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을 기억하면 ‘이석기 사건’이 보인다
[기자수첩] 이석기-송두율 사건의 공통점과 차이점
김재중 기자 | jjkim522@gmail.com 입력 2013.09.11 10:29:46 수정 2013.09.11 10:29:46
10년 만에 부활한 공안정국, 왜 이리 똑같나
국정원 프락치공작과 여론재판, 동일한 패턴
송두율에 린치 가했던 그들, 이번에도 가세…
‘진실이 밝혀지기를 기다리지 않는 사회, 언론이 사법부에 앞서 여론재판을 선동하는 사회’
기자가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사건을 접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다. 단언컨대 지난 10년 동안 세상은 단 한걸음도 진보하지 못했다. 국가권력이 국민 모두를 사상 검증대 위에 올려 세우고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는 폭력적 상황을 연출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솔직히 기자는 이석기 의원이 ‘RO’라는 지하조직을 결성했는지, 이 조직이 북한과 연계해 남한 내 폭력혁명을 음모하고 구체적 실행계획을 세웠는지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한국사회가 사상적 편향을 가진 수백 명의 집단에 의해 전도될 만큼 허술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속된 말로 전혀 ‘쫄리지’ 않는다.
다만 저널리스트로서 이석기 사건에 대해 글을 쓰면서 ‘나는 절대 이석기 편이 아니다’라는 점을 먼저 내세워야하는 현재의 이 상황에 짜증이 난다. 엄밀하게 말하면 ‘짜증’이라기보다는 ‘마녀사냥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리고 정확히 10년 전 겪었던 마녀사냥을 떠올린다.
북한 권력서열 23위 김철수
참여정부 시절인 2003년 9월. 스스로를 ‘경계인’이라 부르며 남과 북 어디에도 서지 않았던 독일 뮌스터대학 송두율 교수가 대통령 직속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초청으로 무려 37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북에 대한 ‘내재적 접근법’이라는 학문적 신조 때문에 ‘친북’이라는 주홍글씨를 늘 가슴에 붙이고 살던 그였다. 그는 당시 처벌을 감수하고서라도 한국사회의 성원이 되기를 강력히 소망했다. 그러나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큰 고통을 감내해야 할지 그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잠시 몇 가지 조사만하면 된다며 송 교수를 안심시켰던 국가정보원(국정원)이 귀국과 동시에 송 교수를 구금하고 변호인 입회조차 허락하지 않는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뜻밖의 정보가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송 교수가 ‘김철수’라는 가명으로 북한 권력서열 23위인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활동했다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들끓기 시작했다. 변호인 입회금지, 피의사실 공표 등 국정원의 불법적 수사는 아예 사회적 논의대상이 되지도 못했다. 처음엔 노동당 가입, 그 다음엔 김일성 주석 사망 시 장의위원 참석, 다음엔 정치국 후보위원 활동 등 국정원에서 흘리고 언론이 받아쓰는 장면이 1개월 넘게 이어졌다.
여기까지가 당시 사건을 밀착 취재했던 기자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사건의 개요다. 그러나 좀 더 정확한 글쓰기를 위해 10년 전 취재수첩을 꺼내들면서 송두율 사건과 이석기 사건의 공통점을 하나둘 발견하기 시작했다.
국정원 프락치, 여론공작의 전모
두 사건 모두 국정원의 첩보(프락치) 공작에서 출발했다. 송두율 사건에서 국정원이 지닌 카드는 1999년 미국으로 망명한 김경필 베를린 주재 북한 이익대표부 서기관 김경필로부터 빼낸 정보가 거의 유일했다. 당시 통일운동을 하던 독일동포들은 국정원 프락치인 최모씨가 김경필을 협박해 미국으로 망명시키고 정보를 빼내 국정원에 넘겼다고 주장했다. 동포운동가 박모 씨는 최 씨에 대해 “한국에서 보낸 프락치라는 정황이 포착돼 쫓기듯 떠났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이석기 사건의 결정적 제보자인 A씨 역시 이 의원과 함께 활동했던 ‘RO’ 내부인물이었고 그가 제시한 정보와 녹취자료 등이 이번 사건의 유일한 핵심 증거로 활용되고 있다. 프락치를 심어 정보를 캐고 그 정보를 무기로 삼는 방식은 옛 중앙정보부로부터 내려오는 전형적 공작기법인 셈이다.
피의사실을 언론에 흘려 여론재판을 유도하는 메커니즘 역시 동일하다. 입맛에 맞는 언론을 골라 정보를 슬쩍 흘리기만 하면 된다. 사실검증도 안된 국정원발 정보가 머릿기사로 대서특필되면 정치권은 자동적으로 이를 쟁점화한다. 그 화살은 고스란히 정적에게 돌아간다.
송두율 사건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은 “정부 내에 북한과 연계된 핵심세력이 있다”는 음모론을 제기했고 일부는 노무현 대통령을 배후로 지목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과거 민혁당 사건으로 구속됐던 이석기 의원을 광복절 특사로 가석방 시켜 줬다는 이유로 또다시 보수 세력의 화살을 맞고 있다. 이 또한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다.
송두율의 무죄를 기억하는가?
다만 이석기·송두율 사건이 결말까지 동일한 패턴을 보이게 될지 단언할 수 없다. 2004년 3월 1심법원은 송 교수에 대해 징역 7년을 선고했다. 4개월 뒤 고등법원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으로 감형 결정을 내렸다. 핵심쟁점인 정치국 후보위원 건은 결국 무죄로 결론 났다. 곧바로 석방된 송 교수는 다시 독일로 떠나 ‘영원한 경계인’이 됐다. 2008년 4월 대법원은 송 교수의 독일국적 취득 후 북한방문도 무죄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이 같은 재판과정에 대해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송 교수를 포함한 북한 내 권력서열 도표까지 그려 대대적인 공안몰이에 나섰던 국정원, 검찰, 학자, 언론인, 정치인 그 누구도 자신들의 경망한 행동에 대해 일언반구 책임을 지지 않았다. 그리고 똑같은 사람들이 지금 ‘이석기 의원’에게 동일한 린치를 가하고 있다.
10년 전, 송두율 교수 사건을 취재했던 기자는 당시 장문의 기사 말미에 “숲에서 나와서야 숲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고 썼다. 때로는 논란의 한 가운데서 빠져 나와야 논란을 객관적으로 더 잘 볼 수 있는 법이다. 대한민국에서 겨우 이 정도 ‘상식’을 갖기가 이리도 힘들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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