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다극 시대의 도래와 국제정세를 보는 관점’ |
<소통과 논쟁 1> 민경우 기자가 진보진영에 제기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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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며 2007년 대선이 끝났다. 2007년 대선은 한번의 선거 패배가 아니라 지난 10년간 진보진영의 활동의 공과를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에 따라 어느 때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심각한 토론과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아무쪼록 깊은 성찰과 자성을 통해 진보진영이 새로이 도약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기를 바란다.
필자 또한 대선 결과를 돌이켜 보면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필자는 나름대로 향후 진보진영이 들고 나가야할 교훈을 ‘변화’와 ‘대중’으로 정리해 보았다. ‘변화’는 한국사회의 변화에 맞게 운동진영이 변화하지 못했다는 점, ‘대중’이란 운동진영끼리 하는 사업에 익숙하여 대중적 지반을 상실했다는 의미이다.
필자의 생각이 맞는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백가쟁명(百家爭鳴)하는 토론과 소통을 통해 집단적인 합의를 모색하는 과정일 것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 운동에서 논쟁하는 풍토가 사라졌다. 과도한 논쟁이 단결을 해치고 사변적인 흐름으로 빠지는 경향이 있지만 지금은 오히려 논쟁의 부재(不在)가 사상이론적 정체를 가져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본 연재에서는 가능한 민감한 문제를 논쟁적인 방식으로 제기해 보고자 한다. /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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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17일 러시아는 미사일방어(MD)체제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다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 RS-24를 시험발사했다. 5월 29일에 이은 두 번째 일로 러시아의 군사적 재기를 알리는 상징적인 신호였다. 러시아는 최근 들어 이란, 우크라이나, 코소보 등 세계 각지에서 미국과 외교적 각축을 강화하고 있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움추렸던 러시아는 푸틴 집권 이후 유가 상승에 따른 경제력을 배경으로 대미 발언권을 강화하여 미국 주도의 일극 질서를 빠르게 잠식해 가고 있다.
2007년 12월 13일~14일 리스본 정상회담에서 유럽연합은 이른바 리스본조약을 채택하기로 합의하였다. 이 조약은 각국의 비준을 거쳐 2009년 1월 발효될 예정인데 유럽연합을 상징하는 국가와 국기 등이 삭제되기는 했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2005년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부결된 유럽연합 헌법의 계승이라 할 수 있다. 시간이 갈수록 미국과는 또 다른 서방의 대변자 유럽연합의 존재가 가시화되고 있다.
중국과 인도, 러시아와 브라질 등 거대 인구국, 자원국의 성장 또한 눈부시다. 이는 미국의 경기침체 양상과 대비되어 더욱 극적인 양상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돌이켜 보면 역사적으로 중국과 인도, 이슬람 사회는 미국-유럽의 서방세계보다 발달된 문명을 갖고 있었다. 양자의 우열이 바뀐 것은 1750년경으로 많이 잡아도 300년을 넘지 못한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2020년경에 중국, 인도가 세계 지형을 바꿀 것이라는 진단은 과장이 아닌 듯 하다. 2020년이면 불과 10년 정도 남았다.
반면 부시 행정부에서 절정을 이룬 미국의 일방주의는 곳곳에서 난관에 부딪히고 있다. 미국-일본-호주로 이어지는 아시아태평양에서 인도양에 걸친 거대한 친미블럭은 2007년 중대한 시련에 봉착했다. 일본에서는 2007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패배하여 미.일동맹 우선주의에서 상대적으로 아시아를 중시하는 후쿠다 내각이 들어섰고 11월에는 일본의 고이즈미와 함께 아태지역 친미 블록의 핵심인 호주의 존 하워드 총리가 실각하고 빈 자리를 노동당의 케빈 러드가 메웠다. 2008년 11월 미 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면 2001년 이후 아태지역에서 형성된 호전적인 친미블럭은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다.
제 3세계의 혼란도 만만치 않다.
이라크의 안정이 요원한 가운데 이란과의 대치가 장기화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1억 6천만 인구의 핵보유국 파키스탄에서 이슬람 원리주의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무사랴프-부토’의 친미대연정을 구상했던 미국에게 부토의 암살은 뼈아픈 것이다. 미국은 이라크, 이란은커녕 파키스탄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중남미는 여전히 새로운 사회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중남미 은행이 출범하여 미국이 주도하는 IMF(국제통화기금), IBRD(국제부흥개발은행) 체제에 일격을 가했고 베네주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로 이어지는 급진적인 개혁이 계속되고 있다.
북핵 협상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미국은 아마도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만 이를 수습할 수 있을 것이다.
상황을 위와 같이 정리하면 2007년은 아마도 미국 중심의 일극 시대가 가고 다극 시대의 출발점으로 기억될 것이다. 1945~1991년이 미소 중심의 냉전 체제, 1991~2007년까지 미국 주도의 일극질서였다면 2007년을 계기로 미국 주도의 일극질서가 약화되고 다극 질서가 본격화되는 역사적인 전환점에 들어섰다는 뜻이다.
대외정세와 내정은 상호 밀접한 연관을 가지며 영향을 주고받는데 현 상황은 대외정세가 내정에 대단히 강력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한국경제의 전망에서 미국 경기의 침체 여부가 중요한 점, 이명박 차기 정부의 대북정책을 고려함에 있어 북미 관계가 미치는 영향이 큰 점 등이 모두 이와 관련이 있다. 진보진영은 국제정세의 흐름을 타고 정세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국제정세를 보는 관점과 관련 몇 가지 논점을 제기해 볼까 한다.
첫째, 자민통 진영은 북미, 남북, 한미 관계를 중심으로 세상을 보는 협소한 시야를 벗어나야 한다.
자민통 진영의 정세 문건은 북미, 남북, 한미 관계를 분석하는데 많은 지면이 할애되어 있다. 그러나 세계는 이미 그런 수준을 넘어 섰다. 덕분에 여러 대목에서 상황을 그르쳤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북미 공방이 갖는 세계사적인 지위를 정확히 확정할 필요가 있다(이에 대해서는 본 연재에서 많이 다룰 계획이다). 북미 공방에서 북이 상당한 주도권을 쥐게 된 것은 국제정세의 다극화 추세, 구체적으로는 중동 정정(政情)의 혼미, 중.러의 대미 견제력의 강화 등과 같은 주변정세와 북의 협상카드, 협상력이 결합된 결과이다. 전자에 대한 상황 인식이 결여되면 정세 해설에 대한 대중적 설득력이 떨어지고 정세를 터무니없이 낙관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다음으로, 대북적대정책 철회, 한미군사훈련 반대 등을 소재로 한 반전평화운동이다. 미국이 중동에서 헤매고 있고 중.러의 대미 억제력이 작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에서 전쟁 위기가 격화될 것으로 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정세 인식이다. 그것은 6자회담과 북미 협상의 주역인 북의 분석틀, 유용한 협상카드일 수는 있어도 남의 국민대중의 감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판단이었다. 덕분에 한반도 전쟁 위협을 과장하는 일련의 대중운동은 위력적으로 발전할 수 없었다.
둘째, 좌파 진영은 국제정세 특히 정치군사적인 다극화 추세에 대한 인식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먼저 통일정세가 시대에 뒤떨어진 의제라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2007년 대선 시점에서 국제정세의 영향이 한반도 내정과 국민대중의 정서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이를 전술적으로 고려할 필요는 있었다. 그러나 ‘민생이 중요한데 시대착오적인 통일구호가 문제’라는 따위의 주장은 무지의 소치거나 참주선동에 불과하다. 오히려 국제정세,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정세, 남북관계를 무시하고 남한의 정치사회적 재편만을 고려하는 발상 자체가 관념적인 주장이다.
좌파진영이 위와 같은 결함을 갖게 된 주요 이유는 국제정세를 좌우하는 국가와 정부, 열강 질서, 국가를 뛰어 넘는 범지역적 동맹구조 따위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물론 민간단위의 근본적인 노력은 필요하다. 그러나 1999년 시애틀 WTO(세계무역기구) 3차 각료회의 등에서 벌어진 반신자유주의 운동, 2003년 2월 유럽에서 진행된 반전운동 따위를 중심으로 현실을 판단하고 구성하려는 발상은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정세를 규정하고 결정짓는 실체를 무시하고 시민사회, 개인, 사회운동을 과대평가하는 몽상적인 견해이다. 특히 식자연하는 인텔리 중에 이런 무책임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다음은 1월 20일까지 댓글에 올라온 여러 견해들에 대한 민경우 기자의 답변입니다. -편집자 주) ‘다극시대의 도래와 국제정세를 보는 관점’에 대한 보충 의견 (1월 21일 오전 11시) 아래에서는 위 글에 여러 분들이 주신 의견에 대해 보충 의견을 제기하고자 합니다.
1. 국제정세와 대선
본 글의 목적이 국제정세와 대선과의 관계는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이를 직접적으로 연결하여 논하는 것은 본 글의 취지와는 다소 어긋납니다. 그러나 기왕에 논의가 시작되었으니 몇 마디 첨언하고자 합니다.
2007년 국제정세는 뚜렷하게 다극시대로 접어든 반면 대선 결과는 이명박 후보의 당선으로 귀결되었습니다. 모든 사물이 상호 연관을 맺고 있듯이 양자 또한 일정한 관계를 갖고 있는데 이에 대해 논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다극시대의 도래가 보수 세력 중 박근혜, 이회창류의 당선을 막고 보수 세력 중 시대의 추세에 간접적으로나마 적응한 이명박 후보를 당선하게 만들었습니다. 향후에도 전자는 경향적으로 약화될 것입니다.
