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4부- 세상을
바꾼 위대한 철학들
아담스미스 국부론
아담스미스가 ‘부자들의 편’이라고
하는 건 말도 안됩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지지했어요.
그가 시장개방을 신봉하는 이유는 『빈곤층』 때문이에요.
(에이먼 버틀러(Eamon
Butler) 영국 아담스미스 연구소 소장)
마르크스가 최고의 사상가인 것은 그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모두 동의 할 겁니다.
(벤 파인(Ben Fine) 영국
런던대 경제학 교수, 저서 : 마르크스 자본론,소비의 세계:물질과 문명)
케인즈도 시장을 믿었어요.
케인즈는 ‘자본주의는 인간의 열망을 위한 최고의 시스템’이라고 믿었어요.
(로버스 스키델스키(Robert
Skidelsky) 영국 상원의원, 워릭대 명예교수/ 케인즈관련
세계 최고의 건위자 /케인즈 평전)
사실 하이에크는 우리가 자유주의 시장 질서에 살고 있다는 것을 부인 할 거에요.
(스티브 데이비드(Steve
David) 영국 경제연구소 교육담당이사)
자 그렇다면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구할 새로운 아이디어를 이야기 할 수 있을 까요?
케인즈는 두가지 문제를 해결하면 자본주의는 생존할 수 있을 거라고 했어요.
(로버스 스키델스키(Robert
Skidelsky) 영국 상원의원, 워릭대 명예교수)
어떤 저항이 필요할 때 사람들은 영감을 필요로 합니다.
그럴 때 마르크스를 찾죠.
(조나단 울프(Jonathan
Wolff)영국 런던대 철학교수 /마르크스 전문가 저서
: 정치철학 입문
로버트 노직:소유와 정의,그리고
최소국가)
경제위가가 닥칠 때 급진적 사상가가 다시 주목받는다는 것이 놀랄 일은 아니죠.
(벤 파인(Ben Fine) 영국
런던대 경제학 교수)
아담 스미스는 경전 같은 존재에요.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어요.
모두에게 해답을 주죠.
(에이먼 버틀러(Eamon
Butler) 영국 아담스미스 연구소 소장)
경제학의 창시자, 자본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담 스미스
아담스미스 (Adam
Smith(1723~1790)
글래스고대학 철학교수,
경제학의 아버지 『도덕 감정론』『국부론』저자
비교적 수줍은 사람이었어요. 독신으로 평생 어머니와 함께 살았죠.
글래스고 대학에서 가르칠 때 학생들에게 아주 인가가 많았어요.
그시기 스미스는 사람들의 본성과 행동을 꾸준히 연구 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들을 모아서 『도덕 감정론,1759
Theory of Moral Sentiments』이라는 책을 내었다.
이기적인 존재인
인간이 어떻게 도덕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가?
그런데 어떻게 인간이 이기심을 누르고 도덕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 까?이기적인
기본적으로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서 도덕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는 거죠.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것은 마음 속에 우리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는 공명정대한 관찰자
(the real and impartial spectator)가 있기 때문이죠. 그
관찰자가 이기심을 잘 조절해서 도덕적으로 행복하게 해준다는 거죠.
찰스 타운젠드 (영국정치가, 공작)의 양아들의 대륙여행의 가정교수 수락
3년동안의 여행동안 벤자민 프랭클린,
튀르고, 프랑수와 케네등을 만남
공작 아들과 유럽을 여행하면서 견문록을 쓰는데 그게 국부론으 시작인 셈이죠.
(에이먼 버틀러(Eamon
Butler) 영국 아담스미스 연구소 소장)
18세기는 변화의 시대였다.
봉건주의가 무너지고 현대자본주의가 막 시작되는 시대였다.
또한 영국에서는 산업 혁명을 시작으로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시대였다.
