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19일 금요일

유럽 급진 좌파당의 현황

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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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한모자 | 2012.08.16 14:49:04 | 메뉴 건너뛰기
원작성자
장석준
번역자
게재
이론과 실천
사회민주주의 정당 이외의 주요한 좌파정당으로는 무엇이 있는가? 현실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과연 공세적으로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정당이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영향력 있는 현실 정치세력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필자는 <이론과 실천> 지난 호에서 세계 좌파정치의 이념·노선의 지도(地圖)를 살펴본다는 차원에서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강령을 소개한 바 있다(「민주노동당 강령과 함께 읽는 스웨덴 사회민주당 강령」). 그 후속 편으로 이 글에서는 사회민주주의 정당들보다 왼쪽에 있는 유럽의 급진좌파정당들의 강령과 정책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이들 정당의 강령을 읽으면서 우리는 민주노동당이 세계 좌파정치의 우주에서 과연 어떤 성좌(星座)에 자리하고 있는지에 대해 상당한 시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유럽 사회민주주의 왼쪽의 양대 세력 - 녹색당과 급진좌파정당 

현실사회주의의 붕괴 이전에 사회민주주의의 왼쪽에 있는 좌파정당이라고 하면 대개 코민테른의 전통을 잇는 정당들, 즉 공산당을 말하는 것이었다. 1917년 10월 혁명의 승리와 함께 등장한 제3인터내셔널(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약칭 코민테른)은 세계혁명을 먼 미래의 꿈이 아닌 당면 과제로 제시했다. 따라서 코민테른에 속한 모든 노동자정당은 곧 도래할 혁명의 실현에 당의 모든 활동을 집중했다. 

그러나 이것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자본주의의 격렬한 위기를 배경으로 한 것이었다. 이 위기가 혁명이 아니라 오히려 극우 파시즘 세력의 승리로 귀결되자 코민테른과 그 소속 정당들의 노선도 바뀌게 된다. 혁명을 당면 목표로 하는 게 아니라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전진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2차 대전 후 프랑스 공산당이나 이탈리아 공산당, 혹은 아옌데 정부에서 칠레 공산당이 취한 길이 결국 이런 것이었다. 다만 대부분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과는 달리 당 안에서 궁극 목표와 당면 과제 사이의 관계, 제도 정치와 대중운동의 변증법이 계속 진지하게 고민되었다는 점이 달랐다.  

하지만 이것 역시 이제는 과거의 역사일 뿐이다. 사회민주주의의 왼쪽 하면 자연스럽게 공산당을 떠올리던 시대는 지났다. 물론 공산당이라는 이름으로 유의미한 대중적 지지를 얻고 있는 정당들이 아직도 여럿 있지만, 이들이 사회민주주의 왼쪽 공간을 독점하고 있지는 않다. 특히 유럽 각국에는 과거의 공산당, 신좌파운동, 트로츠키주의 그룹, 마오주의 그룹 등에 뿌리를 둔 다양한 급진좌파 정치세력들이 존재한다. 

이번의 유럽의회 선거를 보면 급진좌파 내의 다양한 흐름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들 외에 유럽 차원의 국제정당을 구성해서 선거에 대응한 좌파 세력이 여럿 있는데, 이 중에서 우선 녹색당/유럽자유연합(EFA)이 눈에 띈다. 이들은 전통적인 노동계급운동에 뿌리박고 있지는 못하지만 정책적인 측면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들보다 급진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물론 독일 녹색당의 경우는 우경화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회민주당에 비해서는 급진적인 정책들을 펼치고 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이번 선거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유럽의회 내 교섭단체인 유럽사회주의당(ESP)이 총 199석을 얻은 데 반해, 녹색당/EFA(EFA는 각국의 지역분리주의 정당들의 연합이며, 유럽의회에서는 녹색당과 동맹을 맺고 있다)는 41석을 얻어 좌파의 제2세력이라는 지위를 점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녹색당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겠다. 그보다는 국내에 거의 소개되지 않은 다른 급진좌파정당들에 관심을 집중하도록 하겠다. 

그 첫 번째로 소개할만한 것이 ‘유럽 좌파당’(EUL)이다. EUL은 동서 유럽의 공산당과 그 후신들이 조직한 국제정당으로서, 주요 가입 정당들은 다음과 같다. 이탈리아의 공산주의재건당, 프랑스 공산당, 스페인의 통합좌파(공산당이 주도하여 만든 통일전선적 정치조직), 그리스의 연합(Synaspismos, 스페인 통합좌파와 비슷한 통일전선적 정치조직), 독일의 민주사회주의당 등. 특히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공산주의재건당으로서, 이 당의 사무총장인 파우스토 베르티노티가 EUL의 사무총장도 겸하고 있다. EUL은 「유럽 좌파당 선언」에서 최근 유럽 사회민주주의의 ‘제3의 길’ 노선을 분명히 비판하면서 “공산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환경주의, 여성주의의 이상”을 자신들의 이념으로 내걸고 있다. 또한 과거 유럽공산주의와의 연속성보다는 최근의 세계화 반대 운동을 강조하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두 번째로는 ‘북유럽 녹색좌파연합’(NGL)이 있다. 북유럽의 급진좌파정당들이 EUL에 직접 가입하지 않고 따로 조직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마도 북유럽 국가들 특유의 역사적 친밀성 때문일 것이다. NGL에 속한 주요 정당들은 다음과 같다. 스웨덴의 좌파당, 노르웨이의 사회주의좌파당, 덴마크의 사회주의민중당, 핀란드의 좌파연합 등. 이 중에서 스웨덴의 좌파당과 핀란드의 좌파연합은 공산당이 이름을 바꾸고 조직을 확대하면서 만들어졌다. 반면 노르웨이의 사회주의좌파당과 덴마크의 사회주의민중당의 창당에는 사회민주주의 정당 내 좌파들의 이탈이 중요한 몫을 했다. 「NGL 정치 강령」은 자신들의 원칙을 “국제연대, 사회 정의, 부의 평등한 분배, 성 평등, 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으로 규정하고 있다.  

위의 EUL과 NGL은 유럽의회 내에서는 녹색당/EFA와 마찬가지로 EUL/NGL이라는 하나의 교섭단체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네덜란드 사회주의당처럼 EUL, NGL 어느 쪽에도 가입하지 않은 정당의 유럽의회 의원도 유럽의회 내에서 이 교섭단체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에 EUL/NGL이 확보한 의석은 녹색당/EFA보다 2석이 적은 39석이다. 

이들과는 전혀 다른 흐름으로 ‘유럽 반(反)자본주의 좌파’가 더 있다. 이 흐름의 주축은 트로츠키주의의 양대 정파라 할 수 있는 제4인터내셔널과 영국의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이다. 그 주요 가입 조직들은 스코틀랜드 사회주의당, 프랑스의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 덴마크의 적녹연합, 포르투갈의 좌파블럭 등이다. 2000년~2004년의 유럽의회에서는 이 경향에 속한 유럽의회 의원들이 EUL/NGL에 속해 활동했는데, 이번에는 완전히 독립적인 흐름으로 선거에 참여했다. 그러나 당선자는 내지 못했다. 이들은 「유럽 반자본주의 좌파 선언」에서 최근의 사회민주주의 경향을 ‘사회자유주의’로 규정하고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자신들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지구를 위협하는 ‘성장 모델’에 반대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에 기반하며 노동의 착취나 여성의 억압이 없는, 아래로부터 자주관리되는 사회주의적이고 민주적인 사회”.

세 번째 세대의 좌파? 

유럽의 급진좌파정당들은 당 강령에서 자신의 이념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물론 사회주의다. 그러나 문제는 그 사회주의의 내용이다. 이들이 이야기하는 사회주의는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말하는 ‘사회주의’나 과거 현실사회주의의 ‘사회주의’와는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사회주의가 근본적으로 민주주의의 확대를 의미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웨덴 좌파당 강령은 이렇게 규정한다. “사회주의는 경제와 정치 모든 면에서 민주주의를 실행하는 것이다. 사회주의의 목표는 억압으로부터 인류가 해방되는 것이다.”  NGL 강령은 이렇게 명쾌하게 정의하고 있다. “우리는 한때 사회주의라고 불렸던 소련과 그 밖의 나라들의 전체주의적이고 비민주적인 체제에 반대한다. 사회주의는 민주주의를 사회의 모든 부문으로 확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사회에서 각자의 자유는 만인의 자유의 전제조건이 된다.” 한편 네덜란드 사회주의당은 사회주의의 핵심 가치로 “인간의 존엄성, 재산의 평등, 연대”를 들고 있다. 그러면서 자본주의의 ‘1주(株) 1표’ 원칙을 대신해 민주주의의 ‘1인 1표’ 원칙을 경제 영역으로까지 확장한 것이 사회주의라고 말한다. 이러한 대목은 “사회주의의 이상과 원칙의 계승”을 말하면서 동시에 “현실사회주의의 오류의 극복”을 주장하는 민주노동당 강령과 그 기본 정신이 잇닿는 것이다.

그럼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사회주의’와 급진좌파의 그것 사이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 점을 짚어보기 전에 먼저 핀란드 좌파연합의 강령에 나타나는 특이한 역사 인식을 살펴보고 넘어가자.  

좌파연합은 강령 말미에서 1789년 프랑스대혁명 이후 역사적으로 세 세대의 좌파가 존재해왔다고 주장한다. 첫 번째 세대의 좌파는 봉건 질서를 폐지하고 대의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를 도입한 자유주의 세력이다. 지금이야 우파로 분류되는 것이 온당하지만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이들은 ‘자코뱅’이라는 이름 아래 좌파의 표준형으로 이해되었었다. 우리가 흔히 ‘좌파’라고 부르는 사회주의 세력은, 좌파연합의 강령에 따르면, 두 번째 세대의 좌파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들은 노동운동에 뿌리를 두었고 평등을 추구했다. 

그렇다면 세 번째 세대의 좌파는 누구인가? 좌파연합은 자신들이 바로 이 세대에 속한다고 주장하는데, 그 뿌리는 1960년대의 신좌파운동과 급진적 여성운동·환경운동에 있다고 한다.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로 두 번째 세대 좌파의 한계가 뚜렷이 드러나면서 이제는 제3세대의 좌파정치를 펼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핵심은 민주주의의 강조이고, 사회생활 전반에 대한 대중의 참여를 중요시하는 것이다. 

특히 경제에 대해서 좌파연합은 이제 제1세대 좌파의 시장 경제와 제2세대 좌파의 중앙집중형 계획경제 모두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럼 좌파연합의 대안은 무엇인가? 그것은 시장을 폐지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사회의 다른 부분들의 민주주의에 종속시키는 것이다. “더 이상 어떠한 사회주의 좌파도 시장 경제의 폐지를 장기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로조차 여기지 않는다. 우리의 목표는 시장에 자본과 화폐의 자본주의적 헤게모니를 지속시키는 측면들을 제거하고 시장 경제를 민주적 방향의 사회 발전과 만인의 번영에 복무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핀란드 좌파연합의 이러한 역사 인식은 사뭇 흥미로운 것이다. 민주노동당을 이 도식에 따라 규정한다면 과연 어느 세대에 속할까? 여전히 노동과 분배의 문제를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많은 부분 제2세대 좌파에 속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미 20세기 사회주의의 문제점들이 극명하게 드러난 상황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제3세대의 성격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좌파운동의 세 세대라는 도식 자체가 지나치게 기계적인 것일 수 있다. 특히 경제 대안의 측면에서 핀란드 좌파연합의 주장이 사회민주주의의 그것과 얼마나 다른 것인지 불분명하다. 물론 현대 사회민주주의의 가장 우파적 형태인 ‘제3의 길’에 견주어보면 그 차이가 뚜렷하지만, 정통 사회민주주의의 많은 내용을 계승하고 있는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강령과 비교해보면 쉽게 차이를 확인할 수 없다. 이에 대해서는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직접적 경쟁자인 좌파당의 강령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민주적 사회주의’의 또 다른 판본 - 사회적 소유와 계획이 여전히 중요하다 

스웨덴 사회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좌파당도 자기 당의 이념을 ‘민주적 사회주의’라 부른다. 민주노동당 안에서도 ‘민주적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저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듯이 사회민주당과 좌파당도 둘 다 ‘민주적 사회주의’를 이야기하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이 서로 다르다. 특히 그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바로 경제 대안 부분이다. 

한 마디로 좌파당은 사회민주당과는 달리 소유권 문제를 중요시한다. 사회민주당도 자본주의는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굳이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를 추진하지 않아도 그 민주적 통제만으로 자본주의의 극복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2000년에 채택된 좌파당의 강령 「연대의 세계를 위하여」는 다음과 같이 분명히 지적한다. “사회주의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가 폐지되어야 하며 사회의 자원이 공정하게 분배되어야 한다. 경제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생산수단에 대한 권력이 수립되어야 한다.” 

보다 자세히 살펴보자. “경제는 민주화되어야 하고 소유권은 제한되어야 한다. 의회와 정부가 경제 결정권을 쥐어야 한다. 하지만 경제와 사회 전체에 대한 권력 행사에서 관건적인 것은 생산수단의 소유와 통제이며 그로부터 비롯되는 잉여의 분배다. 따라서 사회주의 사회에서 생산수단의 중요한 부분은 공적으로 소유되어야 한다. 이는 우리 나라의 경제 공동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자원과 기업이 민주적으로 소유되고 공동선을 위해 경영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사적 소유를 사회적 소유로 전환하는 게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여전히 중심 과제를 이룬다고 보는 것이다. 

