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0일 토요일

미국의 베네수엘라 반혁명 기도

미국의 베네수엘라 반혁명 기도[번역]우크라이나 식 ‘느린 쿠데타’
김성윤 번역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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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4.16  15:3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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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김성윤 <통일뉴스> 객원기자
출처 : , 2014년 4월 10일자 뉴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가디언>지와의 단독인터뷰에서 “베네수엘라의 시위는 미국이 석유를 원한다는 징후”라며 오바마 행정부가 끊임없이 우크라이나 식 ‘느린 쿠데타’를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정부 가두시위를 지속시켜 자신의 정부를 전복한 후, 베네수엘라 석유를 장악하려 한다는 것이다.

베네수엘라 ‘부자들의 폭동’
우고 차베스 사망 이후 지난해 대통령으로 선출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이런 ‘부자들의 폭동’이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며 현재 볼리바리안 혁명은 2002년 미국이 후원한 반 차베스 쿠데타 당시보다 훨씬 더 뿌리가 깊어졌다고 강조했다.

세계에서 석유 매장량이 가장 많은 곳 중 하나인 베네수엘라에는 지금 반정부 가두시위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그 주된 배경은 높은 물가, 물자 부족, 그리고 범죄 때문인데, 지난 2월부터 야당 지도자들이 마두로 대통령과 그의 사회주의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마두로는 “그들은 자신들의 시위가 ‘아랍의 봄’과 같은 이미지를 만들려고 하지만, 베네수엘라는 이미 봄을 맞고 있다. 우리의 혁명은 21세기를 열었다”라며 1개월 이상 계속된 반정부 시위를 ‘부자들의 폭동’이라 일축했다.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로 39명이 죽는 등 마두로 정부는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남아메리카 지역기구, 남미국가연합(UNASUR)이 제안한 야당과의 평화회담에 동의했으나 현재까지 야당은 정부 주도의 대화에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미국은 이 사태와의 연관성을 부정하고 있지만, 베네수엘라 정부는 미국이 정부 전복을 위한 쿠데타의 명분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휴먼라이트 워치’와 가톨릭계는 시위대에 대한 정부의 인권탄압이라고, 국제엠네스티는 양쪽의 인권학대를 동시에 비난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지난 수십 년간 끊임없이 기도해왔던 미국의 새로운 반혁명 전쟁에 직면하고 있다. 1960년대 브라질에서부터 2009년 온두라스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배후조종한 쿠데타나 쿠데타 시도를 근거로 제시했다.
버스기사, 운수노조 지도자 출신인 마두로 대통령은 카라카스 미라플로레스 대통령궁 연설을 통해 야당은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일어난 최악의 사태와 같이 전국 주요 도시와 거리가 폐쇄되고 행정력이 마비되어 선거로 집권한 정부를 쫓아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으며, 야당도 그와 ‘유사한’ 계획이 있다고 인정했다.
인플레-갈등-폭력-고립-개입-퇴진
“그들은 경제전쟁으로 생활필수품 공급을 중단하고 인위적으로 인플레를 가중시키며, 사회갈등과 폭력을 야기하고 나라가 온통 화염에 뒤덮이는 장면을 연출하여 국제적 고립과 개입을 유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5년간 사회적 공급의 빠른 증가와 불평등의 감소에 대해 마두로 대통령은 “내가 노조위원장이었을 때 교육, 의료, 주택, 임금에 대한 일관된 정책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베네수엘라는 일하는 사람이 권력을 가지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부자들이 소요를 일으키는 곳이며 가난한 자들은 자신의 사회적 행복을 노래하는 곳”이라고 역설했다.
물론 베네수엘라 시위의 발단은 57%에 육박한 인플레였는데, 지금은 월평균 2.4%로 낮아졌다. 생활필수품의 공급부족이 문제라고 하지만, 이웃국가 콜롬비아로부터의 밀수품이 훨씬 더 높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외환거래 완화는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경제성장률도 지속적으로 높아지며 빈곤율은 낮아지고 있다. 다만, 시위참여자들이 문제제기하는 베네수엘라의 살인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

지난 2개월간의 소요로 약2,200명이 체포되고 이 가운데 190명이 아직 구금되어 있다. 야당 지도자들은 “투쟁으로 거리를 밝히자”고 선동하고 있는데, 지난해 12월 지방선거에서 마두로 지지자들은 야당을 10% 이상 이겼기 때문이다.