그러자 물건을 팔수 있는 더 넢은 시장이 필요했고 자유무역이 활발해짐
그시대는 국가의 부를 금과은의 축적으로 보는 중상주의사상이 지배
아담 스미스를 가장 화나게 했던 건 중상주의였어요. 당시 한 나라의
부란 국가의 금고에 얼마나 많은 금과 은이 쌓여 있는지가 결정했어요. 그게 그 나라의 부의 기준이었어요. (에이먼 버틀러(Eamon Butler) 영국 아담스미스 연구소
소장)
프랑스의 여행에서 만난 케네로부터 아주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얻는다.
프랑수아 케네(Francois Quesnay, 1694~1774, 프랑스
경제학자, 중농주의자, 루이 15세의 주치의이자 케네경제표를 만들어낸 학자)
*케네 혈액론*
그는 의사였던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를 하나의 육체로 보고 사회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에 대해 연구하였다. 그는 깨달았다. 사람이 식량을 먹어야 살수 있듯이 사회도 마찬가지라는
가죠. 인간이 노동을 해서 식량과 원료를 얻고,상품을 유통해야
사회가 성장한다는 것
그리고 사회는 3계급으로 구성되어 있고, 화폐는 3계급을 돌면서 생산물을 공급하다는 것이죠.
마치 혈액처럼. 또는 그는 토지만이 부의 원천이라는 중농주의를 주장했다.
이러한 케네의 사상은 아담스미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국부 즉 국가의 부는 중상주의에서 주장하는 금과 은의 축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3년간의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옴
글래스고가 경제적으로 아주 풍요해지기 시작 할 때였어요.
담배 수출입의 중심지 였어요. 항구가 있는 글래스고는 경기가 좋았죠
경제적인 부흥이 시작되는 시기였어요.
(크리스토퍼 베리 ,글래스고 대학 정치학 교수)
크고 작은 공장에서 부가 매일 생산되는 것을 보면서 자유시장의
위력을 느낀 아담스미스.
시장경제는 사고,파는 사람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를 낳으며 사화의 자원을 적절하게 배분할 수 있다.
어떤 학자와 철학에 관해 얘기하고 있다가 빵과 버터를
찻주전자에 넣은 일도 있어요.
국부론 원고에 대해 고민하며 걷다가 교회 종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려보니 16km나 지나쳐 걷기도 했었죠.
(에이먼 버틀러(Eamon
Butler) 영국 아담스미스 연구소 소장)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의
경제를 이끄는 것
데이비스 흄 (영국의 철학자, 인성론의
저자)을 자주 만났다.
흄의 가장 큰 공헌은 그의 실증적인 철학이었어요
머릿속의 구상이 아니라 실제 사물을 보고 현상을 이해해야 한다고 했지요.
흄의 실증철학이 아담스미스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에이먼 버틀러(Eamon
Butler) 영국 아담스미스 연구소 소장)
조지프 블랙 (1728~1797, 영국의 화학자, 이산화탄소 발견 잠열에 대한 연구)
제임스 허턴(1726~1797, 영국의 지질학자, 동일 과정설)
국부론(1776,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h of
Nations) 탄생
아담스미스가 국부론을 통해서 밝혀내고자 했던 것은 국부를 증진 시킬 수 있는 방법
그는 어디서는 노동이 이루어 지면 부가 생산 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음.
그래서 국부를 모든 국민이 연간 소비하는 생활필수품과
편의품의 양이라고 새롭게 정의함.
그렇다면 무엇이 국부를 만들어 낼까요. 아담스미스는 부는 노동이 만든다라고 하였다.
모든 가치는 노동에 의해서 생긴다는 것이죠.
또한 모든 가치는 노동에 의해 생기므로 상품의 가치는
생산하는데 들어간 노동량이 좌우한다고 정의를 내림
그렇다면 그 유명한 보이지 않는 손은 무슨
뜻일까요?
스미스는 우리가 빵을 먹을 수 있는 것은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돈을 벌고 싶은 이기심 때문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결국 가격을 결정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어서 시장경제가 활발해 진다고 하였다. 즉 자유로운 시장만이
개인과 국가를 부자로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함.
보이지 않는 손은 국부론에서 딱 한번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스미스는 이 한문장으로 그가 꿈꾸는 완전한 자유 시장 체제 (System of Perfect Liberty)라는
이상적인 세상을 설명했습니다.
