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국회의원 10석을 갖고 나타난 민주노동당은 그야말로 신선함 그 자체였다. 구태의연한 양당체제를 깨고 혜성처럼 등장하였으니 말이다. 국민들의 새로운 정치세력에 대한 염원은 진보의 단어에 가득 담겨 있었다. 누구보다 이 흐름을 잘 읽는 열린 우리당을 비롯한 정치권은 너도나도 앞 다퉈 진보의제를 선점하기 위해 노력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이때 우리는 진짜 진보, 가짜 진보로 편 가르며 원조진보임을 주장하기도 했다. 좋은 시절이었다.
민주노동당이 국민 참여당과 합치면서 만든 당이 통합‘진보’당이다. 2008년 민주노동당에서 분당하여 나갔던 현 노동당의 당명은 ‘진보’신당이었다. 작년 통합진보당에서 나온 이들의 이름도 ‘진보’정의당이었다. 지금은 모두 진보를 버렸다. 정의당, 노동당이 되었고 오로지 통합진보당만 진보당명을 고수하고 있는 실정이다. 왠지 진보당명을 지키는 이들은 낡은 이미지가 되어 버렸다. 진보를 던진 이들이 스스로 새로운 진보라고 주장하니까. 민주당은 당 로고와 색깔을 파란색으로 바꾸며 어떻게 하든 진보정당으로 분류될까 쉬쉬하며 중도정당을 내세우지 못해 안달하고 있다. 새로운 정치를 표방하는 안철수 측도 진보정당의 기치를 들려고 하지 않는다. 진보의 수난시대임이 틀림없다.
진보세력은 늘 불온한(?) 변혁을 꿈꾼다
최근 ‘헌법 내 진보’라는 괴기스러운 말도 등장했다. 원래 합법적 대중정당은 그 나라의 헌법적 질서 안에서 존재한다. 이를 벗어나면 현행 정당법상 존재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보세력은 굳이 그런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진보세력은 헌법을 도그마로 보지 않고 끊임없이 바꿔가야 할 체제와 질서의 한 부분으로 헌법을 읽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 세력이란 현존하는 가치와 질서, 체제와 이데올로기를 지키자는 것을 목적으로 한 세력이라면 진보란 당연히 현존 질서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를 바꾸자는 데 그 존재가치가 있다. 당연히 진보세력은 늘 불온한(?) 변혁을 꿈꾼다. 체제 내에 머물며 주류질서에 길들여져 있으려고 한다면 굳이 진보정당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낫다. ‘중도적 개혁정당’ 정도가 좋지 않을까? 종북으로 몰려 공격당할 염려도 없고.
이쯤 되면 우리는 고민이 깊어진다. 도대체 현 시기 진보란 무엇인가? 한때는 서로 진보라고 주장하더니 이제는 진보로부터 도망가지 못해 안달이니 말이다. 간장게장이 유명한 동네에 가면 가장 눈에 띄는 간판이 원조집이다. 통합진보당이 원조 진보당임을 주장하려면 현 시기 ‘우리의 진보’는 무엇을 말하는지 제대로 답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안팎의 수많은 비판과 공격에 직면해 있다. 겸허하고 절실하게 답을 해야 한다. 시대가 변했다고 난리다. 스마트폰만큼 빠르게 진화하는 세상에서 다이얼식 유선 구식 전화기를 끼고 살아서야 되겠는가? 진보개념을 시대의 상황과 당시 과제에 대한 상대적 급진성 정도로 보는 것이 요즘 트렌드인 것 같다. 더불어 진보를 알리고 설득하는 방식도 ‘국민적 눈높이’로 표현하는 것처럼 훨씬 대중적이고 개방적이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옳은 지적이다. 백번 양보하여 이를 모두 수용해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세상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우리의 상황을 훑어본다. 도대체 무엇이 바뀌었을까?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표현되는 노동자에 대한 초국적 자본의 탐욕과 착취, 이로 인한 사회양극화와 계급갈등이 점점 사라지고 있을까? 우리 민족의 진정한 평화와 통일의 과제가 사라졌는가? 복지의 확대를 통한 민중의 삶이 보다 나아지는 길로 가고 있는가? 국가보안법이 폐지되고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사상, 표현의 자유가 더욱 신장되어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고 있는가? 장애인과 성소수자의 권리, 생태, 인권 등 확장된 진보의 영역에서 획기적으로 변화의 싹이 트고 있는가? 나는 도무지 무엇이 달라졌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도리어 세상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이 명박 정권시절부터 지금 박 근혜 정권에 이르기까지 비정규직 노동자은 양산되고 사회는 더욱 양극화되고 복지수준은 저하됐다. 잘 발전하던 남북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어 이제 전쟁을 걱정하게 됐다. 누가 나를 도청하고 미행할지 모르는 걱정을 하고 인터넷에 자유로운 자기 의사표현도 힘든 그야말로 민주주의가 짓밟히는 시절이 됐다. 장애인, 성소수자 등의 차별이 심화되고 인권유린이 일상화되고 있다. 낡은 시대의 유물로 박물관에 보내져야 할 국가보안법이 살아 제멋대로 날뛰고 유신시절에 있던 내란음모가 다시 되살아나 종북 척결의 이름으로 빨갱이 사냥을 하고 있다.
시대가 변하고 진보담론이 변화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반공과 성장의 논리로 치달렸던 유신의 화려한 부활을 맞아 당황하고 이리저리 쫓겨 다니는 꼴이다. 나는 평등한 세상, 노동이 아름다운 세상, 비정규직 없는 세상, 평화롭게 통일된 조국을 꿈꾸며 뚜벅뚜벅 우리의 길을 갈 것을 말하고 싶다. 자꾸 세상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바뀐 것은 세상이 아니라 자신이 바뀐 것이다. 작은 기득권에 안주하고 이제 그만 싸우며 편하게 살고 싶은 것이다. 자신을 혁명하라. 자신의 내부에서부터 내란을 획책하라. 그것이 진짜 진보의 길이다. 종북과 결별하고 새로운 착한(?) 진보가 된다는 것은 착각이다. 이는 단지 세상의 변혁에 대한 공포감의 발현일 뿐이다.
자칫 오해가 생길 수 있을 것 같아 한마디 덧붙인다. 누가 뭐라 하든 반성하지 않고 민감한 정세변화에 귀 막은 완고한 근본주의자처럼 살자는 것으로 들릴까 싶어 하는 말이다. 우리가 과연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이불안에서 만세 부르는 방식으로 국민과 유리된 채 우리만의 언어로 살아왔는지, 노선과 입장이 다르더라도 깊이 존중하고 그들과 손잡고 함께 가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다수의 힘으로 오만과 독선을 일삼아 진보진영 내의 고립을 자초했는지, 모든 문제를 오로지 수구꼴통의 탄압 탓으로만 돌리며 살아 왔는지 진지하게 돌아보자. 정말 끊임없이 성찰하고 잘못된 전술과 운동방식은 과감히 포기하고 대중의 눈높이, 대중의 말투로 대중을 설득하며 대중에게 배우며 우리의 길을 가자. 잠시 속일 수 있어도 진실은 필히 밝혀지고 진리는 어둠에 갇힐 수 있어도 반드시 환하게 빛나기 마련이다. 그 어느 때보다 ‘함께 가자 이 길을’을 손잡고 부르고 싶다.
<진보정치 627호>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