좌파당의 「2002년 총선 정책」은 이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있다. “우리는 단기적인 투기 자본에 대항해 균형을 맞추기 위해 전 사회적으로 공적 소유를 늘릴 것을 주장합니다. 우리는 사유화와, 공공 서비스를 시장 경쟁에 개방하는 것을 중단할 것을 원합니다. 특정한 전략적 영역에서는 국가 소유가 확대되어야 합니다.” 

이런 지점들에서 좌파당의 경제 강령은 “사회민주주의의 한계에 대한 극복”을 지향하는 민주노동당의 경제 강령과 여러 모로 유사하다. 민주노동당 경제 강령 역시 사회적 소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다만 이러한 사회적 소유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하는데, 이 점은 좌파당도 마찬가지다. “은행 부문과 신용 시장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공적 소유가 지배해야 한다. (중략) 국영 기업, 지자체 기업, 협동조합, 노동자 소유 기업, 사적 기업 등 다양한 형태의 기업이 존재할 필요가 있다.” 

또한 좌파당은 시장의 영향력을 제약하는 수준을 넘어서 계획과 시장의 결합을 주장한다. 이는 “시장적 조절보다 사회적 조절을 우위에 둔다”는 민주노동당 경제 강령의 기본 방향과 일치하면서 그것을 훨씬 더 적극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모든 선진 경제는 계획과 시장의 결합을 요구한다. 계획은 정치적 결정에 기반한다. 계획은 시장의 행위자들에게 규칙과 틀거리를 부여한다. 따라서 우리는 시장과 그 행위자들의 무제한적인 자유를 받아들일 수 없으며 따라서 그것에 반대해 싸운다. 이러한 자유는 다수의 희생 위해서 소수 특권층을 이롭게 하기 때문에 대다수 민중의 자유를 침해한다. 계획은 필요, 환경의 한계, 지역 발전, 스웨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 차원의 사회 정의에 기반해야 한다. 계획을 통해 우리는 독점과 카르텔의 등장을 막고, 소득과 복지에서 커다란 격차를 낳는 시장의 경향에 대항해야 한다.” 

정치 영역에서도 좌파당은 사회민주당보다 한 발 더 적극적인 면모를 보인다. 좌파당은 대의제의 좁은 틀을 넘어서 대의 민주주의와 직접 민주주의를 결합해야 한다는 점을 강하게 주장한다. “대의제 정부 형태는 시민들의 직접적인 영향력 행사를 가능하게 하는 방식들을 통해 보완되어야 한다. 이는 정책결정 국민투표로 나타날 수도 있고, 노동자, 지역주민, 소비자들 사이에서의 자주관리 구조로 나타날 수도 있다.” 

특히 필자에게 인상적으로 다가온 것은 좌파당의 강령이 사회주의 운동과 노동계급 대중정당의 오래된 난제에 대해 지적하면서 끝맺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바로 ‘일상적 정치투쟁’과 ‘궁극적 목표’ 사이의 관계다. 둘 사이의 변증법적 관계를 위해 좌파당 강령은 당과 대중운동의 결합, 원내 활동과 대중투쟁의 결합을 강조한다. “잘 조직된 의회 바깥의 투쟁은 의회 내 활동의 성공의 전제조건이다.” 

이 명제는 「2002년 총선 정책」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좌파당에 투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만약 선거와 선거 사이의 시기에 민중이 침묵한다면, 권력을 쥔 자들은 다수가 반대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노동 현장에서, 지역에서, 거리에서, 민중들이 모이는 모든 장소에서 계속될 우리의 운동이 의회에서의 결정을 궁극적으로 규정합니다.”

부자들이여, 우리를 지지하지 말라

그럼 급진좌파정당들이 당면 과제로 제시하는 구체적인 정책들은 어떠한 내용일까? 그것은 이들 정당의 총선 공약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놀랍게도 그 대부분은 민주노동당이 지난 총선에서 내건 공약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들이다. 

스웨덴 좌파당의 2002년 총선 공약을 보면 그 주요 내용은, 완전고용의 실현, 여성과 아동의 권리 신장, 하루 6시간의 노동, 소득 재분배를 위한 조세제도 개혁, 복지국가의 수호, 환경 보호, 제3세계 외채 탕감 등이다. 주목할만한 공약으로는, 해외 이전을 추진하는 기업을 지역사회와 노동자가 인수할 수 있도록 금융을 지원하고 법 체계를 마련한다는 것이 있고, 연금기금의 투자가 노동권·여성권·환경권을 신장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있다. 

네덜란드 사회주의당이 2003년 총선의 12대 공약으로 제시한 정책들은 다음과 같다. 사회복지에 대한 재투자, 민주주의의 축소 중단, 보편적 보건 서비스, 노년층과 장애인 복지 확대, 환경에 대한 우선 고려, 인종주의 반대, 주거 개선, 사법 개혁, 교통의 공공성 강화, 교육의 기회 균등, 스포츠·여가·문화의 동등한 향유, 국제 연대 등. 

급진적인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주축이 된 스코틀랜드 사회주의당은 작년 스코틀랜드 독립의회 선거에서 다음의 6가지 긴급 과제를 내세워서 바람을 일으켰다. 첫째, 기존 지방세의 폐지와 소득에 기초한 새로운 조세제도의 도입. 둘째, 양질의 무상학교급식. 셋째, 공공부문 노동자들에 대한 시급 7.32 파운드(약 15,000원)의 최저임금제 적용. 넷째, 공공부문을 통한 주35시간의 24,000개 일자리 창출. 다섯째, 공공부문 사유화 중단. 여섯째, 이라크 파견 부대 철수. 혁명과는 거리가 멀지만, 자본가와 기득권 세력에게는 확실히 귀에 거슬릴만한 내용들이다.  

대부분의 급진좌파정당들이 다 비슷하다. 신자유주의로부터 복지제도를 사수하고 부의 재분배를 위해 그것을 더욱 확대한다는 정책들이다. 혹자는 이게 사회민주주의의 전통적 내용이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차라리 이는 사회주의의 전통적 내용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때 이러한 사회주의적 정책의 담지자는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었지만, 이제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신자유주의의 장단에 놀아나는 ‘제3의 길’에서 갈 곳을 잃은 채 헤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급진좌파 정치세력들이 시장과 사적 소유의 공세로부터 복지와 연대의 전통을 지키자는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시대에 진보적 조세제도와 복지의 확대를 주장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이 과연 ‘사회민주주의’적인지 ‘사회주의’적인지 가려보자는 것은 잘해봐야 스콜라적 입씨름이 될 수 있을 뿐이다.   

2002년 총선에서 스웨덴 좌파당이 거둔 득표율은 8.3%였다(사회민주당은 39.8% 획득). 북유럽에서 급진좌파정당의 득표율은 보통 10% 안팎을 오르내린다. 노르웨이 사회주의좌파당이 가장 최근의 선거에서 12.4%를 기록했고, 핀란드 좌파연합이 9.9%를 얻었다. EUL에 속한, 유럽의 다른 지역 급진좌파정당의 경우는 이보다 좀 낮아서 대개 5% 선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공산주의재건당이 지난 총선에서 얻은 득표율이 5.0%고, 스페인 통합좌파도 올해 총선에서 5.0%를 기록했다. 

이 정도의 지지를 받는 정치세력이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단은 두 가지다. 하나는 다른 정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해서 이를 통해 정책을 관철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대중운동과 결합하여 기득권 세력을 압박하는 것이다. 사회민주당·녹색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한 북유럽에서는 급진좌파정당이 정부에 참여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반면 그렇지 못한 나라들(가령 이탈리아)에서는 세계화 반대 운동과 같은 사회운동과의 연대가 보다 중요시된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급진좌파정당들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포함한 유럽 정치의 주류가 보다 왼쪽으로 기울어지도록 압력을 넣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에 사회민주주의 정당과 공산주의 정당이 서로 대등하게 경쟁하던 상황에 비하면 상당히 수세적이고 소극적으로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30년간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국면을 거치면서 움츠러들 대로 움츠러든 노동운동·사회운동의 핵심을 보존하고 그 이상과 가치를 지킨다는 것은 결코 소극적인 과제만은 아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낳는 여러 모순과 위기가 이념의 추를 더욱 왼쪽으로 몰아갈 미래의 어느 때, 이들이 사수한 ‘진지’는 전 세계 좌파 전체의 자산으로 의미를 지닐 것이다. 

그것은 예를 들어 총선 공약을 제시하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기백이며 자부심이다. 

“어떤 정당들은 자신들의 정책이 모든 시민들에게 다 이로운 것이라고 설득하려 듭니다. 하지만 이것은 진실과 거리가 멉니다. 좌파당의 정책도 만인에게 다 이로울 수는 없습니다. 복지제도에 납세하길 꺼리고 자신의 풍부한 소득을 차라리 사적인 소비에 쓰길 바라는 사람들이라면 좌파당의 정책으로 손해를 볼 것입니다.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더 적은 임금을 받고 결정권도 더 적은 현실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다른 정당에 투표해야만 합니다. 대기업이 보다 많은 영향력을 지녀야 하고 스웨덴이 EMU(유럽통화통합)에 가입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라면 우리 당으로부터 어떠한 지지도 받을 수 없습니다. 스웨덴이 가난한 나라들에 대한 원조를 줄여야 하고 외국인 망명자의 입국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라면 우리편이 아닙니다. 환경보다는 이윤의 극대화가 더 고려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라면 우리 당의 정책으로 행복해지기는 힘들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좌파당에 투표하는 것으로 불의와 싸우는 과업에서 면제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과제는 사회의 변화를 위해 모든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대의 기구는 대표를 선출한 민중들로부터 고립되어선 안 됩니다. 우리의 활동은 의회에서뿐만 아니라 일반 민중의 일상 생활에서도 이뤄집니다.” (스웨덴 좌파당의 「2002년 총선 정책」에서) 


필자는 이것이 또한 우리의 목소리여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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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15일 월요일

구영국노동당- 노동조합

구영국노동당과 노동조합 관계 논문 (한국노총 157페이지)

http://re.inochong.org/admin/upload/download.php?filename=1301881603%C3%A4%C1%D8%C8%A3.PDF

영국노동당 탄생

http://m.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64988

영국 노동당 혁신?

http://powertothepeople.kr/comm/bbs/board.php?bo_table=news&wr_id=260&sca=%EA%B5%AD%EB%AF%BC%EC%9D%98%EB%AA%85%EB%A0%B9

영국노동당 조직구조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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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한모자 | 2012.08.16 14:36:55 | 메뉴 건너뛰기
원작성자
강원택
번역자
게재
영국노동당은 노동 계층에 대한 참정권의 확대와 함께 생겨난 대중 정당이다. 따라서 일반 당원들의 참여가 보수당에 비해서는 활발한 편이다. 그러나 동시에 노조가 노동당 창당의 산파였던 만큼 당내 문제에 대한 노조의 영향력은 전통적으로 강한 편이었다. 이러한 두 가지 측면이 노동당의 조직적인 특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노동당은 보수당에 비해서는 분권적이다. 당원들은 중앙당에서 관리하지만 노동당 지구당의 운영 규칙도 노동당 당헌에 규정되어 있다.

실제 참여와 활동은 지구당을 중심으로이뤄진다. 지구당의 하부 조직인 각 branch마다 선임한 대표자들로 구성된 지구당(Constituency Labour Party: CLP)을 운영하게 되는데 지구당의 결정 사항에 대한 투표권은 과거에는 이들만이 갖고 있었다. 대표자의 수는 당비를 낸당원의 수에 의해 결정되는데 따라서 집단적으로 참여하는 노조의 대표들이 지구당에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CLP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의회 의원 선거 후보자를 선정하는 것인데, 뒤에서 논의하겠지만 1993년 당헌 개정으로 이제는 대표자만이 아니라 모든 지구당의 당원들이 후보 선출에 투표할 수 있게 되었다. one member, one vote의 원칙이 적용된 것이다.
 
자문기능에 그치는 보수당과는 달리, 노동당은 전당대회가 최고의권위 기관이다. 매년 정기적으로 개최되며 당의 정책과 노선을 정하는 기능을 한다. 과거에는 당에 가입한 노조와 같은 가맹단체도 직접 당규나 정책안을 제출하고 표결에 참여할 수 있었다. 1992년 전당대회에서 당 지도부의 의사와는 달리 일방적 핵 무장 철폐와 같은 안이상정되고 통과된 것이 그 예이다. 그러나 1997년부터는 이들의 정책안 제출을 금지하고 전당대회는 제안된 안에 대해 찬성과 반대만을 결정하도록 그 권한이 바뀌었다. 정책안은 1990년 설립된  National Policy Forum의 검토를 통해 제안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노동당의 가장 중요한 정책 결정 기구는 the National Executive Committee(NEC)이다. NEC는 당의 모든 조직과 기구가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감독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National Policy Forum에서 제안된 정책안을 전당대회에 제출하기 전에 검토하고 판단하는 역할도 한다. 당의 재정과 중앙당 본부의 운영을 책임지며 당원에 대한 징계, 축출의 권한도 갖는다. 그리고 보궐 선거와 같은 때에는 후보자의 선출에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갖는다. NEC는 33명으로 구성되는데 전당대회에서 24명을 선출하고, 당수, 부당수, 유럽의회의 노동당 지도자, 3명의 당직을 맡고 있는의원, 당 재무관(Party Treasurer), 청년 당원 1명, Labour Party Black Socialist Society 이 단체의 회원이 2,500명이 넘어야 하고 노조의 1/3 이상이 이 단체에 가입한다는 조건을 충족하는 경우에 NEC에 참여할 수 있다는 단서가 있다.

