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스페인의 새 정치세력이 성공한 이유
[주간 프레시안 뷰] 유럽 '정치 대지진' 일어날까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 2015.02.05 18:07:51
▲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포데모스 대표는 1월 31일(현지 시간) 스페인 마드리스에서 열린 '변화를 위한 행진'에서 "변화의 바람이 유럽에 불기 시작했다"고 연설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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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포데모스 대표는 1월 31일(현지 시간) 스페인 마드리스에서 열린 '변화를 위한 행진'에서 "변화의 바람이 유럽에 불기 시작했다"고 연설했다. ⓒAP=연합뉴스
전신은 ‘마르크스레닌주의 네덜란드 공산당’
조기 총선이다. 자유민주인민당(VVD)이 이끌던 우파 연정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으며 내각을 지지해온 극우파 자유당(PVV)이 지지 입장을 철회해 연정이 붕괴한 탓이다. 쟁점은 긴축정책이었다. 정부가 유럽 재정위기를 고려해 긴축재정을 추진한 게 화근이었다. 채권국인 네덜란드는 그리스나 스페인 같은 채무국과는 다른 상황에 있을 것 같지만 이 나라에도 역시 경제위기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2주 뒤로 다가온 이 나라 총선을 놓고 온 유럽이 다시 술렁이고 있다. 몇 달 전 그리스 총선 때처럼 금융 과두세력이 가슴을 졸이고 있다. 그리스의 급진좌파연합(SYRIZA)처럼 금융자본주의를 정면 공격하며 갑자기 지지세를 늘려가는 한 좌파 정당 때문이다. 토마토를 당의 로고로 사용해서 흔히 ‘토마토당’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사회(주의)당(SP)이 바로 그것이다.
본래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두 정당은 자유민주인민당과 노동당(PvdA)이다. 전자는 총선 전까지 여당이던 보수 우파 정당이고, 후자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다. 이제까지 네덜란드 정치의 상식대로라면 우파 연정의 붕괴로 조기 총선이 열리는 만큼 노동당의 집권 가능성이 높아지거나, 자유민주인민당과 노동당 두 당 사이에 각축이 벌어지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노동당이 아니라 사회당이 좌파 쪽의 최다 지지 정당으로 치고 올라오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제1당 자리를 놓고 자유민주인민당과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그럼 사회당은 도대체 어떤 정당인가? 이름만 들으면 그냥 또 다른 사회민주주의 정당 같다. 프랑스나 벨기에에서는 ‘사회(주의)당’이라는 이름의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좌파의 제1당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당의 애초 창당 당시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듣고 나면 느낌이 달라질 것이다. 바로 ‘마르크스레닌주의 네덜란드 공산당’이었다.
1971년 주로 68세대로 이뤄진 마오쩌둥주의 세력이 친소파 공산당과는 별개로 결성한 정당이 현재 사회당의 모태다. 뿌리만 놓고 보면 자본주의의 발상지인 네덜란드에 이보다 더 어울리지 않는 정치세력도 없는 듯하다. 게다가 바로 전 총선인 2010년 선거 결과를 놓고 봐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때 사회당은 불과 9.9%를 득표해 15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그런데 2년 만에 상황이 돌변해 여론조사에서 20% 안팎의 지지율을 보이는 것이다. 이쯤 되면 그리스 총선 때 한 차례 혼비백산했던 유럽 정치 전문가들이 사회당에서 급진좌파연합의 환영을 보며 경기를 일으키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좌파 노동당, 극우파 자유당 동시 타격
사회당이 주류 여론을 당혹시킨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6년 총선에서도 사회당은 이전 선거에서 거둔 득표율(6.6%)의 거의 세 배에 달하는 16.6%의 지지를 얻어 주목받았다. 이때의 급성장은 1년 전 있은 유럽헌법안 국민투표의 여파 덕분이었다. 이는 근대 네덜란드 역사상 최초의 국민투표로, 프랑스에서 먼저 국민투표를 통해 유럽헌법안이 거부되고 사흘 뒤에 실시됐다. 결과는 프랑스와 마찬가지였다. 63%의 국민이 참여해 62%가 반대표를 던졌다. 두 나라의 국민투표 결과로 유럽헌법안은 휴지 조각이나 마찬가지가 되고 말았다.