사망자들에 대한 책임문제는 뜨거운 논쟁지점이다. 사망자들 중 8명은 경찰이나 비밀경찰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4명의 야권 활동가들-이중 1명은 친정부 지지자-은 경찰에 의해 살해당했는데, 이로 인해 경찰간부들이 체포되었다. 살해 추정 7명은 친정부연합의 활동가이며 13명은 바리케이트 안에 있던 야권 지지자였다.

시위 사망원인의 95%가 극우의 실수
정부가 이들 사망자들에 대해 어떻게 책임을 지느냐가 쟁점이다. 마두로 대통령은 사망원인의 95%가 극우그룹의 실수 탓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3명의 오토바이 이용자들은 바리케이트를 묶어놓는 쇠줄에 걸려 사망했다고 지적하고, 사망 경위에 따른 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국제 언론들이 독재정권이 학생운동을 탄압하는 ‘가상현실’을 상정하고 베네수엘라 상황을 보도하고 있다며 “세계의 어느 정부이든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으로 시행착오는 하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마두로의 이런 응답이 대학가의 타오르는 불길을 잡을 것인지, 아니면 선출된 정부를 엎게 할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현재 반정부 시위는 주로 학생들과 부자동네 출신들이 주도하는데 정부청사, 대학, 버스정류장의 방화로 이어졌다. 2월 수십만 명이 참가한 집회가 최절정이었는데, 지금은 시위대의 숫자도 줄어들고 야당 근거지인 콜롬비아 접경지, 타치라 주 등은 시위가 금지되고 있다.

2002년 쿠데타에 참가한 적이 있는 강경파 야당지도자, 레오폴도 로페즈와 2명의 야당 시장들이 체포되어 폭력선동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시위의 후원자인 마리아 코리나 마카도는 의회 내에서조차 우편물이 검열당하고 있다.

마두로 대통령은 이런 것들은 ‘불법행위’가 아니며 “야당은 완전한 권리를 보장받고 있다. 우리는 열린 민주주의를 갖고 있다. 그러나 정치인이 합법정부의 전복을 선동하고 자기의 지위를 이용해 거리를 파괴하고 대학과 대중교통수단에서 방화하는 등의 범죄를 저지른다면, 법원이 행동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비판자들은 법원이 이미 정치화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베네수엘라 간섭 
지난 3월 미 국무장관 존 케리는 베네수엘라가 대국민 ‘테러작전’을 벌이고 있다고 비난했으나, 남미국가연합(UNASUR)과 남미공동시장(MERCOSUR)은 베네수엘라 정부를 지지하기로 입장을 모았으며 정치적 대화를 촉구했다.
시위 군중과 미국이 연관되어 있다는 증거가 뭐냐는 질문에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지난 100년간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에 대한 미국의 간섭으로도 부족한가? 아이티, 니카라과, 과테말라, 칠레, 그라나다, 브라질을 간섭해오지 않았는가?”, “부시 미 대통령이 저지른 차베스 대통령에 대한 쿠데타로도 부족한가? 왜 미국은 전 세계에 2천여 개의 군사기지를 갖고 있는가? 전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서다. 나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더 이상 당신들의 뒷마당이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미국의 베네수엘라에 대한 어제와 오늘의 간섭에 대해 위키리크스 폭로 자료, 내부 고발자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드러난 미 국무부 문서를 인용했는데, 여기에는 미국 대사가 차베스 정부 시기 ‘분열’ ‘고립’ ‘조종’ 계획이 담긴 전통문이 포함돼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 수십 년간 베네수엘라 야당세력에 자금을 지원해온 것이다. 그 일부가 미국 국제개발기구(USAID)를 통해 은밀하게 또는 공공연하게 지원되었는데, 지금도 500만 달러 이상이 예산에 들어있다.