중앙당 본부는 사무총장(General Secretary)이 관리하는데 당수가 Party Chairman을 임명하는 보수당과는 달리 전당대회에서 NEC가 추천한 인물을 선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사무총장의 임기에 대해서는 별다른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  

간부정당이 여러 가지 정치적 자원을 지닌 엘리트들의 모임이라면 대중정당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자원은 다수의 당원일 것이다. 노동당 역시 다수 당원들의 자발적 참여가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자원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개별 당원들보다는 집단적으로 참여하는 기관 당원 (corporate membership)의 수가 더욱 많으며 보다 큰 영향력을 행사해 온것이 사실이다. 노동당은 당원은 직접 당원으로 가입하지 않더라도노조나 사회주의 단체에 가입한 노조원이나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그 기구에 ‘정치 기금(political levy)'을 내면 기관당원의 형태로 간접적으로 가입을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노동당은 정책이나 당 노선 결정 등에서 노조의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하는 문제를 나타내기도 했다.

노동당 당수의 권한은 보수당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제약을받는 편이다. 실제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론적으로 노동당 당수의 권한은 전당대회와NEC에 의해 규제를 받도록 되어 있다. 또한 인사권에서도 상당한 제약이 있다. 예컨대 노동당이 야당에서 집권당이 되면 첫 내각은 반드시 야당의 예비내각(shadow cabinet)에서 일하던 이들을 각료로 임명해야 한다. 예비내각의 구성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1989년 이후 노동당의 예비내각은 노동당의 의원들이모두 18표를 갖고 투표하여 일종의 인재 풀(pool)을 구성하는데 이중 최소 3표 이상은 여성에게 투표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인재 풀 가운데서 당 지도부가 선택하여 예비내각을 구성하게 된다. 임명 여부가 전적으로 당수의 권한인 보수당과는 달리 노동당의 부당수(Deputy Leader)는 선거인단 투표를 통해 결정된다는 점도 지적할 만하다. 당 의장(party chair)은 전국집행위원회의 선임 위원(senior member)이 맡도록 하였고, 또한 노동당의 원내 수석 총무(Labour chief whip) 역시 의원 투표로 선출되도록규정하고 있는 등 인사권에 제약을 받고 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노동당 당수의 권한도 강한 편이다. 특히 1990년대 당 개혁 이후 노조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줄어들면서 당수의 권한은 더욱 강해졌다고 할 수 있다. 전당대회에서 결정하는 정책도 사실 그 결정에 당수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전당대회에서 결정한 당 노선 가운데 실현가능성이 없거나 인기 없는 정책들은 당 지도부의 판단에 따라 선거 공약에 포함시키지 않는 경우는 자주 발생했다. 
 
따라서 형식적으로는 노동당이 보수당보다 민주적인 성격을 갖는 것으로 보이지만 일부에서는 이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기도 한다. 일찍이 1950년대에 이미 맥켄지(McKenzie 1956)는 노동당의 당헌과는 무관하게 당내 권력이 엘리트의 수중에 놓여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또한 웹은 다른 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영국 노동당은 영국 내 모든 노동계급을 이념적, 문화적으로 포용해 내는 노동계급에 대한 ‘패권적(hegemonic)' 정당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Webb 1994: 110)고 지적하였다. 이는 결국 영국 노동당이 역사적 연대 등의 원인으로 노조의 상당한 영향력 아래 놓여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노동조합이 노동당의 당내 조직과 같은 형태가 되는 것을허용하였고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노동당은 진정한 의미의 대중 정당이 될 필요가 없었던 것이며, 의회와 노조의 엘리트의 연립이라는 비판까지 제기되기도 했다 (Webb 1994: 110).

그러나 닐 키녹이 당수가 된 이후 계속되어 온 노동당 내개혁은 노조의 영향력을 줄이고 일반 당원의 참여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예컨대, 블레어가 당수가 된 이후 당원들의 직접 투표를 통한 정책 결정 방식을 도입하였다. 토니 블레어는 1994년 전당대회에서 사회적 소유의 추구를 규정한 당헌 4조 (Clause IV)를 폐지하는 문제를 당원들의 직접 투표를 통해 결정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보수당의 경우와 유사하게, 당수 (그리고 NEC)의 권한을 사실상 강화시켜 주는 효과도 있다는 점도 지적해야 할 것이다.

논쟁 1:그리스 시리자와 좌파 개혁주의의 한계

논쟁 1:그리스 시리자와 좌파 개혁주의의 한계

그리스, 정치, 마르크스주의 전략

타나시스 캄파지아니스 
 

번역: 김영익

필자인 타나시스 캄파지아니스는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 SEK의 당원이다.

《인터내셔널 소셜리즘》 136호(2012년 가을)에서 리처드 시모어와 파노스 가르가나스는 그리스 좌파를 위한 서로 다른 정치 전략을 내놓았다.1 이 논쟁은 그리스뿐 아니라 다른 지역의 혁명가들에게도 중요한 함의가 있다. 가르가나스는 반자본주의 좌파가 안타르시아를 통해, 곧 시리자와는 별도 조직으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정치적 투쟁에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시모어는 시리자를 “비판적으로 지지”하고 “좌파 정부” 구호를 “전폭” 지지하자는 전략을 제안했다. 시모어는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시리자를 “좌파 개혁주의”고 규정한2 것도 비판했다. 그 용어가 “중요한 세부 사항을 간과”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도 구체적이고 세세한 사실에 관심을 두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이 글의 목적도 해외 동지들이 그리스 상황을 상세히 평가하고자 할 때 고려해야 할 구체적 사실들을 제공하려는 데에 있다.

시모어가 내놓은 정보 가운데 특히 몇 가지는 정정해야 한다. 시모어는 “2009년 학생 반란”이라는 말을 썼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정부의 교육 개혁에 맞선 학생 반란은 2006년과 2007년에 일어났고, 가장 유명했던 대규모 청년 반란은 2008년 12월에 일어났다. 그런데 2009년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 시모어는 시나스피스모스(시리자 안에서 가장 큰 정당)가 2006년에 그리스 사회포럼에 참가했다고도 했는데, 이것도 틀린 사실이다. 그리스 사회포럼은 시나스피스모스가 반자본주의 운동에서 주도력을 장악하려고 2004년에 만든 연대체다. 그러니 자기가 만든 조직에 나중에 합류한다는 것은 분명히 말이 안 된다. 그리스 사회포럼은 2006년 아테네에서 열린 유럽 사회포럼을 조직하는 데 참여했고, 영국과 유럽의 많은 동지들도 이 포럼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오류들은 사소한 것이다. 더 크고 더 중요한 오류들이 있다.

시모어는 다른 글에서 시리자를 “전형적이지 않은” 개혁주의라고 불렀다.3 시모어는 이 규정에 설득력을 싣기 위해 시리자 안에 혁명적 좌파 조직들이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시나스피스모스의 좌파와 함께 활동하는 이 조직들이 시리자의 정치를 상당히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함축하는 것이다. 시모어는 캘리니코스가 시리자 내 혁명적 좌파를 “공정하게” 다루지 않는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상황을 더 구체적으로 봐야 한다. 시리자 안에 혁명적 좌파 조직과 시나스피스모스의 좌파 경향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는 시리자의 정책 결정이 얼마나 바뀔 수 있을지 확신하기는 힘들다. 예를 들어, 1980년대 영국 노동당 안에는 강령한 좌파 경향은 물론이고 조직된 혁명적 단체들도 있었다. 그러나 노동당 내 좌파들은 노동당의 정책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게다가 노동당 내 좌파와 우파의 세력 관계는 그 뒤 10년 동안 상황에 따라 달랐다. 그렇다면 시리자는 어떠한가?

시리자 내 좌파

시리자 내 극좌파는 2012년 총선 전에 시나스피스모스 지도부에 맞서(따라서 시리자에 맞서) 역대 가장 중요했던 정치적 도전을 벌였다가 참패했다. 이 도전은 2010년에 있었는데, 시나스피스모스의 전 대표 알레코스 알라바노스가 이끈 ‘연대와 파열 전선’MAA, Front of Solidarity and Rupture이 주도했다. 시모어가 언급한 두 조직, 즉 마오주의 조직인 그리스 공산주의자단체KOE와 트로츠키조직인 국제주의노동자좌파DEA, Internationalist Workers’ Left가 이 도전을 지지했다. MAA는 시리자 지도부의 온건화 방향과 유럽연합·유로화 친화적 노선을 부각해 비판했다. 그러나 MAA는 주로 시나스피스모스 안에서 동맹을 찾으려 했고, 특히 좌파경향Left Current과 그 조직의 지도자 파나이오티스 라파자니스와 동맹을 맺으려 주력했다. 그러나 라파자니스는 시나스피스모스와 결별해 MAA로 가지는 않았다. 이는 예상 못할 결과는 아니었다.(라파자니스가 시나스피스모스와 결별할 것이라는 가정을 정치 전략의 중심에 놓았던 사람들은 실망했겠지만 말이다.)

MAA가 시리자를 분열시킬 만한 대중적 기반을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이 명백해진 뒤로는 오히려 MAA를 지지하던 조직들이 MAA를 내팽개치고 다시 시리자를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그런 조직들의 정치적 입장은 MAA보다 취약하고 온건했지만 말이다. KOE는 이런 급격한 전환기에 분열을 겪었다.(지도부의 절반이 조직을 떠났다. 그들은 한때 낡은 공산당식 사투리를 썼어도 유럽연합과 유로존을 반대한 것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유럽연합과 유로존은 주요 쟁점이 아니다” 하고 주장한다.) KOE의 현재 정치 노선은 시나스피스모스의 좌파라고 하기 힘들다. KOE는 [그리스 정부가 국제 채권단 트로이카(유럽연합, 유럽중앙은행, IMF)와 체결한] 양해각서에 반대하는 “국민적” 전선을 결성하는 데 강조점을 두면서, 심지어 우파 정당(반터키 민족주의자이자 전에는 신민당 소속 국회의원이었던 파노스 카메노스 — 영국 보수당에 있다가 탈당해 영국독립당을 설립한 우파 정치인 나이절 패라지와 비슷한 인물 — 가 이끄는 그리스독립당 같은 정당)들과도 협력하자고 한다. 다행히도 시나스피스모스(와 시리자)는 현재까지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그럼에도 이 우파 정당의 “비판적 지지”를 얻어 좌파 정부를 구성하자는 제안에는 시나스피스모스가 동의할지 모른다는 얘기가 있다.)

그렇다면 시모어가 언급한 또 다른 조직 DEA는 어떠한가? 시모어가 인용한 안토니스 다바넬로스의 2008년 기사가 많은 것을 알려 준다.4(무슨 이유에서인지 시모어는 이 기사를 두 번 언급했다.) 그 기사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바넬로스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시나스피스모스의 대표 알레코스 알라바노스가 한 제안의 핵심은 “반신자유주의와 반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강령을 가진 좌파 정부”다. 많은 단체들과 마찬가지로 DEA도 시리자가 신자유주의 정책의 반전을 목적으로 한 선거적 야당으로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이런 제안에 반대한다. 이 쟁점에 관해서는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고 앞으로 토론할 여지가 있다.

그런데 왜 DEA는 2008년에는 시리자의 당시 지도자 알레코스 알라바노스가 한 이 제안에 반대했으면서 2012년에는 시리자의 현 지도자 알렉시스 치프라스가 한 제안에 찬성했을까? 시나스피스모스의 새 지도부가 좌선회해서 그런 것은 확실히 아니다. 시나스피스모스의 아주 충성스러운 당원들조차 알라바노스가 치프라스보다 좌파라는 사실은 인정할 것이다. 현실에서 시리자의 좌파(와 시리자 내 혁명적 좌파 조직들)는 시리자 지도부의 “좌파 정부” 전략에 딸려 간 것이다.

2012년 총선이 끝난 뒤 몇 달 동안 여러 사건에서 내가 묘사한 [시리자 내] 세력 관계가 옳았음이 드러났다. [시리자 내] “강력한” 좌파에 대한 추상적 얘기와 대조적으로 말이다. 최근에 열린[2012년 11월 30일~12월 2일에 열린] 시리자 대의원대회에서 지도부는 당 전체를 더 온건한 방향으로 끌어당겼다. 이제 시리자의 주안점은 “일방적으로” 급진적 결정을 하지 않을 “구국” 정부를 구성해 그리스가 유럽연합·IMF와 체결한 양해각서에 대해 재협상하자는 쪽으로 옮겨 갔다. 이 대의원대회에서 시리자 내 좌파들은 ‘좌파적 강령’Left Platform이라는 분파를 결성해(시모어가 언급한 KOE는 지도부 편을 들었다) 25퍼센트의 지지를 얻었다. 이 수치는 좌파경향이 평소 시나스피스모스 안에서 받는 지지율보다 작은 것이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은 시리자 내 좌파가 시리자의 정치 노선에 영향력을 거의 미치지 못한다고 본다. 적어도 시리자의 경제정책 생산 기구에서 시리자 내 좌파의 영향력은 아예 없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제 시리자의 주요 과제는 “통치 능력”을 입증하는 것이 됐다. 치프라스는 라틴아메리카로 가서 브라질의 룰라와 아르헨티나의 키르치네르를 만나고, 독일 재무장관 볼프강 쇼이블레를 만났다. 더 최근에는 미국으로 가서 IMF와 자유주의 성향의 연구소(브루킹스연구소[오바마 정부 들어 급부상한 민주당계 연구소]를 포함해)들을 만나 그들의 환심을 사려고 이 전략을 거듭거듭 밝혔다. 치프라스는 그리스의 주요 보수 정치인 콘스탄티노스 카라만리스(전 총리 코스타스 카라만리스의 삼촌)의 “현대화”, “헤게모니” 전략이 우파로 가는 표를 좌파로 끌어올 수 있을 것이라며 칭찬해서, 자신의 가장 충실한 지지자들조차 깜짝 놀라게 했다. 시리자 내 좌파가 야당의 처지에 있는 현재 시리자의 노선을 좌지우지할 수 없다면, 집권당이 된 이후(곧, 국가, 부르주아적 합법성, 지배계급이 가하는 커다란 압박을 받는) 시리자의 행보가 어떨지는 함부로 예단할 수 없을 것이다.