둘째, 이명박 차기 정권이 반공반북적 성격을 띠기 어려울 것입니다.
셋째, 경제적인 다극추세는 일방적인 한미일동맹 강화 노선을 구조적으로 제약할 것이며 국제경제질서 전환 과정의 제 혼란은 경제성장을 바라는 이명박 정권의 정치적 입지를 좁힐 것입니다.
넷째, 국제정세에 대한 오판 특히 한반도 정세를 전쟁정세로 오인하고 여기에 과도한 역량을 집중한 것이 여타 중요한 대중운동에 대한 경시로 나타나면서 2007년 대선에서 진보진영의 정치적 개입력을 약화시켰다고 생각합니다.(이에 대해서는 후술)
보수진영은 불리한 국제정세의 추세를 변화하여 돌파한 반면 진보진영은 유리한 국제정세에도 불구하고 변화에 인색하여 패배했다고 생각합니다.
2. 북미 공방의 본질에 대해
1) 1993~94년 정세에 대해
‘하하하’님의 의견 “미국의 유일패권적 지위에 타격을 가한 것이 북한이고, 북한의 <반미반제역량>에 의하여 미국의 패권적 지위가 흔들리고 그런 상황이 중국이나 러시아, 그리고 아랍과 남미 등지에 <반미반제역량> 강화로 이어진 것이죠”라는 판단에 반대합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1994~95년 시기는 소련 붕괴에 따라 미소냉전 시기가 붕괴되고 94~5년 미국 주도의 일극질서가 본격화되기 이전까지의 과도기에 해당합니다. 전세계적인 관점에서 보면 94~95년은 미국 주도의 일극질서가 강화된 시기로 볼 수 있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미국에서 1994년 11월 공화당이 압승하며 보수적 헤게모니가 강화되었고 93~96년 일본의 정계개편은 자민당 독재로 마무리되었으며 90년대 중반 유럽의 온건좌파는 60년대와 달리 신자유주의를 강하게 차용합니다.
둘째, 1980년대 중후반 제조업 중심의 일본과 독일이 미국에 대해 상대적인 우세를 점했다면 90년대 중반 금융자본을 중심으로 미국이 일본과 독일의 도전을 뿌리치고 경제적 우위를 확보합니다.
셋째, 냉전의 도구인 미일동맹과 나토가 그대로 온존되고 이에 반대하는 사조가 중러에서 나타나게 되는데 이는 북미 공방과 거의 무관합니다. 오히려 96년 주가노프 공산당 후보를 지지하려던 북의 의도가 좌절되고 옐친이 재선됩니다.
넷째, 제 3세계의 경우 90년대 중반 중남미에서는 극우파가 기승을 부리고 99년 12월 차베스의 당선을 계기로 신자유주의 반대 물결이 태동하는데 이 또한 북과는 별 관련이 없습니다.
아랍의 경우도 90년대 내내 이란.이라크 등이 미국의 경제봉쇄에 의해 고통을 당하고 있었고 팔레스타인의 경우 강압적인 평화협상(93년 오슬로 평화협상)에 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했기 때문에 87년 팔레스타인에서 1차 인티파다, 이슬람원리주의에 기초한 테러리즘등 비정부 단위의 절망적인(?) 투쟁이 발흥하게 된 것입니다.
넷째, 94년 제네바합의에서 북이 이겼다면 왜 94~97년 고난의 행군을 걸었겠습니까?
2) 북미 공방의 본질에 대해
북미 대치가 본질적으로 준전시상황이라는 분석과 현 정세가 구체적으로 전쟁 정세라는 판단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전자의 판단은 당연하지만 후자는 정세에 따라 구체적으로 분석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전쟁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기에 아무리 강조를 한다고 해도 지나칠 수 없기 때문”이라는 따위의 판단은 억지입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반전평화운동을 합리화하기 위한 자기 합리화에 가깝습니다.
90년대 초반 북의 대미 군사력 억제력, 중러 등의 대미 외교적 억제력이 부재한 90년대 초반이라면 전쟁 정세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지만 그러나 2002년 이후의 정세를 전쟁정세로 규정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2003~4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고 있는 동안 북에 대한 군사행동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2005년 이후 미국이 이라크와 중동에서 심각한 상황으로 몰리고 있었기 때문에 역시 전쟁은 어려웠다고 봅니다.
3) 반전평화운동의 문제점
반전평화운동은 중요한 운동이지만 자민통 진영이 정세를 전쟁정세로 규정하고 여기에 역량을 집중한 것은 여러모로 심각한 후과를 남겼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민생, 경제문제를 경시하게 한 점입니다. 이러한 후과가 극단적으로 나타난 것이 학생운동입니다. 학생운동은 자민통 진영에서도 전쟁정세라고 보는 판단이 강한 반면 학생사회는 등록금.청년실업과 같은 구체적인 경제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양자의 괴리가 귀중한 운동역량인 학생운동을 유실시킨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3. 호전적 친미블럭과 친미블럭, 공화당과 민주당의 차이
1) 미-일-호주로 연결되는 호전적 친미블럭은 2001년 1월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에 기초한 친미블럭으로 강조점은 ‘호전적’에 있습니다. 미.일.호주에서 정권교체가 이뤄지면 친미블럭은 유지되지만 그 호전성은 상당 부분 약화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2) 공화당과 민주당, 공화당에서 네오콘과 현실주의, 민주당에서 힐러리와 오마바의 차이는 누구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팔레스타인 민중의 관점에서 보면 공화당이나 민주당의 차이는 없지만 우리 민족의 관점에서 보면 공화당의 네오콘만 약화되면 통일정세는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발전할 것입니다.
4. 인식의 현 단계
북미정세를 중심으로 정세를 보는 관점과 태도는 자민통 진영이 주로 자체의 조직역량을 보전.확대하는 시기에 유효한 사상 관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정세를 한반도 남부로 국한시키는 협소한 시야를 한반도 전체로 확장시키고 자주통일 운동을 한 단계 발전시킨 중요한 진전이었습니다.
그러나 현 단계는 민주노동당, 민주노총을 거점으로 국민 전체를 설득해야 하는 과제가 우리 앞에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보다 진전된 인식이 필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세계정세 전체 속에서 통일정세의 발전과 그 필연성과 중요성을 설명하는 인식의 확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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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돌에 무리하게 다가서지 말라!!’ |
<소통과 논쟁 2> 민경우 기자가 진보진영에 제기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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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며 2007년 대선이 끝났다. 2007년 대선은 한번의 선거 패배가 아니라 지난 10년간 진보진영의 활동의 공과를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에 따라 어느 때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심각한 토론과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아무쪼록 깊은 성찰과 자성을 통해 진보진영이 새로이 도약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기를 바란다.
필자 또한 대선 결과를 돌이켜 보면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필자는 나름대로 향후 진보진영이 들고 나가야할 교훈을 ‘변화’와 ‘대중’으로 정리해 보았다. ‘변화’는 한국사회의 변화에 맞게 운동진영이 변화하지 못했다는 점, ‘대중’이란 운동진영끼리 하는 사업에 익숙하여 대중적 지반을 상실했다는 의미이다.
필자의 생각이 맞는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백가쟁명(百家爭鳴)하는 토론과 소통을 통해 집단적인 합의를 모색하는 과정일 것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 운동에서 논쟁하는 풍토가 사라졌다. 과도한 논쟁이 단결을 해치고 사변적인 흐름으로 빠지는 경향이 있지만 지금은 오히려 논쟁의 부재(不在)가 사상이론적 정체를 가져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본 연재에서는 가능한 민감한 문제를 논쟁적인 방식으로 제기해 보고자 한다. /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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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을 두다 보면 오묘한 이치를 배울 때가 있다. 5급 수준인 필자가 오묘한 이치 어쩌고 하는 것이 어떨까 싶지만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논의를 이어가 보겠다.
두터운(강한) 돌 근처에는 가까이 가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이런 돌에 가까이 다가서다가는 곤마로 몰려 죽거나 설사 살더라도 고생만 죽도록 하다가 사는 것만 못할 정도의 댓가를 치르고 지게 된다. 두터운 돌에 함부로 다가서는 것은 바둑에서 전형적인 하수의 전법이다.
적진이 커질 듯 하면 적진 깊숙이 침투하는 것도 전형적인 하수의 전법이다. 물론 조치훈과 같은 대가는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승부수를 던지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커다란 적 모양에 진입할 때는 언제나 변신할 수 있도록 가볍게 움직이는 것이 좋다.
바둑과 유사한 것이 병법에도 있다. 마오쩌둥의 16자 전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敵進我退 (적이 전진하면 우리는 후퇴한다) 敵駐我擾 (적이 주둔하면 우리는 적을 교란한다) 敵疲我打 (적이 피로를 느끼면 우리는 공격한다) 敵退我追 (적이 퇴각하면 우리는 추격한다)
마오쩌둥은 16자 전법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적이 전진하면 맞서 싸우지 말고 슬슬 도망치고, 적이 주둔하면 적을 무리해서 공격하지 말고 교란하며, 적이 피로를 느끼면 공격하는데 이 때도 마구잡이로 공격하지 말고 적의 약한 곳을 찾아 공격한다. 적이 퇴각하면 피곤하더라도 쉬지 말고 추격하되 이 또한 적이 돌아서면 언제든지 후퇴할 수 있는 상태에서 추격해야 한다.