마두로 대통령의 문제제기는 지난주 드러난 미국의 쿠바 야권 지원으로 이어진다. 미국은 ‘개발지원’이란 명목이라 밝혔으나, 끊임없는 정치 불안을 부추기는 ‘플레시몹’을 퍼뜨리는 인터넷매체 지원이라는 것이다. 백악관 관리들은 이 지원 프로그램이 쿠바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했다.
반 엘리트 편향은 정당하다
마두로 대통령은 야당들이 참가를 거부해 정부 지지로 편향되었다는 지적이 있으나 국가평화협의회를 소집했다. 또 만일 야당이 폭력을 반대한다면 바티칸의 중재에 응하겠다고 말했다. 그와 차비스타운동(Chavista movement, 차베스를 따르는 운동)이 편향되어 있다는 비판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나는 민주주의에서 편향이 잘못됐다고 생각지 않는다. 지금 세계 추세가 되고 있다. 편향은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같다. 나는 모든 민주사회가 편향적이기를 바란다. 정치적으로 성숙해 있는 사회의 민주주의란 기능적 역할을 할 뿐이다”, “정치란 엘리트나 중도우파, 중도좌파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들은 권력과 부를 자기들끼리 나누어 가진다”고 마두로 대통령은 말했다.
“베네수엘라는 긍정적 편향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다수의 사람들이 공공정책을 좌우하는, 정치적으로 매우 성숙된 국가이기 때문이다. 물론 부정적 편향도 있는데,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배제한다. 우리는 이를 국가적 차원의 소통과 대화를 통해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네수엘라는 지난 수십 년간 급격한 정치변혁의 중심에 서왔다. 마두로 대통령은 지역발전은 계속될 것이라며 차베스가 1992년 “21세기는 우리의 것이다”라고 했을 때, 황홀한 이상이었으나 오늘은 이상이 현실로 되고 있으며 그 누구도 우리에게서 빼앗을 수 없다”라고 역설했다.
영원한 것은 민중의 힘
베네수엘라가 2009년 국민투표에서 대통령 연임 제한을 폐지했기 때문에 앞으로 선거를 통해 이러한 이상의 현실화는 계속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마두로 대통령은 “영국에서 총리는 선출되고 소환되기도 한다. 그러나 여왕은 누가 선출했는가?”라며 유럽식 선출과 소환을 반대했다. “내가 대통령에 머물 시간은 민중들이 결정할 것이다. 만일 내가 아니라면 또 다른 혁명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영원한 것은 민중의 힘. 그것뿐이다”라고 강조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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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27일 일요일

펌-단결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EL PUEBLO UNIDO JAMAS SERA VENCIDO (단결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2

영어로 하면 "PEOPLE, UNITED, WILL NEVER BE DEFEATED! WE WILL TRIUMPH."(단결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끝끝내 승리하리라. 이 구호는 칠레에서 정치행진하는 동안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된 것이다. 

EL PUEBLO UNIDO JAMAS SERA VENCIDO는 여러 가지 버전을 가지고 있다. 잔잔한 피아노곡에서부터 격한 감정을 토로하는 합창곡에 이르기까지... 
이 노래는 칠레의 피노체트 쿠테타가 일어나기 석달 전 1973년인 6월 Sergio Ortega(세르히오 오르테가)에 의해 작곡된 이후 전세계로 퍼져나가 칠레민중의 힘을 보여주는 예로 언급되곤 한다. 이 노래를 부른 대표적인 가수로는 칠레의 민중가수그룹인 Quilapayun(낄라빠윤)을 들 수 있는데, 그들은 1965년 세 명의 젊은 학생 훌리오 까라스꼬, 에두아르도 까라스꼬, 훌리오 눔와세르, 빠뜨리시오 가스띠요 등이 새로운 노래(nueva cancion)를 표방하면서 결성하여, 칠레의 민속축제 비냐 델 마르에 참가하여 우승하면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그룹으로, '세 마리의 새' 혹은 '검은 수염을 기른 세 남자'라는 뜻의 그룹명을 상징하듯 검은 수염과 검은 판초를 걸친 스타일이 당시 유행하면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여러 아류 그룹들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El pueblo unido jam&aacute;s ser&aacute; vencido 
(Quilapay&uacute;n - Sergio Ortega) 

El pueblo unido, jam&aacute;s ser&aacute; vencido, 
el pueblo unido jam&aacute;s ser&aacute; vencido... 