핵심 연결 고리인 유로존

좌파 활동가들이 이런 사태 전개를 보면서 곧장 떠올릴 질문은 이렇다. 이런 일은 항상 일어날 수밖에 없는가? 좌파 정당이 권력에 다가가면 급진성이 자연스럽게 탈색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역사적 법칙인가? 다행히도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로버트 미헬의 “과두제의 철칙”이 아니라, 정치 전략의 문제에서 찾을 수 있다. 나는 전략이라는 말을 노동운동이 끊임없이 고심할 문제(개혁이냐 혁명이냐 하는 문제)뿐 아니라 특정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들을 가리키는 뜻으로 썼다. 그리스에서 핵심 쟁점은 유로존이다.

유로존 문제에 대한 좌파들의 관점과 제1차세계대전에 대한 당시 좌파들의 관점 사이에는 비슷한 구석이 많다. 전쟁 책동에 반대할 것이냐 아니냐는 당시 좌파들의 재편에서 핵심 쟁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평화를 지지한 사람들이 모두 마르크스주의자였다는 뜻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유로존에서 벗어나자고 하는 사람들이 모두 혁명적 사회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시모어가 언급한 코스타스 라파비차스의 “그렉시트”Grexit[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강령은 급진적 반신자유주의 강령이다. 유로존의 구속에서 벗어나 그리스 통화의 가치를 떨어뜨려 그리스 자본주의의 경쟁력을 회복시키자는 내용이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이탈하는 것이 긴축을 끝장내고 노동계급 친화적 정책을 추진하고자 하는 반자본주의 정치에 꼭 필요한 단계라는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시리자 지도부의 유로존 친화적 노선은 운동의 급진성을 길들이고 운동을 온건하게 만들려고 하는 그리스 지배계급에게 유용한 수단이 돼 왔다. 시모어의 주장과 달리, 유로존 탈퇴 주장은 시리자가 선거에서 한 제안[좌파 정부 구성]을 거부하는 것을 정당화하려고 내놓은 혁명적 좌파들의 이데올로기적 우회로가 아니다. 시리자의 유로존 친화적 노선이 시리자 지도부가 노동계급의 현재 의식 수준을 측정해 내놓은 전술적 결정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유로존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은 운동에 맞서 지배계급이 내놓은 정치적·이데올로기적 협박이다. 지배계급은 기업주와 정치인들이 부채를 줄여야 한다며 늘어놓는 얘기들의 정당성이 운동 때문에 크게 훼손되자 그런 협박을 해댄 것이다. 따라서 유로존 문제에서는 대담한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 시리자 자신의 유로존 친화적 입장은 시리자가 오랫동안 고수한 유럽연합 친화적 전략, 즉 유럽연합이 국민국가보다는 국제주의적이고 진보적이라고 보는 유러코뮤니즘의 오래된 신념의 귀결이다. 유로존이 강요하는 제약을 받아들이며 그리스의 경제 위기를 해결하자고 하는 것은 미국 공화당 우파가 “재정적자”와 “과잉 지출”을 “대폭 감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시리자의 지도적 경제학자들은 점점 더 그렇게 하고 있다. 반면, 안타르시아의 반자본주의 좌파는 부채 탕감과 양해각서 무효화, 은행 국유화, 투자 통제를 주장하는 강령을 내놓았다. 이 요구들은 모두 유로존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한다.

정부 = 정치?

핵심적 질문은 이렇다. 누가 위기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반자본주의 강령을 실행할 것인가? 시모어는 “좌파 정부” 구성을 “의미 있는 단계”로 보며 시리자의 전략을 찬양했다. 그가 반복해서 말했듯이, 당장은 소비에트가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런 주장의 발전 과정에서 놀라운 것 하나는 “좌파 정부” 전략 옹호자들이 1922년 코민테른 4차 대회에서 있었던 논의를 끌어다 쓴다는 것이다. 그것도 레닌주의 정치를 대체로 낡은 것으로 여기는 좌파들이 그러니 더 놀랍다. 초기 코민테른이 남긴 혁명적 교훈에 대한 내 신념은 여전히 확고하다. 하지만 시리자가 내놓은 전략은 1920년대보다는 1970년대의 경험과 훨씬 더 관련이 있어 보인다. 우리가 지금 다루고 있는 “좌파 정부” 전략은 과거 프랑스 공산당PCF이 내놓은 유러코뮤니즘적 “좌파 정부” 노선을 포장만 바꿔 다시 내놓은 것이다.(그럼에도 당시 PCF가 오늘날의 시리자보다 노동계급에 훨씬 더 깊이 뿌리 내리고 있었음을 기억하자.) 나는 “좌파 정부”가 운동을 위한 “교육 과정”의 일부가 될 수 있고, 노동계급에게 득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다. 바로 노동운동의 선진 부위가 그 정부로부터 정치적으로 독립적이어야 하고 그 정부의 등장은 운동 자체의 활동 결과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5 그렇다고 해서 정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뜻하는 정치는 정부 인수를 바라는 “현실주의”의 정치와도 다르고 혁명적 낭만주의의 정치와도 다른 종류의 정치다. 지금 혁명적 좌파가 노동자 투쟁에 강조점을 두는 이유는 미래에 급진적 강령을 실행할 때 결정적일 주체적 역량을 구축하기 위해서다. 주체적 역량의 구축은 지배계급의 반혁명적 반발에 맞설 때뿐 아니라, 노동계급이 자신의 기관을 통해 마침내 권력을 획득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가 될 때도 사활적으로 중요하다.

안타깝지만 “좌파 정부”를 둘러싼 혁명적 좌파 내의 논쟁을 보면, 일부는 정치가 무엇인지에 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시리자의 스타니스 쿠벨라키스가 그리스에 관해 한 연설은 그런 관점을 아주 잘 보여 준다.

그리스 상황에서 충격적인 사실은 총파업이 24번이나 일어나고 2011년 봄 수많은 사람들이 몇주 동안이나 광장을 점거했는데도 눈에 보이는 성과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양해각서에 명시된 극도로 야만적인 긴축정책 꾸러미 중 단 하나도 철회시키지 못했다. 따라서 긴축정책을 막아 내고 사태를 뒤집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정치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6

이것은 정치에 관한 뒤틀린 관점이다. 정치를 운동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한계가 있는 운동을 대체할 수단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잘못된 개념은 그람시의 “통합국가”Integral State 개념을 곡해해서 사용하는 관점과 정치를 오로지 국가 내부의 투쟁이나 국가를 장악하기 위한 투쟁으로만 보는 관점에서 나타난다. 국가는 정치의 핵심적 부분이 응축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가가 정치와 같은 것은 아니다.

황금새벽당의 부상에 맞선 투쟁 경험이 좋은 사례인데, 이 경험은 운동(과 그 운동 속의 혁명적 좌파들)이 “좌파 정부” 입각이라는 의제를 받아들이지 않아도 어떻게 정치를 할 수 있는지 아주 잘 보여 줬다. 올해[2013년] 1월 19일 반파시즘 시위가 성공적으로 치러진 것을 포함해 반파시스트 운동이 일반적으로 성장한 것은 그리스의 반자본주의 좌파와 그 안에서 지도적 구실을 하는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SEK이 함께 일군 중요한 정치 행동이다. 다음 선거를 기다리며 이런 운동에는 나타나지 않는 시리자보다 이런 요소들이 정치 지형에 훨씬 더 크고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황금새벽당을 분쇄하는 것은 이제 사마라스 정부에 맞서 싸우는 데 꼭 필요한 단계가 됐다. 그리고 파시스트와 국가 탄압에 항의하는 대중 운동이 일어나며 청년들이 새롭게 급진화한 이래 투쟁에 걸린 판돈은 그 전보다 훨씬 더 커졌다. 좌파의 정치적 단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는 노동계급과 급진화하는 청년들 사이의 사회적 단결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시리자가 파시스트에 맞서는 전선을 회피하는 것은 전략적 분열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반자본주의 좌파 세력들이 그것을 막으려 애쓰고 있다.

혁명적 좌파를 옹호하며

결론을 내야겠다. 자본주의의 위기로 과거의 사회적·정치적 동맹 관계가 매우 불안정해지고 있다. 위기의 속도가 모든 곳에서 같지는 않지만, 위기는 전 세계적 현상이다. 이 때문에 옛 세대 활동가들, 핵심으로는 노동계급이 우파 사회민주주의와 결별했고, 좌파 개혁주의 조직들이 부상했다. 그런데 대다수 좌파 개혁주의 조직들은 “늙은 좌파”들이 이끌었다. 이 “늙은 좌파”들은 다시 민중의 호민관을 자처하고 있다. 독일 디링케(좌파당)의 오스카 라퐁텐, 이탈리아 재건공산당의 파우스토 베르티노티, 영국 리스펙트의 조지 갤러웨이, 프랑스 좌파전선의 장 뤽 멜랑숑, 그리스 시리자의 알렉시스 치프라스가 그런 사례다.(물론 치프라스 개인은 매우 젊지만 그 뒤에는 가장 늙은 정당이 있다.) 아랍의 봄 후에 떠오른 “민중의” 정치인들도 이 명단에 넣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 세대 활동가들(특히 청년들)은 거리의 정치, 학생운동의 분출, 자율주의 사상, 억압에 맞선 새로운 급진적 운동 등으로 이끌렸다.7 혁명적 좌파는 이런 발전 과정에 도움이 될 귀중한 이데올로기적 자산이 있지만, 그런 잠재력을 발현하려면 힘들더라도 끈기 있게 활동해야 한다.

혁명적 좌파는 급진화하는 청년들을 포용해야 하지만, 그들이 청년 집단 사이에서 여전히 득세하는 비정치적 운동주의를 넘어 정치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그러려면 전통적인 좌파 개혁주의 정당(또는 가장 급진적 버전의 좌파 개혁주의)보다 훨씬 더 급진적인 이론과 실천이 필요하다.

동시에 혁명가들은 이 급진적 세대와 불만에 찬 노동계급을 연결시켜야 한다. 기성 개혁주의 정당들에 대한 노동계급의 오랜 충성심을 깨고, 그들에게 진정으로 좌파적인 선택지를 제시하려면 말이다. 그러려면 우리는 좌파 개혁주의 조직(어떤 형태이든)들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으면서도 그들의 전략을 꽁무니 좇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에 있는 우리가 투쟁에 개입한 경험을 돌이켜보면, 혁명적 좌파는 [좌파 개혁주의로부터]이데올로기적·조직적으로 독립적이어야 한다. 혁명적 좌파의 독립성을 물신화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최근 격동의 몇 년 동안 투쟁에 참여하며 어렵게 배운 교훈이다.

기성 정치가 불안정해지면 새로운 정치 세력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완전히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전략과 이데올로기적 경향이 다시 나타나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시모어는 “개혁주의적 최소 강령과 혁명적 최대 강령” 사이에서 묘책을 찾아야 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정확히 1920년대의 [개혁주의적]제2인터내셔널이나 [혁명적] 제3인터내셔널이 아니라, [중간주의적] “제2.5인터내셔널”이 하려던 것이다.

그리스 좌파의 전략을 둘러싼 논쟁을 보면, 몇 달에서 몇 년 후에는 국제적으로도 비슷한 논쟁이 벌어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전통에 속해 있음을 당당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자본주의라는 재앙이 없는 세계를 이룩하려면, 그리스의 SEK나 영국의 사회주의노동자당SWP 같은 혁명적 좌파 조직을 건설하는 것이 전략적 핵심 과제다.