마오쩌둥의 게릴라 전술과 비교되는 것이 동학농민군이다. 19세기말 동학농민군의 숫자는 근 60만명에 달했다. 여기에 맞선 일본군과 조선 관군의 숫자는 각각 2천명과 3천명이다. 물론 무기의 차이가 컸겠지만 승패를 가른 것은 세상을 보는 안목의 차이였다. 동학농민군은 탁 트인 벌판에서 죽창을 앞세우고 정면 승부를 감행했고, 일본군의 우세한 화력과 전략전술 앞에 낙엽처럼 쓰러졌다. 양자의 대결은 전쟁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인 학살에 가까웠을 것이다.
근대 제국주의의 첨단 화력, 과학적인 전략전술과 전근대 농민의 전통 무기, 맹목적인 전면전은 비단 조선에서뿐만 아니라 제국주의가 침탈해 간 세계 곳곳에서 벌어졌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과 일본이 전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병력의 차이라기보다는 근대와 전근대 사이에 놓인 안목과 시대의 차이였다.
반(半)식민지 농민이 제국주의 군대와 맞설 수 있었던 것은 농민대중이 무모한 전면전이 아니라 게릴라 전술을 채택하면서부터이다. 농민들로 구성된 신세대 농민군은 적이 진주하면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기민하게 후퇴하는 기동전을 통해 수백의 군대가 수만, 수십만의 제국주의 군대를 험준한 산맥과 민중의 바다로 끌고 다니며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난 10년간 진보진영은 대단히 유리한 조건에서 대중운동을 벌였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을 신자유주의 정권으로 분류하기는 하지만 집회시위의 공간은 상당 부분 보장되었다고 할 수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열어준 집회시위의 공간 속에서 진보진영은 상당한 발전을 해왔다. 다수 대중이 참가하는 위력적인 집회와 시위는 운동발전에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진보진영의 집회시위는 무겁고 단조로우며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이를 요약하면, 첫째 지나치게 무거운 주제이거나 해당 계급계층의 이해가 중심이고, 둘째 완급, 경중을 조절하며 탄력적으로 진행되기보다는 단조롭고 천편일률적으로 진행되었으며, 셋째 대중과 함께 싸우기보다는 조직화된 집단을 동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덕분에 집회시위의 효과는 후반으로 갈수록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2005년을 전후한 시점이 되면 이미 여러 방면에서 위험징후가 나타나고 있었다. 경제상황이 악화되고 서민대중의 생활고가 심해지면서 대도심의 대규모 거리 시위에 대해 다수 대중이 거리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진보진영은 이를 고집스럽게 강행했다. 덕분에 노력한 것에 비하면 효과는 크지 않았다. 반대로 무리한 대규모 집회시위가 역효과를 낸 측면도 있다.
이명박 차기 정권하에서는 양상이 다를 것이다. 이명박 차기 정권의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는 사회ㆍ이데올로기 분야이다. 교육ㆍ의료 영역에서 시장화, 이른바 법ㆍ질서 강화, 자유주의ㆍ성장 담론의 강화 등이 예상된다. 이 중 본 글의 취지에 비춰 주목할 점은 법ㆍ질서 강화이다.
이명박 차기 정권의 임기를 5년으로 놓고 이를 편의상 적당히 전ㆍ후반기로 구분한다면 전기는 이명박 차기 정권에 대한 지지도가 강하게 유지되고 이명박 정부도 의욕적으로 정국을 주도하려 할 것이다. 반면 후반기로 갈수록 지지도가 약화되고 집권 후반기의 권력누수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반면 진보진영은 대선 결과 상당한 타격을 받았고 전열을 정비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위와 같은 상황이라면 위 바둑의 격언이나 마오쩌둥의 위 16자 전법이 유용하지 않을까 싶다. 필자 나름대로 몇 가지 논점을 제기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명박 정권 전반기에는 최대한 정면 승부를 피하고 ‘유리한 곳’에서 싸우자.
정세가 이러이러하니 무엇을 주제로 싸워야 한다는 따위의 발상은 금물이다. 투쟁의 주요 목적은 진위를 밝히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아(我) 역량을 확대ㆍ장성시키는데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명박 차기 정권의 집권 초기에는 아 역량을 확대하는 것보다도 이명박 정권의 공고한 집권 기반을 끈기있게 잠식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일 수 있다. 이명박 차기 정권의 약한 곳을 영리하게 찾아 여기에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굳이 정치적인 주제를 고른다면 통일부 폐지, 대운하 등이 어떨까 싶고 가벼운 주제를 찾는다면 대선 과정에서 나타난 부시 면담 무산 등이 좋은 소재이다. 진보진영의 약점은 무거운 주제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데 의외로 가벼운 주제가 대중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명박 집권 초기는 돌진하는 상대방을 지치게 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최대한 유리한 공간에서 가볍게 움직여야 한다.
대중적 지지 기반이 엷은 주제를 들고 합법과 반합법의 경계를 뛰어넘는 방식의 투쟁은 경계해야 한다. 이는 강한 적에 돌진하여 화를 자초하는 것이다. 바둑을 예로 든다면 강한 돌에는 무리하게 접근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류의 투쟁을 원칙이니 신념이니 하는 단어로 포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위에서 밝혔듯이 두터운 돌에 다가서는 것은 전형적인 하수이거나 강박관념의 소산이다.
반면 대중적 지지가 뚜렷한 의제에 대해서는 대담하게 법ㆍ질서의 한계를 뛰어 넘을 필요가 있다. 가령 태안 기름유출, 대학생 등록금, 물가인상 등과 관련한 사안이 그렇고 이명박 정권의 정책 중 건강보험 강제 지정제 폐지 등은 전진 배치하여 과감하게 싸워줄 필요가 있다. 마오의 16자 전법은 무조건 후퇴하라는 것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적이 피곤할 때는 설사 아 역량이 지쳐 있다고 하더라도 전진해서 싸워야 한다.
민감한 정치적 사안은 최대한 날렵하게 합법적인 방식을 유지하되 창조적인 방식을 동원해야 한다. 바둑을 예로 든다면 큰 적 모양에 침투할 때는 돌을 무겁게 하지 않는 법이다.
둘째, 대중적 지반을 강화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보통 적이 전진할 때 후퇴하며 기동전을 구사하는 것은 별동부대이고, 주력은 멀찌감치 피해 대중 의식화ㆍ조직화에 힘쓰는 것이다.
현재 진보진영의 주체 역량은 심각히 훼손된 상태이다. 무엇보다 대중과의 결합력이 현격히 떨어져 있고 대중과의 결합력을 복원할 토대 자체가 빈약한 상태이다. 따라서 일종의 별동 부대가 이명박 정권의 집권 기반을 야금야금 잠식하는 것으로 하고 주력 대오는 대중적 지반을 강화하는 데로 중심을 이동해야 한다.
바둑으로 말하자면 결국 집이 많은 놈이 이기는 법이다. 초중반 잔뜩 폼을 냈지만 실속이 없으면 정작 승부에서는 지는 것이다. 바둑에서의 집은 운동으로 치면 대중적 지반이다. 화려한 언사와 구호를 앞세우기보다는 이삭을 하나하나 줍듯이 사람을 남기고 사람을 챙기는 것이 긴요한 때다.
(다음은 1월 23일까지 댓글에 올라온 여러 견해들에 대한 민경우 기자의 답변입니다. -편집자 주)
<소통과 논쟁 2>에 대한 보충 의견 (1월 24일 오전 1시 30분) 1. 대중운동의 전략전술에 대하여
먼저, 정세 분석과 대중운동의 전략전술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따라서 정세 분석에서 나온 결론에 기초하되 대중운동의 전략전술은 다른 차원에서 논의되어야할 성질의 문제이지 정세에 기초하여 전략전술이 곧바로 도출되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둘째, 준비기 대중운동의 전략전술의 기본 원칙은 “승산있는 투쟁을 적극화하는 것”입니다. 즉 정세의 요구에 기초하여 의제를 잡는 것이 아니라 승산있는 싸움을 의제로 선택하여 투쟁을 적극화화는 것이 기본 원칙입니다.
셋째, 우리 운동이 오랜 기간 정세 분석하는데 집중하고 전략전술 논의 자체를 경시하다 보니 승산있는 투쟁보다는 정세의 요구를 대변하는 투쟁을 원칙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생겨났습니다. 다시 한번 제 의견을 명확히 하면 대중운동의 원칙은 높은 정치적 요구를 건 선명한 정치투쟁이 아니라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승산있는 투쟁을 벌이는 것입니다.
넷째, 제가 민생투쟁을 강조한 것은 대중의 이해가 민생에 집중되어 있고 민생이 외세의 경제침탈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정치군사적인 문제는 통일정세가 완만하게 발전하고 있는 조건에서 민중의 체감도가 낮게 형성되어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본 글의 기본 취지는 이명박 정권하에서 어떤 전략전술이 필요한가입니다. 이에 집중해서 반론을 보내주기를 기대합니다. 이를 위해 제 의견을 명확히 하면
① 이명박 정권 초기에는 이명박 정권에 대한 지지도가 높게 형성되어 있고 정치적 지반이 견고한 반면 진보진영은 대중으로부터 고립되어 있고 자체 정비 수준이 낮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수세기라는 점을 고려하여 ② 정면 대응을 피하고 정권의 권력기반을 약화시키는 기동전을 펼치며 대중적 지반을 공고히 하는데 주력하고 ③ 위에 기초하여 집권 후반기에 공세로 전환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입니다. ④ 한미FTA나 공기업 민영화 같이 반드시 짚어야 할 투쟁은 적절히 수위조절을 하여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⑤ 전체적으로는 투쟁보다는 조직과 교육을 중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반대하는 유형의 투쟁은
① 작년 11월 11일 대회와 같은 투쟁인데 작년 11월 11일 대회는 대중적 지반이 엷은 조건에서 조직대중을 중심으로 높은 수위의 반합법 투쟁을 전개하였는 바 이런 류의 투쟁은 이명박 정권하에서는 대단히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문제는 진보진영이 이에 대한 경각심이 떨어져 있는 점입니다.