사회당은 이때 좌파 쪽의 유럽헌법안 반대운동 중심 세력이었다. 반면 좌파의 다른 두 대표 정당, 노동당과 녹색좌파(GL)는 찬성 입장이었다. 노동당은 다른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들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유럽연합-유로존이 등장하는 데 주축 역할을 해왔다. 1989년 친소파 공산당이 다른 소규모 좌파 정파들과 함께 ‘녹색정치’를 내걸며 창당한 녹색좌파 역시 유럽 통합 프로젝트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 원내 좌파 세력 중에서 오직 사회당만이 분명한 반대 입장이었다. 이에 따라 사회당은 국민투표 뒤 실시된 총선에서 유럽 통합 비판 여론의 좌파 쪽 수혜자가 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비판도 많이 받았다. 극우 인종주의 입장에서 유럽 통합에 반대하는 헤이르트 빌더르스의 자유당과 다를 게 없는 ‘좌파 포퓰리즘’이라는 것이었다. 노동당은 2006년 총선이 끝나자 이런 이유를 들며 좌파인 사회당이 아니라 우파 정당과 함께 연립정부를 구성하기도 했다. 토마토당은 그 괄목할 성공에도 주류 여론에서는 여전히 왕따 취급을 당했다.
그러나 경제위기와 함께 유럽 통합 프로젝트의 모순이 적나라하게 폭로된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사회당의 고집스러운 유럽 통합 비판론은 이제 좌파 성향 유권자들의 지지가 이 당으로 쇄도하는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다. 반면 노동당의 지지율은 사회당에 추월당했고 녹색좌파의 지지율은 2.7%로까지 떨어졌다. 노동당이나 녹색좌파가 온갖 고상한 수사로 포장하던 유럽연합-유로존이 사실은 신자유주의 금융화 물결의 한 갈래에 불과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노동당과 녹색좌파만 사회당 돌풍의 타격을 받은 것은 아니다. 또 다른 피해자가 있다. 극우파 자유당 역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자유당은 2010년 총선에서 15.5%를 얻었다. 그런데 이번 총선을 앞두고는 여론조사에서 계속 10%대 초반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최대 5% 정도의 지지층을 잃은 것이다. 그간 극우 인종주의 정당을 지지하던 일부 하층 노동자 집단이 사회당 쪽으로 이동한 결과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사회당 바람이 극우파 바람을 제압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간 주류 좌파들이 극우파의 약진에 속수무책이었던 데 비하면 주목할 만한 양상이라 하겠다.
다시 좌파의 근본을 생각케 하다
사회당이 이번 총선에서 내건 핵심 정책은 긴축정책 중단과 복지투자 확대다. 이들 역시 정부 재정의 일정한 삭감이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한다. 그러나 이들이 보기에 가위질이 필요한 것은 복지 예산이 아니다. 비효율적인 관료 기구를 손보는 게 우선이다. 국방비도 줄여야 한다. 그리고 고소득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물려야 한다. 반면 위기를 극복하려면 공공투자를 늘려야 한다. 사회당은 그 대상으로 주거, 에너지 절약, 환경 개선, 공공 교통, 보건 그리고 교육을 제시한다. 사회당의 이런 공약이 지금 복지 축소에 반대하는 네덜란드 민심을 결집시키고 있다.
하지만 사회당의 힘은 정책에만 있지는 않다. 또 다른 중요한 요소가 있다. 다름 아닌 이들의 정치활동 방식이다. 사실 68세대가 만든 정당치고 별로 성공한 사례가 없다. 좌파보다는 ‘녹색’을 강조한 독일 녹색당 정도가 거의 유일한 예외였다. 그런데 네덜란드 사회당은 좌파 정체성을 분명히 하며 성공한 또 다른 희귀한 사례다. 그럴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이들의 끈질긴 풀뿌리 정치활동이 있었다.
아직 ‘마르크스레닌주의 공산당’이던 시절부터 이들은 지역사회에 뿌리내리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이들은 가톨릭 성향의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지역 차원의 정치 쟁점에 대해 지속적인 캠페인을 벌였다. 주류 거대 정당들이 중앙정부의 권력에만 관심을 집중하는 상황에서 신생 사회당의 이런 활동 방식은 유권자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덕분에 사회당은 차츰 지방의회 내에 진지를 구축하게 되었다. 노동운동에 대한 이들의 접근법도 철저한 풀뿌리 방식이었다. 노동당은 노총의 조직적 지지를 받았지만 사회당은 그렇지 못했다. 사회당은 이런 약점을 노동자 당원들의 활발한 실천을 통해 극복해나갔다.