De pie, cantar 
que vamos a triunfar. 
Avanzan ya 
banderas de unidad. 
Y t&uacute; vendr&aacute;s 
marchando junto a m&iacute; 
y as&iacute; ver&aacute;s 
tu canto y tu bandera florecer. 
La luz 
de un rojo amanecer 
anuncia ya 
la vida que vendr&aacute;. 

De pie, luchar 
el pueblo va a triunfar. 
Ser&aacute; mejor 
la vida que vendr&aacute; 
a conquistar 
nuestra felicidad 
y en un clamor 
mil voces de combate se alzar&aacute;n, 
dir&aacute;n 
canci&oacute;n de libertad, 
con decisi&oacute;n 
la patria vencer&aacute;. 

Y ahora el pueblo 
que se alza en la lucha 
con voz de gigante 
gritando: ¡adelante! 

El pueblo unido, jam&aacute;s ser&aacute; vencido, 
el pueblo unido jam&aacute;s ser&aacute; vencido... 

La patria est&aacute; 
forjando la unidad. 
De norte a sur 
se movilizar&aacute; 
desde el salar 
ardiente y mineral 
al bosque austral 
unidos en la lucha y el trabajo 
ir&aacute;n, 
la patria cubrir&aacute;n. 
Su paso ya 
anuncia el porvenir. 

De pie, cantar 
el pueblo va a triunfar. 
Millones ya, 
imponen la verdad, 
de acero son 
ardiente batall&oacute;n, 
sus manos van 
llevando la justicia y la raz&oacute;n. 
Mujer, 
con fuego y con valor, 
ya est&aacute;s aqu&iacute; 
junto al trabajador. 

Y ahora el pueblo 
que se alza en la lucha 
con voz de gigante 
gritando: ¡adelante! 

El pueblo unido, jam&aacute;s ser&aacute; vencido, 
el pueblo unido jam&aacute;s ser&aacute; vencido... 

1. 
단결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으리. 
단결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으리. 

당당히 일어서서 노래하라, 우리는 승리하리라. 
연대의 깃발은 이미 전진한다. 
그대 또한 나와 함께 행진하리라. 
그리고 그대는 곧 그대의 노래와 깃발이 펄럭이는 것을 보리라. 
새벽의 붉은 기운이 이미 새 세상을 예고하고 있다. 

굳세게 일어서서 싸우라, 민중은 승리하리라.
우리의 행복을 쟁취함으로써 얻은 세상은 더 나으리라. 
투쟁에서 드높여지는 수많은 목소리로 우리는 해방을 노래하리라. 
우리의 결의로 조국은 승리하리라. 

(후렴) 
지금은 민중들이 투쟁 속에서 일어설 때 
거대한 함성으로 외치리라. "전진!" 
단결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으리. 
단결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으리. 

2. 
조국은 북에서 남까지 단결을 이루어간다. 
투쟁과 노동 속에서 결집하여 
불타는 소금광산에서 남쪽의 숲까지 열어젖히리라. 
조국을 지키기 위해 
그 발걸음은 이미 미래를 예고하고 있다. 

일어서서 노래하라, 우리는 승리하리라. 
수백만의 민중들은 이미 진실을 완성하고 있다. 
그들은 강철로부터 나온 불타는 대대이다. 
그들의 손은 정의와 이치를 나른다. 
열정과 용기가 가득한 여인 
당신은 이미 여기 노동자의 곁에 서있다. 