② 자주통일운동에서 주한미군 철수와 같은 높은 정치적 요구를 거는 것을 자제해야 합니다. 이런 류의 투쟁은 대중적 공감대는 낮은 반면 보수강경파가 결집할 수 있는 계기를 주기 때문입니다. ③ 그리고 전체적으로 손따라 가는 투쟁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 기타 몇 가지 의견에 대해
1) 구체적으로 다시 거론하겠지만 작년 11월 11일 대회는 성과보다는 손실이 많았던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2) 2001~2007년 농민운동의 경우 2007년 농민운동이 왜 국민농업의 기치를 걸고 있는가에 대해 고민해 보았으면 합니다. 이후 여러 각도에서 이를 다루어 보겠습니다.
3) 민생은 운동의 근본입니다. 자민통 일각에서 정치군사적인 반미를 중시하고 민생분야를 경제투쟁의 영역으로 치부하는 경향은 심각한 편향입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첫째, 학생운동이 등록금, 청년실업 문제에 대해 관심을 덜 가지고 있는 점 둘째, 소상인들의 생활고에 착목하지 않고 있는 점 셋째, 부동산.사교육 등 대도시 생활의제에 무관심한 점 넷째, 론스타 등 외국자본의 형태에 대응하지 못한 점 다섯째, 비정규직 문제에 소홀한 점 등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자민통 진영의 수준은 전체적으로 이들 문제에 대한 기본 공부 자체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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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공부를 하자!!’ |
<소통과 논쟁 3> 민경우 기자가 진보진영에 제기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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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가 심각한 상황으로 접어들고 있다. 2008년 세계경제는 미국 경제가 연착륙하고, 중국 등 신흥시장이 이를 보완하면서 부분적인 경기악화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현 상황은 미국 경제가 경착륙하는 양상이고 중국 등 신흥시장도 장담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제도권 연구소들은 2008년 한국경제의 성장률을 4.5~5.0% 내외로 예상한 바 있는데 이는 미국 경제의 연착륙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미국 경제의 연착륙을 장담할 수 없다면 한국경제 성장률은 4%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경제성장률의 낮아지면 이명박 정권의 집권 기반이 조기에 약화될 가능성이 있고 이명박 정권이 경기부양책을 쓰게 되면 집권 후반기쯤 자산 거품이 조성되면서 위험한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미래의 한국경제 상황에 대해 전망하는 것은 필자의 능력을 넘는 문제이다. 그러나 지금 시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이에 호흡을 맞춰 진보진영의 대응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에 경제공부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아래서는 필자의 경험에 비춰 경제 공부와 관련된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세계경제 상황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특히 최근 세계경제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한다.
한국경제는 세계경제 상황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으므로 한국경제를 이해하기에 앞서 세계경제에 대한 지식이 중요하다.
세계경제를 공부함에 있어 필자가 권하고 싶은 자료는 삼성경제연구소의 각종 보고서이다(www.seri.org에 들어가 가입하면 무료로 각종 자료를 받아 볼 수 있다). 일반인들이 찾기 어려운 각종 통계자료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은 데다 분량이나 서술 방식이 간결하여 읽기에도 편하다. 지금까지 필자가 공부한 바에 따르면 통계나 서술의 신뢰도도 높은 편이다. Seri 보고서를 기본으로 살을 붙여 가는 방식으로 공부하면 좋을 듯 하다.
그 밖에 TV 다큐멘타리 등을 찾아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요즘은 한국에서 공을 들여 다큐멘타리를 만들고 있기 때문에 각국 경제에 대한 상황을 실감있게 엿볼 수 있다.
1990년대 초반 자민통 진영의 베스트셀러 중에 “다시쓰는 한국현대사”가 있다. 이 책은 한국경제를 미국과 연관지어 ‘원조-차관-직접 투자’ 등으로 구분하여 서술한다. 그러나 현재 벌어지고 있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미-중국 사이의 불균형 구조와 관련된 골디락스 등은 위 서술 구조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따라서 시급히 시야와 안목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둘째, 한국경제의 전체적인 개황과 서민생계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한국경제의 전체적인 개황을 알기 위해서는 ‘새로운사회를위한연구원’(새사연)의 각종 책자와 자료를 권한다. Seri의 한국경제 관련 보고서도 볼만하기는 한데 국제경제와 달리 시각이 진보진영과 다르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또 관심사가 다르기 때문에 진보진영이 필요로 하는 자료, 통계에 주목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런 맥락에서 새사연의 자료가 진보진영에는 유용하다.
한국경제의 전체적인 개황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한국은행, 통계청 등의 통계를 뒤지는 습관을 들이기 바란다. 단편적인 통계가 아니라 일정 시간 동안 시계열화된 통계를 들여다보면 일관된 흐름, 경향을 발견할 수 있고 데이터가 주는 구체성과 일관성이 있다.
셋째, 한국경제 개황에 대한 공부와 함께 각 분야에 대한 학습을 해야 한다. 교육, 부동산, 비정규직 등의 문제인데 이에 대해 필자가 권유하고 싶은 것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간략히 정리해 놓은 자료를 찾아서 읽는 것이 좋다.
이와 함께 꼭 했으면 하는 것은 일주일에 한번 주변 지인(知人)과 인터뷰를 하는 것이다. 주변에 장사를 하는 친구가 있으면 1~2시간 가량 그의 생활상에 대해 듣다 보면 자영업의 실상에 대해 상당 부분을 가늠할 수 있게 된다. 불과 1000명 수준의 여론 조사가 전체 국민의 여론 지형을 대체로 정확히 반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사프로그램 ‘PD수첩’이나 ‘뉴스 후’ 따위를 꾸준히 찾아보는 것도 괜찮다.
여기서 논쟁적인 쟁점을 제출해 보고자 한다.
첫째, 학습에서 경제에 대한 비중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자민통 진영 정세분석의 상당 부분, 학습 내용의 많은 부분이 북미관계, 통일문제, 한미동맹 등에 편중되어 있는데 이는 시급히 시정되어야 한다. 통일문제에 대한 지식에 비해 자민통 진영의 경제 지식은 우려할만한 수준이다. 더 큰 문제는 이를 시정하려는 노력과 관점 자체가 부재한 점이다.
둘째, 원론적인 학습보다는 시사적인 상황을 중시하고 개념보다는 통계와 현실을 강조해야 한다.
원론적인 학습이 중요할 때가 있고 시사적인 상황이 중요할 때가 있지만 지금은 후자가 중시되어야 한다. 원론학습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와 안목을 한꺼번에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데 효과적이다. 1980년대 중후반 “해방전후사의 인식” 등이 그러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진보진영에 필요한 것은 원론과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에 대한 이해이다. 특히 식민지반자본주의론(식반자론)이 현실과 잘 맞지 않기 때문에 원론과 개념에 집착하다 보면 현실을 왜곡해서 바라볼 위험이 있다. (필자는 식반자론이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지면을 통해 소개했고 향후 본 연재에서 집중적으로 다룰 계획이다)
셋째, 경제학습을 생생한 민생을 공부하고 체험하는 활동과 밀착시켜야 한다.
자민통 진영을 비롯 운동진영 전체의 큰 문제점은 서민 대중과 구조적으로 유리되어 있는 점이다. 학생운동진영과 학생대중과의 괴리 정도는 도를 넘어 섰고 민주노총의 경우에도 비정규직과 밀착되어 있다고 볼 수 없다. 그나마 전농이 농민대중과의 결합력이 높은 편인데 이마저도 전농이 벌여온 강도 높은 대중투쟁에 비해서는 미흡한 수준이다.
심각한 것은 상층 간부들일수록 대중과의 괴리 정도가 크다는 점이다. 상층 간부들이 구체적인 일선 운동의 현장을 잘 모르고 대중의 생활상의 고통을 잘 모르기 때문에 대중적 조건에 걸맞지 않는 방침이 채택되고 있다.
상층 간부들이 대중의 삶과 구조적으로 유리되어 있는 것은 우리 운동의 역사적 연원과 관련이 있다.
1980년대 중후반의 반독재 투쟁은 경기호황기에 진행되었다. 당시 386세대들은 각종 혁명론, 경제파산론 따위를 사회성격론과 결합하여 논쟁하였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들 논쟁이 대중적 검증의 장이라기보다는 인텔리들 사이의 이론 논쟁에 가까웠다.
1990년대 자민통 진영을 활성화시킨 통일운동도 유사하다. 90년대 통일운동도 경제가 나름대로 괜찮았던 시기에 벌어진 것이다. 따라서 주로 자주통일노선이 전면에 부각되고 경제노선은 이론, 학습의 영역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1998년 이후 경제와 서민 생계가 본격적으로 표면화되면서 자민통 진영의 경제이론은 비로소 대중적 검증의 장이 주어졌다.
