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면 그 사람은 그 순간 코끼리를 떠올릴 것 이다." 작년에 출간된 레이코프의 책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를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위의 책에서 인지언어학자 레이코프는 사람들은 '사고'보다 '직관'에 우선함을 지적한다. 이때의 직관이란 '프레임' -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 체계로 대상의 본질과 의미들 사이의 관계를 결정하는 틀 -이다.
프레임 이론에 따르면 미국의 진보세력이 '이라크 전쟁'이란 단어를 받아들인 것은 곧 '전쟁 프레임' 자체를 승인한 것이므로 틀렸다. 그들은 이라크 '전쟁'이 아니라 '점령'이라고 말했어야 한다. 또 종합부동산세를 비판하기 위해 한나라당이 만든 단어 '세금폭탄'을 그대로 사용해 '종부세는 세금폭탄이 아니다'고 받아친 열린우리당도 틀렸다. 그들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말라"고 외쳤다.
열린우리당의 워크샵 교재였다는 <코끼리를 생각하자 마>가 정치란 곧 '프레임 대 프레임'의 싸움임을 일깨웠다면, <프레임 전쟁>은 이를 이론으로 쳬계화하고, 실제로 목적에 맞는 프레임을 구성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실제로 미국 진보세력들 사이에서는 '교과서'로 불린단다.
책은 보수자의자들은 이미 습득했으나 진보주의자들은 존재조차 모르고 있는 '인지언어학'의 기본 원리들을, (진보주의자들이 빠지기 쉬운) '열 두 가지 덫'으로 정리한다.
1. 상세 목록의 덫 진보주의자들은 사람들이 프로그램과 정책의 목록에 근거하여 투표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사실 사람들은 가치와 인간관계, 진정성, 신뢰, 정체성을 바탕으로 투표한다.
2. 합리주의의 덫 확고한 사실이 유권자를 설득할 것이고, '이성적'인 유권자들이 자신들의 사리와 이슈를 위해 투표하며, 어떤 프레임을 부정하는 것이 그 프레임을 반대하는 논증을 펴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믿는 것은 '이성의 덫'이다.
3. '정책은 가치'의 덫 진보주의자들은 정책과 가치를 혼동한다. 가치는 윤리적 개념이다. 정책이 가치에 근거하거나 근거해야 하지만, 정책 그 자체는 결코 가치가 아니다. 사회보장이나 전국민건강보험은은 가치 아니라, 인간 존엄성과 공평성, 평등의 가치를 반영하는 정책이다. 정책만 말하다 가치를 말하지 못하는 실수를 범하지 말라.
4. 중심주의의 덫 이념적인 '중심' '중도주의자'란 없다. 사람들은 삶의 어떤 측면에서는 보수적이고 다른 측면에서는 진보적인, 이중개념주의자들이다. 중심에 대한 잘못된 이해 때문에 진보주의자들은 더 많은 표를 얻기 위해 오른쪽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것은 역효과를 낸다. 오른쪽으로 이동함으로써 진보주의자들은 실제로 우파의 가치를 활성화하고 고유의 가치를 포기한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부분적으로만 보수적인' 이중개념주의 진보주의자들를 소외시킨다.
5. 오해의 덫 너무 많은 진보주의자들이 보수적으로 투표하는 사람들, 특히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 반해 투표하는 사람들을 멍청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보수적으로 투표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보수적 포퓰리즘은 본성상 경제적이 아니라 문화적"이다. 보수적 포퓰리스트들은 자신들이 평범하고 도덕적인 올바른 사람들인데, 자신들을 무시하는 엘리트주의 진보주의자들에게 억압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진보주의자들의 부도덕한 '정치적 올바름'을 자신들에게 강요한다고 보며, 그 점에 분노한다.
보수적 포퓰리스트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염원을 특징짓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는 '자유(liberty)'이다. 이 낱말은 정치적, 문화적 엘리트의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따라서 경제적 복지에 대한 합리적인 호소로는 결코 그들의 생각을 바꾸지 못한다.
한편 진보주의자들은 또한 보수주의 의제를 오해하며 보수주의 지도자들을 무능하고 아주 어리석다고 묘사한다. 이것은 보수주의의 목표를 진보적 가치를 통해서 조망한 데서 비롯된다.
