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15일 월요일

[프레시안] 차베스 이후, 베네수엘라는 몰락하고 있는가?

차베스 이후, 베네수엘라는 몰락하고 있는가?

[기고] 베네수엘라의 새로운 혁명 주체 : 대중


안태환 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 HK교수 2014.11.20 14:46:39

지난 8월 베네수엘라에 다녀왔다. 차베스가 2013년 초반에 세상을 떠나고 베네수엘라의 정치 지형의 가장 큰 특징인 정치적, 사회적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다. 친(親)차베스 진영과 반(反)차베스 진영의 갈등과 대립이 계속해서 심하다. 새로운 '사회주의' 혁명을 진행시키고 있는 것을 염두에 두면 당연하다.

버스 노동조합 지도자 출신인 현재의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가 차베스만큼 개인적 카리스마가 크지 않아 더 어려움이 큰지도 모른다. 이에 그치지 않고 생필품, 전기, 수도 등 경제생활의 기초 재화 부족, 정부에 의한 물가 통제의 부작용인 생필품 밀수, 매점매석 및 치안 상황의 악화, 외환 보유고의 감소 등 다양한 악재 또는 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차베스 혁명'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1973년 9월 11일 칠레의 아옌데가 피노체트에 의해 폭력으로 무너졌었다. 아옌데도 당시 기초 재화 공급의 문제가 심각했지만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칠레의 일반 대중이 혁명 상황의 주체로 변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겉만 보면 차베스 사후 베네수엘라도 비슷하다. 하지만 베네수엘라는 다르다.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영국 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쳐온 포스트마르크스주의자 에르네스트 라클라우에 의하면 '(급진적) 대중'은 저절로 그리고 선험적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많은 사회에서 변혁을 지향하는 것은 소수의 지식인과 소수의 시민이다. 대개 대중은 소비 대중의 정체성을 가진 비정형이다.

그렇다면 베네수엘라 대중은 어떤 모습인가? 베네수엘라 친차베스 진영의 핵심은 노동조합이나 정당이 아니고 '대중 부문(sectores populares)'이다. 여기서 일컫는 대중은 시민 모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으로 배제되어온 가난한 사람들을 의미한다. 이들은 1980년대처럼 계급으로 호명되는 이들이 아니다.

라클라우는 비정형 대중의 정체성은 기득권층의 공격이 있을 때 여기에 어느 사회 그룹이 저항하고 다른 그룹과 접합하고 연대를 하는지에 의해서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베네수엘라에서 1차적으로 1989년의 '카라카소(대규모 대중 소요)'에서 그리고 2차적으로는 2002년의 '반차베스 쿠데타'와 '석유 파업' 당시 지금의 대중이 형성되었다.

흥미롭게도 1998년 대통령 당선 이전에 차베스는 이미 헌법의 전면적 개정의 복안을 가지고 있었다. 이 헌법에서 바로 미디어와 대기업(시장)의 권력이 아닌, 새로운 집단적 주체로서의 '대중' 권력을 상정하고 있다(제82조). 따라서 차베스 혁명의 급진적 변혁의 의미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의 민주주의 체제의 약점인 가난하고 평범한 대중의 배제를 극복하려는 광범하고 파격적인 새로운 직접 민주주의의 실천을 지향하였다는 데 있다.

▲ 베네수엘라에서 21세기 사회주의 혁명을
꿈꿨던 우고 차베스(1954~2013년).
ⓒwikipedia.org
베네수엘라 직접 민주주의의 중심적 제도는 바로 '주민 평의회'이다. 직접 민주주의의 모범 사례로 한국 사회에서도 자주 거론되는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의 시민 참여 예산제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베네수엘라 이것과 비교될 수 없다. 주민 평의회는 베네수엘라 전체 계급에 골고루 배치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로 도시 빈민가와 농촌에 있다.

주민 평의회는 2002년 정치적으로 커다란 위기 시에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법적으로 제도화된 것은 2006년이었다. 바로 이 해에 차베스는 "21세기 사회주의 혁명"을 선언했다. 물론 이 급진적인 제도는 백지 상태에서 나오지 않았다. 바로 이 점이 중요하다.

이미 베네수엘라에서는 1980년대부터 이렇게 비슷한 빈민가의 동네 공동체가 작동하고 있었다. 라틴아메리카의 1980년대는 주류 언론이나 학자들에 의해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린다. 그러나 비판적 시각에서 보면 이 시기는 '사회운동'의 시기였다.

외채 위기에 대해 대안으로 국제 금융 기관 등에 의해 강제로(?) 도입된 체제가 신자유주의이다. 알다시피 신자유주의에 한국 사회가 보였던 모습은 1997년 국가 주도에 의해 많은 국민들이 금 모으기(?)에 나섰던 것으로 상징된다. 베네수엘라는 달랐다. 동네 공동체를 이루고 기득권층 또는 중산층과 전혀 다른 가치관과 문화를 유지하고 있었던 가난한 대중이 자신들의 생존권 확보를 위해 곧바로 신자유주의 정책 집행에 대해 저항했다.

이들 대도시 대중이 사는 빈민가가 '바리오(barrio)'다(브라질의 경우에는 '파벨라'로 부른다). 우리식으로 이야기하면 '달동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은 기득권층의 삶의 방식 또는 문화와는 다른 문화(메렝게, 꿈비아 등의 춤과 음악을 즐기고 즉흥성이 강하다)를 가지고 비공식적(예를 들어, 행상 등)인 일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며 그들만의 강한 연대성을 보였다.

