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16일 화요일

쿠바 국민소득 세계 94위인데, 월급은 25달러?


쿠바의 독립영웅 호세 마르티

현지인들이 타는 1950년대 만들어진 구형 택시에 자그마치 7명이 함께 끼어서 쿠바 호텔의 대명사인 나씨오날 호텔(Nacional Hotel) 근처까지 타고 갔다. 호텔 근처에서 쿠바인들이 자주 먹는 길거리 피자로 점심을 해결했다. 길거리 허름한 곳에서 파는데, 한 판의 크기가 손바닥보다 조금 커서 한 끼 분량 정도 되며 가격은 10페소였다. 물론 현지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세우페로 10페소는 우리 돈으로 500원 정도이다.

커피를 마시려 나씨오날 호텔로 들어갔다. 커피 한 잔에 3페소였다. 1세우세가 미화 1달러에 해당하니 우리 돈으로 3600원 정도이다. 바로 눈앞에 펼쳐진 카리브 해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고 있으니 기타를 맨 3명의 악사들이 오며 노래를 불러도 좋겠냐고 한다. 그들은 쿠바 민요를 주로 부른다. <관타나메라(Guantanamera)>의 본 노래를 하기 전 그 도입부에 부른 의성음은 너무 자연스러웠고 듣기 좋았다.

▲  나씨오날 호텔 악단
ⓒ 이규봉

관타나메라는 관타나모(Guantanamo) 출신의 시골 소녀를 뜻한다. 쿠바의 독립영웅 호세 마르티(Jose Mart, 1853~1895)가 1889년 발표한 시 <소박한 시>가 1950년대에 <관타나메라>의 가사로 알려졌다. 호세 마르티는 16세에 독립전쟁인 10년 전쟁에 참가한 쿠바에서 제일로 알아주는 애국자이다. 그는 1892년 뉴욕에서 쿠바혁명당을 조직했고 1894년 쿠바에 상륙하는 독립전쟁 준비를 시작했다. 1895년 쿠바 동남부를 기점으로 제2차 독립전쟁을 시작했으나 그해 4월 정부군과 전투에서 사망했다.

<관타나메라>의 작곡가는 호세이토 페르난데스이다. 가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관타나메라 과히라 관타나메라/ 관타나모의 농사짓는 아낙네여
   나는 종려나무 고장에서 자라난/ 순박하고 성실한 사람이랍니다.
   내가 죽기 전에 내 영혼의 시를 여기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바치고 싶습니다.
   내 시 구절들은 연두빛이지만/ 늘 정열에 활활 타고 있는 진홍색이랍니다.
   나의 시는 상처를 입고 산에서 은신처를 찾는/ 새끼 사슴과 같습니다.

여기서 과히라(guajia)는 농사짓는 여인을 말한다. 관타나모는 쿠바 남동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쿠바 속의 미국이나 마찬가지이다. 쿠바가 스페인에서 독립하려고 하던 1898년 스페인과의 전쟁 중에 미국이 개입해 이 땅을 강제로 차지했고 공식적으로는 임대하고 있으나 강탈이나 마찬가지이다. 관타나모는 미국의 가장 오래된 해외 기지로 국제법은 물론 미국법도 지키지 않는 초법적인 지역이다.

미국은 200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나 알카에다 혐의로 체포한 사람들을 이곳에 억류했다. 미국 정부는 그들을 전쟁포로로서 정당한 대우를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가족은 물론 변호사 접촉도 못한 상태에서 장기 구금을 하며 고문과 같은 가혹행위를 가하는 등 비인도적인 대우를 하여 국제앰네스티를 비롯한 많은 인권단체들과 유럽 각국의 비판을 초래했다.

▲  혁명광장의 체 게바라와 까밀로 씨엔푸에고스
ⓒ 이규봉

혁명광장(Plaza de la revolucion)으로 갔다. 쿠바혁명 4인방 중 이미 고인이 된 체 게바라(Che Guevara)와 까밀로 씨엔푸에고스(Camilo Cienfuegos)의 윤곽이 광장을 마주보는 건물 벽에 선명하게 붙어있다. 까밀로 얼굴 아래 적힌 문구는 피델이 혁명에 성공하고 아바나로 입성했을 때 "우리 잘하고 있나?" 하는 피델의 질문에 까밀로가 한 대답이다. "그래. 너 잘 하고 있어. 피델(si vamos bien, fidel)" 밤에는 윤곽을 따라 불이 켜진다. 하얀색의 호세 마르티의 동상이 우뚝 솟아있는 기념관 1층에서 마침 그림 전시회 개막을 하고 있었다. 쿠바 그림이라고 알려주듯 색상이 매우 화려했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 홀로 헤밍웨이가 즐긴 칵테일로 유명하다는 모히또(Mojito) 한 잔을 마시며 그림을 감상했다.