이 국면에서 학생운동은 경제문제를 무시하고 통일운동으로 내달렸다. 학생들이 흔히 ‘개나리’ 학자투쟁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것인데 등록금, 청년실업 등에 대한 학생대중의 이해와 요구를 응당히 보지 못하고 이를 8월 통일운동으로 가는 징검다리 정도로 취급한 좌편향이 학생운동을 그르친 주요 요인이다.
사회운동의 경우 1980년대 중반 정립된 경제이론을 현대적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지체되다 보니 근 20년에 달하는 시간적 괴리가 현실에 맞는 대응을 어렵게 했다. 자민통의 경제이론은 자민통 진영을 벗어난 대중적인 공간에서는 무기력했다.
필자 또한 반자본주의이론에서 말하고 있는 지주-소작관계를 첨단 정보화사회에서 살고 있는 대학생들에게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이러다 보니 누구에게나 명백한 민생문제를 중심으로(비정규직, 농산물 개방 반대 등) 수동적인 저항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고 이 틈을 비집고 보수우파가 자유주의, 개방화 담론을 들고 수도권의 중산층 일부를 장악해 버린 것이다.
이는 변화된 시대에 맞게 경제이론을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20년 전의 경제이론을 되뇌이고 있는 지적 태만의 결과이고 이러한 지적 태만을 온존시킨 힘은 대중과 밀착되지 않는 운동 상층 간부들의 구조적인 비대중성 때문이다. |
‘서울 상경투쟁’ |
<소통과 논쟁 4> 민경우 기자가 진보진영에 제기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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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 22일 한미FTA에 반대하는 전국 규모의 대회가 광역 단위에서 벌어졌다. 당시 필자는 한미FTA 범국본 정책팀장으로 11.22 대회의 전개 양상에 대해 주의깊게 살펴 보면서 놀라운 경험을 했다.
먼저 시청에서 진행된 서울대회는 다소 건조하게 진행되었다. 전교조와 민주노총이 주력이었던 이날 행사는 전교조의 경우 교원평가, 민주노총의 경우에는 비정규직 문제가 함께 결합되어 있었고 예상보다 참여인원이나 열기도 떨어졌다. 그리고 행사 이후 거리 시위는 참여 대중의 호응이 적어 다소 맥빠지게 진행되었다.
당시 보수언론에서는 전교조와 민주노총을 겨냥하여 교통체증 운운하며 악선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서울 대회가 예상보다 밋밋하게 끝나면서 보수 언론의 악선전에 힘이 실리지 않았다. 당일 교통은 평소와 다름없이 원활했기 때문이다. 이는 서울대회의 동력과 열기가 주최측의 예상보다 약했음을 반증한다.
다소 허탈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온 필자는 저녁 뉴스를 보며 지방 상황에 놀라고 있었다. 전국 광역단위의 주요 도시에서 진행된 대회를 마치고 거의 모든 지역에서 1만명 이상의 농민과 수천명 단위의 노동자가 도청 소재지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예상하지 않았던 격렬한 충돌이 벌어졌던 것이다.
위 사실은 실로 많은 것을 보여준다. 아래에서는 이와 관련한 여러 쟁점을 논쟁적으로 제출해 보겠다.
첫째, 수도권과 지방, 도시와 농촌의 인구 구성이 극적으로 변화했음을 고려해야 한다.
보통 시군구라고 표현하지만 수도권과 지방의 차이는 현격하다. 예를 들어 전남 화순군의 전체인구는 7만이고, 전남 나주시의 인구도 7만 7천명 수준이다. 유서깊은 전북의 항구도시인 군산시의 인구는 26만명 정도이다.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지방의 시군의 인구는 이런 수준이다.
반면 경기도 안산시의 인구는 72만명이고 서울 관악구의 인구는 52만명이다.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서울과 경기의 인구는 대체로 이런 수준이다.
시군구라고 해서 동일한 행정단위로 분류하지만 수도권과 지방의 인구 차이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현격하다. 참고로 전라북도 인구 전체를 합해도 190만에 불과한데 이는 안산시 3개를 합친 것보다 적다. 인구 구성을 고려하면 이러한 양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가속화될 것이다.
도시화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극적인 변화의 하나이다. 이는 정보화, 지구 온난화만큼이나 세계 전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근본적인 변화에 속한다.
필자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제는 한국에서, 농촌에서 도시를 포위하는 형태의 운동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도시를 포위하는 동력 자체가 이미 수도권으로 이주해 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향후의 운동 양상은 대도시의 서민 대중이 수도권에서 도시 의제를 가지고 운동을 벌이고, 지방의 경우에는 지방 의제를 가지고 지방 사회를 장악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아마도 가장 극적인 형태의 운동은 대도시의 밀집된 서민대중이 도시형 의제를 가지고 벌이는 대중운동이 될 것이다.
둘째, 조직화 정도와 정치의식 문제이다.
보통 진보진영에서 서울을 중앙이라고 하고 지방으로 조직정치사업을 하러 내려가곤 한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지방은 인구나 인구구성에 비하면 조직화, 정치의식 정도가 매우 높다. 오히려 문제는 서울과 경기 지역의 조직화, 의식화 정도가 낮은 것이 문제이다.
가령 10여만 정도의 소도시에만 가도 농민회, 전교조, 민주노동당, 청년회 등이 있고 이들이 나름대로 연대활동을 벌이고 있다. 또한 지역사회에 대한 영향력도 높다. 반면 경기의 주요 도시, 서울의 구 단위에서는 운동역량도 적을 뿐만 아니라 진보진영의 사회적 영향력은 극히 미미하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서울과 경기 지역이지 지방이 아니다.
수도권과 지방의 조직, 정치 수준에 대한 착각은 두 지역 모두에서 심각한 편향을 낳고 있다.
수도권의 엘리트 집단은 국제화, 금융화, 정보화 등에서 최첨단을 달리고 있다. 반면 진보진영의 상층 간부들은 부지런히(?) 지방을 순회하며 자기 조직을 챙기는데 급급하고 있다. 덕분에 양자의 격차는 불과 몇 년 사이에 현격하게 벌어지고 말았다. 자민통 진영이 주요 조직의 집행부를 장악하고서도 대국민적 영향력을 제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런 활동 패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진보진영에서 서울과 지방의 차이가 크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는 작은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결정적인 취약점은 진보진영 상층 간부들이 급속히 변화하고 있는 정세 발전을 따라잡으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면서 사회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또 다른 문제점은 과도한 서울 상경투쟁이 서울과 지방 모두의 성장에 장애를 조성하고 있는 점이다. 서울은 서울에 맞게 조직정치 사업을 진행해야 하고 지방은 지방 실정에 맞게 중장기적인 전망을 갖고 지방을 어떻게 장악해 갈 것인가를 계획해야 한다. 당장 서울 여론에 영향을 미치겠다는 발상으로 지방 역량을 불러올리는 것은 당장에는 편할 수 있어도 중장기적인 운동발전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셋째, 수도권과 지방은 역량관계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수도권은 공권력이 밀집된 곳인 반면 운동역량은 작은 곳이다. 적이 강한 곳에서 그것도 먼 지역의 병력을 차출하는 것은 병법으로 치면 하수 중의 하수이다. 이런 비효율적인 투쟁이 무수히 반복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반면 지방은 공권력이 약한 대신 소외된 지방민의 구체적인 요구와 생활공간이 밀집된 현장이다. 당연히 아타(我他) 사이에서 아(我) 역량이 우위에 설 수 있는 곳이다.
2006년 11월 22일 대회와 2007년 11월 11일 대회를 비교해 보라. 후자의 경우 엄청난 자원과 노력을 동원해 가며 서울로 올라왔지만 1회성 시위로 끝나 버리고 말았다. 서울 시청은 농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공권력이 밀집되어 있는 반면 동원해야 할 대중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다.
넷째, 수도권과 지방 사이의 기득권의 차이가 있다.
신자유주의가 전면화되면서 기득권이 ‘강남-강북-경기-지방’ 등 지역 차원으로 서열화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덕분에 서울 도심부로 올수록 점차 탈진보, 보수적인 색채가 강화되고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왔을 때 이를 수용할 정서적 공감대가 서울 도심부에 형성되기 어렵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 점이 1994년 UR(우루과이라운드) 반대싸움과 최근의 한미FTA 싸움의 중요한 차이이다. 전자의 경우 서울의 운동 역량이 강했고 서울의 청년층이 농민에 대해 우호적이었다. 물론 지금도 농민 시위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13년 전에 비해 서울 사람들은 농민에 대한 친연성이 약해졌고 ‘농업은 몰락할 수밖에 없다’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강하게 포박되어 있다.
따라서 지방민의 경우 서울 대중에게 호소하는 형태의 대중운동은 효과를 벌이기 어렵다. 기득권은 기득권으로 싸울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는 더욱 확대될 것이다. 이럴 경우 ‘수도권-지방’의 대립선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서울 시민에 호소하는 형태의 운동이 아니라 지방경제의 정당한 권익을 정치적으로 쟁취하는 방향의 운동이 보다 효과적일 것이다. |
북 연구 방법론 |
<소통과 논쟁 5> 민경우 기자가 진보진영에 제기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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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환 실천연대 정책 부위원장이 필자의 글 ‘경제공부를 하자’에 대해 ‘북한 공부를 하자’는 우회적인 비판을 보내왔다. 필자의 글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이 아니므로 문 부위원장 글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을 듯 하다. 그러나 본 연재에서 필자가 본격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부분도 북에 관한 것이다. 이에 기왕 논의가 제기된 김에 북 공부를 하는 관점에 대해 지적해 보고자 한다.
