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13일 화요일

[소설가 김갑수 선생님의 글] 김지하는 변한 것일까 아니면 본색을 드러낸 것일까

김지하는 변한 것일까 아니면 본색을 드러낸 것일까

시인 김지하가 박근혜 후보 지지발언을 한 것이 화제가 되고 있다. 김지하는 불과 한두 달 전까지 자기 입으로 칭찬했던 안철수에 대해서는 ‘깡통’이라는 표현으로 비하했다. 주지하듯이 김지하는 박정희 독재에 저항한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사람들은 이럴 때 흔히 “그 사람이 그럴 줄(은) 몰랐다.”고 반응한다. 이 말에는 ‘그 사람이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갑자기 변했다’는 판단이 전제되어 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작은 의문에 휩싸여든다. 과연 그 사람이 갑자기 변한 것일까? 아니면 원래 그런 사람인데 이제야 본색을 드러낸 것일까? 내 능력으로는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점은 사람이란 ‘쉽게 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 사람의 과거와 이면사를 정밀히 들여다보면 벌써부터 그럴 소지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수가 많다. 사실 김지하의 변화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1980년대 이래 여러 차례에 걸쳐 변화의 징후를 명백히 보여주었다.

나는 지난 번 글에서 유시민의 예를 들어 사람이 일찍 실명보다 큰 허명을 비주체적으로 얻어 유명인사가 될 때, 삶이 왜곡되기가 쉽고 그 결과 사회 문제와 관련하여 심각한 정신분열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는 말을 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김지하는 유시민보다 훨씬 더 위험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었다.

김지하는 불과 20대의 나이에 담시 <오적>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오해는 하지 마시라. 나는 <오적>의 저항적 가치를 과소평가하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다. 다만 <오적>의 창작이 예술가 김지하의 자발적 원망(願望)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밝히고 싶은 것이다. 오적, 즉 다섯 도적은 당시 사회에 널리 알려진 소문이었는데, 이를 착안한 <사상계> 편집장 김승균이 5·16 특집을 기획했다가 급한 사정이 생겨 3일 만에 김지하에게 쓰도록 청탁한 것이었다. 김지하는 <오적>의 창작 계기를 묻는 질문에 “산이 있으니까 오르듯이, 오적이 있으니까 오적을 썼다”고 아리송하게 답한 적이 있다. 이럴 때 김승균 편집장의 아이디어로 썼다고 답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을는지.

다음으로 우리가 김지하와 함께 떠올리는 것은 시 <타는 목마름으로>이다. 이 시는 노래로 만들어져 운동권 가요의 필두에 위치했다. 다음 두 편의 시 구절을 읽어 보자.

나의 학습 노트 위에/ 나의 책상과 나무 위에/ 모래 위에 눈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내가 읽은 모든 책장 위에/ 모든 백지 위에/ 돌과 피와 종이와 재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자유여.
- 엘뤼아르의 시 <자유> 중에서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 김지하의 시 <타는 목마름으로> 중에서

김지하의 시는 엘리아르의 시를 참조한 것 같다. 예술 창작에서 표절과 인유(다른 작품을 참조)는 다르다. 표절이 되지 않으려면 다른 이의 것을 인유했다는 점을 ‘공공연’하고 ‘명백’하게 밝혀야 하는데 김지하는 <타는 목마름으로>를 발표하면서 웬 일인지 그렇게 하지 않은 아쉬움이 있다.

김지하의 또 다른 유명한 글로 <옥중양심선언>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도 사실은 고(故) 조영래 변호사의 창작이었다. 김지하는 노태우 시절 <조선일보>에 ‘젊은 벗에게 -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글을 전면으로 게재했다. 나는 이 글을 읽고 나서, 일단 제목은 ‘젊은 벗에게’로 붙여놓고 실제로는 <조선일보> 독자를 겨냥해 쓴 교묘한 글이라는 느낌을 가졌다. 또한 생명의 가치는 지고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군부독재의 폭압 대신 학생의 화염병을 생명파괴의 주범으로 지목하는 대목에서는 어이가 없었다.

내가 보기에 김지하는 변한 것이 아니다.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을 따름이다. 그는 노무현 서거 당시 봉하마을의 추모객들을 공산주의자들로 몰아붙였다. 참고로 그는 황석영, 손학규와 절친한 사이다. 그는 2009년 이명박과 어울리는 황석영을 적극 비호한 바 있다. 또 하나 더 참고로, 황석영은 소설가 조정래(앞의 조영래 변호사와 혼동 말기를)와 별로 사이가 안 좋다. 김지하가 갑자기 안철수를 ‘깡통’이라고 비하하게 된 것이 만에 하나 조정래가 안철수의 후원회장이 된 것과 관련된다고까지 보고 싶지는 않다. 아무튼 대한민국의 유명인사들 사이에 의외로 혈친주의가 강고하다는 점은 따로 지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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