국부론 1장 분업
국부론은 다위의 <종의 기원>이나
뉴턴의 이론만큼 정말 중요한 책이죠.
근대경제의 기본원리를 설명했어요.
분업과 국민총생산, 무역과 개방의 중요성, 보호무역의 문제점들. 지난 수십 년간 경제학 교과서가 됐지요.
(에이먼
버틀러(Eamon Butler) 영국 아담스미스 연구소 소장)
그러므로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의 최초로 자유시장체제 형성한 기본적인 틀이다.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기본원리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는 명저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담 스미스를 잘못 이해하고 있어요. 자유무역을 신봉하고, 거대정부를 반대하고, 자유시장 경제를 지지 했지요. 그러니 아담스미스는 ‘돈 많은 부자들의 편’이라고 오해 했죠.
(에이먼 버틀러(Eamon
Butler) 영국 아담스미스 연구소 소장)
자유로운 개인의 이익추구 스미스에 대한 가장 오해를 많이 낳는 부분이다.
하지만 아담 스미스는 개인의 이기심은 사회의 도덕적 한계 내에서만 허용된다고 함.
즉 아담 스미스는 인간의 끊임없는 이기심을 결코 허용한 적이 없다.
이는 그가 그전에 쓴 도덕감정론에 쓰여진 내용과 정확히 일치한다.
인간은 도덕적인 존재이고 경제도 그 도덕체계의 한 부분 이다.
국부론은 인간 행동 규범 안에서 생긴 것입니다.
둘중에 한권만 읽어서는 알 수 없어요.
도덕감정론의 이론이 국부론에 다시 등장합니다. 빈민에 대해 연민을
느끼죠
개빈케네디 (에든버러대 경영학 교수)
아담 스미스는 대중을 돕는 최선의 길은 자유시장 경제라고 주장했어요
(에이먼
버틀러(Eamon Butler) 영국 아담스미스 연구소 소장)
인간은 이기적입니다. 하지만 아담 스미스는 우리의 마음속에는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있다고 그래서 이기적인 행동도 공공의 이익으로 전환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우리는 아담 스미스를 자본주의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는 자본주의란 말을 단 한번도 쓰지 않았다.
그 대신 인간의 도덕적 범위 내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시장체제라는 인상을 떠올렸다.
만약 그가 지금 살아 있다면 지금의 불평등과 위기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보였을 까요?
아주 놀랄 거에요.
미국과 영국 등에 대해서는 좀 실망을 할 것 같아요. 부유한 사람들에
비해 가난한 사람들이 훨씬 많거든요. 아담 스미스의 유명한 문구가 있어요.
‘국민이 대부분 가난하고 비참하게 사는데 그 나라가 부유하다고 말할 수 없다.’
(에이먼 버틀러(Eamon
Butler) 영국 아담스미스 연구소 소장)
칼 마르크스 (Karl Marx 1818~1883, 독일의 경제학자, 철학자)
최초로
왜 가난한 사람들은 항상 가난 할까?
자본주의는 정말 이상적인 체제일까라는 새로운 의문을 던진 철학자
그리고 산업혁명을 통해 기계 부품처럼 되버린 노동자들을 보고
자본주의가 어떻게 그들의 삶을 파괴하는지 밝혀내고 싶어함.
젊은 시절의 마르크스는 헤결의 변증법에 푹 빠져 있었다.
세상에 모든 것 인간/자연/사회도 그 어떤 것도
고정불변이 아니라 정반합의 법칙으로 끊임 없이 변화 한다는 철학
하지만 마르크스는 세상을 변화 발전시키는 주체가 세상의 밖에 존재하는 절대정신이라는 주장에는 동의 하지 않음
오히려
포이에르바하가 주장한 물질이 세계를 구성하며 지배하며 이끌어간다는 유물론을 받아들임
헤겔의 변증법에 포이에르바하의 유물론을 더해서 유물론적 변증법을 만듬
과연 그는 자신이 던진 의문을 어떻게 풀어나갔을까?