분단의 시원에 대한 연구
386세대들은 1987년 6월항쟁 이후 대대적인 ‘북한 바로알기운동’을 벌인 바 있다. 이 중 핵심이 되었던 것은 분단의 시원, 일제하 친일파들의 이후 행적, 분단 과정에서 미국의 역할 등에 관한 것이다. 이는 당시 집권 세력과 집권 세력의 재기에 공헌했던 미국의 실체를 밝히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나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등이 1990년대 초중반 자민통 진영의 필독서가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세계화 국면이 본격화되면서 분단의 시원을 둘러싼 논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첫째는 진보적인 입장에서 더 이상의 진취적인 연구 성과물이 나오지 않으면서 자주 민주 통일(자민통) 진영의 연구 성과는 점차 쇠진되기 시작했다. 이는 90년대 중후반 이후 자민통 진영이 학습과 사상이론적 작업을 게을리한 후과이다.
둘째는 90년대 중후반 이후 새로운 세대가 들어온 반면 이에 호응하는 새로운 연구 성과물들이 나오지 않으면서 자민통 진영의 이론과 새 세대 사이의 단절이 커지기 시작했다. 386세대의 경우 분단의 시원을 밝히는 작업이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는 각성의 효과를 가졌다면 90년대 중후반 학번에게는 이러한 효과가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분단 시원을 둘러싼 학습은 점차 대중성을 상실해 가고 있었다.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세대가 바뀌면 학습 내용도 바뀌어야 하는데 이를 게을리한 운동 세력의 책임이다)
셋째는 보수 세력의 반격이다. 보수세력은 ‘민족’, ‘분단-통일’, ‘항일-친일’로 이뤄진 일제시대, 분단시대사를 ‘근대-전근대’로 바꾸어 역사 전반을 재구성하려 시도하였다(이에 대해서는 뉴라이트를 다루는 이전의 연재물에서 소개한 바 있고 향후 자세히 소개하도록 하겠다). 이 결과물이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다.
그러나 이 성과물은 아직 대중적인 차원에서는 제대로 공유되지 않고 있다. 대중적인 차원에서는 여전히 애국주의, 민족주의가 강하기 때문이다(반면 보수세력이 제기한 사상전의 골자인 선진화, 자유주의 담론은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중적인 차원에서야 그렇다 치더라도 자민통 진영에서조차 이들 연구성과물에 대한 공부가 부족한 점은 심각한 문제이다. 최근 3~4년 사이 보수진영은 역동적인 사상투쟁을 통해 상황을 주도하고 있는 반면 진보진영은 인맥에 기초한 조직동원에 주력했다. 양자의 차이는 명확하다. 사상이론에서 주도권을 뺏기는 것은 중원을 내주고 경기를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자민통 진영은 지금이라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사상의 주도권을 회복하는데 전력해야 한다. 지난날 386세대가 분단의 시원을 밝혀내며 시대를 선도했던 것과 같은 진취적인 성과물을 대중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
내재적 접근법
19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 송두율 교수가 제기하여 화제가 되었던 북 연구방법론 중에 내재적 접근법이란 것이 있다. 북은 남의 시각에서가 아니라 북의 고유한 발전 과정에 따라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련과 사회주의 붕괴 이후 북 붕괴론이 기승을 부릴 때 북 내부의 고유한 발전 논리와 체제원리를 설명하는데 나름대로 유용한 이론 틀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내재적 접근법은 수세적이고 기형적인(?) 이론틀이다. 남과 자본주의가 우세한데 남과 자본주의 시각에서 기계적으로 보지 말자는 것인데 이럴 경우 북의 존재는 보편적인 원리상 문제가 많기는 하지만 북 자체의 고유의 논리와 원리상 쉽게 붕괴되지는 않는다는 소극적인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옳고 그름을 떠나 내재적 접근법이란 말 자체가 하나의 공상에 불과하다. 중남미 오지의 원주민이라면 모를까? 여타 사회와 영향을 주고 받지 않는 자체의 원리에 의해서만 작동되는 사회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재적 접근법은 요즘도 북에 대해 우호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방식은 여전히 북을 시혜적 입장에서 바라보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남이 경제적으로 북을 원조하는 측면이 남북관계의 한 측면이라면 북미 협상을 통해 일진일퇴하는 북의 모습이 남북관계의 또다른 측면이다. 이런 면에서 내재적 접근법은 90년대 초반 북 붕괴론이 기승을 부릴 때는 나름대로 진보성을 갖고 있었다면 북미 공방이 상당한 수준에 이른 지금은 유해로운 관점이다.
자민통 진영은 내재적 접근법을 뛰어넘는 진취적인 방법론을 개척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미국 주도의 일극질서의 파열/6.15 선언에 기초한 느슨한 통일/인구 8천만 정도의 평화와 공존을 지향하는 중규모 통일국가’ 정도가 어떨까 싶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
반국, 반북론 (半國, 反北論 )
좌파 진영에서는 그럴듯한 사회상을 가상하고 이에 맞춰 현실을 평가하고 진보적 미래를 설계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다 보니 공상에 가까운 평가와 미래를 그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북은 중국.베트남과 함께 유서깊은 동아시아 문명을 가지고, 농민과 민족을 동력으로 혁명을 성공시킨 동아시아 사회주의의 일원이며 1991년 냉전 이후에는 시리아.쿠바.이란.이라크 등과 함께 미국 주도의 일극질서 하에서 곤욕을 치른 중규모 반미국가의 하나이다. 21세기의 빛나는 태양이라는 평가가 과도한 평가라면 21세기에는 존재할 수 없는 기형적인 왕조국가라고 평가하는 것도 웃기는 것이다. 그런데 좌파 진영의 문헌에는 북을 역사에 존재해서는 안 될 망나니 국가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들의 관점에서 보면 이 세상에는 제대로 된 나라는 하나도 없다. 그러니 북유럽이 어쨌느니 베네주엘라가 어쨌느니 이리저리 공상만 해대고 있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평가가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을 사상하고 공상 속에서 이뤄지다 보니 미래 또한 그 수준에서 구상하기 마련이다. 한반도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통일과정에서 올 것이다. 어떤 형태의 통일이 되느냐에 따라 한반도는 물론 남측의 정치지형에 근본적인 변화가 올 것이다. 따라서 옳든 그르든 한반도에서 통일은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 마치 한반도 통일 문제가 진보적 미래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2005~6년 한반도 통일정세가 격동하면서 최근 좌파 진영의 견해에서 중요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2005년 2.27 민주노동당 정기당대회에서 채택된 통일방안에는 “당면 과제는 머지 않아 도래할 것으로 예견되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동북아 신냉전이 구축되기 이전에, 최소한 국가연합이나 연방제 방식의 통일이라도 이루어 국제적으로 우리의 민족통일을 기정사실화해야 함”, “궁극적인 통일체제는 남한 자본주의의 천민성과 북한 사회주의의 경직성이 극복된 체제”, “통일기반이 제대로 조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통일을 추진하다면 이는 오히려 남북간의 갈등과 혼란을 더욱 가중시킬 수 있다”는 등 시대에 뒤떨어진 난삽한 문구들이 적지 않았다. 이는 북미 협상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과도기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2005~6년 북미 핵협상이 본격화된 이후 진행된 2007년 민노당 내부 경선에서는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 의원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평화협정, 국가보안법, 주한미군 등 통일의 핵심적인 과제를 중심으로 간명하게 정리되어 있다.
좌파들 중 그래도 현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좌파와 그렇지 않은 관념적 좌파 사이의 입장이 갈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향후에도 이런 경향은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면에서 최근 민노당 내에서 불거진 논쟁은 시대를 역행하는 퇴행적인 논쟁이다.
자민통의 입장에서 평가해 본다면 합리적인 입장과 논리를 가지고 좌파들 중 일부를 견인하려는 자세와 입장이 부족했다고 볼 수 있다. 통일정세가 발전할수록 위와 같은 분화가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 자민통 진영이 선 지점은 소규모 써클에서의 내부 논쟁이 아니라 진보적 다수 대중을 설득해야 하는 위치이다. 따라서 무리한 논리와 언사는 역효과를 낳을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북미 대결론
1990년대 후반 자민통 진영을 풍미했던 이론은 김명철.한호석이 주장했던 북미 대결론이다. 2003년 북미 제네바 합의가 종료되는 시점에서 북이 미국을 제압하고 한반도에서 주도권을 잡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는 드라마틱하고 극적인 요소를 담고 있어 한동안 자민통 진영을 석권했다.
그러나 이 이론은 아타(我他)간의 역관계를 너무 단순하게 평가했다고 볼 수 있다. 중규모 반미국가인 북이 미국 주도의 일극질서 하에서 북미 양자간의 힘 관계만으로 미국을 제압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지극히 낭만적인 생각이다.
가령 러시아 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가 동요하면서 자본주의의 약한 고리인 러시아에 모순이 집적되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견고한 상태에서 러시아 대중의 힘만으로 러시아 혁명이 성공할 수는 없다.
