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유권자에게 말을 걸다
▲ 미국의 실업자 수 변화에 대한 인포그래픽(2010년 2월)
올해 오바마 캠페인을 조금이라도 눈여겨 본 독자라면 위 인포그래픽(Infographic)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위 자료는 2008년 12월부터 2010년 1월까지 1년여 동안 미국의 실업자 수 변화를 그래프로 나타낸 인포그래픽이다. 그래프의 붉은 색 막대와 푸른 색 막대의 극명한 대비로써 알 수 있듯이, 조지 부시 대통령 임기 막바지였던 2008년 들어 가파르게 늘어난 실업자 수는 오바마 취임 후 1년 동안 급격히 줄어드는 모습을 보인다.
▲ 그래프의 수치 변화가 V자를 그리고 있다
V자를 그리며 늘어났다 줄어드는 그래프는 그 모양 자체로 오바마의 승리(victory)를 상징한다. 단순한 숫자인 줄로만 알았던 데이터가 스스로 유권자들에게 드라마틱한 승리의 메시지를 속삭이고 있는 것이다. 잘 만든 한 장의 인포그래픽이 위력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위 인포그래픽은 이처럼 자신감 넘치는 오바마의 메시지뿐만 아니라, 오바마 팀의 인포그래픽 전략까지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이처럼 오바마 팀이 인포그래픽에 공을 들이는 것은 이미지 정보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 인스타그램(Instagram)이나 핀터레스트(Pinterest) 등 이미지 기반 SNS의 성장이 두드러지며, 데이터 시각화(data visualization)와 인포그래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인포그래픽을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에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다. 오바마 캠페인은 세계적으로 가장 진화한 현재진행형 캠페인 중 하나로 평가되는 바, 오바마 팀의 인포그래픽을 살펴보는 작업을 통해 '성공하는 인포그래픽의 조건'에 대한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2012 오바마 캠페인의 인포그래픽 전략
1. 팩트를 극적으로 표현하라
버락오바마닷컴(http://www.barackobama.com)의 인포그래픽을 살펴보면 몇 가지 시각적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화려한 일러스트 대신 통계수치와 텍스트가 중심이 되며, 대부분의 인포그래픽은 2012 오바마 캠페인 공식 마크와 같은 레드와 블루 톤으로 심플하게 구성되어 있다. 누구나 한눈에 오바마의 인포그래픽임을 알 수 있을 정도이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일자리 분야 인포그래픽에서 두드러진다. 각종 산업별 일자리 창출 수치는 오바마 정부 들어 급격히 상승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를 평범한 막대그래프로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인포그래픽 자체는 명백한 ‘팩트’로 보인다. 하지만 뜯어보면 그 팩트를 표현해 내는 방식이 상당히 치밀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일자리 분야 인포그래픽에서 두드러진다. 각종 산업별 일자리 창출 수치는 오바마 정부 들어 급격히 상승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를 평범한 막대그래프로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인포그래픽 자체는 명백한 ‘팩트’로 보인다. 하지만 뜯어보면 그 팩트를 표현해 내는 방식이 상당히 치밀함을 알 수 있다.
▲ 미국 제조업 일자리 창출 수치를 월별로 나타낸 인포그래픽
위 자료를 보면, 부시 정부 말기였던 2008년 6월부터 12월까지의 수치와 오바마 정부 초기였던 2009년 상반기의 수치가 별로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인포그래픽에서는 두 수치의 컬러를 붉은색/푸른색으로 대비해 표시했다. 컬러로 양쪽을 확실히 구분해 줌으로써 뭔가 나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극적인 효과와 더불어 지지자들에게 더욱 강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또한 연도별이나 분기별로 간결히 나타냈다면 더 보기 편했을 수치를 그래프 가로 길이를 늘려 가며 월별로 자세히 표시한 이유는, 본격적으로 일자리 창출이 시작된 2010년 초부터 올해까지 이어지는 상승세를 긴 호흡으로 충분히 나타내기 위해서일 것이다.