1843년 급진적 반정부신문의 라인신문 편집장 시절
마르크스는 대학교수가 되려고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무신론자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죠. 그래서 생계를 꾸리려고 언론계로
눈을 돌렸죠
그때가 마르크스가 정치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어요.
기자로서 진짜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알고 충격을 받았죠.
조나단 울프 (영국 런던대 철학과 교수)
라인신문 폐간.
è 파리로 감.
공산주의와 엥겔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Friedrich Engels, 1820~1895 독일의
경제학자, 저널 리스트)
엥겔스는 한마디로 사회주의의 후원자, 공산주의의 후원자였다.
그는 마르크스가 계속 글을 쓸 수 있기를 원했고 마르크스가 자본론 1권을
마칠 때까지 계속 돈을 보냈죠.
맨체스터 방직공장에서는 심지어 이만한 어린애들도 매일 12시간 이상을
공장에서 힘들게 일해
엥겔스보다 마르크스는 최고의 사상가입니다.
하지만 둘중 한명과 저녁 식사를 해야한다면 마르크스보다는 엥겔스가 더 좋을 것 같아요.
마르크스는 자기중심적이고,자기 생각에 갇혀 비판하는 것 외에는 다른
사람의 얘기에 흥미를 두지 않았어요. 반면 엥겔스는 문화적이고 관용적이며 즐거운 사람이었어요.
공산주의자와의 만남으로 혁명을 준비한다.
1845년 벨기에 브뤼셀
프로이센 국적 포기
1848년 공산당 선언
만국이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함께 ‘공산당 선언’을 발표했어요.
노동자들의 현실을 보고 그 개선방향을 찾고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변화 가능성을 연구했어요.
위기도 있었고 탄압을 겪기도 했습니다.
1848년 유럽은 브뤠셀,프랑스
혁명에 동참
붉은 박사와는 악명과 새로운 사상을 밝혔다는 사상가라는 것을 동시에 얻음.
1848년 독일 퀠른 신라인 신문 발행 à 폐간
1849년 영국 망명
마르크스의 문제 중 한 가지는 돈이었습니다. 정기적인 수입이 없었으니까요.
얼마간의 원고료를 받기도 했지만 항상 돈 문제에 시달렸습니다.
위산과 엥겘스의 도움으로 연립주택을 구함. 생활의 안정으로 자본론
집필 시작
낮엔 대영도서관에서 글을 쓰고 주말엔 소품을 가거나 독일 이민자들과 교류했어요.
사교적인 사람이었죠
자본론을 쓴 이유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철저히 분석하고 지적하기 위함이었다.
가장 많이 읽은 책이 국부론이고 자본론에서 가장 많이 인용한 것도 국부론이었다.
1867년 자본론 1권
출간 『자본의 생산 과정』
자본론에서 제일 먼저 다룬 것 상품 : 인간이 생산 하고 사용하는
모든 물건
사용가치 + 교환 가치 = 상품
이러한 상품은 노동을 통해 생산해내는 것
상품의 가치 = 상품 생산에 들어간 평균 노동시간 으로 결정된다고
정의
즉 6시간 동안 6켤레를
만든다면 신발의 가치는 1 노동시간
화폐는 상품의 가치를 표시하는 수단으로 봄.
화폐 물신성 경고
아담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드로의 노동의 가치 이론을 이어 받아서 노동이 최고의 가치라고 정의함. 하지만 아담스미스의 분업은 사람을 오히려 노동자를 기계의 부품처럼 만들어버린다고 비판함.
그러나 그가 자본론을 쓴 주요 목적은
왜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는 항상 가난
할까 반대로 놀고 먹는 자본가는 왜 부자가 될까라는 의문을 풀기 위해서였음
이윤은 어디서 오는가?
자본론 1권은 어떻게 자본이 이윤을 남기는가에 대한 것이에요.
마르크스는 노동시간이나 노동일수를 늘이는 ‘절대적 잉여가치’의 원리에 대해 설명합니다.
