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5일 목요일

[한미관계를 돌아본다 ⓛ] 교전으로 시작된 악연


[한미관계를 돌아본다 ⓛ] 교전으로 시작된 악연

“제너럴 셔먼호 사건과 신미양요”

이동훈 상임연구원

일반적으로 우리는 우리민족과 미국의 관계를 미군이 38도선 이남을 강점한 1945년 9월 8일로부터 찾고 있다그러나 미국이 한반도에 관심을 가지고 정치군사적으로 접근했던 시기는 이보다 한 세기가 빠른19세기 중엽부터였다19세기 극동에서 서구열강들은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 불평등 통상조약을 강요해 수탈하려 하였다이 과정에서 서구열강들은 함대를 동원하여 무력시위를 하는 등 군사력을 이용하여 아시아 국가를 공격하여 불평등한 조약을 강제하였다미국 역시 제국주의 팽창정책에 따라 조선과 교전하였는데이 사건이 바로 제너럴 셔먼호 사건과 이어진 신미양요이다.미국의 19세기 대외정책미국은 건국 초기부터 예외주의팽창주의를 추구하였다

국은 자신들의 국가를 특별한 국가라고 규정하였다종교적인 이유에서 시작된 예외주의는 유럽은 도덕적으로 부패한 대륙’, ‘신대륙은 유럽의 영향에서 벗어나야 하는 선한 곳으로 선전하였고이른바 미국의 팽창은 자유의 팽창이고 미국은 자유를 다른 영토에까지 전파하여 미국문명을 심어야 한다며 그들의 팽창을 정당화하는 주장으로 나아갔다미국의 예외주의는 19세기 초반미국의 아메리카 대륙 내부 영토 확장을 정당화하고 이후 팽창정책의 기초를 닦는 논리였다미국은 예외주의에 기반하여 자신의 팽창주의를 정당화 하였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팽창주의를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으로 해석하였다미국은 신대륙 국가로서 탄생부터 자유를 기반으로 하고 자유의 영역을 팽창할 운명을 타고 났다는 것1)이라고 주장하며 자신들의 식민지 개척정책을 교묘하게 포장했다.미국은 북미지역의 지배권을 장악하자 해외진출에 소극적인 자세를 버리고 바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진출하였다미국은 영토를 확장하고 남북전쟁을 거치면서 산업이 발달하여 잉여 공산품의 생산이 늘어나 새로운 시장 개척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북미 대륙에서 영토 확장이 어느 정도 완료된 미국에게 새로운 시장은 바로 해외를 의미했다때문에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여러 약소국가들을 식민지 또는 반식민지적 상품시장으로 만들기 위한 침략책동에 나서게 되었고 그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함포외교였다일단 미국은 무력을 앞세워 1844년 중미통상협정, 1854년 미일화친조약 등을 체결하였다극동지역에서 침략할 곳을 물색하고 있었던 미국에게 조선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특히 조선은 지정학적으로 볼 때 대륙으로 진출할 수 있는 최적의 전초기지교두보였다. 1853년 동래부 용당포, 1855년 강원도 통천 등지에서부터 미국함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미국의 아시아 접근이 빈번해지자 조선 근해에서 미국 배의 출몰과 정박이 잦았던 것이다.

국이 조선에 처음으로 통상개방 가능성을 타진한 것은 1832년이다일본과의 통상교역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하려 했던 로버츠는 미국으로 돌아가서 미일간의 조약을 체결할 수 있다면 대조선조약도 가능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1834년 맥레인 국무장관에게 보고하였다. 1845년 2월 15일 제 15차 하원회의 때 당시 해군군사위원회 의장이었던 프라츠는 미국의 대일 및 조선무역 확대를 위한 결의안을 제기하기도 했다프라츠는 일본과 조선의 인구를 합하면 총합 6,000만에서 7,000만 명 정도이니 일본과 조선에 외교관계를 튼다면 이보다 더 유익한 것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미국정부에 꼭 알려주고 싶다2)고 하였다당시 통상 요구라는 것은 불평등조약에 응하지 않으면 무력을 앞세워 제압하는 방식이었으므로 이는 명백한 강압적 의도였다.

