인 이론과 실천이 필요하다.

동시에 혁명가들은 이 급진적 세대와 불만에 찬 노동계급을 연결시켜야 한다. 기성 개혁주의 정당들에 대한 노동계급의 오랜 충성심을 깨고, 그들에게 진정으로 좌파적인 선택지를 제시하려면 말이다. 그러려면 우리는 좌파 개혁주의 조직(어떤 형태이든)들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으면서도 그들의 전략을 꽁무니 좇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에 있는 우리가 투쟁에 개입한 경험을 돌이켜보면, 혁명적 좌파는 [좌파 개혁주의로부터]이데올로기적·조직적으로 독립적이어야 한다. 혁명적 좌파의 독립성을 물신화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최근 격동의 몇 년 동안 투쟁에 참여하며 어렵게 배운 교훈이다.

기성 정치가 불안정해지면 새로운 정치 세력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완전히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전략과 이데올로기적 경향이 다시 나타나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시모어는 “개혁주의적 최소 강령과 혁명적 최대 강령” 사이에서 묘책을 찾아야 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정확히 1920년대의 [개혁주의적]제2인터내셔널이나 [혁명적] 제3인터내셔널이 아니라, [중간주의적] “제2.5인터내셔널”이 하려던 것이다.

그리스 좌파의 전략을 둘러싼 논쟁을 보면, 몇 달에서 몇 년 후에는 국제적으로도 비슷한 논쟁이 벌어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전통에 속해 있음을 당당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자본주의라는 재앙이 없는 세계를 이룩하려면, 그리스의 SEK나 영국의 사회주의노동자당SWP 같은 혁명적 좌파 조직을 건설하는 것이 전략적 핵심 과제다.

MARX21

 

참고문헌
Callinicos, Alex, 2012a, “The Politics of Europe’s Rising Left”, Socialist Worker (19 May), www.socialistworker.co.uk/art.php?id=28461
Callinicos, Alex, 2012b, “The Second Coming of the Radical Left”, International Socialism 135 (summer), www.isj.org.uk/?id=819
Davanellos, Antonis, 2008, “Greek Workers Move Left”, International Socialist Review, 59 (May-June), www.isreview.org/issues/59/rep-greece.shtml
Davanellos, Antonis, 2012, “Where Did Syriza Come From?”, Socialist Worker (US) (17 May), http://socialistworker.org/2012/05/17/where-did-Syriza-come-from
Garganas, Panos, 2009, “The Radical Left: A Richer Mix”, International Socialism 121 (winter), www.isj.org.uk/?id=513
Garganas, Panos, 2012, “Greece After the Election”, International Socialism 136 (autumn), www.isj.org.uk/?id=855
Harman, Chris and Tim Potter, 1977, “The Workers’ Government”, SWP International Discussion Bulletin, number 4, www.isj.org.uk/?id=295
Kouvelakis, Stathis, 2012, “Greece: Stathis Kouvelakis on tasks facing Syriza following its electoral breakthrough”, Links-International Journal of Socialist Renewal, speech delivered on 07/12/2012, http://links.org.au/node/3145
Seymour, Richard, 2012a, “A Comment on Greece and Syriza”, International Socialism 136 (autumn), www.isj.org.uk/?id=854
Seymour, Richard, 2012b, “The Challenge of Syriza”, www.leninology.com/2012/06/challenge-of-Syriza.html

1 Seymour, 2012a and Garganas, 2012. 이 글은 ‘Left Flank‘ 블로그에 처음으로 실렸다. ‘Left Flank’의 편집자 Tad Tietze와 Elizabeth Humphrys에게 감사한다. http://left-flank.org/

2 Callinicos, 2012a and 2012b.

3 Seymour, 2012b.

4 Davanellos, 2008 and 2012.

5 이에 관한 세심한 논의로는 Harman and Potter, 1977을 보시오.

6 Kouvelakis, 2012.

7 파노스 가르가나스는 알렉스 캘리니코스, 프랑수아 사바두와 논쟁하며 이 “풍부한 혼합물”(richer mix)에 관해 예측했다. Garganas, 2009.