▲  전시관에 설치된 그림. 작가 이름을 모르겠다
ⓒ 이규봉

다시 까사에 도착하니 우리 방에 이미 새 사람이 투숙했다. 정 선생을 만나 한국 학생이 구입한 휴대전화를 빌렸다. 우리가 직접 구입하려 했지만 외국인이 직접 구입하려면 가격이 두 배나 된다고 한다.

마누라들은 남편이 돈 벌어 오면 좋아한다

연말임에도 예약을 서두르지 못해 우리는 산티아고 데 쿠바(Santiago de Cuba)까지 가는 버스 비아줄(Viazul)을 예약하지 못했다. 기차도 있었으나 그 누구도 기차를 추천하는 사람은 없었다. 쿠바의 정 선생 도움으로 승합차를 대절할 수 있었다. 1960년대 폭스바겐 밴에 조립한 자전거 4대를 싣고 전 선생과 나 그리고 고 원장 부부 네 명은 밤 8시에 산티아고 데 쿠바를 향해 출발했다.

택시 기사 맥시무스는 430세우세를 벌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아내와 나누려 했는지 같이 왔다. 그는 비교적 영어를 잘 구사하였고 유머감각도 있었다.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돌아올 때를 생각해서 도로 환경이 어떤지 살피려 했으나 어둠 때문에 잘 보질 못했다. 낮에 일하고 또 밤에 일을 하니 맥시무스는 얼마나 피곤했겠는가? 그럼에도 그는 한 잠 안자고 우리를 위해 쿠바의 동쪽 끝에 있는 쿠바 혁명의 해방구 산티아고 데 쿠바까지 달렸다. 공식적으로 861km의 거리이다.

그는 가는 도중 한 서너 번 정도 쉬었나 보다. 네 시간에 한 번 정도. 총 14시간 걸려 다음 날 아침 10시 좀 넘어  산티아고 데 쿠바에 도착하였다. 우리는 인근에 있는 까사를 구해 짐을 풀었다. 기름 값으로 한 200세우세 정도 지불한 것으로 생각해 볼 때 맥시무스는 한 밤 운전으로 쿠바 근로자 10개월 분 임금은 벌었을 것이다. 우리가 돈을 지불할 때 그 부인의 표정이 밝아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저 마누라들은 남편이 돈 벌어 오면 이렇게 좋아한다니까!

여기서 기름 값 에피소드, 쿠바는 뭐든지 다 빼돌린다고 한다. 디젤의 경우 주유소에서 미터기에 보이는 대로 값을 지불하기도 하지만 그 외 암시장에서 구하기도 한다. 쿠바 정부가 정부트럭에 대한 기름값을 운전사에게 지불하면, 트럭 운전사는 사용 후 남는 기름을 모두 주유소에다 판다. 주유소는 웃돈을 얹어 일반 운전사들에게 다시 기름을 판다. 현재 디젤 가격이 리터당 1.2세우세이나 암시장 기름은 아바나 시내는 0.6세우세 시골은 그 보다 조금 더 싸다고 한다. 

▲  맥시무스 부부와 함께. 맨 왼쪽 필자, 전 선생, 맨 오른쪽 고 원장 부부
ⓒ 이규봉

쿠바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10년 현재 5520달러로 세계 94위이다. 그렇다면 한 달에 약 460달러이다. 그러나 이들이 실제 지급받는 월급은 25달러 정도이다. 쿠바로 시집 간 정 선생의 시댁을 예로 들어보자. 공장 노동자이신 시아버님이 25달러, 학교 선생님이신 시어머님은 30달러, 야구선수인 시동생은 20달러 그리고 함께 사는 시동생의 여자 친구는 80달러이다(손톱 아트를 하는 이 여자 친구는 어떤 땐 월수입이 400세우세 정도 되기도 한단다). 이러고 보니 피부에 와 닿는 평균 노동자의 월급은 25달러 정도 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

우선 집세는 자기가 받는 월급의 10% 이하를 내면 되고 의료비, 탁아비, 교육비 모두 무료이다. 월급 외의 소득도 있을 수 있다. 부업으로 가축 키우는 것, 정부로부터 저렴하게 배급받는 생필품. 이런 것을 모두 포함하면 한 달에 약 460달러 수준은 될 것 같다. 그러나 쿠바에서도 자본주의가 점차 도입되면서 소득이 특히 높은 계층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는 인민들의 소득 불균형을 초래하여 불평등한 사회가 될 것임을 예고한다.

예를 들어 좋은 집을 할당받아 까사를 운영하거나 달러를 직접 만질 수 있는 관광업 등에 종사하게 되면 월 소득은 훨씬 높아진다. 게다가 좋은 친척을 두어 외국에서 보내온 돈까지 합하면 그들의 소득은 평균 노동자의 임금을 훨씬 상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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