따라서 북미대결을 고려함에 있어서도 당연히 북미 사이의 역관계와 함께 미국의 일극질서의 견고함 정도가 중요한 판단 지표이다. 미국의 일극질서가 견고한 조건에서 북이 미국을 제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북미 대결에서 북이 미국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논증하려면 북미 사이의 역관계와 함께 미국의 일극질서가 전 세계적인 범위에서 어떤 상태에 있는가를 객관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가설 차원에서 개괄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94년에서 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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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년대말에서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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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에서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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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94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압승
일본: 93~96년 정치혼란 끝에 자민당 일당독재
유럽연합: 온건좌파가 신자유주의 차용
미국이 금융자본을 중심으로 일본과 독일을 압도하기 시작함
미일동맹 재강화, 나토 유지.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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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부시 집권(2001년 1월)
일본에서 고이즈미 집권(2001년 4월)
유럽에서 유로화 출범(99년)
이라크 침공 과정에서 미일 유착, 미국과 유럽연합 균열
미국에서 주식 시장 파열, 부동산 거품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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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서프프라임 모기지사태 를 기점으로 경제위기 본격화
2006년 11월 미국 공화당 중간선거에 패배
2007년 7월 일본 자민당에서 선거 패배
2007년 11월 호주 총선 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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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동구유럽 탈사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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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3월 푸틴 집권, 중러 연대 가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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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중러 연대의 본격화, 상하이협력기구, 2005년 8월 공동군사훈련, 2007년 다탄두핵미사일 발사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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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92년), 인도(91년) 개혁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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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인도 등 거대인구국, 자원국의 경제적 부상
미-중국 사이의 불균형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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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년 이라크 궤멸, 중동에서 미국의 유일 패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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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침략과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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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이란 대선에서 강경파 승리
팔레스타인.레바논에서 강경파 승리
소말리아.아프카니스탄.파키스탄에서 이슬람 원리주의 급부상
오일달러에 기초한 중동의 국부 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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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인 신자유주의 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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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 차베스를 시작으로 온건 좌파 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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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주엘라.에콰도르.볼리비아 등 급진 좌파 부상
중남미 경제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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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 공화국 신자유주의 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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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지리아, 수단 등 석유 자원 부상 및 중국과의 관계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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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제네바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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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행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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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회담과 핵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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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년을 경과하면서 미국적 질서는 약화되고 있고 중.러 연대를 비롯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남아시아 등에서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다극적 요소와 갈등들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북이 갖고 있는 협상력과 협상카드를 잘 활용하면 미국의 압박(일극적 질서)를 벗어날 기회가 열릴 수 있는 것이다.
위의 설명이 맞든 틀리든 위와 같은 논거가 뒷받침되지 않고 북미 대결만으로 상황을 설명하려는 태도는 잘못된 것이다. 합당한 설명이 뒷받침되지 않은 조건에서 결론을 도출하려다 보니 무리한 논리가 동원되는 것이다.
끝으로 문경환 실천연대 정책 부위원장의 글 중에서 함께 고민했으면 하는 내용이 있다.
“또한 경제를 아는 데서도 북한을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경제가 중요한 것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한계가 명백히 드러나면서 한국뿐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경제가 어려움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다수의 경제전문가나 연구소들은 신자유주의를 기초로 경제를 해석하고 있으며 유럽에서 유행했던 ‘제3의 길’ 또한 신자유주의를 용인하는 노선으로 이런 것들을 중심으로 경제를 공부해서는 결코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북한 경제를 연구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를 극복하는 데서 가치가 있다. 북한 경제는 철저한 자립적 민족경제로 최근 ‘경제강국’ 건설에 주력하면서 일정한 성과도 내고 있기 때문이다.”
밑줄 친 부분의 평가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독야청청 우리 길만 가면 되는 것일까? 이걸로는 소그룹의 대장이 될 수는 있어도 국민대중을 설득할 수는 책임있는 정치세력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
관심의 이동, 의제의 확장 |
<소통과 논쟁 6> 민경우 기자가 진보진영에 제기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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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론이든지 이론의 핵심을 이루는 사고의 원형이 있다. 그리고 이는 한번 사람의 뇌리에 각인되면 사람의 행동을 강하게 좌우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운동이론의 경우에는 이러한 경향이 다른 것에 비해 훨씬 강하다.
‘자민통’(자주 민주 통일) 이론의 원형은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이다(식민지반자본주의론 또한 식민지반봉건사회론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은 일제시대 식민지 조선을 배경으로 형성된 이론 체계이다. 이에 따르면 민족모순에 의해 식민지 조선은 정상적인 사회발전이 지체.왜곡된다고 본다.
그러나 사회는 쉼없이 발전하기 마련이다. 민족모순에 의해 사회발전이 지체.왜곡되더라도 쉼없이 발전하는 사회변화에 대한 추적을 게을리하다 보면 자칫 사회적 현실과 맞지 않는 퇴행적(?) 경향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이는 은연중에 사람의 행동을 강하게 좌우하기 때문에 적극적인 노력이 없이는 쉽게 교정되기 어렵다. 지금 시기 소통과 논쟁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본 글에서는 사회변화에도 불구하고 자민통 진영이 취약하거나 간과했던 분야에 대해 지적해 보겠다.
1. 친농민적, 전통적(?) 정서 항일투쟁을 묘사하는 영화나 장면을 그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대상이 농민이다. 이는 반제 운동이 발원한 시기의 사회가 농업사회이고 일제에 의해 억압받던 대중이 주로 농민이었기 때문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은 민족모순에 의해 정상적인 산업화.근대화.자본주의가 억제되고 지주-소작 관계가 유지된다는 이론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는 식민지반자본주의론에서도 유사하게 계승되었는데 식민지반자본주의론은 자본주의화가 되었지만 민족 모순에 의해 자본주의적 발전이 지체.왜곡되어 봉건적,농업적 요소가 강하게 남아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자민통 진영은 유달리 친농민적 정서를 갖고 있다. 반면 한국사회에서 자본주의적 발전을 불가피한 과정으로 보는 ‘평등파’(?)는 농민을 자본주의적 발전에 따라 해체될 존재로 보기 때문에 이에 대한 관심 자체가 별로 없다.
그러나 사회는 참으로 많이 변했다.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다음의 통계 수치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해 보기 바란다. 2007년 현재 농민의 숫자는 320만 정도인데 이 중 130만 이상이 60대 이상의 노인이다. 이러한 경향은 시간이 흐를수록 가속화될 것이다. 반면 대도시 자영업자의 숫자는 600만이고 대학생의 숫자는 300만에 이른다. 이제는 아주 명백히 도시화.자본주의화.산업화가 되었다. 자민통 진영은 이러한 변화를 냉정하게 인정하고 관심과 시야를 돌릴 필요가 있다.
사고의 중심과 화두를 고도로 자본주의화된 영역인 정보통신, 금융 분야에 둘 필요가 있다. 가령 론스타와 외환은행, 김&장을 둘러싼 논쟁 등에서 자민통 진영이 보이고 있는 소극적인 태도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이와 관련된 주요한 이론 성과와 투쟁들이 엉뚱하게도(?) 자민통 진영이 아니라 평등파에서 나오고 있는데 이는 자민통 진영이 갖고 있는 친농민, 전통 성향을 고려하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이다.
자본주의화의 기형성을 찾고 싶다면 ‘지주-소작’ 관계가 아니라 대도시에 퇴적된 영세자영업자들에게서 찾는 것이 옳다. 자민통 진영에서 습관적으로 노농연대, 노농동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실제로 그에 입각해 행동 방침을 결정하는 경향이 있는데 인구 구성으로만 보면 노동자의 주요 동맹대상은 농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대도시의 영세자영업자라고 보는 것이 현실에 부합한다. 다분히 자민통의 언어인 노동자,농민보다는 평등파가 즐겨 사용하는 노동자,민중이라는 표현이 보다 상황을 정확하게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농민과 농촌의 문제는 몇 차례 언급했듯이 친환경유기농, 학교급식, 안전한 먹거리 등 대도시의 새로운 요구와 결합하고 몰락해가는 지방경제의 대변자로서의 지위를 강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2. 탈근대적 요소의 경시
자민통 이론은 민족 모순에 의해 사회의 정상적인 발전, 특히 근대화.자본주의화.산업화가 억제.왜곡.지체된다고 본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사회의 여러 가지 모순은 대체로 민족모순이 해결되면 자동적으로 해결된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민족모순에 의해 왜곡되는 다양한 모순은 주로 근대적 측면에 묶여 있는 반면 민족모순의 해결이 지체되는 동안 한국사회는 근대적 측면을 넘어 발전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실업 문제는 외세의 개입이 중단되어 정상적인 산업화가 이뤄지면 자연히 해결될 문제이다. 따라서 실업문제의 해결책은 반외세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고용 문제는 산업화가 이뤄지지 않아 발생한 문제라기보다는 자본주의가 고도화되어 발생한 문제와 그러한 고도화가 기형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생긴 문제가 결합되어 있다.
자본장비율이 높아지고 정보통신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투자 대비 고용 창출 효과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이런 점이 자본주의의 고도화에 따른 문제라면 생계형 영세자영업에 과도한 잉여 인력이 집적되어 있는 문제는 자본주의가 기형적으로 발전하여 생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생태나 환경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자민통 이론의 원형은 민족모순에 의해 정상적인 사회발전 특히 산업화가 이뤄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자민통 이론 체계 안에는 산업화가 너무 지나쳐 발생하는 문제 즉 생태계의 파괴나 지구온난화 문제 등이 강조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생태, 환경, 고용, 저출산.고령화 문제 등은 더는 미룰 수 없는 심각한 문제로 부상해 있다. 따라서 이들 문제에 응당한 관심을 돌려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자민통의 이론 체계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요즘 강조되고 있는 장애인, 이주 노동자, 성 소수자 등의 문제도 동일한 맥락에서 자민통의 이론 체계 안에 적극 포섭해야 한다.