쏘련의 경험에서 무엇을 찾으려고 하는가? 한상원의 비판에 답하여 (1)-박노 자


몇주 전에 <레디앙>에서 상당히 재미있는 평론을 본 적이 있습니다. 백림 훔볼드트대에 계시는 한상원 선생님 (이하 존칭 생략)은 저에 대해서 두 가지 점에서 동의하기 어려운 여러 이유를 밝히신 것입니다. 하나의 문제는 "포스트"에 대한 비판이었으며, 또 하나는 "국가자본주의적, 전체주의적 지배체제였"던 쏘련을 제가 "다시 좌파의 담론에 복귀시키려"고 시도하는 데에 대한 비판이었습니다. 매우 체계성이 있는 한상원의 평론에 대해 계속해서 답변을 드리고 싶었는데, 시간사정이 여의치 않아 이제서야, 미국에서 잠깐 체류하면서 드디어 여유를 얻어 몇 문장을 적어볼까 합니다. 일단 "쏘련의 명예 복원 문제"부터 다루어보고, 차후 다음의 글에서 "포스트"에 대한 태도의 문제를 다시 다루어볼까 합니다.

세계 체제의 주변부에서 사는 것은, 솔직히 불편하고 힘든 일입니다. 아마도 한상원은 한국의 70년대를 목도하시지 않았을 터인데, 오늘날과 달리 한국은 명실상부한 주변부이었던 그 시절의 한국 지식인들은 보통 괴로운 노릇도 아니었습니다. 그 때는 예컨대 철학계에서 비교적 깨이신 분들에게 관심사가 된 것은 프롬과 마르쿠제 등의 산업사회 인간의 "1차원성", 창조성 상실, 내면의 고갈과 소외 등등이었습니다. <자유로부터의 도피> 같은 명작들은 그 때 처음 국역됐습니다. 그런데 양심 있는 지식인으로서는 프롬과 마르쿠제를 논하기가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왜냐? 미국의 한심한 신식민지, 최악의 착취와 억압이 자행되는 곳에서는 채홍사를 보내 여성들을 강제 징발하여 성추행하는 괴물 같은 "한국적 민주주의" 화신과 여성 노동자들에게 오물을 던지게 하는 수준의 자본가들부터 문제이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서는 산업사회에서의 인간의 소외를 논하기 전에 한국적 상황에서는 예컨대 남북문제부터 의제에 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답답하죠? 그런데, 이런 주변부적 답답함, 이 야만과 폭력 속에서는 김남주와 같은 유기적 지식인들이 형성될 수 있었으며, 결국 1980년대말에는 산업화된 세계에서 가장 전투성이 높은 노조들이 출현됐습니다. 그 전투성이 식을대로 식은 지금이라 해도 한 번 한국과 일본을 비교해보시죠. 이미 주변부도 아닌 한국이지만, 여러 모로 사회의 저항능력은 훨씬 더 강합니다. 핵심부 고정 멤버 일본보다 말입니다. 그러니까 주변부적 삶이란 어려움과 답답함 등과 동시에 어떤 가능성도 의미합니다. 변혁은 늘 (준)주변부에서 시작되니까요.