사회당의 독특한 성장사는 주요 지도자들의 이력에 뚜렷이 새겨 있다. 2008년까지 당 대표를 지내며 오랫동안 당의 얼굴 노릇을 해온 얀 마레이니선은 노동자 출신이다. 그의 정치 이력은 24살 때 지방의원에 당선된 것에서 시작됐다. 이후 그는 17년간이나 지방정치 무대에서 활동했고 이를 바탕으로 1994년 사회당 최초의 하원의원으로 당선됐다. 현재 당 대표로서 선거운동을 이끌고 있는 에밀 루머의 경우도 비슷하다. 그의 전직은 초등학교 교사다. 2002년까지도 학교 현장에 있었다. 그러면서 1994년부터 사회당 소속 지방의원으로도 활동했다. 그런 그가 외치는 ‘교육투자 확대’ 공약은 결코 빈말로 들리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사회당의 이런 당문화에 이 당의 저력이 있다고 지적한다. 네덜란드의 인구 규모에서 이 당의 4만6천여 당원은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더구나 사회당원들은 어느 정당의 당원들보다 일상활동에 적극적이다. 사회당 지역조직들이 이런 당원 활동의 구심 역할을 한다. 사회당 지역조직들은 당원들이 참여하는 지역 사회운동을 조직할 뿐만 아니라 한 세기 전 초기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역센터(‘민중의 집’)를 건설해 노동자들의 일상생활에 접근한다. 이 모든 게 실은 노동당 같은 오래된 정당들이 언제부턴가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좌파 정당의 본래 모습이다.
그러나 좌파 연정 쉽지 않아
현재 사회당은 차기 정부 구성권을 지니는 제1당 자리를 놓고 자유민주인민당과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다. 누구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접전이다. 여기에서 사회당이 승리하더라도 노동당·녹색좌파와 함께 좌파 연정을 구성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몇 달 전 그리스 총선이 그랬듯이 선거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이미 네덜란드 정치권의 혁명은 진행 중이다. 토마토당의 돌풍은 한 세기 만에 좌파의 대표주자 자리가 교체되는 이변의 시작일 뿐만 아니라 좌파정치 문화가 그 근본으로 돌아가는 의미심장한 흐름의 출발이다.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자문위원
3월 14일 토요일의 동포 강연회를 마치고, 3월 15일 일요일에 노회찬-김지선 일행은 공식일정 없이 헤이그 인근을 방문하고 저녁에는 동포 가족을 초대하여 저녁식사를 했다. 유럽 여느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일요일은 대부분의 행사가 자제된다.
네덜란드에는 세 개의 문화가 있다. 그것은 개신교, 카톨릭, 그리고 노동계급(사회주의) 문화다. 여기에 상류문화는 제외한다. 상류문화는 네덜란드 왕실을 정점으로 귀족들의 문화로 물론 일반대중들에게는 베일에 쌓여 있다.
20세기가 오면서 노동자계급이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넓히면서 자신들의 까페와 문화회관(민중의 집과 비슷), 스포츠클럽을 만들었고, 자신들의 신문과 라디오를 듣고, 자신들의 정당에 투표하는 노동자 집단문화를 이루었다.
네덜란드의 개신교도 역시 자신들의 문화를 만들었다. 이들은 주중에는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고, 일요일에는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린다. 일과 가족, 교회, 성경 읽기가 이들의 삶의 양식인 것이다. 이들이 모여 사는 지역에서는 지금도 일요일에는 마을 주민들이 대부분 교회에 가고, 상점들은 문을 닫고, 시끌벅적한 축제는 열리지 않는다. 한마디로 캘비니즘의 전통에 따라 생활한다.
네덜란드의 동부와 남부에는 카톨릭 문화권이다. 그들은 개신교에 비해서 덜 금욕적이고, 카니발 축제도 즐기는 자신들의 독특한 문화를 이루었다. 카톨릭 노동자들은 사회주의적인 노동자들과 별도의 노동조합을 이루고 있다.