MARX21

 

참고문헌
Callinicos, Alex, 2012a, “The Politics of Europe’s Rising Left”, Socialist Worker (19 May), www.socialistworker.co.uk/art.php?id=28461
Callinicos, Alex, 2012b, “The Second Coming of the Radical Left”, International Socialism 135 (summer), www.isj.org.uk/?id=819
Davanellos, Antonis, 2008, “Greek Workers Move Left”, International Socialist Review, 59 (May-June), www.isreview.org/issues/59/rep-greece.shtml
Davanellos, Antonis, 2012, “Where Did Syriza Come From?”, Socialist Worker (US) (17 May), http://socialistworker.org/2012/05/17/where-did-Syriza-come-from
Garganas, Panos, 2009, “The Radical Left: A Richer Mix”, International Socialism 121 (winter), www.isj.org.uk/?id=513
Garganas, Panos, 2012, “Greece After the Election”, International Socialism 136 (autumn), www.isj.org.uk/?id=855
Harman, Chris and Tim Potter, 1977, “The Workers’ Government”, SWP International Discussion Bulletin, number 4, www.isj.org.uk/?id=295
Kouvelakis, Stathis, 2012, “Greece: Stathis Kouvelakis on tasks facing Syriza following its electoral breakthrough”, Links-International Journal of Socialist Renewal, speech delivered on 07/12/2012, http://links.org.au/node/3145
Seymour, Richard, 2012a, “A Comment on Greece and Syriza”, International Socialism 136 (autumn), www.isj.org.uk/?id=854
Seymour, Richard, 2012b, “The Challenge of Syriza”, www.leninology.com/2012/06/challenge-of-Syriza.html

1 Seymour, 2012a and Garganas, 2012. 이 글은 ‘Left Flank‘ 블로그에 처음으로 실렸다. ‘Left Flank’의 편집자 Tad Tietze와 Elizabeth Humphrys에게 감사한다. http://left-flank.org/

2 Callinicos, 2012a and 2012b.

3 Seymour, 2012b.

4 Davanellos, 2008 and 2012.

5 이에 관한 세심한 논의로는 Harman and Potter, 1977을 보시오.

6 Kouvelakis, 2012.

7 파노스 가르가나스는 알렉스 캘리니코스, 프랑수아 사바두와 논쟁하며 이 “풍부한 혼합물”(richer mix)에 관해 예측했다. Garganas, 2009.

[참고자료]영국 노동당 강령 2편

[참고자료]영국 노동당 강령 2편

*우경화되기 전 옛날의 영국 노동당 총천 강령입니다. 

영국 노동당 1945년 총선 강령

“미래를 향하자”

[해설] 1945년 7월 5일의 영국 총선에서 노동당은 48.3%의 지지를 얻어 하원 총 604석 중 393석을 차지하는 대승을 거뒀다. 전쟁 영웅 윈스턴 처칠(보수당)을 물리치고 집권당이 된 것이다. 당시는 유럽 전선에서 포화가 멎은 지 석 달 정도 뒤였고 아시아 전선에서는 아직 전쟁이 끝나기 전이었다. 클레멘트 애틀리를 수상으로 하는 노동당 신정부는 이후 1950년까지 5년 동안 사회 개혁을 단행했다. 지금도 영국 복지제도와 공공부문의 골간을 이루는 것들(대표적으로는, 영국의 무상공공의료제도인 국민보건서비스NHS)이 이때 대부분 만들어졌다. 애틀리 정부는 ‘영국 노동당 역사상 가장 진지하게 개혁을 추진한 정부’로 평가받는데, 이게 결코 공치사는 아니라 할 수 있다. 1945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내건 강령도 그 때까지 노동당 역사상 가장 급진적인 것이었다. 아래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강령은 대공황과 전쟁을 겪으며 완전고용의 달성을 희구하게 된 당시 민중들의 열망을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이때는 (신자유주의 시대인 지금과는 달리) 자본가와 보수세력도 케인즈주의를 수용하여 완전고용을 경제 정책의 목표로 삼았고, 이를 위해 국가가 경제에 적극 개입하는 것을 지지하고 있었다. 단순한 국가 개입 여부만으로는 좌와 우의 차이가 명확히 드러나기 힘든 형편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래의 노동당 강령은 공공부문을 어느 정도나 확대하려 하는지를 통해 그 차이를 드러내려 한다. 공공부문을 최소화하려는 보수당과 달리 노동당은 석탄, 철강 등의 사양 산업에서는 사기업에 대한 국공유화까지 추진하려 한다는 것이다. (전후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는 강령의 앞부분과, 지금은 낡은 내용으로만 보이는 사회복지 관련 부분은 번역에서 제외했다.-인터넷 자료)

만인을 위한 일자리 

모든 정당들이 하나같이 다 만인을 위한 일자리를 떠들어댄다. 모든 정당들이 다 국가 구매력을 유지하고 정부 개입을 통해 국가 수지 변화를 통제함으로써 이런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민간부문의 통제 수준을 놓고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완전고용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는 정부가 공공부문뿐만 아니라 민간부문의 투자와 개발 정책까지 이 프로그램에 얼마나 단호하게 그리고 성공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는 게 엄연한 진실이다. 

다른 당들[보수당, 자유당-역자]도, 나라가 심각한 실업난에 빠지는 한, 민간부문을 진작하기 위해 국가 개입을 충분히 활용할 태세는 되어 있다. 하지만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민간 영역에서 불황이 너무 심각해져서 지금의 공적 개입 수준으로는 균형을 맞추기 힘들게 될 경우(앞으로 분명히 드러나게 될 텐데), 다른 당들은 공적 개입의 범위가 확대되어 한다는 결론을 내릴 태세는 돼 있지 못하다. 

저들은 말한다. “완전고용, 좋지! 민간부문을 너무 간섭하지 않고서 달성할 수만 있다면 말이야.” 반면에 우리는 말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완전고용을 달성해야 한다. 만약 만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산업 전반에 대한 공적 통제력을 강화해야 한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재벌들이 호사를 누리게 하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실업수당이나 타는 신세가 되는 일은 이제 끝장내야 한다. 수백만의 일자리를 뺏고 비참한 상황에 빠뜨리면서 얻어지는 소수의 이른바 ‘경제적 자유’라면, 그것은 너무도 값비싼 것이다.” 

노동당은 무엇을 할 것인가? 

첫째, 토지, 원자재, 노동 등 나라의 모든 자원을 완전고용해야 한다. 생산을 최고 수준으로 높여야 하며 구매력과 연동시켜야 한다. 과잉생산이 공황과 실업의 원인은 아니다. 그 원인은 바로 과소소비다. 우리나라가 전시(戰時)를 제외하고 과연 생산 역량을 모두 활용해본 적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이런 상황은 교정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인민의 생활수준은 상품을 생산하고 생산물의 공정하고 인간적인 분배를 이룰 수 있는 우리의 능력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둘째, 높은 수준의 견실한 구매력은 괜찮은 임금, 사회적 서비스와 보험, 그리고 저소득 계층에게 부담을 덜 주는 조세를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물가가 오르면 화폐와 저축이 그 가치를 상실하기 때문에 당연히 금리와 생활필수품 가격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 

셋째, 핵심 산업과 주거, 학교, 병원 그리고 시민 센터들에 대한 계획적 투자가 자본 지출의 막대한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국민투자위원회(National Investment Board)를 설립해서 사회적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민간부문의 투자 속도를 촉진할 것이다. 적절한 기회를 봐서 효율적인 정부 소유 공장들의 용도를 군수 생산에서 평화 시의 필요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바꿀 것이다. 어디에 새로 공장을 지을지 적절히 통제할 것이며, 꼭 필요한 곳에 정부 소유 공장들을 세울 것이다. 새로운 영국의 그 어느 곳도 낙후 지역이 되어선 안 된다. 

넷째, 잉글랜드은행[당시까지만 해도 민간은행 성격을 갖고 있던 영국의 발권은행-역자]과 그 금융 권력은 공적 소유 아래 놓여야 한다. 그리고 다른 은행들의 활동도 산업의 필요에 부응해야 한다. 

이상의 수단을 통해 완전고용을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인을 위한 일자리’ 정책은 다음 장에서 설명할, 경제의 전반적 확장과 효율성에 대한 정책과 결합되어야 한다. 실제로, 만인을 위한 일자리를 보장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생활수준이 높아지게 되면(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하는데), 생산 수준도 높아져야 한다. 이것은 국민의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산업 전반이 효율적이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을 위해 복무하는 산업 

일부 산업은 전쟁의 시련을 겪으며 효율성과 확장의 풍부한 저력을 입증했다. 반면에 우리 경제 구조에 비해 상대적으로 낡은 일부 산업 설비의 경우를 보면, 전반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성적이 좋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는 경제 강국들과 더불어 살아간다. 이들 나라에서는 해를 거듭할수록 과학 기술이 성큼성큼 도약하고 있다. 영국이 이러한 진보에 뒤쳐져선 안 된다. 영국은 인류 지식과 기술이 제공할 수 있는 최상의 것들을 제공할 수 있도록 산업을 재편해야 한다. 그럴 때에만 우리의 인민은 대발견 시대의 성취를 온전히 수확할 수 있다. 그리고 영국은 강대국의 지위를 견지할 수 있다. 

노동당은 영국의 기술자와 설계자들의 기술을 영국 과학자들의 기술과 결합시켜 동포를 위해 복무하도록 만들려 한다. 전파 탐지, 제트 엔진, 페니실린 등을 발명해낸 영국 과학자, 기술자들의 천재성이 평화 시기에도 십분 발휘되어야 한다. 

각 산업은 이러한 기술을 국민 경제에 활용하기 위해 시험해보아야 했었다. 좋은 결과가 나오면 그것으로 좋은 것이고, 비효율적이고 성공하지 못한다면 정정하면 된다. 

이러한 명제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쟁 전의 반(反)-노동당 정부는 그것을 무시했다. 그래서 영국 산업의 거대한 영역이 불황과 혼란, 퇴보의 상태에 빠졌다. 수백만의 노동계급과 중간계급이 실업과 고용불안의 공포를 겪었다. 이러한 희생을 동정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린 이것이 국민적 수치임을 분명히 확인해야 하며, 행동에 나서야 한다. 

노동당은 사회주의 정당이다. 그리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국내에서 노동당의 궁극 목표는 대영 사회주의 연방을 건설하는 것이다. 자유롭고 민주적이며 효율적이고 진보적이며 공공성으로 충만하고 모든 자원이 영국 인민을 위해 쓰이는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주의는 하루밤새 이뤄지는 게 아니며, 주말의 혁명으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노동당원들은 영국 인민이 다들 그런 것처럼 무척 실용적인 사람들이다.(강조는 옮긴이) 

국민 경제에 직접 복무시킬 수단으로서 공적 소유나 관리의 대상으로 삼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춘 기초 산업들이 있다. 현재 훌륭한 성과를 보이고 있고 앞으로도 지금 그대로 쓸모 있는 활동을 벌이도록 놔두는 게 좋은 다수의 중소기업들도 있다. 또한 어떤 산업들은 공적 소유의 대상으로 삼기에는 아직 섣부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인의 생활수준을 저하시키면서 자본의 구조와 이윤을 고수하려는 행위, 즉 폭압적인 반사회적 독점이나 카르텔 담합을 통해 국가의 이해에 반하는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막고 국민의 필요에 부응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건설적 감독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노동당은 국민들에게 다음과 같은 산업 프로그램을 제시한다. 

1. 연료와 전력 산업의 국공유화. 지난 이십 여 년 동안 영국의 가장 소중한 원자재를 생산해온 석탄산업은 수백 개의 잘게 쪼개진 기업들의 소유 아래 혼란을 거듭했다. 이들 기업을 공적 소유 아래 합병하면, 규모의 경제를 이루게 될 것이며, 전국 모든 탄광에서 생산 수단을 현대화하고 안전 수준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가스와 전력 사업을 공적 소유로 만들면, 가격은 낮추면서 낭비의 경쟁을 막고 연구 개발 협력의 길을 열게 될 것이며 그래서 결국은 분배의 비경제적 영역에서 개혁이 이뤄질 것이다. 이로써 다른 산업들이 이득을 볼 것이다. 

2. 육로 운송의 국공유화. 철도, 도로, 항공 그리고 운하 같은 교통 서비스들을 하나로 통합하지 않고서는 이들을 조정한다는 게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들 서비스를 국공유화하지 않고서 통합하려 한다면, 민간 독점기업의 분파적 이해나 거드름에 맞서 끊임없는 투쟁을 벌여야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다른 산업들이 위협을 받게 될 것이다. 

3. 철강과 제철 산업의 국공유화. 민간 독점기업은 높은 가격을 유지하면서 비효율적인 고비용 공장을 존속시킨다. 오직 민간 독점기업을 국공유화할 때에만 이 산업 영역은 효율화될 수 있다. 철강․제철 산업을 적절한 보상을 지불한다는 조건 아래 사회화한다면, 이들 산업은 노동자들의 적절한 지위와 노동 조건을 보장하면서도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하도록 효율적으로 작동하게 될 것이다. 

4. 독점과 카르텔의 공적 감독. 이것은 산업 효율성을 높여 국민 경제에 복무하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다. 반사회적인 폭압 행위들은 금지될 것이다. 

5. 수출 교역을 위한 단호하고 선명한 프로그램. 우리의 수출 교역을 정상화하고 영국의 생존과 번영에 필수 불가결한 식량과 원자재를 구입하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어떠한 형태로든 국가의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의 지원에는 조건이 있다. 효율적이며 진취적인 산업에 한해 지원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게으름뱅이와 훼방꾼은 더 나은 길로 인도되어야 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실패할 여유가 없다. 

6. 적절한 경제 통제, 물가 통제의 확립. 이것은 전시 경제를 평화 경제로 전환하는 데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며 또한 모든 시민(전역한 남성과 여성들을 포함하여)에게 공정한 역할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다. 원자재 사용에는 우선순위가 있어야만 하며, 식량 가격은 동결되어야 하고, 소수의 사치재가 아니라 인민의 주택 건설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난 번 전쟁 때 그랬던 것처럼 짤막한 호황 뒤에 붕괴가 닥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물가의 급상승과 인플레이션에 뒤따라 도산과 실업 대란이 발생하는 것을 원하지도 않는다. 건전한 경제 통제, 그것이 아니면 파산뿐이다. 