그리스, 스페인의 새 정치세력이 성공한 이유

그리스, 스페인의 새 정치세력이 성공한 이유

[주간 프레시안 뷰] 유럽 '정치 대지진' 일어날까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 2015.02.05 18: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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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간 프레시안 뷰>에서는 그리스 시리자와 스페인의 포데모스 등 유럽의 새로운 정치세력이 어떻게 짧은 기간에 놀라운 정치적 성공을 거두었는지 그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창당 10년 만에 그리스 정권을 장악한 시리자의 경우도 그렇지만, 출범 1년 만에 최고 지지율 정당으로 급신장한 스페인 포데모스의 정치적 성공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이들이 그동안 중도 좌파와 중도 우파 정당이 권력을 번갈아 나눠 가지면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지속해온 기존 유럽 정치의 지형을 무너뜨릴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시리자(Syriza)'는 '급진좌파연합'의 그리스어 머리글자를 모아 만든 말이고, '포데모스(Podemos)'는 '우리는 할 수 있다'라는 뜻입니다.)

그리스와 스페인은 역사적 경험이나 현재의 사회경제적 상황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두 나라 모두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금융자본에 의해 강요된 가혹한 긴축정책으로 서민들의 삶이 막다른 골목으로 몰려 있습니다. 그리스의 경우 유럽중앙은행의 구제금융을 받은 2009년부터 2013년까지 4년 동안 실업률은 3배로(25.5%) 뛰어오른 반면, 성장률은 마이너스(-) 26퍼센트(%)로 주저앉았습니다. GDP 대비 외채의 비율은 113%에서 174%로 급증했습니다. 마이너스 성장으로 GDP 규모가 줄어든 때문이죠. 2400억 유로에 이르는 구제금융 중 84%는 외채 상환에 쓰였습니다. 외채가 서민들의 삶을 지원하는 데는 거의 쓰이지 않은 것입니다. 1조 유로의 외채를 안고 있는 스페인도 그리스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부과된 긴축재정이 인간적 삶을 누릴 수 있는 토대를 망가뜨린 것입니다. 이는 기존 정치권력에 대한 대중들의 반란을 이끌어내는 바탕이 됐습니다.

두 나라 모두 역사적으로 좌파의 치열한 투쟁 경험이 있습니다. 스페인에서는 1936년 프랑코 총통의 파시스트 정부에 맞선 공화파와의 내전이 있었고, 그리스에서는 2차 대전 당시 반나치 투쟁에 나선 레지스탕스 세력의 집권 가능성 높았습니다. 하지만 스페인 내전의 경우, 독일 나치와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권의 적극적 지원을 받은 프랑코 정부가 승리를 거두고 이후 40년 가까이 독재 정치를 했습니다. 그리스의 경우에는 좌파세력을 소련의 꼭두각시로 본 미국과 영국의 개입으로 결국 좌파가 패배하고 말았죠. 미소 냉전을 공식화한 1947년의 '트루먼 독트린'은 바로 그리스 내전에서 좌파의 승리를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비록 외세의 개입으로 좌파가 패배하긴 했지만, 그 투쟁의 경험은 양국 국민들에게 여전히 중요한 역사적 경험으로 남아 있습니다.

▲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포데모스 대표는 1월 31일(현지 시간) 스페인 마드리스에서 열린 '변화를 위한 행진'에서 "변화의 바람이 유럽에 불기 시작했다"고 연설했다. ⓒAP=연합뉴스


시리자 지도자로 지난 1월 26일 그리스 총리에 오른 알렉시스 치프라스(40)와 스페인 포데모스의 파블로 이글레시아스(36)는 10대의 젊은 나이부터 정치활동에 뛰어들었습니다. 그것도 기존 정당을 통한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새로운 정치 실험에 나섰습니다. 우선 두 사람 모두 공산주의청년단(공청)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습니다.