카톨릭 교회는 신자는 많지만 개신교만큼 열심히 교회에 다니지는 않는다. 한국에서 크리스마스 때만 교회에 다니는 떡신자라는 말이 있듯이, 이들도 평생 세 번 교회에 간다는 말이 있다. 즉 첫 번째는 애기 때 세례 받으러 가고, 두 번째는 결혼식 때 가고, 세 번째는 죽은 후 관에 들어가서 한번, 딱 세 번 간다는 말이다.
세 문화권 모두 일요일에는 쉬자는 데 의견 통일을 보았고, 대부분의 상점은 일요일에 문을 닫았다. 물론 네덜란드 사회도 점차 미국화되어 일요일 시내에서 쇼핑하는 사람들이 늘어서 암스테르담 시내 중심가는 일 년 365일 옷가게와 관광상품점들이 문을 열고 있지만, 이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노회찬-김지선 일행은 네덜란드식으로 휴식을 취했다.
아침부터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고 시원한 바람이 산들산들 부는 봄날, 우리는 차로 한 시간을 달려 사회당 중앙당사가 있는 아머스포르트(AMERSPOORT)로 갔다. 인구 15만의 작은 도시지만 700년의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곳이었다.
위 사진은 아머스포트의 광장에 시장이 선 날의 광경이다. 가운데 교회종탑이 우뚝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유서 깊은 도시에는 어김 없이 높이 약 백미터의 종탑이 서있다.
위 사진은 아머스포르트의 대표적인 중세 유적인 아치형 수문과 성곽이다.
네덜란드 사회당은 한국 진보정치인 혹은 연구자들이 연구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당이다. 특히 유럽 대부분 나라들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우경화되고 신자유주의적인 경제노선이 여전히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가운데, 사회민주주의정당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대안으로 더 왼쪽에 있던 정당들을 선택하게 되는데 네덜란드 사회당 역시 이런 부류에 속한다.
네덜란드 사회당은 70년대 네덜란드 브라반트지방의 모택동주의 정치서클에서 시작해서 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후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폐기하고 의회민주주의체제를 전면 수용하고, 선거를 통한 집권을 표방한 후 선명한 좌파 노선을 걸으며 약 1.5%의 지지를 받으며 단 두석으로 1994년 처음으로 의회에 진출하였다.
2000년대 복지국가의 후퇴와 미국의 아프간, 이라크 전쟁에 대한 선명한 반대, 유럽경제통합으로 인한 자본의 권력의 강화에 반대했고, 노동자들이 권리를 옹호하여 선거마다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2006년에는 16.6%의 지지로 하원 150석 중 24석을 차지하며 제3당에 오르기도 하였으나, 세대교체 후 지지도가 떨어져 현재는 9.7%의 지지를 얻어 제 4당으로 15석을 확보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사회당(SP)과 한국의 정의당의 만남은 서로 많이 닮았으나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의 만남 같았다.
노 대표는 80년대 전두환의 군사독재시기에 대학을 졸업하고 용접 자격증을 따서 인천의 노동현장에 들어가 노동운동을 했던 이야기를 시작했다. 당시에는 야당들은 독재권력의 들러리에 지나지 않았고, 산업화 과정에서 가장 착취당하고 억압을 받았던 노동자들을 일깨워서 대중이 각성해서 일어나지 않는 한 정치를 바꿀 수 없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번 네덜란드 방문을 함께한 부인 김지선씨 역시 70년대부터 여성노동자로서 노동조합을 만들고 조합원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다 세 차례나 감옥에 간 이야기를 전했다. 한스 반 하이닝언 사무총장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지금 수준으로 발전한 것은 노회찬, 김지선 같은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며 놀라워했다.
70년대 사회당을 창립하고 당을 노동당 다음 가는 좌파정당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당의 대표를 지낸 얀 마라이네스 역시 브라반트지방 작은 공업도시 오스(Oss)에서 노동현장으로 들어가 노동자 신문을 집집마다 돌면서 배포하면서 지역에서 성장해온 정치인이다. 그러기에 사회당은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는 곳이나, 사회적인 약자인 노동자와 서민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운동에는 그들과 함께 힘을 합쳐 싸우는 정당이라고 소개했다.
70년대만 해도 유럽에서는 소련의 체코 침공으로 인해 이에 실망한 68혁명세대들이 마오주의에 관심을 가졌다. 헝가리와 체코의 민주화요구를 탱크로 짓밟고 패권주의적인 태도를 보인 소련에 비해, 중국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민족해방운동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 마오주의는 대중은 물이고 혁명가는 물고기와 같다며 항상 대중과 함께 생활하며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었다.