쏘련을 한상원이 논급하는 구주의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정면 비교할 수도 없는 주된 이유는, 러시아/쏘련, 나아가서 둥구 전체는 역사적으로 자본주의적 세계체제의 핵심부에 속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정러시아는 경제적으로 봤을 때에는 서구의 식민지에 가까웠습니다. 1914년에 러시아 전체의 산업자본의 약 47%는 외자 (주로 프랑스, 벨기에, 영국 등지로부터의 투자)이었으며, 특히 가장 선진적 산업부문은 거의 외국자본에 완전하게 종속돼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전기기계업 및 전기 관련 여타 부문에서는 약 90%를 독일자본 (주로 "시멘스" 재벌)이 콘트롤했으며, 금광업의 70%를 영국 자본이 콘트롤했습니다. 제정러시아의 정부는 특히 프랑스로부터의 차관없이는 그 어떤 대외적 행동 (전쟁 등)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기에는 서구 열강과 일본 간섭군이 탄압하려 했다가 실패한 10월혁명과 그 후의 내전은 일면에서는 "제3세계 민족해방 운동"으로서의 성격도 강했습니다. 물론 개인 차원의 "전적 해방"을 꿈꾸시는 핵심부의 지식인 분 차원에서야 가난과 종속에 찌들린 오지에서의 그런 발버둥들은 다소 재미없게 느껴질 수도 있겠죠. 주변부의 해방운동들은 개개인의 전적 해방을 가져다주기에는 하도 거칠고 일차원적이잖아요? 대대로 폭력과 억압에 익숙해지고, 세상에 문제가 있으면 이건 다 "유대놈" 등 외부자 때문인 줄 알고, "선하신 우리 황제님"을 신의 대표자로 인식해온 사람들에게 아주 일차적, 근원적 계몽부터 필요할 것인데, 특히 "포스트" 입장에서 본다면 이것은 아마도 또 하나의 억압으로밖에 안보일 것입니다. "포스트"하시는 분들은 그런 일차적 계몽이 아직도 들어오지 않는 지역에서의 삶이란 어떤 것인지 상상이라도 하실 수 있는가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10월혁명 자체도 "반제, 반식민 투쟁"의 일면이 있었기에 쏘련은 예컨대 중국 혁명 등의 자연스러운 우방이 될 수 있었습니다 (조선 혁명도 물론 그랬습니다). 결국 그렇게 해서 쏘련과 중국 등이 핵심부의 직접적 통제에서 벗어나서 잠시나마 대다수의 이해관계를 고려한 발전의 길로 갈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발전의 방식이 자본/노동 시장을 배제하고 노동의 상품화를 억제한 방식이었다는 것, 이것부터 좀 평가해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굳이 싼 값에 노동력을 팔아야 할 필요성도 없는 핵심부의 "지식인"이 아니고 인류 구성원 대더수의 관점에서 본다면 말입니다.

혁명을 했다고 해서 대다수의 사고가 하루아침에 완전히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러시아 농민들의 근왕의식, "선한 황제" 갈망 따위가 결국 스딸린 개인 숭배에 대한 대다수의 적극적 수용 등 추악한 현상으로 이어진 것도 사실이고, 이런 현상들이 사회주의의 본래의 목적과 무관할뿐만 아니라 정면 배치돼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무엇보다는 세계체제의 구조란 그렇게 쉽게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공업화에 성공했다 해도 쏘련은 많은 면에서 주변부적 사회에 불과했습니다. 그러기에 쏘독전쟁 (반파쇼 전쟁)에서 엄청난 희생 (2천7백만 명)을 치르지 않고서는 승리를 거둘 수 없었으며, 그러기에 대미 무장경쟁에서 대개는 미국을 따라잡느라고 거의 국부의 대부분을 낭비해야 할 노릇이었습니다. 독일, 그리고 무엇보다는 미국에 비해 약자이었으니까요. 약자가 강자와 부득불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약자 집단 안에서의 사정이란 어떤 건지 굳이 자세히 설명드리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총동원 분위기, "적의 스파이"에 대한 광적인 공포, 물자 부족, 긴장, 그리고 그 긴장의 분위기를 이용하는 권력자들의 각종 월권 행사...굳이 보지 않아도 뻔합니다. 그런데에서 살기가 편하냐 하면, 전혀 그렇지도 않습니다. 물자부족과 매일매일의 상점에서의 "줄서서 기다리기"도 그렇지만, 예컨대 저의 스승 격이 되신 분들에게는 대외접촉에 대한 관련기관의 통제는 가장 불편했습니다. 자본주의 국가 거주의 외국 동료가 레닌그라드에 오면, 그가 공산당원 등 검증된 "진보인사"가 아닌 이상 그와 대화를 나누고 나서 간단한 대화요약을 "제1부서" (각 직장단위에서의 보안기관 출장소)에 제출하라, 외국 학술지에 논문게재하려면 먼저 그 논문을 국역하여 "제1부서"에 제출하고 국가기밀 누설이 없는지 확인 받으라...귀찮아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솔직히요.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패권세력인 미 제국과 "담론"의 장이 아닌 실력의 장에서 붙으려면, 그리고 그 제국의 모든 파괴,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살아남으려면, 이런 내부규율없이는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인지 한 번 스스로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미 제국주의와의 투쟁을 미국 학술지에서 실리는 논문에서, "혼종성"이나 "이질적 공간", "탈주" 등을 이야기하면서 벌인다면 아무런 규율은 당연 필요없죠. 그러나 그런 "투쟁"으로는 세상이 약간이라도 바뀐 적은 있었을까요?