조선의 통상수교거부정책
미국이 조선에게 함포외교를 시도하여 반식민지적 상품시장으로 만들려고 할 때조선은 고종이 즉위하여 흥선대원군이 섭정을 하고 있었다조선은 건국초기부터 명-청과는 조공외교를 진행하고 일본·여진과는 회유책과 강경책을 병행하는 사대교린(事大交隣)을 외교의 기본으로 삼았기 때문에 서구열강과의 교역에 대해 배타적이었다.조선정부가 서양을 배척하게 된 중요한 원인은 천주교 문제였다조선의 정치체제는 유교 사상을 기반으로 하여 백성은 임금에게 충성하고부모와 조상에게 효도하여야 하는 것이 기본적 통치의 이념이었는데,천주교인들은 조상들에 드리는 제사를 금하고 하느님을 숭배하였다조선정부는 유교 통치 이념과 충돌하는 천주교에 체제위협을 느끼고 18세기 후반부터 천주교를 탄압하였는데 이는 양이(洋夷세력에 대한 경계로 이어져 쇄국정책을 펼치게 되는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이는 대원군 섭정기간에도 마찬가지였다특히 제너럴 셔먼호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인 1866년 초천주교 신자들을 대거 처형하는 병인사옥(丙寅邪獄사건이 있었다. 1866년 당시 천주교는 신유박해(1801), 기해박해(1839)와 같은 일을 겪었으나 은밀히 신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초기에 대원군은 천주교를 묵인하고 있었고 오히려 천주교를 통해 서구열강과 교류를 할 생각까지 있었다당시 제정 러시아는 연해주까지 진출하여 조선 정부에 통상을 요구했었는데이에 위협을 느낀 대원군은 천주교 선교사들을 이용하여 영국프랑스와 동맹을 체결하려 하였으나 선교사들의 소극적인 태도로 무산되고 말았다여기에 천주교와 대원군이 연관되어 있다는 소문이 퍼지고 천주교의 확장을 못마땅하게 본 세력에게 몰리게 되어 권력이 흔들리게 되자대원군은 천주교 탄압에 들어가게 된다. 8천명에 달하는 천주교도가 처형되었고 프랑스 선교사 12명 중 9명이 처형되었다이 사건을 계기로 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은 더욱 강화되었다.조선이 그렇다고 외국인을 홀대한 것은 아니다. 1855, 1865, 1866년에 미국 배가 조선 연안에서 표류할 때마다 조선은 어려움에 처해 조선을 찾은 외국인을 국적에 상관없이 후대한다는 의미의 유원지의(柔遠之義)’에 따라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일례로천주교 신자에 대한 박해가 있었던 1866년 5월 미국 선박 서프라이즈 호가 서해안 청산 앞바다에서 표류했는데조선은 이들에게 인도적 구원을 아끼지 않았다조난 선원들은 청산 지역에 24일간 머물면서 대접을 받은 뒤 중국으로 들어가면서 옷과 음식까지 추가로 지원받았다이들은 의주를 거쳐 산해관과 심양으로 갔는데조선측에 있을 때는 후한 대접을 받았는데청나라로 넘어가자 대우가 나빠졌다고 전했다.제너럴 셔먼호 사건제너럴 셔먼호는 무게는 80t, 길이 약 55m 넓이 15m, 높이 9m 규모의 중기범선이다원래 제너럴셔먼호는 해군 소속 프린세스 로열호 였으나 대청무역 상인이었던 프레스턴(Preston)이 구입하여 제너럴 셔먼호라고 개명한 선박이었다프레스턴은 중국 톈진(天津)에서 영국의 메도우즈 상사(Messrs Medow & Co)와 결탁해 조선에 가지고 갈 비단·유리그릇·천리경·자명종 등의 상품을 셔먼호에 선적하였다배의 구성원으로는 영국인 페이지(Page, 45)를 선장으로영국인 개신교 선교사 로버트 토마스(Robert Thomas, 27목사를 통역으로호가즈(Hogarth, 37)를 관리인으로 임명하고중국인 해로 안내원 1화폐 감정원 1선원 16명과 말레이시아 인 선원 3명을 채용하여 선주 프레스톤을 포함하면 총 24명에 달했다.

제너럴 셔먼호. 군함이었던 프린세스 로얄을 프린스턴이 구입하여 제너럴 셔먼으로 개명하였다.