사회당의 창립자로 당을 오랫동안 이끌어온 얀 마라이네슨은 ‘우리가 무엇을 하려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대중이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냐가 중요하다’며 대중노선을 강조했다. 사회당은 캠페인이나 방송 인터뷰에서 항상 대중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용어와 활동방식을 사용하고 있으며, 지식인의 현학적인 언어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아머스포르트에 있는 사회당 중앙당사 빨간색 탑에는 ‘사람이 우선이다’라는 글이 씌여있다.
사무총장 한스는 80~90년대 8년간 부인과 함께 니카라구아에서 살면서 북부 산간지역에서 니카라구아 주민들을 위해서 의료봉사와 주민 생활여건의 향상을 위해서 노력한 전력이 있었다.
부인의 직업이 의사였는데, 사회봉사를 위해서 멀리 라틴 아메리카의 가난한 나라 니카라구아에 와서 봉사를 하게 되었고, 남편인 한스 역시 80년대 민중혁명으로 처음으로 민주주의를 시험하던 니카라구아에게 산간지역 주민들이 자신들의 공동체를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도우러 갔던 것이다.
그러던 중 한스는 지방정부의 요청으로 자문위원이 되어 사회개혁 정책에 대한 자문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90년대 총선에서 혁명정부가 패배하고 우익정부가 들어섰을 때 그는 정권의 평화적 이양을 위한 작업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그 일을 하게 된 계기는 권력 이양이 잘 안 될 경우 좌우간에 무력충돌이 벌어져 내전이 발생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스 사무총장은 한국의 민주주의와 경제정의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노회찬 대표는 한국은 87년 6월 민주화운동으로 대통령 직선제, 지방자치제, 정치범 석방 및 사면 복권, 언론 출판의 자유 향상 등을 이루었고, 바로 한 달 뒤 7,8,9월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서 대중적 노동운동이 시작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1992년 총선 이후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가 시작되어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과 2004년 원내입성을 거두었으나 진보정당 내부의 갈등으로 현재는 정의당이 국회의원 5석으로 제3당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설명했다.
한국의 선거제도가 소선거구제로 되어 있어 양대 보수정당이 나눠먹기를 하고 있고, 이런 벽 때문에 진보정당은 비례명부에서는 십 퍼센트 이상의 득표를 하지만 의석수는 훨씬 적다며 진보적 성향의 유권자들의 표가 동등하게 대접받도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참고로 네덜란드는 입헌군주국으로 의회가 상하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실권을 쥔 하원은 전국단일정당명부비례대표제를 택하고 있고, 상원은 광역지방자치의원들의 투표로 결정된다.
노회찬 대표는 또 한국에서 통합진보당이 몇 달 전 해체된 것을 얘기하면서 정의당은 비록 통합진보당과 당내 민주주의에 대한 입장 차이로 갈라지긴 했지만,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을 해산 조치한 것에 대해서 반대했다는 걸 전했다. 국민에 의해서 선출된 정당은 선거에서 국민들의 심판을 받는 것이 올바른 길이지 국가가 나서서 해산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었다.
경제에 관해서 지난 대선에 새누리당과 민주당 모두 경제민주화와 복지의 확충을 공약으로 내걸면서 한국의 정치는 앞으로 누가 더 국민들의 복지 요구를 잘 들어줄 수 있느냐를 놓고 경쟁하는 장으로 변하고 있다고 했다.
한스 사무총장은 미국과 북한 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북이 핵무장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의 전망을 노회찬 대표에게 물었다. 노회찬 대표는 앞으로도 미국과 북한 사이에 긴장이 지속되고 전쟁위험이 증가되거나 감소될 것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평화가 올 것으로 예상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두 사람은 네덜란드 상황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노대표는 네덜란드의 사회적인 합의 모델에 대한 사회당의 입장을 물었다. 한스 사무총장은 노사 간의 사회적 합의는 양자의 이해관계가 서로 맞아 떨어질 때 제대로 굴러갈 수 있으나, 노동자를 대표한 노조대표자들은 노동자들의 요구를 제대로 관철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70년대까지는 노사가 힘의 균형을 이루었으나 80년대 이후 지금까지는 사회 전반에 경쟁의 법칙이 관철되고 노동자의 단체협약을 통한 권리 보호가 점점 약화되어 왔다고 말했다. 이는 노동조합이나 노동당이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데 일방적으로 자본 측의 압력에 한발 두발 양보하며 물러서다 보니 노동자들의 조직력은 약화되고 싸울 의지조차 잃어 버리게 되었다고 말했다.