▲ 여성의 높은 건강보험 부담 경감의 메시지를 지도 위에 표현한 인포그래픽
위 인포그래픽을 보면, 오바마가 제시한 새로운 의료 서비스인 ‘The Affordable Care Act’가 없는 지금은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많은 건강보험료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오른쪽 지도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청사진임에도 불구하고, 인포그래픽에서는 자세한 가정이나 설명을 생략한 뒤 ‘starting in 2014’라는 텍스트만 넣었다. 이는 자료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오바마를 선택하면 실제 오른쪽 지도처럼 변화할 것으로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한다.
인포그래픽에서 실제 데이터를 인용 시에는 왜곡이 없어야 한다. 다만 전체적으로 데이터를 재배열하고 매만지는 권한은 편집자에게 있다. 이는 편집자의 ‘의도’가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며 인포그래픽이 저널리즘과 맞닿아 있다는 의미다. 오바마 팀은 차가운 사실을 한 장의 인포그래픽으로 가공하여 가장 뜨거운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2. 다양한 방식의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을 제공하라
지난 이슈 리포트에서 선거 캠페인에 인포그래픽이 효과적인 이유를 아래와 같이 언급한 바 있다. (관련글 :http://peak15.tistory.com/300)
<선거 캠페인에 인포그래픽이 효과적인 이유>
1. 어려운 정책을 쉽게 설명, 유권자에게 강한 이미지를 남긴다.
2. 소셜미디어에 공유하고, 블로그나 사이트에 옮겨 담기 좋다. 3. 콘텐츠 자체를 잘못 옮기거나 일부만 인용할 염려 없이 정확한 메시지 전달이 가능하다. 4. 광고, 이메일, 프리젠테이션, 동영상 등에 재사용할 수 있어 활용범위가 넓다.
( 출처 : http://www.newmediacampaign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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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 3번, 콘텐츠 변형이 불가하다는 대목은 인포그래픽의 장점이자 한계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인포그래픽은 그 자체로 완성된 한 장의 이미지 형태를 취하는데 이는 자칫 정적이고 갇혀 있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오바마 팀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인터랙티브 인포그래픽을 선보였다. 글 초반부에 언급했던 ‘The Road to Recovery' 인포그래픽 역시, 그래프의 각 부분에 마우스를 갖다 대면 상세 자료를 알 수 있도록 인터랙티브 형식으로 다시 제작되었다.
▲ 민간 부문의 일자리 창출 수치 변화를 나타낸 인터랙티브 인포그래픽
해당 인포그래픽은 임베드(Embed) 소스와 함께 제공되어 어디로든 같은 형식으로 공유할 수 있다. 이미지로만 이루어진 인포그래픽에서 한 단계 나아간 형식이다. 오바마를 선택하면 여성의 삶이 변한다는 것을 가상의 주인공을 내세워 그린 ‘줄리아의 일생(The Life of Julia)' 인포그래픽에서도 이용자들은 직접 장면을 넘겨 가며 줄리아의 삶을 나이별로 지켜볼 수 있다. 캠페인 초반에는 인포그래픽을 우편엽서 형식으로 실물 발송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 ‘줄리아의 일생’ 인포그래픽
▲ 오바마의 에너지 정책을 살펴볼 수 있는 인터랙티브 인포그래픽. 에너지 이름에 마우스를 갖다 대면 관련 정보가 오른쪽에 표시된다
한 장의 인포그래픽을 바라만 본 사람과 인터랙션을 경험한 사람 중 누가 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게 될까? 이제 인포그래픽에서도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 UX)이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이용자들이 데이터를 자유자재로 가지고 놀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마련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원 데이터의 변형이 없도록 치밀한 설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3. 인포그래픽을 경쟁자 압박의 무기로 활용하라
▲ 오바마 트루스 팀(Truth Team) 페이지 왼쪽 하단에 마련된 인포그래픽 코너
오바마 사이트의 트루스 팀 페이지에는 인포그래픽 코너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오바마의 지지자들이 소셜미디어, 블로그 등 여기저기로 퍼 나르기에 가장 적절한 형식의 자료가 인포그래픽임을 고려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경쟁자 롬니를 압박하는 인포그래픽은 오바마를 홍보하는 인포그래픽 못지않게 그 종류와 내용이 굉장히 다양해서 흥미롭다.