7. 위와 같은 목표들을 이루기 위한 정부 부처 및 행정 업무의 개선. 정부 경제정책의 목적은 산업을 진작시키는 것이어야지 관료주의로 얽매이는 것이어선 안 된다. 

영국 노동당 1974년 2월 총선 강령 

“우리 함께 일하자 

- 위기에서 벗어날 노동당의 길” 

[해설] 1974년 2월 총선을 앞두고 영국은 심각한 경제․사회 위기에 빠져 있었다. 바야흐로 전후 자본주의의 황금기 이후 최초의 전 세계적 불황이 오일 쇼크(에너지 위기)라는 형태로 닥쳐오고 있었다. 그리고 대처 정부의 정책들을 예고하는 전임 히드 보수당 정부의 반(反)노동조합 정책 때문에 노자간의 대결도 심각한 양상을 보였다. 이런 가운데 실시된 총선에서 노동당은 37.1%를 얻어 보수당보다 지지율은 조금 뒤쳐졌으나 (소선거구제의 영향으로) 의석수는 보수당보다 앞선 301석(총 623석)을 차지했다. 그 결과, 1970년까지 수상을 역임한 바 있는 헤럴드 윌슨 당수를 중심으로 노동당 신정부가 구성됐다. 하지만 원내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불안한 집권일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여덟 달 뒤인 10월에 다시 총선이 실시됐다. 이때는 노동당이 39.2%의 지지로 총 319석을 확보해 과반수를 넘겼다. 그런데, 2월 총선이든 10월 총선이든 노동당이 내건 선거 강령은 내용상 큰 차이가 없었다. 그것은 이제까지 노동당의 선거 강령으로는 가장 급진적이며 사회주의적인 것이었다(심지어는 1945년 선거 강령보다도 더). 1970년 총선 패배 이후 노동당은 3년 동안 당내 좌파(토니 벤 하원의원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와 TUC(노동조합총평의회, 말하자면 영국 노총)를 중심으로 열띤 노선 논쟁을 벌였고, 그 토론 결과가 1973년 당대회에서 당 공식 입장으로 채택됐다. 1974년 두 차례 총선 당시 노동당 선거 강령은 바로 이 당대회 강령을 반영하고 있었다. 이들 강령의 급진성은 공세적인 국공유화 정책에 있다. 초국적 자본으로부터 비롯된 영국 경제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거대 독점 자본을 과감히 사회적 소유와 통제의 대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 원래 1973년 당대회 강령은 25대 대기업을 ‘국민기업위원회’를 통해 국유화하겠다고 명시하기까지 했다. 1년 뒤의 선거 강령에서는 그 내용이 좀 더 온건하게 표현되었지만, 그래도 고수익 사기업까지 국공유화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입장만은 계속 견지했다. 그러나 막상 노동당 신정부는 선거 강령의 내용을 실현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국공유화 정책을 앞장서 추진하던 토니 벤은 정부 내에서 주변화됐고, 1976년 외환위기가 닥치자 정부는 오히려 선거 강령의 사회주의적 원칙과는 정반대인 시장지상주의 정책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 좌파의 도전이 좌절되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가 열리는 순간이었다(이러한 역사적 과정에 대해서는, 고세훈의 영국 노동당사[나남출판, 1999] 제9장과 제10장을 참고하라). 한편 아래의 강령은 그밖에도 개발용 토지의 국공유화, 산업 현장과 국가 수준에서 노동자의 참여를 강조하는 산업민주주의 등의 주목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영국의 당시 경제 위기에 대해 설명하는 앞부분, 그리고 유럽경제공동체에 대한 입장 등 우리에게는 좀 낯선 내용들은 번역에서 생략했다.) 

사회 정의

영국의 위기에 신선한 처방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노동당은 이것이 사회 정의의 요구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인식과 함께 시작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련의 긴급 행동이 필요하다. 그것은 물가 상승과 대결하는 것이고, 최악의 빈곤을 그 뿌리부터 해결하는 것이며, 우리나라를 보다 공정한 삶의 터전으로 확연히 바꾸는 것이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 노동당 신정부는 임기 초기에 다음의 정책들을 추진할 것이다. 

1. 새 정부의 첫 의회 회기 내에 독신 가구에는 10파운드씩, 기혼 가구에는 16파운드씩 연금과 기타 수당을 인상하여 연금 생활자, 미망인, 환자, 실업자를 즉각 지원한다. 이후 매년 연금과 수당을 평균 국민 소득의 증가와 비례해서 인상할 것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보수당 정부의 불충분하고 불공평한 장기 연금 제도를, 자산 실사가 폐지되고 여성에게 완전한 동권을 부여하도록 재설계된 포괄적 연금 제도로 바꿀 것이다. 

2. 장애인을 위한 새로운 지원 제도를 도입한다. 

3. 새로운 아동 현금 수당 제도를 도입해서 빈곤 상태에 있는 저소득층 가구를 지원한다. 이 수당은 첫째 자녀를 포함한 모든 자녀를 대상으로 하며, [자동적으로 가장이 수령하는 방식이 아니라-역자] 어머니도 수령할 수 있도록 한다. 

4. 핵심 서비스와 재화에 대해 엄격한 물가 통제를 실시한다. 대량 구매와 새로운 판매 협정을 통해 물가 상승을 안정화시킬 것이며, 가계에 가장 심각한 부담을 안겨주는 품목들에 대해서는 선택적으로 보조금 제도를 적용할 것이다. 

5. [보수당 정부의-역자] 주택금융법을 폐지하고, 임차인을 이윤 추구의 대상으로 삼지 못하도록 임대료를 동결할 권한을 지방자치단체에 되돌려준다. 가구 딸린 임대 주택에서 임차인이 강제 퇴거 당하는 것을 막을 것이며, 가구가 딸려 있든 그렇지 않든 임대 아파트의 임대료 인상을 제한할 것이고, 민간 임대 주택을 지방자치단체가 인수하는 것을 장려할 것이다(임대인이 임차인과 함께 사는 실거주자인 경우는 제외). 자가 소유를 원하는 가구에 적절한 금리의 담보 대출이 안정적으로 이뤄지도록 보장하는 방안을 취할 것이며, 농지에 부속된 별장 주택을 철폐할 것이다. 또한 자가 소유자의 대출금 상환을 보장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의 주거 보조금을 인상할 것이다. 

개발용 토지는 국공유화할 것이다. 그래서 신규 주택, 학교, 병원과 여타 목적을 위해 대지가 무상 혹은 저렴한 비용으로 공급되도록 만들 것이다. 토지의 국공유화는 토지를 통한 이윤 추구를 중단시킬 것이다. 단, 이것은 절대로 실거주용 소유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6. 소득과 자산을 재분배한다. 부유층을 대상으로 하는 부유세를 도입할 것이며, 일정액 이상의 개인 자산의 양도에 대해서도 새로운 세제를 도입할 것이다. 또한 자산 투기에 무거운 세금을 물릴 것이다. 여기에는 자산 관리 회사에 대한 새로운 과세도 포함된다. 그리고 조세의 모든 영역에서 탈세를 근절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노사관계 

물가 및 조세 정책과 관련한 이상의 조치들은 영국에 새로운 사회적, 경제적 평등의 길을 열려는 노동당 신정부의 결의를 행동으로 입증할 것이다. 소득 정책에서 수많은 실패가 있었기 때문에(노동당 정부 때도 그랬지만 보수당 정부의 강제적 임금 통제는 더욱 심각했다) 오직 행동만이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 국민적 부의 보다 공정한 분배를 이루려는 정부의 실질적 행동만이 ‘소득 정책’이란 것이 기만적 억압책이 아니라는 점을 노동자들과 그 가족, 그리고 노동조합에 설득할 수 있다. 특히 국가 부채의 원흉으로 공격당하는 공공서비스나 공기업에서 일하는 경우라면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정부가 (저소득층과 연금 생활자에게 가장 심각한 고통을 안겨주는 고물가, 고금리 그리고 여타 부담들에 맞서) 행동할 태세가 돼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노동조합은 분명히 자발적으로(자유로운 사회라면 오직 이러한 자발적인 방식으로만 일을 성사시킬 수 있다) 이 모든 정책의 성공을 위해 협력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제안한 물가 정책이, TUC[영국 노총-역자]와 우리 당이 이미 합의한 공동의 이해를 통해, 생산에 비례해 화폐 소득이 오르는 올바른 경제 풍토를 조성할 것이라 믿는다. 이것이 바로 노동당이 TUC와의 오랜 협의를 통해 합의에 도달한 새로운 사회 계약의 핵심이다. 이것이 노동당 신정부의 새로운 경제 정책에서 중심적 지위를 차지해야 한다. 

이에 따라 노동당 정부는 다음의 정책들을 추진할 것이다. 

(ⅰ) 보수당이 설립한 임금위원회 구조를 폐지한다. 

(ⅱ) 가장 긴급한 과제로서 [보수당 정부의-역자] 노사관계법을 철폐한다. 그러고 나서, TUC와 토론을 통해 합의한 대로, 고용보호법과 산업민주주의법을 신설해서 인민에 의한 산업 통제를 강화한다.

(ⅲ) 소득 분배에 대해 자문하는 상설 왕립 위원회를 설립한다. 이 기구는 근로 소득과 불로 소득 모두 다루며, 특히 차별과 일자리에 대한 기초 조사를 실시한다. 

(ⅳ) 비정부기구로서 ‘화해-중재 서비스’를 설립한다. 이 기구의 임무는 전국적, 지역적 수준에서 벌어지는 노사 분쟁을 다루는 것이다. 

고용과 확장 

하지만 산업에 새로운 정신을 불러일으키려면 그 이상의 조치가 필요하다. 영국 인민은 노동자로서든 소비자로서든, 현재 우리의 경제생활을 지배하는 막강한 사적 자본에 대해 보다 강력한 통제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다음의 정책들을 추진해야만 한다. 

7. 산업 발전과 수출을 지속시키고 확장한다. 그리고 새로 제정할 산업법이 규정하는 권한과, 정부가 재계와 더불어 보다 효과적으로 계획을 입안할 수 있게 만들어줄 계획협약 제도(Planning Agreement system)를 통해 이러한 목표를 추진하는 데 필요한 수단을 확보한다. 

기업에 공적 자금을 직접 지원할 경우에는 항상 그 대가로 해당 기업의 일정 소유 지분을 공적 소유로 확보한다. 

[해설] 계획협약 제도 - 정부와 민간 대기업 그리고 노동조합 사이에 해당 기업의 제품 가격, 임금 수준, 재투자 방향, 노동 정책 등을 놓고 협약을 체결하는 제도. 이런 방식으로 사적 자본을 정부의 경제 계획 아래 두려 한 것이다. 

8. 개발용 토지를 국공유화한다는 위 5항에 담긴 우리의 계획에 더해, 광물 자원에 대한 권리를 활용해서 공기업을 크게 확대할 것이다. 또한 조선, 선박 보수, 선박 설계, 항만, 비행기 기체 및 엔진 제조를 공적 소유와 통제 아래 둘 것이다. 하지만 정부 보조금으로 운영되거나 만성 적자인 산업들에 한해서만 공공부문을 확대하려 해서는 안 된다. 고수익 산업 부문이나 이러한 산업에 종사하는 개별 기업들도 인수할 것이다. 이러한 영역에서 공적 소유는 정부가 물가를 통제하고 투자를 촉진하며 수출을 장려하고 고용을 창출하며 무책임한 다국적 기업들의 횡포로부터 노동자와 소비자를 보호하고 국민의 이익을 위해 국민 경제를 계획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핵심적이다. 따라서 북해와 켈트 해의 석유 및 가스에 대한 우리의 제안에 더해 일부 제약업체, 도로 운송, 건설, 기계 장비 등도 국공유화에 포함할 것이다. 은행, 보험 그리고 주택조합 분야는 아직 논의 중이며 당의 결정이 이뤄지지 않았다. 

[해설] 1974년 당시에는 영국의 금융 노동조합들이 금융산업의 국공유화에 반대해서 노동당 선거 강령에 금융산업에 대한 대안이 포함되지 못했다. 참고로, 영국 노동당이 결정적으로 우경화하기 직전인 1983년 총선 강령(「영국을 위한 새로운 희망」)은 다음과 같은 금융 정책들을 제시했다. 

- 사적 기관과 정부로부터 (북해산 원유 수익을 포함해서) 새로운 재원을 뽑아내 산업에 투자하기 위해 국립투자은행(National Investment Bank)을 설립한다. 

- 잉글랜드은행[영국 중앙은행-역주]을 통해 은행 여신을 보다 직접적으로 통제한다. 은행 및 여타 금융기관들과 정부 사이에 발전 계획을 체결한다. 

- 우체국 금융망을 통해 작동하는 공공은행을 창설한다. 

- 로이드(Lloyds) 사를 비롯한 런던 금융가를 통제할 증권위원회를 설립한다. 

- 지역연금 가입자들이 노동조합을 통해 연금 운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새로운 연금제도법을 도입한다. 

- 정부, 재계, 노동계 3자 대표로 구성된 투자 감시 기구를 설립한다. 

현 정부가 헤집어 놓은 자산과 면허권들은 공적 소유로 되돌려놓을 것이다. 그리고 노동당 1973년 당대회 강령이 제안하는 구조와 기능을 갖춘 강력한 국민기업위원회(National Enterprise Board)를 창립할 것이다. 