6. 진실의 덫 진실만으로 당신은 자유롭게 되지 않을 것이다. 진실이 상식이 되지도 않을 것이다. 무엇이 '상식'으로 간주되는가는, 어떤 프레임이 뇌 속에 있는가와 그러한 프레임이 얼마나 자주 사용되고 환기되는가에 의존한다. 진실은 아주 중요하지만, 그러한 진실은 '프레임' 즉, 어떤 맥락이 주어질 때만 의미를 갖는다. (이하 생략)
책은 특히 '이중개념주의'를 설명하는 데 공을 들인다. 레이코프에 따르면 세상에는 부분적으로 진보적인 보수주의자가 훨씬 많다. 이들은 자신을 '환경주의자'로 부르지 않고, '지속가능성'이나 '생태다양성'같은 어구를 주고 받지도 않을 것이지만, 실제로 자연을 사랑하고, 궁극적으로 진보적인 가치들 중 많은 것을 공유한다.
따라서 "진보주의만이 사용할 수 있는 타당한 진보적 언어로 이들의 부분적인 진보성을 활성화 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보수주의자들의 성공이 '왼쪽으로 이동한' 결과가 아니었듯이.
나아가 책은 이같은 문제인식을 바탕으로 실제로 적절한 프레임을 구성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심층 프레임 / 이슈정의 프레임(문제의 특성을 규정하고, 책임 소재를 결정하며, 가능한 해결택을 통제하고, 특정한 관심사를 통제), 메시지 전달 프레임, 일상적 프레임(무엇이 '상식'인가를 결정)등으로 그 층위를 나누고 하나씩 상세하게 살핀다.
특히 전쟁, 세금, 입시, 낙태 등의 이슈부터 공정성, 자유, 평등과 같은 '경쟁적인 개념'에 얽힌 프레임 구성을 설명하고, 진보주자의들이 전략적 의안으로 선택할 만한 네 가지 - 깨끗한 선거, 건강한 식품, 윤리적 기업, 대중교통-를 예로 들어 실제로 프레임을 구성해보는 점이 참고서의 연습문제 풀이 꼭지같다. 도움된다.
프레임 구성의 기본 틀. 삶의 어떤 측면에서 보수적이라는 것은 '엄격한 아버지' 모형을 따른다는 것이다. 또 진보적이라는 것은 '자애로운 부모' 모형을 따른다는 것이다.' 엄격한 아버지의 도덕성의 핵심은 권위와 통제(자기 절제를 포함한)이고, 자애로운 부모가 가진 도덕성의 핵심은 타인에 대한 감정이입과 책임감이다.
또 보수주의자들은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인과관계에 근거하며 주장을 펼치는 반면, 진보주의자들은 전체적이고 복합적인 인과관계를 바탕으로 주장을 펼치는 경향이 있다. 테러리즘에 대해서라면 진보주의자들은 테러리즘의 더 깊고 전체적인 원인에 문제를 제기한다. 무엇이 미국에 대한 증오를 초래했는가?에 주목한다. 반면 보수주의자들이 인정할 내용의 전부는 테러리스트들이 '우리의 자유를 증오한다'는 것이다.
천만 번 반복되는 이야기겠지만, "가장 효과적인 정치적 주장은 논증의 형태가 아니라 이야기의 행태로 나타난다." 프레임 이론 역시 이야기의 구성에 대한 주목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과연 누구인지를 진정으로 알아내도록 도와주는' 이야기에 가장 주목한다. 그리고 가치와 진정성을 바탕으로 할때만 특정 정견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이것이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이다.
진보 세력에게는 진보 세력의 핵심 가치를 말하는 것이 최선이자 유일한 방법론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말하기 방법에 대한 공부가 얼마나 절실한지 어렴풋이나마 알겠다.
------------------------------------------------------------------------------------------------------------------ * 로크리지 연구소 : 죠지 레이코프가 활동하는 비영리단체. 인지과학 연구를 통해 진보주의자들이 논지를 가다듬어 대중을 설득하는 방법에 대해 조언한다. <프레임 전쟁>의 원서를 다운로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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