치프라스는 1월 29일 자 <주간 프레시안 뷰>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고교생 때인 1991년 보수 정부의 교육개혁에 맞서 학교 점거 농성을 벌이는 등 나이에 비해 정치 경험이 풍부합니다. 그는 32세 때인 2006년 아테네 시장 선거에 출마해 3위를 기록하는 등 일찍부터 정치적 가능성을 보여 왔습니다. 
   

마드리드에서 역사 교수인 아버지와 변호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이글레시아스는 스페인공산당에서 청년 당원으로 활동할 만큼 일찍부터 정치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는 스페인의 공립대학인 명문 마드리드 콤플루텐세대학을 졸업하고, 이 학교에서 정치학 교수가 됐습니다. 24세 때인 2003년부터 지금까지 대중들의 정치교육을 위한 '라 투에르카'라는 토론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역방송이나 인터넷으로 배포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목표는 "다가올 때를 대비하여 대중들이 레닌주의적 시각에서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두 사람 모두 10대 후반, 20대 초부터 나름대로 정치적인 훈련과 경험을 쌓아왔습니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 교수의 표현을 빌자면, '적공(積功)'을 해온 것입니다. 그리스 시리자의 경우 2004년 총선에 첫 도전해 6석(3.26%)을 얻는 등 10년에 걸친 제도권 정치활동의 경험이 있습니다. 반면, 포데모스는 창당 4개월 만인 지난해 5월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 첫 선거임에도 불구하고 8%의 득표율을 얻어 5석을 확보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기적이 가능했던 걸까요?

포데모스의 출발점은 2011년 5월 15일 마드리드에서 열린 '분노하라(인디그나도스, Indignados)' 시위입니다. 이 시위는 '15-M 운동'으로도 불립니다. 5월(May) 15일 시작된 운동이란 뜻입니다. 당시는 뉴욕 월가 점거 시위(Occupy) 등 전 세계에서 신자유주의의 탐욕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15-M운동의 정치적 결과는 11월 총선에서 집권당이 중도 좌파 사회주의노동자당(PSOE)에서 중도 우파 인민당(PP)으로 바뀐 것뿐이었습니다. 인민당 집권 후 IMF와 유럽중앙은행, 유럽연합 등 이른바 트로이카가 요구하는 긴축정책에는 전혀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사회 운동에 바탕을 둔 정치 운동의 한계에 대한 각성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스페인 사회학자 호르헤 라고는 "시위 민중들의 힘을 점차 결집해 나감으로써 유의미한 정치적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이 잘못됐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합니다. 당시 시위를 통해 임차인보호연대, 의료보험삭감반대 네트워크 등 사회조직이 결성됐지만, 동력은 약화됐고 11월의 총선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죠. 라고에 따르면 "당시 유권자의 80%가 15-M 운동의 대의에 공감했지만 실제 투표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사회당과 인민당 등 양대 중도 정당으로 몰렸다"고 합니다. 

결국 15-M 운동의 대의를 담아낼 정치세력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추상적 강령만으로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스페인에서는 '연합전선(UF)'이라는 좌파 정당이 오래전부터 15-M과 비슷한 정책들을 표방했으나 유권자들을 끌어들이지 못했던 것입니다. 15-M의 정책들을 일반 유권자들에게 제대로 설득시키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포데모스의 성공 비결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인간을 위한 경제'라는 자신들의 강령을 일반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들어낸 거죠. 포데모스 지도자들은 기존 좌파가 추상적 분석, 현학적 인용, 애매한 언어에 갇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글레시아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후보의 이념이나 가치, 문화가 자신과 같다고 생각해서 표를 주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의 말과 행동에 끌리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과 같고 매력이 있으며, 유머 감각이 있는 후보를 선택한다는 얘깁니다.