[해설] 국민기업위원회(NEB) - 국민기업위원회는 국가 지주회사로서, 민간 대기업의 주식을 사들여 점진적으로 국공유화한다. 국민기업위원회의 이사회는 정부, 재계, 노동계 대표로 구성된다. 만약 민간 대기업이 계획협약을 준수하지 못하면, 국민기업위원회가 해당 기업의 주식을 매입하거나 산하 공기업들의 구매력을 활용해서 견책을 가한다. 국민기업위원회를 통해 창출되는 새로운 공공부문의 정책 목표로는, 고용 창출, 투자 촉진, 기술 개발, 수출 증대, 정부 물가정책 보조, 초국적 기업 견제, 산업민주주의의 확산, 수입 대체 등이 제시되었다. 

9. 우리는 현존 공기업들의 사회적 성격을 더욱 강화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노동조합과의 협의를 통해, 현존 공기업이 노동자와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보다 책임 있게 운영되도록 조치를 취할 것이다. 

10. 노동당 1973년 당대회 강령이 제안하는 노선에 따라, 새로운 공기업, 선택적 원칙에 입각한 사기업 지원을 통해 지역 발전을 더욱 촉진한다. 우리는 지역고용장려 제도를 유지하고 개선할 것이다. 북해산 원유 수익은 스코틀랜드를 비롯해 지역 발전을 원하는 모든 지방의 고용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일체의 조치들에 투입될 것이다. 

11. 강력한 전국노동위원회(National Labour Board)를 통해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전개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정리해고 노동자들이 자동적으로 재훈련을 받을 권리를 가져야만 한다. 즉, 인원 조정은 실업이 아니라 재훈련과 직업 전환으로 이어져야 한다. 

사회 진보 

이상의 조치들은 영국의 산업을 책임 있는 경제 체제로 바꾸기 위한 것이다. 한편에서는 엄청난 사적 자본이 축적되고 있는 데 반해 다른 한편에서는 우리의 공공서비스를 유지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노동당 정부는 다음의 정책들을 추진할 것이다. 

12. 국민보건서비스[NHS, 영국의 무상공공의료제도-역자]를 개정하고 확장한다. 진료비를 철폐하고, 무상 가족계획을 도입하며, 병원 서비스에서 사적 행위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지역 보건 당국을 민주적 기구로 바꾼다. 

우리는 또한 장애인 수당을 신설할 계획을 갖고 있다. 

13. 주간(晝間) 보육 시설을 포함하는 전국적인 보육원 설립 계획을 통해서, 16-18세 청소년을 위한 교육 시설의 대확장을 통해서, 그리고 특별 지원을 필요로 하는 어린이들을 위한 추가 재정 투입을 통해서 교육 서비스를 확장한다. 중등학교의 완전 보통교육화 속도를 더욱 앞당길 것이다. 사립학교에 대한 모든 종류의 세금 경감과 예외적 처우를 철폐할 것이다.

14. 현재 거의 붕괴 상태에 있는 모든 공공서비스의 고용 인력 확대 필요성에 특히 주목한다. 특히 도시 지역에서 이 문제는 심각하다. 우리의 도시들은 공공서비스를 절실히 요구하고 있으며,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받아야 한다. 적절한 수의 인원이 배치되고 이에 필요한 재원이 투입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제안은 경제성을 기준으로 해서만 평가되어선 안 된다. 어떤 근거에서든 차별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것이 사회주의자들의 의무다. 여기에서 제시하는 우리 제안들 중 상당수는 커다란 경제적 비용을 감수하지 않고도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을 지니고 있다. 

15. 어떤 연령대의 여성이든 교육, 훈련, 고용, 사회보장, 공적 보험, 조세, 자산 소유권, 혼인과 가족법 등에서 동등한 지위를 누려야 한다. 일하는 여성들은, 아내든 어머니든 그게 아니면 친척들을 부양하든, 지역사회로부터 더 많은 관심을 받아야 한다. 우리의 차별금지법을 더욱 실질화하는 데 필요한 강력한 법적 기구를 신설할 것이다. 

16. 국적법을 개정하여 우리나라의 이주민 정책이 시민권 원칙에 보다 충실하도록 만든다. 특히 피부색에 따른 차별을 근절할 것이다. 

17. 전국소비자청(National Consumer Authority)을 설립한다. 이 기구에 충분한 재정을 지원해서 소비자와 제조-판매자 사이의 힘 관계를 교정하도록 만들 것이다. 

국민이 결정하게 하라 

이 강령에서 제시하는 목표들은 사회주의적 목표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말(‘사회주의’)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우리 젊은이들 사이에서 특히 강렬한 저 이상주의와 고도의 지성을 살려낼 길은 오직,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 위기라는 역경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목표를 보다 드높이 설정하는 것뿐이다. 다음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하는 바다. 

(a) 권력과 부의 불균형을, 일하는 사람들과 그 가족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게 근본적으로 바꾼다.

(b) 영국에 존재하는 일체의 빈곤을 근절한다. 그리고 해외의 빈곤에 맞서는 투쟁에 우리나라의 기여를 실질적으로 늘려 가는 데 앞장선다. 

(c) 산업 영역에서 순전히 노동자와 지역사회에만 책임을 지는 새로운 권력을 키운다. 

(d) 소득, 자산 그리고 생활수준에서 경제적 평등을 획기적으로 강화한다.

(e) 완전고용, 주거, 교육 그리고 사회적 수당에 훨씬 더 많은 중요성을 부여함으로써 사회적 평등을 신장한다. 

(f) 우리 인민이 생활하고 일하며 여가를 즐기는 이 땅의 환경을 개선한다. 

물론 이러한 목표들이 이 강령이 제시하는 특정한 항목들처럼 단숨에 완수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단번에 해치울 수는 없다. 게다가 위의 목표들 사이에는 우리가 선택한 우선순위가 있다. 이 총선 강령은 노동당이 지난 3년 동안 민주적 과정을 통해 토론한 새로운 정책들을 담고 있으며, 차기 노동당 정부가 차기 의회 임기 중에 모든 노력을 다해 수행하려 하는 몇 가지 약속들을 선별하여 제시하고 있다. 

이 과업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 일각에서, 영국 인민은 더 이상 스스로를 통치할 수 없다고, 개명한 공동체로서 다양한 민주적 기구들을 통해 단결하여 행동할 능력을 상실했다고 훈계를 늘어놓는 저들 절망의 유령들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러한 모욕적인 공격은 다름 아니라 보수당 정부로부터 나오고 있다. 이들은 바로 그 민주적 기구들, 즉 지방자치단체, 노동조합, 그리고 하원의회 그 자체를 부패시키고 파괴하는 책략들을 너무도 많이 저질렀다. 노동당은 다름 아닌 이들 민주적 기구들을 무기로 영국 민주주의의 힘을 복구하고 강화시켜 나갈 것이다.

민주집중주의 조직에서 토론의 역할

데이비드 홀링스
번역박상우

[이 글은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내에서 2013년 내부 논쟁 과정에서 나온 글이다기간이나 범위를 제한하면서 규율 위반이라고 징계할 것이 아니라자유로운 토론과 논쟁비판과 이견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다루고 있다논쟁의 구체적 맥락이 있기는 하지만민주집중제와 레닌주의에 대한 재평가와 혁신을 위한 고민에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라서 번역 소개한다.]


몇몇 신성한 공식을 아무 생각 없이 되풀이하는 것이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종파는 스탈린주의자들뿐 아니라 트로츠키주의자들 사이에도 많다그러나 진정으로 전통을 구현한다는 것은 끊임없는 창조적 혁신을 필요로 한다.”

우리의 민주집중주의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첫째충분히 토론한 후에 결정을 내려야 하지만 일단 다수결로 결정을 하면 그것은 모든 당원에게 구속력을 가져야 한다이는 우리 생각을 실천에서 검증하고자 한다면 꼭 필요한 것이다.”1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글, ‘레닌주의는 끝났는가?’(Socialist Review, February, 2013)에서 가져 온 위의 문장들은 레닌주의 조직에 대한 두 가지 다른 접근 방식을 보여준다첫 번째 문단은,사회주의 전통이 계속 유의미하려면그것은 무언가 정적이고돌에 새겨져 바꿀 수 없는 것일 수 없다고 올바르게 얘기한다즉 우리가 그 속에 살면서 바꾸려고 노력하는 객관적 조건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두 번째 문단은 이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이 문단은민주집중제 모델이 토론투표,행동 통일이라는 3단계 공식으로 축소될 수 있다고 말한다뿐만 아니라우리 생각을 실천에서 검증하려면이 공식은 필수적이라고 말한다이는 참 과감한 주장인데왜냐하면 어느 사회주의 조직이든 자신의 생각을 실천에서 검증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이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모든 사회주의 조직은 자신들의 생각을 실천에서 검증하고자 한다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변혁활동가들인 것이고자본주의 변혁을 위해 실제적 전략을 짜는 것이다그렇다면 이는 모든 사회주의 조직이 반드시 위의 모델을 사용해야 한다는 뜻인가유감스럽게도 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무 생각 없이 신성한 공식을 되풀이하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어떻게 서로 모순돼 보이는 이 두 가지 생각이 나타난 것일까민주집중제란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되풀이해야할 신성한 공식인가아니면 우리는 객관적 조건의 변화에 조응하며 끊임없이 이를 조정해야 하는가?

만일 위와 같은 민주집중제 모델이 우리의 생각을 실천에서 검증할 유일한 방법이라면분명 이 모델은 믿을만한 모든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에서 사용됐어야만 하며최소한 국제사회주의자들(IS)과 사회주의노동자당(SWP)에서는 창립 이래 계속 적용되었어야 한다그렇지 않다면,우리는 그들이 진정으로 영향력있는 혁명가들이 아니었으며진정한 혁명 운동은 단 한가지 올바른 민주집중제 모델과 함께이제 겨우 시작됐다는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토니 클리프의 <레닌당 건설을 향하여>의 인용구에서레닌은 민주집중제에 대해 조금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고 지적하는 것이 문제될 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훈련의 중요성과 이 개념이 노동계급 정당에서 어떻게 이해되어야할 지에 관한 이론적 관점을 이미 여러 번 밝혔다우리는 이를 행동의 통일토론과 비판의 자유로 정의했다.”2

이 개념은 캘리니코스의 공식과 동일한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지만그 둘 간의 차이를 알아채기란 별로 어렵지 않다둘 다 토론의 자유를 말하고행동의 통일을 말한다그러나비슷한 점은 거기까지다캘리니코스에게 토론은 투표와 함께 끝난다레닌에게토론은 행동(실천)과 병행된다토론과 행동은 상호 작용하기 때문에그 둘은 구분되지 않는다

투표로 결정이 났다고 토론의 필요성이 사라지지 않는다예를 들어 봉기와 같이 즉각적이고 규율잡힌 행동에 직면하지 않는 한행동 방침을 다수결로 정하자마자 토론 의무가 종결될 수는 없다그러한 상황(봉기)에서조차 즉각적 상황이 지나가면곧바로 그 전략에 대한 총체적이고 솔직한 평가가 있어야만 한다그 상황에 가장 적절한 전략을 택했었는지 확실히 밝힐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토론을 통해서다.

단일한 노선으로 어떻게 전망을 검증하는가?

액면 그대로다이 질문은 통일된 방식으로 우리의 전망을 검증해야 한다는 생각에 반대한다는 뜻이다조직 내부에서 토론과 반대의견을 금지한다면결정된 노선이 옳지 않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공공연히 이야기하면서 그 결정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물론 반대의견을 가로막지 않으면사람들은 자신의 견해를 공공연히 피력할 것이며다수의 결정에 반대해 적극 활동할 수도 있다하지만 우리는 동지들을 이보다 훨씬 더 높이 평가하며,이견을 대담하게 말하면서도 동의하지 않는 결정의 실천에는 동참하리라고 믿는다.

많은 경우 자유롭게 반대할 수 있는 환경이 단결된 행동을 더 많이 보장한다이안 버철이 지적했듯이만일 어떤 동지가 다수 결정에 동의하지 않고계속 설득되지 않은 채로 있다면그는 다수 결정에 맞서기 보다그 결정의 실행에 힘을 싣지 않을 것이다.

변혁적 정치는 확신에 달려있다동지들은 단지 투표로 결정했다고 해서 새벽 6시에 비가 오는 와중에 신문을 팔러 나가지는 않는다그들은 그 신문의 내용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그리고 신문과 조직에 대한 자부심이 있을 때 비로소 그렇게 한다.”3

만일 지도부가 단결된 행동을 원한다면 시간을 정해서 개표와 함께 토론을 막아버릴 게 아니라충분한 토론 시간을 보장해서 더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표결에서 이기길 원하는 지도부는 협의회에 가능한 더 많은 지도부 친화적 인물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조직할 것이고반대파의 논쟁할 권리를 제한할 것이다그래서 많은 당원들이 [괜시리혼란스러워할 필요가 없게끔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반면,] 토론에서 이기길 원하는 지도부는 협의회에서 가능한 많은 시간과 장소를 반대파의 주장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제공할 것이다협의회 진행위원들이 중립을 지키도록 할 것이며반대파의 가장 뛰어난 논자들이 토론에 나설 수 있도록 할 것이다이것은 어떤 자유주의적 도덕 원리에서 공평성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이렇게 하지 않는다면진정으로 토론에서 상대를 승복시키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토론에서 이기고자 하는 지도부는 그들의 입장과 소수파를 설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그렇게 할 것이다.”4

두 가지 민주주의 모델

사실 최근 몇 달간 SWP에 있었던 동지들이라면 위에 언급된 두 가지 형태의 민주집중제가 다양한 쟁점들에 적용돼왔음을 잘 알것이다우리가 UNITE 노동조합 사무총장 선거에서 제리 힉스를 지지하기로 결정하였을 때당내 일부는 렌 맥클러스키를 지지하였다

그들 중 다수가 표결 전에 자신들의 견해를 피력했으며투표 종료 이후에도 맥클러스키를 지지했어야한다고 공공연히 이야기하였다(렌 맥클러스키는 2011년부터 UNITE의 사무총장으로 재직했으며, 2013년 선거에서 144,570표를 얻어 재신임되었다. SWP가 지지했던 제리 힉스는79,819표를 얻어 당선되지 못하였다.) 

