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8일 토요일

[김갑수소설가] 왜 이정희는 죽이고 박정희는 살리려 하는 거니?

왜 이정희는 죽이고 박정희는 살리려 하는 거니?
<한겨레신문>과 <오마이뉴스>의 기회주의적인 이중잣대              - 김갑수 소설가 페이스북 퍼옴 -

“충성 혈서를 써서 일본군 장교가 된 다카키 마사오, 누군지 아실 거다. 한국이름 박정희.” 
- 이정희 후보

이정희의 대선후보 토론회 발언이 엄청난 파급력을 보이자 <한겨레>와 <오마이>에 약간 수상쩍은 기사가 동시에 실렸다. 두 기사는 박정희의 친일행적을 약화, 희석시킴으로써 이정희 발언을 견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먼저 <한겨레>는 현직 기자들이 공동집필한 ‘박정희, 일왕에 혈서쓰고 일본군 장교됐나?’ 제하의 기사를 통해 <만주신문>에 근거한 민족문화연구소의 ‘혈서론’을 전한 후 이에 반대하는 우익단체의 주장을 대등하게 소개했다. 

- 이 후보 주장처럼 일왕에게 혈서로 충성을 맹세했다는 부분은 우익단체를 중심으로 조작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런데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일본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혈서를 보낸 사실이 1939년 3월 <만주신문>에 실린 사실과 신문 원본을 찾아내 이를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면서 국내에 알려졌다. 일본 국회도서관에도 보관돼 있는 <만주신문> 1939년 3월31일치에는 “경상북도 문경 공립소학교 훈도(교사) 박정희(23)군의 피로 쓴 편지가 송부돼 관계자를 감격시켰다”는 기사가 당시 박 전 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실려 있다.

박 전 대통령이 당시 연령 초과로 군관학교 시험에 탈락하자, ‘혈서’와 함께 입학허가를 호소하는 편지를 지원서류에 동봉해 제출했다는 소문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우익단체에서도 <만주신문>의 보도 사실 자체는 부인하지 못한다. 그러나 <만주신문>이 보도한 편지 내용에 ‘일계(日系) 군관모집요강을 받들어 읽은 소생’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박 전 대통령이 편지를 보낸 1939년에는 만주계만 모집(1940년부터 일본계로 확대)했기 때문에 해당 기사의 신뢰가 떨어진다는 반론도 있다.
- <한겨레> 기사 중에서

<한겨레>가 언제부터 이토록 극우단체의 날주장을 존중해주었는지 모를 일이다. 박정희의 ‘진충보국멸사봉공(盡忠報國滅私奉公)’ 충성혈서는 사료적 문헌과 증언이 멀쩡히 존재한다. 이런 명백한 역사적 사실을 다루면서 양측 주장을 기계적으로 형평화하는 기사 생산법은 조중동이 익히 써오던 수법 아닌가? 게다가 이 기사가 말하는 ‘우익단체’는 대관절 뭐 하는 단체인지 고유명사로 된 이름조차 명기하지 못했다.

다음으로 <오마이뉴스>는 ‘오카모토 미노루', 박정희 창씨명 아니다’ 제하의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를 쓴 정운현 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은 친일문제의 전문가이자 <실록, 군인박정희>의 저자이기도 하다.

-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에 비하면 '오카모토 미노루(岡本 實)'는 훨씬 더 친일성향이 노골적이라고 할 수 있다. 박정희가 군관학교에 입교하기 위해 '혈서'를 써서 보낸 바 있는데 이는 당시 그의 나이가 많아 입교가 어렵게 되자 입교를 목적으로 일종의 '충성맹세'를 보여준 것이다....그러나 군관학교 예과를 수석으로 졸업해 일본 육사 유학 특전까지 얻은 그가 일본 냄새가 짙은 이름으로 다시 창씨개명을 해야 할 필요성을 찾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오카모토 미노루'가 박정희의 두 번째 창씨개명이라는 주장은 사실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본다.
- <오마이뉴스> 기사 중에서

이 기사가 지적하고 있듯이 ‘오카모토 미노루’는 ‘다카키 마사오’보다 한 층 친일적인 이름이다. 다카키 마사오에는 ‘고령박씨, 정희’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오카모토 미노루’는 완벽한 일본인 이름이다.

(* 이 기회에 나는 일제강점기 창씨개명에 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보아 좀 길더라도 자세한 역사적 사실을 밝히고자 하니 읽어주셨으면 한다.

창씨(創氏)란, 씨를 바꾸는 게 아니고, 말 그대로 ‘씨를 새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개명(改名)이란 당연히 이름을 고치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일제는 조선인에게 창씨만 강요했을 뿐 개명까지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다카키 마사오처럼 창씨와 개명을 둘 다 한 사람은 일단 친일파일 가능성이 있다.