포데모스의 첫 번째 과제는 좌파의 전통적 담론을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쉬운 말로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민주주의, 스페인의 주권, 사회 정의 등을 열쇳말로 해서 광범위한 서민들에게 운동의 목표를 이해시킨 것입니다. 이들은 자본주의 타파라는 말 대신 경제민주주의라는 말을 씁니다. 좌와 우를 가르지 않고, 민주주의와 민주주의의 적들로 가릅니다. 금융계·대기업·상층 엘리트들은 민주주의의 적이고, 서민들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겁니다. 스페인은 좌와 우로 나뉜 것이 아니라 상위 1%와 나머지 99%로 갈라졌다고 말합니다.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포데모스의 이러한 담론 전략에 비난을 퍼부었지만, 이글레시아스는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며 포데모스의 전략이 옳다고 주장합니다. 공산주의청년단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프롤레타리아'라는 말을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15-M 운동이 시작됐을 때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도 시위에 참여했다. 이들은 마르크스와 레닌의 저작들을 읽은 매우 정치적 성향의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시위에서 '보통 사람들'을 처음 만났다. 학생들은 이 시위에서 크게 낙담했다. 노동자들을 향해 '당신들은 노동자요. 당신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더라도'라며 노동자로서의 각성을 요구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학생들을 마치 외계인 바라보듯이 낯선 시선으로 대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 그리고 좌파의 낡은 담론을 설파하면서 사회의 소수파로 남아 있는 것, 바로 이것이 저들이 원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런 행태에 얽매어 있는 한, 우리는 그들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다는 것을 저들은 안다."

일반 시민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자신의 목표와 정책을 설득해낸 것이 포데모스 성공의 비결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들은 지금 스페인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에서 생사를 건 투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합니다. 자본주의의 승리는, 곧 일반 시민의 삶의 파탄을 가져올 것이라는 얘기죠. 

또한 이들은 대졸 출신 청년들과 노동자,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1000개 협의회를 전국 곳곳에 구성해 자신들의 정책을 보통 사람들의 언어로 전파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주요 공중파 방송에도 출연해 우파 인사들과 당당히 논전을 펼칩니다. 결코 소수파 콤플렉스에 갇혀 있지 않은 것이죠. 또한 카탈루냐, 바스크 등 다민족으로 구성된 스페인에서 소수 민족의 자치권을 옹호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들이 어우러져 창당 불과 1년 만에 지지율 1위의 정당으로 올라선 것입니다. 포데모스의 급속한 정치적 성공에 스페인 집권 세력은 엄청난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스페인 대기업 연합회의 대표인 후안 로셀은 지난해 12월 스페인도 독일과 마찬가지로 사회당과 인민당의 대연정을 실현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것만이 포데모스의 집권을 막을 길이라는 얘기죠. <엘 문도>의 한 언론인은 파블로 이글레시아스를 루마니아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세스쿠에 빗대면서 "가난한 자들의 피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흘러내리게 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비방을 하기도 했습니다. 인민당의 한 정치인은 "누군가 그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 넣어야 한다"는 극언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오는 연말에 있을 스페인 총선에서 포데모스가 집권에 성공할 수 있을는지 아직 미지수입니다. 현재 스페인을 지배하고 있는 과두세력(올리가르히)과 유럽연합, 유럽중앙은행의 이른바 유럽 관료들의 반대와 방해가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포데모스의 정치 전략은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금융위기로 곤경에 처한 현재 유럽에서 집권 가능성이 높은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시리자와 포데모스 등 좌파세력만이 아닙니다. 프랑스의 국민전선을 비롯해 극우 정당들도 약진하고 있습니다. 시리자를 비롯한 신좌파정당이 자본과 노동의 대결이라는 근본적 구도에서 새로운 길을 찾으려고 하는 반면, 국민전선 등 극우 정당들은 현재 곤경의 원인을 무슬림 이민자 등 사회적 소수 탓으로 돌리면서 과거의 파시즘적 정책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유럽의 정치적 대지진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견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좌파의 승리냐 극우파의 승리냐, 이는 유럽의 장래는 물론 세계 자본주의의 앞날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포데모스의 약진과 스페인의 현황에 관해서는 다음 두 자료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2014년 11월 3일 월요일

▶진보정당 30/40대 초 친목모임 기획단 - 진보정당 분석 시리즈6◀ -시리자는 새로운 전 그리스사회주의운동당(PASOK)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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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 30/40대 초 친목모임 기획단 - 진보정당 분석 시리즈 6
 [번역가칭진보정당 30/40대초 친목모임 윤경준 기획위원]


시리자는 새로운 전 그리스사회주의운동당(PASOK)인가?
Is SYRIZA the New PASOK?