캘리니코스에게 이런 행동은 규율위반이겠지만그러나 레닌에게는 그들이 적극적으로 맥클러스키를 위한 선거운동을 했어야만 규율위반이었을 것이다내부에서 반대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은 생각을 주고받는 건강한 행동이다

레닌에게 있어서드러내놓고 총회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충분히 받아들여질만한 일이고,규율위반이란 오직 어떤 동지가 적극적으로 결정에 불복해 행동했을 때만 발생하는 것이다어떤 상황에서 우리가 내린 결정이 틀렸다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을 용인하는 것이 바로 레닌주의 전통인 것이다.

이는 캘리니코스의 글이 겨냥했던 악명 높아진 어느 징계 사건와 대조된다이 사건에서는총회가 끝나자마자 바로 토론을 종결하려 했다일단 표결로 결정이 내려지면그 결정은 옳은 것이고 더는 논쟁할 수 없으며 이제는 단결해서 앞으로 나아가야한다고 했었다.

이것은 사실 더 나약한 형태의 민주집중제이다어느 행동 방침이 최선인가를 찾기보다 어느 행동 방침을 따라야하는가를 표로 결정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다수결로 행동 방침을 결정할 수는 있다그러나투표가 올바른 답을 정해준다고 말할 수는 없다우리가 투표로 A를 결정하는 것은, A가 꼭 정답이라는 게 아니라단순히 A가 이제 우리의 할 일이라고 말하는 것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A에 투표하였다고 다른 대안들을 토론할 수 없다는 것은 터무니없다그렇게 하는 것은 올바른 답을 찾으려는 우리의 능력을 되려 제한한다투표는 행동 방침을 결정할 수는 있어도정답을 알려주진 않기 때문에지속적인 논쟁과 그 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재평가하는 시도가 있어야만 한다.

자신의 관점을 검증하길 원하는 사회변혁 활동가들이 이용하는 민주집중제에는 결코 한가지 형태만이 아니라 두 가지 버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어느 버전이 우리가 처한 객관적 조건에서 최선인지 토론할 수 있다.

총회 결정의 권위를 유지하는 법

민주집중제의 어떤 버전도 총회의 결정이 반대 의견그룹에 의해 번복되는 것을 허용하지는 않는다일단 내려진 결정은 모든 회원에게 구속력을 가질 것이다결정이 이루어진 후에도 토론이 허용되고그 결정에 동의할 의무를 강제하진 말아야 한다.

이는 결정을 따를 의무가 없다는 것과는 다르다우리가 보았듯이 제리 힉스를 위한 선거운동을 하라는 의무는 있었지만(아니면 최소한 맥클러스키를 위한 선거운동을 하지 말라는), 동지들 간에 다양한 견해를 가지고 토론하는 것을 금지하지는 않는다.

분쟁조정위원회 보고서에 있던 협의 내용은총회에서 인정된 보고서가 다음 총회에서 표결로만 번복될 수 있는 건 문제라는 것이었다이는 보고서를 채택한 총회 결정을 지지하면서도보고서의 성격과 절차에 대해서 더 많은 논쟁이 필요하고 또 이후 총회에서 보고서의 승인이 번복되도록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날의 우리에게 어떤 모델이 가장 효과적인가?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의 성격에 대한 철저한 분석없이 현재 상황에서 어떤 형태의 민주집중제가 가장 적절한가를 정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예를 들어 노동자 투쟁의 하강기에 중앙집권적 지도부는 조직 결집을 위해 필요할 수 있다

계급투쟁의 고양기에는노동계급으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지도부가 혁명적 투쟁의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기에 개별 단위와 작업장에 더 많은 자율성이 필요할 수 있다나는 현재 오늘날 영국의 계급세력에 대한 상세한 분석을 제공할만한 위치에 있지 못하므로 일반적인 논점을 유지하겠다.

현재 우리는 우리 편의 투쟁 수준은 상대적으로 낮고 지배계급으로부터의 공격은 폭압적인 시기에 살고 있다일반적으로는 계급투쟁의 수준이 낮지만그럼에도 특정 사안들예를 들면 침실세 반대(침실세는 영국에서 공공임대주택 등에 살며 주택보조금을 받는 서민층에 부과되는 것으로가족수에 견줘 집에 남는 침실이 있으면 주택보조금을 14~25% 삭감한다는 내용이다), NHS(국민의료제도매각 시도 반대에서는 국지적 저항이 있어왔다

어느 것이 먼저 터질지는 불확실하더라도 여전히 반격할 수 있는 많은 사안들이 있다이와 같은 시기에는당이 신속하게 방향을 전환할 수 있어야만 한다사람들이 반격에 나서는 특정 사안을 중심으로 에너지를 모으면서다른 쟁점에 대한 투쟁이 벌어질 때 초점을 바꿀 수 있는 전술적 유연함을 유지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침실세 사안에 모든 관심을 쏟고 있었더라도사회보장급여 상한제에 대한 저항이 더 크다면 우리가 이쪽으로 초점을 변경하지 않는 것은 불합리할 것이다그러려면조직의 결정을 실행하면서 동시에 내부에서 대안적 견해를 발전시키고 주장하는 민주적 구조와 목소리들이 지속적으로 존재해야 한다.


레닌 없는 레닌주의

그렇다면 이러한 대안적 견해들은 어디에서 오는가지도부에서 나와서 당에 제시되는가처음부터 완전히 형태가 갖추어져서 시행되기 전에 투표만 하면 되는 식으로당연히 그렇지 않다이에 대한 교훈은 볼셰비키 지도부 안에서 왜 그렇게 잦은 교체가 있었는지를 설명하는 토니 클리프의 글에서 얻을 수 있다.

어떻게 지도부 내에 이런 신속한 교체가 있었던 걸까당의 지도적 인사를 선정하는 절차 자체에 위험요소들이 내재돼 있었다상층 지도부까지 접근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그들의 작업사고행동 방식을 특정한 당면 요구에 맞춰 형성하는 경향이 있다러시아 혁명운동은 계급투쟁에서의 변화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었으며한 단계에서의 당면 요구에 적응했던 지도자는 다음 단계에서는 맞지 않았다예를 들어 보그다노프루나차르스키크라신은1905년 혁명의 폭풍기에 적절했었다그러나 이들은 이후 반동과 더딘 발전의 시기에는 잘 맞지 않았다지노비에프카메네프는 즉각적인 혁명의 가능성을 과장하는 것이 실수라는 교훈을 고생하면서 배웠고반동과 이후 소소한 행동들 두마 활동보험 운동 등 의 시기에 더디고 체계적인 조직화와 시위의 일을 맡은 사람들이었다. 1917년의 광풍이 휘몰아치는 시기에 와서는지노비에프카메네프는 역량이 부족한 지도자가 되었다.”5

레닌은 볼셰비키 지도부에서 혁명의 전반적인 전략과 투쟁의 당면한 요구 사이의 균형을 지속적으로 잘 잡던 사람이었다레닌은 모든 상황에 적응할 수 있었고자신의 주장을주로 소수의 위치에서피력할 수 있었다이제 우리 중앙위원회 멤버들 중에서 어느 누구도 레닌과 같은 정치적 식견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가장 중대한 이단 행위가 되어버렸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이 점을 고려는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레닌은 분명 러시아 혁명 배후의 유일한 원동력이 아니었지만그의 전술적 이해와 자신의 견해를 주장하는 능력이 혁명의 성격을 그런 방식으로 형성하였고 그가 없었다면 혁명은 성공적이기 어려웠을 것이다레닌이 역사상 위대한 혁명가 중 한 명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오늘날 혁명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그러한 인물이 지도부에 없더라도 기능할 수 있는 혁명조직을 건설하는 것이다.

언급했다시피현재 시기는 전반적으로 투쟁 수준이 낮으면서도 어느 것이라도 일촉즉발할 수 있는 많은 잠재적 쟁점들이 있다이러한 시기에우리는 필요하다면 곧바로 방침을 신속히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따라서 우리가 1월 협의회에서 표결로 결정한 전망이 다음 협의회 사전토론이 시작되는 9월까지 우리의 대안을 제한한다면 충분히 신속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어떤 전망이 현실과 맞지 않음을 깨닫고도 중앙위원회가 허가를 내줄 때까지 그것을 교체하지 못하는 것은 옳지 않다가능한 모든 토론과 논쟁은 언제나 필요하다이것은 단결된 행동의 가능성을 방해하지도 않을 것이다

만일 어떤 행동 방침이 적절하지 않았음이 드러나면새로운 전망을 개발하고 설명하는데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동지들은 이미 새로운 주장들을 들었고 그것들을 실행하기 전부터 잘 알고 있게 될 것이다이러한 접근은 오직 우리의 전술적 유연함을 증진시키고 레닌과 같은 인물을 지도부에 갖고 있지 않은 문제를 극복하게 도와줄 뿐이다.

결론

그럼 어떻게 내부 토론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가그 답을 나는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다음 두 가지 제안을 하며 글을 마무리하겠다첫번째로,

협의회에서 통과된 노선은 최종 결정안이다재고되거나 (논의가재개되거나 후속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라는 문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사용되어선 안 된다보안 유지에 대한 요구가 있을 때는 논의 대상과 정보 공개 대상을 제한할 수도 있지만 토론에 기간 제한을 두어서는 안 된다우리가 1월에 토론을 할 수 있다면동일한 주제에 대해 2월에도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로당의 출판물에 게재할 수 있는 글들에는 분명한 제한이 있다시간과 공간(매년 단4권의 ISJ[계간 이론지]가 출간되며 그 사이의 토론은 너무 더뎌질 수 밖에 없다그리고 보안의 이유 때문이다따라서집중적 토론 기간에 우리는 어느 동지라도 자신의 견해를 발표할 수 있는 월간 내부 회보라는 아이디어를 고려해봐야 한다

당의 여러 편집부가 검토한 후에야 글의 게재를 허용하는 것은 잠재적으로 유용할 수 있는 주장들을 억압할 위험이 있다공식적인 당 이론지를 갖는 것이 중요하지만 자유롭고 공개적인 논쟁의 공간을 제공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결국우리의 이론은 지도부에 의해서가 아니라 노동계급과 다수 회원인 노동자그 자신들에 의해 좌우되어야 한다던컨 핼러스가 말했듯이(약간 다른 맥락에서 말하긴 하였지만),

지도부/배신 신드롬의 부정적인 특징 중 하나는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이 이미 있다고 전제하는것이다그것들은 최종적이고 확정적인 프로그램 안에 담겨있다프로그램의 순수성을 지켜내는 것은 선택받은 소수의 주요 업무 중 하나로 보인다새로운 해법을 요하는 새로운 문제들이 존재한다는 것동료 노동자들을 가르칠 뿐 아니라 그들로부터 배워야한다는 생각 등은 환영받지 못한다그러나 이것은 근본적 문제다개인뿐 아니라 조직도 전지전능할 수는 없다겸손함과 유연함자신의 한계를 인식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6

만일 모두에게 (견해를 피력할공간이 제공되지 않고자신의 생각을 개진하기 위해 지도부에 허가를 받아야만 한다면 새로운 이론은 발전할 틈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정책은 정체기를 맞이할 것이다이론의 지속적이고 창의적인 발전없이 사회변혁 조직이 계급 투쟁의 발전과 변화에 맞추어나가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

그러한 발전을 위해서는내부 토론의 자유를 발전시키는 것이 필수적이고동지들이 단결된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는 한 쟁점과 전망에 대한 토론을 언제 얼마까지만 허용한다는 제한을 부과해서는 안 된다마지막으로 핼러스의 말을 빌려 글을 마치겠다.

그러한 혁명적 정당은 철저하게 민주적인 토대없이는 절대 생겨날 수 없다만일 그 내부에 활발한 논쟁이 일반적이지 않고 다양한 경향과 각양각색의 의견이 나타나지 않으면사회주의 정당은 분파 수준을 넘어설 수 없다내부 민주주의는 선택 사항이 아니다그것은 당원과 그들의 운동간 관계의 본질이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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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 Callinicos, “Is Leninism Finished?,” Socialist Review, pp. 17-31, February 2013. [본문으로]
  2. Lenin, Collected Works, vol. 11, p. 230. [본문으로]
  3. I. Birchall, “What Does It Mean To Be A Leninist?,” Socialist Review, pp. 22-24, 06 2013. [본문으로]
  4. I. Birchall, “What Does It Mean To Be A Leninist?,” Socialist Review, pp. 22-24, 06 2013. [본문으로]
  5. T. Cliff, Lenin: Building the Party 1893-1914, Bookmarks Publications, 1975. [본문으로]
  6. D. Hallas, “Towards a Revolutionary Socialist Party,” in Party and Class, London, Bookmarks Publications, 1971. [본문으로]
  7. D. Hallas, “Towards a Revolutionary Socialist Party,” in Party and Class, London, Bookmarks Publications, 1971.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