일제는 성을 목숨처럼 여겼던 조선인에게 창씨개명이 무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성을 바꾸지 말고 하나 더 만들라고 했던 것이다. 일제는 조선인이 창씨를 안 할 경우, 각종 인· 허가를 내주지 않았고 여행을 불허했다. 무엇보다도 교육열이 높은 조선인에게 자녀의 학교 재학을 불가능하게 만든 점이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일제는 창씨가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이기 위해, 누가 보아도 창씨를 할 만한 사람 중에 일부를 골라 창씨를 하지 않도록 관리하거나 방임했다. 예컨대 비행기를 헌납한 박흥식, 중추원 고문 한상룡, 일본 대의사를 지낸 박춘금 같은 이도 창씨를 하지 않은 골수적인 친일파였다. 그러므로 창씨 여부를 가지고 친일의 잣대를 삼을 수는 없다.

물론 창씨개명에 날카롭게 저항한 조선인도 있었다. 전남 곡성의 58세 유건영은 창씨제에 대해 엄중한 항의서를 미나미 총독에게 보낸 후 자살했다. 전북 고창의 의병 출신 설진영은 창씨 통보를 받자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창씨를 시킨 후, 자신은 조상 볼 낯이 없다는 유서를 남기고 돌을 가슴에 안고 우물로 뛰어들었다.

한편 조선인들이 혈통의 족보를 지키려한 노력은 눈물겨웠다. 김씨의 경우 ‘원래 김씨’였다는 의미로 김원(金原) 또는 김본(金本)으로, 안동 권씨는 안권(安權)으로, 하동 정씨는 하동(河東)으로, 전주 이씨는 조선의 본가라고 하여 조본(朝本), 노(盧)씨는 시조가 용강 쌍제촌에서 우거했다고 하여 강촌(岡村) 그리고 박정희의 본관 고령박씨는 고목(高木)으로 표기했다.

물론 개중에는 친일의지와 출세욕 때문에 적극적으로 창씨개명을 한 이도 있었다. 친일 승려이자 조계종의 실권자 이종욱은 일본 외무대신 히로다의 성을 본떠 히로다 쇼이쿠로 창씨했고, 중추원 참의 최지환은 일본의 후지산과 정한론자인 다카모리의 이름을 따서 후지야마 다카모리로 창씨에 개명까지, 주요한도 일제의 황도 정신인‘팔굉일우’를 따서‘마쓰무라 고이치’라고 창씨에 개명까지, 이광수도 일본의 시조 천황 진무가 즉위한 산의 이름 향구산에서 ‘향산’을 따고 일본의 남자 이름에서 많이 사용하는 ‘랑’ 자를 써서 향산광랑(香山光朗)이라고 씨와 이름을 모두 완전 왜색으로 만들었다.)

이와 같은 이치로 오카모토 미노루는 완전 일본식 성명으로서 박정희가 적극적인 친일파라는 방증이 된다. 그런데 <오마이뉴스>는 ‘오카모토 미노루', 박정희 창씨명 아니다’라고 단정하는 제하의 기사를 내보낸 것이다. 박정희의 2차 일본명 오카모토 미노루는 일본 『육해군총합사전』에 등재되어 있으며 박정희 시절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의 회고록 『혁명과 우상』, 재미 기자 문명자의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 역사학자 최상천의 『알몸 박정희』등에 기록되어 있다.

<오마이뉴스>는 일본 『육해군총합사전』이 일본 정부의 공식기록이 아니라 도쿄대학 출판물인 데다 개인 저작이라서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식민지시대의 기록을 가해국인 일본의 공식기록에만 의존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또한 도쿄대학 출판부에서 발간한 이 사전이 개인물판물이어서 안 된다는 주장도 가당치 않다. 이 세상 저작물의 99% 이상은 개인 출판물 아닌가?

또한 오카모토 미노루는 북한 <노동신문>에도 보도된 바 있다. 그런데 만약 그것이 북한의 주장이기 때문에 날조된 것이라고 한다면 발생학적 오류가 된다. 빗대어 말하자면 ‘분석철학은 제국주의국가에서 발생한 것이므로 철학이라고 할 수 없다’는 식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것이다.

<오마이뉴스>의 주장은 식민사관을 만든 친일사학자 이병도 류의 기만적 실중주의 또는 과도한 문헌주의적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이정희의 발언이 큰 파급력을 행사하자마자 나왔다는 점에서 그 의도가 더욱 석연치 않다.

무엇보다도 <한겨레>와 <오마이>는 지난 5월 이래 생판 날조된 진상보고서 하나를 근거로 이정희와 통합진보당을 죽이는 데 앞장섰다. 당시 그들은 일말의 사실보도는커녕 이정희의 주장을 외면하면서 유심노조 등 협잡 정치인들 편만 일방적으로 들지 않았던가? 그랬던 그들이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또 이정희 파급력을 잠재우기 위한 기사를 남발하고 있으니 그들이야말로 ‘친노어용언론’이라는 말을 백 번 들어도 싸다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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