By Philip Chrysopoulos-Oct12, 2014


1981 10월 그리스 정계에 사변적 변화가 일어났다. 그리스역사상 처음으로 사회주의 정당이 선거에 승리해서 집권하게 된 것이었다. 전 그리스사회주의운동당(PA.SO.K)의 보수정당인 신 민주당에 대한 승리는 변화대한 열망에 기인한 것이었다. 전 그리스사회주의운동당 지도자 Andreas Papandreou는 수십 년에 걸친 우파지배의 흔적을 그리스에서 지워내겠다고 약속하면서 새로운 그리스와 새로운 그리스사회를 약속했다.
그의 선거유세 연설문에서, Papandreou는 공개적으로 그의 사회주의적 사상을 피력했으며 나토 연합군과 궁극적으로는 불과 일년 전에 8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한 유럽연합에서 탈퇴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그리스는 그리스인들의 것이다.”라는 그의 선거 슬로건은 그리스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들의 원흉은 외세라고 생각하는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물론 유세 때 말했던 공약은 그저 유세발언일 뿐이었다. Andreas Papandreou는 그의 의지를 전혀 실현하지 않았다. 물론 그리스는 여전히 나토에 남아있다. 그는 EU의 경제적 지원을 받아들이는데 전혀 거리낌조차 없었다. 사실, 그를 그토록 인기 있게 만들어 주었던 그가 그리스 국민들에 뿌린 자금의 대부분은 유럽연합 자금이었다 그는 18년 전에 사망했지만 그의 인기는 너무나도 대단해서 그의 사진은 여전히 전 그리스사회주의운동당 포스터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을 정도이다.

이번 10월 전반적인 느낌은 1981년 유세 당시의 분위기와 묘하게도 비슷하다: 다시 한번, 우리는 신 민주당을 권좌에서 몰아낼 준비가 된 좌파정당이 있고 신 민주당은 과거의 불구대천의 원수인 전 그리스사회주의운동당과 연합하여 연정을 이루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는 신 민주당의 지지율은 겨우 20%정도이고 전 그리스사회주의운동당의 지지율은 5% 언저리인 반면에 시리자의 지지율은 10월 중순 28%를 넘어서고 있다. 당수인 Alexis Tsipras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으며 그는 사실상 총리취임 대기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이 시리자의 지도자는 현 정부의 긴축재정 정책으로 돌이킬 수 없는 고통에 신음해온 그리스 사회에 약속들을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Tsipras의 발언들과 견해를 좀더 세밀하게 살펴보면 그의 약속들이 Andreas Papandreo와 그의 아들인 2009 10월 집권해서 2년 남짓 만에 경제붕괴와 함께 실각한 George Papandreou가 한때 남발했던 지키지 못할 약속을 떠오르게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Thessaloniki 세계무역박람회에서의 연설 중에, Tsipras는 그가 임금과 연금과 보너스를 경제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구제자금 이행각서의 이행을 중단하겠다고 맹세했다. 그는 트로이카(IMF, 유럽연합, 유럽중앙은행)에 대규모 부채탕감을 요구하였고 극빈층에 대한 무료전기 공급과 식량배급의 사회적 이익을 주장했으며 재산세(ENFIA) 철폐를 약속했다.