3. 자본의 과잉
자민통 이론은 대체로 자본과 물자가 부족한 상태를 배경으로 형성된 이론 체계이다. 외세의 과잉 수탈에 의해 만성적인 물자 부족에 시달리고 독자적인 민족자본이 형성되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자본과 물자가 부족한 것이 문제라기보다는 자본이 과잉된 것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서민 생계의 핵심을 의식주(衣食住)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요소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시기와 결합되어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의식주 중 의(衣)와 식(食) 문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입을 것의 경우 워낙 저가제품이 범람하고 있어 큰 문제가 되지 않고 먹을 것의 경우에도 먹을 것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먹거리의 안전 등으로 관심이 이동하고 있다.
현대 사회라면 의식주보다는 주의교(住醫敎)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서민 생계의 고통이 자본과 물자가 절대적으로 귀했던 상황보다는 주로 자본의 과잉, 자본의 편중 때문에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부동산, 주식 등 자산 거품과 자산 양극화의 문제, 의료와 교육 등의 시장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의제라고 할 수 있다.
이들 문제들이 갖고 있는 중요성에 비해 자민통 진영의 관심은 현격히 떨어지는데 이는 민족문제가 해결되면 여타 사회적 문제들이 연쇄적으로 해결될 것으로 보는 단선적인 견해와 결합되어 있다.
필자가 보기에 두 가지 영역의 노력이 필요하다. 하나는 변화한 시대를 인정하고 이에 맞게 노선과 정책을 수정하려는 실증적이고 합리적인 태도이고 다른 하나는 이를 적극적으로 교정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다. 현재 자민통 진영의 문제점은 전자에 대한 적극적인 탐구와 논쟁이 부재하면서 은연중에 남아 있는 전통적인 이론 체계와 정서가 현재의 행동을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 듯 하다.
지금이라도 서점에 한번 들러보기 바란다. 『88만원 세대』, 『김&장』 등 고도로 현대화된 한국사회의 모순을 추적한 서적들이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라 있다. 자민통 진영에서 이러한 연구 성과들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은 자민통 진영의 이론 체계가 어떤 도그마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
<기고> ‘식민지반자본주의론’을 올바로 이해하자-문경환 |
문경환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정책위원장) 사실 사회성격에 대한 논쟁은 진부하다. 오래된 논쟁이고, 서로가 이미 결론 다고 치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갈수록 사회성격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면서 최근 변혁운동의 노선과 전략전술에 대한 여러 가지 편향들이 나타나고 있다. 올바른 사회성격 분석에서 올바른 변혁노선이 나올 수 있기에 사회성격을 올바로 이해하려는 노력은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한다.
최근 민경우 기자의 글(‘관심의 이동, 의제의 확장’ 통일뉴스 2월 15일자)에서 사회성격에 대한 분석이 종종 등장하는데 이를 보면 변화하는 사회상을 담으려고 노력한 부분은 돋보이나 현상적 변화를 본질적 변화로 오인하거나, 식민지반자본주의론을 잘못 이해한 부분이 존재하여 오해의 소지가 있기에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의 사회성격이 변화하였다면 변혁운동의 단계도 변화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자주, 민주, 통일로 대변되는 변혁운동의 단계를 수정해야 할 근본적인 변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변혁운동 이론의 내용을 전부 해설하기는 어려운 관계로 쟁점이 되는 몇 가지 부분만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농민 계급이 여전히 주력군인가 하는 문제다.
주력군이란 원래 변혁운동에 절실한 이해관계를 가지면서 변혁운동의 주공전선을 밀고 나갈 수 있는 역량을 갖춘 부대를 말한다. 주력군의 기준은 변혁성, 조직성, 규율성, 단결력 등이다. 여기서 해당 계급계층의 인구 비율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단적으로 일제강점기 노동 계급은 소수였으나 항일투쟁 과정에서 이들을 농민 계급과 함께 핵심 역량으로 내세웠던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현재 북한의 선군정치를 봐도 인구 비율로 보면 소수에 불과한 인민군대를 주력군으로 내세우고 있다.
농민 계급이 주력군인가를 살펴보려면 인구 비율을 살펴보기 전에 진보진영의 투쟁, 특히 주공전선인 자주, 민주, 통일 투쟁에 대한 농민의 참여 비율을 먼저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작년 한해만 해도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저지 투쟁이나 범국민 행동의 날을 비롯한 여러 투쟁에 다수의 농민들이 참여하고, 이들의 변혁성이나 단결력도 높은 편이다. 전농의 적극적 참여가 있었기에 민중총궐기도 성사되었고 민주노동당도 성장, 강화되었다. 이처럼 현실을 보면 여전히 농민 계급은 변혁의 주력군이다.
둘째, 식민지반자본주의론에서 제시하는 한국 사회성격의 기본 징표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다.
민 기자는 식민지반자본주의론이 ‘민족 모순에 의해 자본주의적 발전이 지체, 왜곡되어 봉건적, 농업적 요소가 강하게 남아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식민지반자본주의론은 원래 ‘반자본주의’의 개념에 대해서 ‘외세에 의해 자본주의로서 자기 구조와 형체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는 예속적 자본주의, 외세에 끌려 다니는 기형적 자본주의, 갈수록 예속화, 기형화되는 반신불수의 자본주의’라고 규정한다. 또한 반자본주의의 성격을 ‘봉건과 자본주의가 절반씩 혼합되어 있는 절충적인 사회’로 보는 견해나 ‘봉건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넘어가는 중간 단계 과도적 사회’로 보는 견해를 잘못된 ‘편향’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즉, 반자본주의는 외세에 의해 비정상이 된 자본주의를 말하는 것이지 ‘봉건적 요소’가 강하게 남아있는 자본주의를 뜻하는 게 아니다.
물론 반자본주의의 내용에 봉건적 잔재가 포함되기는 한다. 하지만 이는 전체를 놓고 볼 때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사회가 반자본주의 사회인 근거는 크게 정치 분야, 경제 분야, 군사 분야로 나눠 살펴볼 수 있다. 이 가운데 경제 분야를 살펴보면 ▲경제체제가 체질적으로 미국에 예속되어 있다는 점 ▲민족산업, 토착자본이 파산하고 외국자본에 빌붙어 사는 자본이 비대하다는 점 ▲채취공업과 가공공업, 기계공업과 경공업, 내수산업과 수출산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심한 불균형이 존재하여 균형 잡힌 자본주의 경제로 되지 못한다는 점 ▲노사대립이 극도로 치열하다는 점 ▲농업에서 봉건적 생산관계가 존속하고 미국의 잉여농축산물 수입으로 농촌이 붕괴하고 있다는 점 등을 볼 수 있다. 즉, 한국은 일반적인 자본주의 국가의 경제 모습과 판이하게 다른 자본주의 경제 형태를 띠고 있다.
셋째,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의 상호 관계에 관한 문제다.
자주, 민주, 통일 운동은 민족해방과 계급해방을 함께 추구하는 민중적인 변혁운동이며 결코 민족모순이 해결되면 자동으로 다른 모순들이 해결된다고 보지 않는다. 한국 변혁운동의 특징은 ▲미국의 예속에서 벗어나 민족적 자주권을 되찾는 운동이며 ▲근로민중을 사회의 주인으로 내세우는 대중 해방을 위한 운동이며 ▲특정 계급계층만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광범위한 대중들의 요구를 반영하는 대중적이고 민중적인 운동이며 ▲민족해방을 앞세우면서 계급해방의 과제를 밀접히 결합시키는 운동이라는 점이다.
한국 변혁운동의 목표인 자주적 민주정권은 미국의 예속에서 벗어난 민족자주정권이며 각계각층 민중에게 민주주의를 실시하는 민주정권이다. 자주적 민주정권이 건설되면 이 정권의 성격과 기능을 더욱 강화, 발전시켜 사회 모든 분야에서 민주변혁을 수행해야 한다. 이는 정권이 건설되었다고 해서 변혁운동이 끝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단 자주적 민주정권을 건설하면 사회정치생활을 민주화하는 것은 물론 민중 중심의 진보적 정치체제를 수립하며, 주요 산업을 국유화하고 토지를 개혁하며 양극화를 해소하는 등 경제생활의 민주화도 실현해야 하고, 나아가 노동관계법 등 각종 법, 제도들을 민중중심으로 손질하고 사회 전 분야에서 민주주의적 사회개혁을 이뤄야 한다.
이처럼 자주, 민주, 통일 운동 이론은 결코 민족모순 해결만 일면적으로 강조하지 않는다. 민 기자가 ‘여러 가지 모순은 대체로 민족모순이 해결되면 자동적으로 해결된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고 한 지적은 변혁 이론이 그러하다는 것이 아니라 변혁 이론을 현실에서 제대로 적용하지 못하고 편향적으로 집행한 진보진영의 부족점을 꼬집는 것으로 이해해야 하겠다.
사회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그 변화 속도는 점점 빨라진다. 삼성전자의 황창규 반도체 총괄사장은 1999년 반도체 집적도가 매년 2배씩 높아진다는 ‘황의 법칙’을 내놓고 8년 연속 입증하고 있는데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만 빨라지는 게 아니라 사회 모든 영역의 변화에도 가속도가 붙는다. 이런 변화에 발맞춰 변혁운동의 진로를 고민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본질적 변화와 현상적 변화를 구분해 보고 주공전선과 보조전선을 정확히 설정하며 변혁운동의 이론을 현실에 편향 없이 구현한다면 자주적 민주정권 수립도 그리 머나먼 미래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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