사회당은 2004년 우파 정부의 광범위한 노동제도 변경 시 강력한 노동자들의 저항이 있은 후 노사 간의 합의기구인 사회경제위원회(Sociaal-Economisch Raad)에서 노사정 3자간의 합의가 이뤄지자 합의안은 노동자들에게는 너무나 미흡한 것이라며 노동조합원들에게 반대표를 던지라고 요구했었다. 사회당에는 노동당에 실망하여 돌아선 활동적인 노동운동가들이 많이 포진해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보면 영국의 노동운동이 80년대 마가렛 대처의 강력한 우파개혁에 맞서다 역사적 패배를 한 것에 비하면 네덜란드 노동운동은 대화와 타협으로 심각한 패배는 피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한스 사무총장은 ‘조금씩 조금씩 빼앗기는 패배의 연속 보다는 완전한 패배가 더 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마치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넣으면 앗 뜨거워 하고 바로 도망나오겠지만, 미지근한 물에 넣고 천천히 데우면 저항도 못하고 잠든 채 죽는 것처럼 말이다.
현재에도 우파인 자유민주당과 좌파인 노동당이 연정을 하고 있지만 노동당이 자기의 지지기반의 이해관계를 반영시키기보다, 자유민주당의 정책을 쫓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창문 밖 길 건너편의 건물이 과거에는 노인 요양시설이었으나, 정부는 이런 시설의 절반의 지원을 중단하여 문을 닫게 하고, 노인들이 일반 주거시설로 옮기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일반 주거지역으로 옮긴 노인들을 보살필 방문 돌봄이 제도를 더 강화해야 하는 게 정상인데, 이런 방문 돌봄이 회사에 대한 지원도 동시에 줄여서 가난한 노인들은 아무런 보호와 보살핌을 받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노동당은 2차 대전 이후 사회복지와 노동권 신장을 가져온 사회민주주의 이념은 이미 그 역사적 임무를 다했으므로 이젠 더 이상 할 역할이 없다고 선언하였지만, 지금 생활인들은 사회민주주의가 후퇴해서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했다. 노동당이 스스로 집권당으로서 사회민주주의를 허물어트리면서도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한탄했다.
그 결과 코앞으로 다가온 3월 18일 광역지방의회선거에서 노동당이 참패를 할 것이고 사회당은 좀 더 성장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18일 선거 결과 노동당은 모든 지방에서 패배하며 1등을 한 지역이 하나도 없는 최악의 선거결과를 받았고, 사회당은 4년 전보다 지지율이 상승하며 최초로 노동당보다 더 많은 득표를 했다. 좌파에서 1, 2위가 바뀐 것은 네덜란드 현대사에서 처음 일어난 상징적인 사건이다. 그리고 북부지방인 흐로닝언에서는 사회당이 1위를 기록하여 최초로 한 도의 집권당이 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한스 사무총장은 사회당이 성장하게 된 것은 네덜란드에 노동-자본의 힘겨루기에서 자본의 힘이 너무 강해진 신자유주의시대에 신물을 느낀 노동자들이 사회당을 찍고 있기 때문이라며, 자기 당이 성장하는 것은 좋지만, 노동자들이 고통이 커지고 있는 현실은 결코 즐겁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1990년대 사회당이 최초로 의회에 들어갔을 때, 노동당의 정책을 비판할 때면 당시 제1당의 대표로 내각의 총리로 있던 빔 콕은 사회당이 대정부 질문에서 노동당을 비판하면 철 지난 맑스주의자들의 잠꼬대인 양 무시하곤 했었다. 그러나 노동당의 우향우가 계속 되고 사회 양극화가 점점 심화되면서 사회당은 어느새 노동당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었다. 아래 표와 그래프는 1994년 이후 양당의 의석수 변동을 보여준다.
자본의 막강한 힘을 잘 통제하여 빈부의 차이를 줄이고, 경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좌파 정부의 집권이 필요하다. 그러나 좌파가 집권하면 거대한 기업들은 해외로 본사를 옮기거나 해외로 자본을 옮기는 일을 하기 마련이다. 이에 대해 사회당은 무슨 대안이 있을까?