이러한 정책들을 위해 재원을 어디서 조달할 것인지 질문 받았을 때, 그의 대답은 그 악명 높았던 George Papandreou의 다음 과 같은 발언을 떠오르게 한다: “돈은 어딘가 있다.” 동시에 Andreas Papandreou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Tsipras는 한발은 유럽연합에 걸치고 다른 한발을 그 모든 악들을 물리칠 안전망을 갖춘 상상 속의 부강한 그리스 주권국가에 딛고 있는 양 행동하고 있다. 구제자금과 채무를 모두 유럽중앙은행에 빚지고 있기 때문에 이 시리자 지도자는 그가 은행들의 이익이 아니라 민중의 이익을위해 재협상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동시에, 누구나 쉽게 Tsipras Andreas Papandreou와의 연설문 내용의 흡사함을 뛰어 넘어 전 그리스사회주의운동당의 설립자인 그의 목소리와 억양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실제로, 여러 번, 이 시리자 지도자는 의식적으로 Andreas Papandreou의 목소리를 흉내 냈었다. 이것은 Papandreou 가문을 존경했던 노년층 유권자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George Papandreou 2009년 선거에서 그의 아버지의 전략을 기반으로 승리했었다. 상대를 민중의 적으로 선전하라; 민중의 구원자처럼 행동하라. 쉽게 정의되는(정파연합을 통한 단일 전선을 말함) 선거캠프를 갖추라; 우파와 가까운 포지션을 취하라. 시리자는 똑 같은 양극화 전략을 선택하고 있다. 그들은 연립정부를 부패집단”, “매국노들”, “독일 놈들 앞잡이들”. “은행가들의 개”, “파시스트들등등 이라 부르면서 악마화했다. 신생정당인 To Potami (River)에 가한 시리자 지지자들의 맹렬한 공격은 그들이 좌익과 우익으로 선명하게 갈린 정치지형에 중도의 먹구름을 드리울 어떤 정치세력도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과거에, 이 양극화 전략은 여당과 야당 모두에 잘 통했다. “체제를 지키기 위해 저를 뽑아 주십시오. 적들이 문 앞까지 몰려와있습니다.” 혹은 저를 뽑아 주십시오. 자가 저 권력자들을 권좌에서 끌어내리겠습니다.” 진영논리에 의한 묻지마 투표는 우파들은 우익 편에 서고 좌파들은 반대편에 서는 직업정치인들에게 잘 먹히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결국, 그리스 유권자들은 과거에 반복해서 단명한 정권들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또한 집권 정부에 대한 벌주기로 투표권을 이용했다. 그리고 7년의 독재정부 이후 모든 정부가 실패한 것으로 판단해보면 이번 연립정부 역시 처벌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시리자의 모토는 됐어! 이제 충분해!” 정확하게 George Papandreou가 선거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써먹었던 그것이었다.

아직 전 그리스사회주의운동당과 시리자의 유사점은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시리자의 고위인사들은 이전 그리스사회주의운동당의 장관들, 유럽의회 의원들, 노동조합 간부들로 가득 차 있다. Sophia Sakorafa, Panayiotis Kouroublis, Dimitris Tsoukalas, Antonis Kotsakas, Alexis Mitropoulos, Theodora Tzakri는 단지 가장 인지도 있는 인물들일 뿐이다. 그리스 좌파의 가장 상징적인 인물인 Manolis Glezos도 역시 한때 전 그리스사회주의운동당 유럽의회 의원이었다. 이것은 Alexis Tsipras가 써먹을 수 있는 매우 귀중한 과거의 경험들을 그들로부터 제공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 과거 전 그리스사회주의운동당 출신 인사들이 입각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뜻한다.

다음 선거에서 그리스유권자들이 실패한 연립정부를 벌하리라는 것은 자명해졌다. 떠오르는 권력 시리자는 중도좌파를 대표하는 한때 강력했던 전 그리스사회주의운동당의 자리를 대신하게 될 것이다.  Tsipras는 시리자가 좌파 중에 좌파라고 주장해왔지만 그가 권력에 더 가까워 지면 질수록 그는 보다 타협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우리는 선거의 열기가 가라앉고 나면 시리자가 오랜 양당구도의 정치지형에서 전 그리스사회주의운동당의 자리를 대신할 것이라고 확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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