제너럴 셔먼호는 대포 2문을 보유하고 있었고 승무원들이 완전무장하여 애초부터 단순히 통상을 요구하는 상업선이 아니라 조선을 무력으로 위협할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이것은 그들이 항해도중 우리정부의 문정관(問情官)3)을 접할 때마다 군함이 아니라고 변명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중무장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4)을 보면 확연하게 알 수 있다.제너럴 셔먼호는 7월 29일 톈진을 출발지푸를 거쳐 8월 9일 조선으로 출발하였다셔먼호는 백령도를 거쳐 8월 21일에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평양 경내에 들어왔다당시 조선의 상황은 8000여명의 천주교도들을 처형한 후 프랑스가 침략해올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기 때문에 매우 긴장된 상태였다실제 제너럴 셔먼호가 백령도 부근에 정박했을 때 백령도 관리가 셔먼호에 공격명령을 내리기도 하였다.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가 평양 경내에 정박하자 평안도 관찰사 박규수는 셔먼호에 사람을 보내어 셔먼호의 목적을 물었다토머스는 백인들의 국적을 소개하고 항해 목적에 대하여서는 상거래뿐임을 강조하였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셔먼호 측은 프랑스 선교사 처형에 대해 문제를 삼으면서 프랑스 함대가 오고 있다고 협박하면서 통상을 압박하였다.5) 심지어 평양감사가 교역을 거부할 경우 서울로 쳐들어가겠다고 선언6)했다. 조선은 천주교와 야소교(기독교모두 국법에 의해 금지되어 있었고,대외무역도 국법으로 금지되어 있다고 밝히며 제안을 거절하였다대신 조선은 유원지의에 따라 제너럴 셔먼호가 요청하는 데로 백미 1소고기 50닭 25마리계란 50장작 20묶음을 지급하고 중앙정부의 지령이 있을 때까지 현장에서 대기할 것을 요구하였다.7)그러나 셔먼호는 조선 측의 요구를 무시하고 불법적으로 수심측량을 하면서 대동강을 더 거슬러 올라가 만경대 한사정에까지 도달하였다이에 평안도 관찰사 박규수는 중군 이현익과 서윤 신태정을 파견하여 즉각 퇴거할 것을 요구하였다그러나 셔먼호는 물러가지 않고 불법적인 측량 활동을 계속하였다뿐만 아니라 이들의 불법적인 행동을 제지하던 순영 중군(中軍이현익과 부하 박치영·유순원을 붙잡아 감금하였다이에 신태정이 제너럴 셔먼호에 접근하여 이현익 등의 석방을 요구했으나셔먼호 측에서는 석방조건으로 쌀 1,000석과 금··인삼 등을 요구하는 강도적인 행각을 보였다사태가 이에 이르자 평양성 내의 관민은 크게 격분하여 강변으로 몰려들었고 셔먼호에서는 조총과 대포를 이들 관민에게 마구 쏘는 만행을 저질렀다여기에 격분한 강변에 모인 관민들은 돌팔매··소총으로 맞서 대항하였다불안감을 느낀 셔먼호 측은 뱃머리를 돌려 하류로 내려가 양각도에 이르렀다이 때 퇴역장교였던 박춘권이 제너럴 셔먼호에 잠입하여 이현익을 구출해내었지만 유순원과 박치영은 결국 살해되고 말았다당시 며칠씩 계속된 비로 강의 수위가 높아졌다가 여러 날이 경과하는 동안 평상시로 돌아가게 되자 셔먼호는 양각도 서쪽 모래톱에 선체가 걸려 항행이 불가능하게 되었다그러자 셔먼호의 승무원들은 강도·약탈·총포격 등의 침략적인 행동을 자행하여 사망 7부상 5명이 발생하는 유혈사건이 발생하였다.결국 셔먼호를 조용히 퇴거시킬 수 없다고 판단한 박규수는 철산부사 백낙연 등과 상의하여 포격 및 화공을 가하였다조선은 24일 썰물 때 작은 배에 연료를 싣고 불을 지른 다음그 배를 제너럴 셔먼호 쪽으로 띄움으로써 제너럴 셔먼호를 소각시켜버리고, 2문의 대포를 노획했다고종실록 7월 27일자에 따르면 배에 불이 번지자 영국 선교사 토머스와 중국 상인이 뱃머리로 기어 나와 살려달라고 애원하여 박규수가 이들을 강안으로 데려왔다그러나 성난 평양부민들이 삽시간에 달려들어 그들을 때려죽였으며나머지 생존자들도 전원 사망했다고 한다한편 이양선을 격파하고 승리를 거두었다는 소식을 접한 대원군은 박규수·백낙연·신태정의 품계를 올려주고 중국에 양이쇄멸(洋夷殺滅)의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미국배가 조선의 영해에 허락도 받지 않고 대동강까지 들어와 불법으로 측량을 한 행위는 명백한 주권침해로 간주될 수 있는 사안이었다게다가 셔먼호는 자신들이 순수한 물물거래를 위해 왔다고 주장하였지만 처음부터 프랑스인 신부 학살사건을 추궁하였고조선의 공권력인 중군을 납치하고 식량을 약탈하는 등 무력충돌을 불사하였다.