세계체제 패권세력과의 실력 투쟁에서 쏘련인민들이 그 자유와 권리를 아주 필요이상으로 희생해온 거야 사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인권침해와 관료주의적 개인 자유 유린이 많이 자행됐다는 것을 다 인정하더라도, 저는 그런 투쟁이 "좌파적 의미"에서 무의미했다고 전혀 보지 않습니다. 일단 노동의 상품화를 매우 억제하고, 이윤추구가 아닌 다수의 이해관계를 고려한 계획으로 산업사회를 운영해도 그런 사회가 충분히 잘 발전될 수 있다는 사실부터 입증됐습니다. 물로 그렇다고 해서 쏘련은 이상사회야 절대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어 군수공업의 전기수요 등이 있고 해서 탈핵에 거의 노력하지 않고 원전의존률이 높았다는 것은 지금으로 봐서는 엄청난 미비점이죠. 그런데 예를 들어 체르노블 재앙 이후의 쏘련 당국의 피폭인민 소개 작전과 후쿠시마 이후의 일본 당국의 대책을 한번 비교해보시죠. 일본에서는 과연 피폭지역으로부터 소개된 주민들에게 새 고장에서의 주택공급과 직장 공급 등은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요? 일본은 구쏘련보다 몇배 부유한 사회고 관료체제가 매우 발달된 사회인데, 빈민이 대부분인 후쿠시마 지역 주민들을 사실상 방기하고 거의 무대책으로 일관한 것은 자본주의의 기본적 속성과 연관돼 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는 쏘련사회는 질적으로 많이 달랐습니다. 그것뿐인가요? 주변부에서의 동원사회라는 악조건하에서 고투하면서 월남, 쿠바, 나아가서 남아공 등지에서의 혁명들과 연대해서 지원한 것은 자본주의적 세계체제 전체의 역사를 상당히 바꾼 건 아니었을까요? 월남에서의 참패가 아니었다면 70년대 이후 미 패권의 상대저 약화는 가능했을까요? 쿠바혁명없이는 오늘날 베네수엘라의 변혁은 가능했을까요? 베네수엘라의 빈민들에게 물어본다면 과연 그들은 그들의 관점에서 쏘련을 "전체주의적 국가자본주의"로만 평가할까요?

미치간의 밤이 깊어집니다. 아무래도 한꺼번에 20세기의 역사를 바꾼 실험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위한 모든 이야기를 다 적을 수 없기에 일단 지금 여기까지 쓰고 나중에 이 문제에 대해 계속 상론토록 해보겠습니다. 결론을 대신해서 말씀드리자면...역사는 교과서나 시험문제는 아닙니다. 역사에는 정답이 없어요. 역사를 변증법적으로 본다면 늘 진보에의 시도들에 각종의 부작용들이 생기게 마련이고, 또 그런 시도들이 초기동력의 소진에 따라 퇴보로 이어지기가 마련이기도 합니다. 쏘련의 실험도 그랬습니다. 가난과 억압에 시달려온 지역에서의 과감한 반체제적 반란은 시간이 갈수록 보수화, 제도화돼 그 한계를 노출시키고, 또 그 반란에 따르는 세계지배세력과의 무자비한 대결은 엄청난 희생을 요구해 그 반란의 초기 목적을 대단히 왜곡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계속해서 그런 류의 반란들을 일으켜서 이윤체계를 흔드는 것만은 우리가 "담론"이 아닌 현실의 차원에서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입니다. 현실로서의 쏘련에서는 추악한 면들은 많았습니다. 사실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쏘비에트"의 꿈은 계속해서 러시아나 네팔, 인도, 콜럼비아 등지의 배제 당하고 짓밟힌 자들의 발버둥을 자극할 것입니다. 역사가 진보한다면 바로 그런 발버둥, 세계적 착취 체제애 대한 그런 대듦으로 진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