▲ 롬니가 미국의 높은 세금을 피하기 위해 외국에 재산을 숨겼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인포그래픽
오바마 팀은 롬니를 둘러싼 각종 의혹을 제기하고 비판하기 위한 인포그래픽을 제작하여 트루스 팀을 통해 배포했다. 물론 그 중에는 정확한 수치나 사실관계가 밝혀지지 않은 내용도 있다. 하지만 오바마 팀은 의혹을 의혹으로만 그치게 하지 않고 알려진 정보를 수집하여 종합적이고 이해가 쉬운 한 장의 이미지로 가공해 냈다. 그 자체만으로도 롬니 진영에 타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롬니가 진행한 버스 투어와 연결하여, 중산층의 시각에서 롬니를 비판한 인포그래픽
롬니는 지난 6월 6개 주에 걸쳐 버스 투어를 진행했다. 오바마 팀은 즉각 이에 대응하는 인포그래픽을 제작했다. ‘Under the Bus(‘throw under the bus’는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다’라는 의미로 쓰임)라는 주제 하에 각 주별로 디자인과 내용을 조금씩 다르게 하여, 롬니가 당선될 경우 중산층이 어떤 어려움을 겪을 것인지에 대해 인포그래픽을 만든 것이다. 아날로그 감성을 담은 우편엽서형 디자인에서 신선함이 묻어나고, 롬니의 버스 투어를 은근히 비꼬는 제목도 재미있다. 이렇게까지 공들여 만들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인데, 요즘 말로 ‘고퀄(퀄리티가 높음)’이다.
상대 진영을 향한 원색적인 비판은 선거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요소이지만 롬니를 향한 오바마 팀의 공격은 원색적이라기보다는 체계적이며 깔끔하다. 오바마 팀에서 경쟁자를 압박하기 위해 공들여 만든 다양한 인포그래픽은 이러한 ‘정돈된 공격’ 이미지에 한몫을 하고 있다.
4. 인포그래픽을 다른 자료와 섞어 시너지를 창출하라
그렇다면 캠페인에 있어 인포그래픽은 만능 해결사일까? 인포그래픽은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가진 정제된 자료이기에 원본 데이터 선정에도 고도의 전략이 필요하며, 실제 제작에도 상당한 노력이 들어간다. 또한 인포그래픽을 통해 팩트는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으나, 사람들의 감성을 섬세하게 자극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때로는 정리된 자료가 아닌 한 마디의 연설, 한 줄의 글이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 오바마 공식 사이트의 각 카테고리를 클릭하면 인포그래픽과 텍스트, 동영상 등이 적절히 섞여 콘텐츠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
▲ 월가 개혁을 주제로 한 동영상 인포그래픽
오바마 팀은 캠페인 전반에 인포그래픽을 적극 활용하되, 이에만 의존하지는 않는다. 공식 사이트에서는 인포그래픽과 더불어 텍스트와 스틸 사진, 영상 자료를 풍부하게 배치하고 있다. 월가 개혁 관련한 위 동영상 인포그래픽을 보면, 중간중간에 오바마의 연설 장면을 섞어 자료의 신뢰도를 높이고 단조로움을 피했음을 알 수 있다. 오바마 팀은 인포그래픽 · 텍스트 · 이미지 · 영상 자료 등의 믹스매치를 통해 시너지를 창출하며 유권자들의 머리와 가슴에 두루 호소하는 캠페인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오바마 팀의 인포그래픽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때로는 고집스럽게 철저한 팩트만을 챙기다가도 경쟁자를 대할 때에는 몇 가지 의혹만으로 집요하게 몰아친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 또한 아주 고전적인 데이터 그래프에서부터 인터랙션을 활용한 것까지 다양하다. 이처럼 다양하고 넓은 스펙트럼을 관통하는 오바마 인포그래픽의 핵심 키워드가 있다면 바로 ‘승리’ 아닐까. 하나의 전략이나 형식에 매몰되지 않고,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오바마 팀의 인포그래픽 전략은 비단 정치캠페인 뿐만 아니라 기업과 공공 영역에서도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할 만하다.
글 · 이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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