(벤 파인(Ben Fine) 영국
런던대 경제학 교수, 저서 : 마르크스 자본론,소비의 세계:물질과 문명)
여기는 빵공장입니다. 빵한개를 만드는데 얼마의 시간의 드는지 계산해보겠습니다.
밀가루 1kg이 1노동시간이라고
하겠다.
기계는 빵 만개를 만들면 수명이 다됩니다.
1개를 만드는 데 1 노동시간이 들죠.
만약 1노동시간을 화폐로 환산해서
1천원이라고 하면 빵 한개는 3천원이 되는 것입니다.
노동자가 평균 1일 8시간을
일하면 24노동시간
그동안 만든 빵 8개의
가치는 2만 4천원이다.
8개의 가치는 2만 4천원이다.
|
기계와 원료는 그 가치가 그대로 인정되었는데 왜 노동자는 8시간을 일했는데 자본가는 일당으로를 3000원만 인정해줍니다. 그러면 나머지 5노동시간 즉 5000원은
어디로 갔을까요?
바로 자본가의 주머니에 들어갑니다. 마르크스는 그 남은가치를 잉여가치라고함.
노동자는 왜 노동자는 싫다고 못할 까요? 그건 바로 자본가가 그만 둬라고 하면 그만 둬야
하기때문이죠. 그걸 아는 자본가는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노동자에게 더 오래 일하게 합니다.
물론 일당은 절대 더주지 않죠
노동자를 착취함으로써 자본가는 더 많은 부를 얻게 됩니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노동시간의 연장으로 생기는 잉여가치를 절대적 잉여가치라고 함.
하지만 자본가는 만족하지 못하고 더많은 이윤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것.
이는
결국 필요노동시간은 줄어들고 잉여노동시간이 늘어나는 것
노동자의
임금을 날로 싸지고 자본가는 그만큼 이윤을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이것을 특별 잉여가치 또는 상대적 잉여가치라고
표현함.
칼 마르크스는 최초로 ‘착취하는
자본주으의 본질’을 이해했어요. 착취현상이 일어날 거로 생각했어요. 로버트 스키델리 (영국상원의원, 워릭대
명예교수)
기계가 노동을 대신하면서 실업이 증가
실업자의 증가로 임금 하락
이렇게 되면 상품은 쏟아져 나오지만 팔리지 않으니
시장붕괴가 된다. 기업도
자본가도 망하게 될거다. 주장함. 결국 공황이 시작되고 참다못한
노동자가 혁명을 시작할 것이라고 주장함. 자본주의 붕괴후 사회주의 사회의 등장을 예견함.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역사의 한과정으로 바왔습니다.
봉건제 이후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이행할 것이라고 주장했죠.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자본주의 가 사라지고 공산주의가
도래 할것이라는 구조를 설명해냈습니다.
조나단 울프
1883년
나의 벗 엥겔스. 우리가 파리에서 꿈꾸었던 세계는 결국 오지 못할
것 같네
삶의 마지막 까지 통찰을 멈추지 않고 있네만 세상이 더는 날 원하지 않더군
독불장군 같은 나를 변함없이 지지 해줘서 고맙네
이제 나에게 남은 열정으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싶네
1885년 자본론 2권
출간 (엥겔스가 정리)
1894년 자본론 3권
출간
사회주의 성서로 불리며 성서보다 더 많이 팔림.
마르크스가 철학으로 세상을 변하려고 하였다.
자본주의 경기가 좋지 않으면 신문사설에 종종 ‘결국은 마르크스가 옳았다’라는 말이 실립니다.
-
조나단 울프 (영국런던대 철학과 교수)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주장합니다. 생산이 쉬워진 신용화폐로
미래에 투자합니다.
이게 자본주의 에요. 동시에 빚을 양산하고 디폴트를 일으키고 위기를
가져옵니다.
-
제프리 잉햄 (영국캠프리지대 교수)
-
아담스미스가 국부론을 통해서 꿈꾸고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통해서 펼폈던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은 그들의 사상적인
시작점이 인간에 대한 사랑 이었다.
그것을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모든 사람이 잘살 수 있을까를 고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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