한스 사무총장은 그건 기우에 불구하다고 말했다. 자신이 당대표인 에밀 루머와 함께 브라질을 방문했을 때의 일화를 소개했다. 그들이 브라질에서 사업하는 네덜란드 기업인들을 만났을 때, 그들은 브라질 노동당이 집권했다고 해서 기업 활동이 위축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세금은 자기 회사만 더 내는 게 아니라 브라질 회사나 다른 외국회사도 더 내는 것이고, 저소득 노동자들에 대한 복지 정책으로 그들이 소비가 증가하여 회사로서는 더 많은 물건을 팔 수 있어서 좋아졌다고 했다. 좌파의 내수 활성화 정책이 오히려 이들 기업에게는 세금 인상을 상쇄할만한 매력있는 호재로 작용하는 것이었다.
네덜란드 정치상황에 이어 유럽공동체에서 사회당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가 이어졌다. 현재 유로화 위기가 계속 되는 난국에서 유럽연합에서 사회당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 지 노대표가 물었다.
한스 총장은 사회당은 유럽의회에서 GUE/NGL 에 속해 있다. 이 그룹은 SI(사회민주주의정당그룹)보다 왼쪽에 서 있는 좌파정당들의 연합체이다. 독일 좌파당, 프랑스 좌파전선, 그리스 시리자, 영국/아일랜드 신페인당 등 급진적인 좌파 정당들이 들어 있다.
유럽연합의 나아갈 길에 대한 이 정당들의 입장은 약간 차이가 있다. 남유럽 정당들은 유럽연합의 역량을 강화해서 유럽연합 내의 강대국과 약소국, 빈국과 부국 사이의 차이를 줄이고 하나의 연방국가처럼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적 통합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비해 네덜란드 사회당이나 핀란드, 독일 등은 유럽연합의 역할이 너무 비대해지면 회원국의 주권이 축소되고 나라의 민주주의 역시 제약을 받는다고 보고, 회원국의 독립성을 지키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런 입장 차이로 어떤 사안에 대해서 의견 일치를 못 보는 경우도 생기지만 서로 회원정당들의 입장을 존중하면서 최대한 공동입장을 내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한스 총장은 전했다.
한스 사무총장은 사회당이 일본이나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의 좌파 정당들과 광범위하게 교류하고 있다며 앞으로 한국의 진보정당인 정의당과도 꾸준한 교류를 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노회찬 대표는 사회당이 다가오는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얻고 더 성장하길 바라고 한국에 꼭 방문해달라고 말했다.
좌담이 끝난 후 한스 사무총장은 당사 전체를 돌면서 당직자들에게 노회찬 대표와 김지선씨를 소개했다. 당사는 건물 전체를 사회당이 단독으로 쓰고 있었다. 당사를 구입해서 꾸민 비용을 다 하면 한화로 약 30-40억원이 들었다고 했다.
그 많은 돈을 어떻게 마련했는 지 재정은 어떻게 마련하는 지 물었다. 정당명부제로 선거를 하므로 정당보조금 역시 총선 득표율에 비례해서 나오게 되므로 정당보조금이 크고, 약 4만 5천명의 당원들이 내는 당비와 공직자들이 노동자 평균급여만 받고 나머지는 당에 당비로 내는 제도를 엄격하게 시행해서 당의 재정을 마련한다고 했다. 이런 공직자 당비 납부 의무를 어기는 공직자는 출당 조치를 당하기도 한 바 있다.
건물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곳은 옥상과 지하였다. 옥상은 한쪽에는 당직자를 위한 휴게실로 쓰고 있고, 큰 미닫이 문을 열고 나가면 발코니 식으로 되어 있어서 햇볕을 쬐며 담소를 나누게 되어 있었다. 또 한 켠에는 긴 화단이 있어서 거기엔 화초를 재배하고 있었다. 당직자들의 휴식장소로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또 인상적인 것은 지하실의 창고였다. 거기엔 당 캠페인용 시위용품들과 기관지, 선거 홍보물 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회당은 선거 때만 반짝 유권자들을 만나고 평소에는 헤이그의 의회에만 머무르는 제도권 정당이 아니라 사회운동에 기반해 있고, 노동자와 시민의 참여로 움직이는 운동정당임을 증명해 보이는 듯 했다.
두 시간 여의 진지한 환담을 마치고 두 사람은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작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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