이들은 대부분 1950~60년대 라틴아메리카의 산업화, 도시화의 시기에 시골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우리의 경우와 달리 공업 부문에 취직할 수가 없었다. 이들의 저항 또는 시위가 1990년대로 이어져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시위로 지속되고, 여기에 중간 계급도 참여하고 어젠다도 다양한 공공성의 이슈로 확산된 것을 바로 베네수엘라의 '사회운동'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이 사회운동이 차베스 집권과 차베스 혁명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현재의 정치적 위기에서도 마두로 정부를 향한 대중의 지지를 가능케 했다. 그리고 그 에너지의 핵심적 존재가 바로 '주민 평의회'이다. 실제로 주민 평의회는 베네수엘라의 사회관계 또 권력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14년 2~3월에 있었던 반차베스 성향의 학생들이 중심이 된 격렬한 시위의 극복 또 반마두로 정부 쿠데타 음모의 분쇄 등의 맥락에는 주민 평의회로 상징되는 이들 대중이 있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신자유주의 시기에는 단순한 거리 시위 외에는 대중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차베스 집권 이후에는 주민 평의회를 통해 대중 권력이 행사되고 있다. 기존의 대의 기구 예를 들어, 지방 의회와 지방 정부는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이들 대중이 직접 민주주의의 주체가 되고 있다. 이들이 주체로 새롭게 출현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제도적 장치들과의 '단절'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의회 민주주의를 완전히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베네수엘라는 지금 애매한 경계에 있다. 과거 역사의 맥락과 앞으로의 유토피아적 이상 사이에서 흔들리며 정체성을 새롭게 형성 중에 있는 것이다. 핵심은 대중 권력의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여기에 국가가 깊이 개입하는 것이다.

이것은 신자유주의 모델과는 전혀 다른 모델이다. 이를 "21세기 사회주의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들 대중은 근대성 시민적 질서의 범주 밖의 "비공식적"이고 사회적으로 배제된 존재들이다. 1980년대와 1990년대를 통해 사회적, 경제적 배제가 진행된 것에 대한 차베스 집권 이후 이들 대중과 정부의 응답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복지 국가의 능력이 축소되었다. 이에 대해 이들 대중은 예를 들어, 세금 같은 것을 내지 않고 불법적으로 토지를 점유하고 불법 무허가 건물을 짓고 살았다. 이들은 일반인들과 분리된 산동네 같은 곳에 산다. 스스로 집을 짓고 그 장소를 지키기 위해 투쟁한다. 자기들 스스로가 가장 가난한 사람들임을 인식하고 집단적 사회적 주체로 출현한 것이다.

이들은 더 이상 노동조합 또는 정당에 기대지 않는다. 그리고 자본주의 시장 범주 바깥에서 그들 스스로의 방법으로 생존한다. 또 독특한 하위 주체적 문화를 가지고 산다. 사회의 다른 부문의 논리와 대결하고 저항하며 산다. 가난하지만 '축제'적 정신을 가지고 산다(살사, 메렝게, 바예나또, 란체라, 락, 힙합, 볼레로 음악을 즐긴다). 그리고 생존하기 위해 서로 연대하는 방법을 안다.

평등의 이상을 가지고 오랫동안 살아온 이들은 집단적 '기억'의 독특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1980년대 말까지는 이들은 시혜적인 사회 정책의 대상이었고 지배적 정당과 연계되는 '연고주의(퍼주기)'의 망 속에 있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대로 1990년대부터 새로운 주체가 되기 시작했다. 자유주의(대의주의) 정치 제도 자체를 거부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1978년의 선거 기권율이 12.5%였다가 1989년에는 이것이 54.4%로 증가했다. 이렇게 된 맥락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정상적 노동과의 연계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동네' 외에는 기댈 데가 없어진 것이다. 1990년에 이미 동네 공동체가 약 1만 개에서 1만2000개 정도 되었고 카라카스에만 약 200개 정도 되었다.

이 동네 공동체에서 비롯된 주민 평의회의 정치철학은 루소가 언급한 '자기 통치'의 정신이다. 특히 1980~90년대에 스스로 만든 도시토지위원회(CTU), 건강, 교육, 스포츠 등의 공동체 활동이 현재 베네수엘라 정부의 미션 사업과 연계되어 있다. 2006년 현재, 물위원회 6600개, 도시토지위원회 6740개, 공동체 은행 3600개 정도다.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운동 단체는 미국 등과 달리 정치와 거리를 두고 분명한 이익 범위를 두고 있는 안정적인 단체가 아니라 매우 유동적이고 즉흥적이고 또한 매우 정치적이고 경계가 애매한 성격을 가진다.

2011년 현재, 주민 평의회는 약 4만3000개다. 카라카스에만 약 1500개가 있다. 술리아 주와 라라 주에 많다. 지속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차베스 혁명이 소리 없이 진행된 것을 의미한다. 평균적으로 공동체 구성원의 약 67%가 평의회 회의에 참여한다. 주로 공동체의 즉각적 문제 해결을 지향한다.

예를 들어, 81%의 프로젝트는 인프라 건설에 대한 것이다. 주민 평의회에 대한 주민들 평가는 아주 우수 70%, 우수 74%이고 나쁘다 53%, 아주 나쁘다 48%에 이른다. 이들 대부분(61%)은 시정부 등의 행정을 공동체에 이관하는 것을 지지한다. 출석률을 보면 자주 참석, 또는 가끔 참석을 합하면 약 67%가 된다.

주민 평의회를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시장 또는 읍장이다. 가장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이런 직접 민주주의로의 변화를 뒷받침하는 중앙 정부이다. 그렇다면, 주민 평의회가 안정적인 정치적 공동체로 확실히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현재의 모습만으로는 이 질문에 확실한 대답을 할 수 없다.

'애매성'을 21세기 사회주의의 특성으로 이해한다면, 앞으로도 우리는 베네수엘라에서 진행중인 "21세기 사회주의 혁명"을 더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안태환 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 HK교수


원문출처 :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2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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