제너럴 셔먼호 사건 이후 미국의 움직임제너럴 셔먼호 소식을 전해들은 미국 국무장관 윌리엄 슈어드는 1867년 프랑스에 공동으로 조선에 대한 보복원정을 할 것을 제안무력으로 조선을 침공하고자 하였다미국 아시아 함대 벨 제독의 경우 2,000명의 병력을 투입하여 조선을 공격해야한다고 주장하고 거문도를 점령하고 아시아 함대 기지로 만들자고 주장하기도 했다그러나 이들 제안은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반도 중시정책과 당시 아메리카 북미 지역의 분쟁 때문에 실행으로 옮겨지지는 못했다.북경주재 미국 공사 벌린게임은 1867년 1미국 아시아 함대 벨 제독에게 아시아 함대 소속 와추세트전함을 조선에 파견하도록 조치하였다. ‘와추세트’ 전함 사령관 슈펠트는 1867년 1월 지금의 백령도 부근 우도에 정박하여 서프라이즈 호 처우에 대한 감사와 제너럴 셔먼호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억류하고 있는 선원의 송환을 요구하였다슈펠트는 조선을 응징하는데는 무력행사에 근거한 해결책만이 최선책이라고 강조하면서 미국의 포함외교 실시를 강력히 촉구하였다.서양인 2명이 아직 살아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자 미국은 다시 세난도어 호의 페비거를 조선에 파견한다.세난도어 호는 1868년 4월 조선에 도착하여 탐문을 하였다페비거는 현지주민과 접촉하면서 셔먼호가 평양에서 분별없는 폭행을 자행했기 때문에 전멸당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생존자가 없음을 확인하였지만 세난도어 호는 바로 돌아가지 않고 1달여 동안 황해도와 평안도 지방에서 불법적으로 수로 측량을 한 후 중국으로 귀항하였다한편 주상해미국총영사 통역관이던 젠킨스는 독일인 오페르트에게 접근하여 조선으로 갈 것을 도모하였고 동시에 총영사 조지 슈어드에게 셔먼 호 승무원이 아직 살아있다는 거짓보고를 했다조지 슈어드는 이 거짓 보고를 받고 셔먼호의 생존자를 구조하는 한편 제너럴 셔먼호에 대한 손해 배상을 받으며 셔먼호 사건을 빌미로 조선항구를 개항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통상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조선에 가겠다는 의사를 본국에 전달했고 본국에서 전권을 위임받았다.그런데 젠킨스와 오페르트에 의해 1868년 5월 8일 남연군 묘를 파헤치는 오페르트 도굴사건이 일어나게 된다오페르트는 조선기행이라는 책에서 그들의 유골을 잠깐이나마 점유한다는 것은 그것을 가진 자에게 절대적 권한을 부여할 것이며서울을 점령하는 것과 다름없는 의의를 가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대원군은 그것을 돌려받기 위해서 누구에게든 두말할 것 없이 어떤 일에도 찬성할 것이다그러면 그를 강요하여 제안된 조건을 수락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젠킨스-오페르트 일당이 남연군 묘를 파헤친 후 남연군의 유골을 이용하여 대원군을 협박불평등하고 침략적인 통상을 이루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오페르트 도굴사건이 일어나자 조지 슈어드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그러나 슈어드는 이후에도 조선의 개항을 노렸다. 1869년에는 오페르트 도굴사건의 주범격인 젠킨스 재판을 중국어로 번역하여 조선에 보내기까지 하였다고 한다.8)조선과 미국의 전쟁 신미양요조선 내부에서는 1866년 제너럴 셔먼호의 해적 만행과 병인양요를 겪고 1868년 오페르트 도굴사건을 겪음으로 해서 화합을 배척하고 전투를 불사하는 척화주전론이 더욱 굳어졌다.1870년 4월 4일 피쉬 신임 미 국무장관은 해군성에 훈령을 보내 주청전권공사 로우에게 조선과 조약을 체결하러 가라는 명령을 하달하였다이 명령에 따라 1870년 11미국의 주청전권공사 로우와 미국아시아함대사령관 로저스상해주둔 미국 총영사 조지 슈어드는 협의를 통해 조선을 개항시키기 위한 조선 원정을 하기로 합의했다. 1854년 페리가 일본을 개항시켰던 것처럼 조선을 개항시키려고 한 것이다.국무성은 1971년 4월 로우에게 조선원정 전권을 위임한다국무성은 훈령 9호에서 조선과의 개항을 원만하게 달성하기 위하여 무력의 시위가 필요할 경우 이를 할 수 있으며무력시위를 위해서 아시아 함대 사령관 로저스 제독을 휘하에 배속하니 그의 조언을 청취할 것과 조.미 통상조약문을 작성함에 있어 동봉한 미.일 통상조약문을 참고하라고 지시하였다.아시아 함대 사령관 로저스는 조선원정 명령을 받아 콜로라도호를 포함한 군함 5함재대포 85해군과 육전대원 총 1,230명을 이끌고 5월 16일 일본의 나가사키 항구를 출발하였다.미군은 5월 21일 경기도 남양부 풍도 앞바다에 정박하여 수로를 측량하였고 5월 26일에는 물류도(勿溜島)앞바다에 이르렀다조선정부는 남양부사로부터 이러한 급보를 전해 듣고 어재연을 진무중군으로이창회를 강화판관에 임명하여 현지로 파견하는 한편서울에 있는 각 영으로부터 군대를 차출하고 대포·화약·군량미를 수송했다한편 미국 함대는 5월 27일 인천 제물포를 지나 강화도에 도착하였다그리고 5월 29일 작약도에 정박했다한편 조선에서는 5월 26일부터 이들의 목적을 알기 위해 관리를 파견하였다김원모의 근대 한미관계사에 따르면 5월 28일 필담자리에서 이 배는 대아미리가(大亞美理駕합중국 소속의 군함이며이곳에 온 목적과 이유는 우리나라 흠차대인과 조선의 대사헌(大司憲조선시대 사헌부의 정2품의 벼슬)과 회담할 일이 있어서 이곳에 왔다.”고 밝혔다고 한다배의 소속이 미국이라는 것만 밝히고 나머지는 전혀 밝히지 않은 것은 조선을 무시한 처사였다. 5월 31일 조선 대표가 왔으나 대사헌이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로우는 불참하고 대신 서기를 참석시켰다드루 서기는 수도 서울을 방문조선의 최고 당국자와 직접 교섭할 것이다9)라고 언명하면서 서울로 통하는 해상관문인 강화해협을 탐측할 것인즉조선 軍民은 이에 놀라지도 말고방해하지 말 것을 일방적으로 통고했다미국이 조선정부의 허가없이 해협을 탐측하고서울로 항행하겠다는 의도를 보인 것은 명백한 영토침략행위였다애초에 함대를 조선에 끌고 들어온 것부터 함포외교를 통해 조선을 굴복시키겠다는 의도를 보인 것이었다.6월 1일 오후 로저스는 해군 중령 블레익으로 하여금 작은 배 4척과 포를 실은 배 2척을 거느리고 염하 일대를 측량하게 했는데이들이 손돌목을 지나 광성진으로 나가려고 할 때 연안을 경비하고 있던 조선 포대가 포격을 가했고덕진진 초지진에서도 합세하여 공격했다그 결과 미국 측은 더 이상 북상하지 못하고 퇴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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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양요 당시 초지진에서 미국 잡이를 하는 장면신미양요 기록사진집 강화군청미국은 손돌목에서 있었던 포격 행위를 빌미로 6월 10일을 D-day로 정하고 조선측의 사과를 요구하였으나 조선은 이를 거부하였다이에 미군은 6월 10일 강화도의 초지진을 해상 함포사격으로 공격한 뒤 초지진을 점령하였다다음 날에는 광성보를 공격하였다조선은 이 전투에서 350명이 넘는 전사자가 나왔으며10여명의 부상자가 나왔다미국인 역사가 그리피스는 이 장면을 이렇게 묘사하였다. “조선군은 비상한 용기로 응전하였다창과 검을 들고 미군을 향하여 돌진했으며 탄약이 없는 병사는 맨손으로 성벽에 올라가서 돌을 던지고 또한 흙을 쥐어 눈에 뿌렸다그리고 손에 무기를 쥐지 않은 병사는 죽음을 각오하고 일보일보 전진하면서 분전을 전개하였다부상자는 자살하였다이 장렬한 백병전을 통하여 포로는 단 한명도 없었다.” 이 전투에서 지휘관인 중군 어재연동생 어재순 등도 전사하였다10일 초지진을 점령하고 11일 광성보를 점령한 미국은 6월 12일 일단 점령한 진에서 물러나 조선에게 통상을 요구하였지만 조선 정부는 이번에도 통상을 거절하였다. 6월 20일 로우가 피쉬 국무장관에게 보낸 글을 보면 함포외교가 통하지 않은 것에 대한 실망이 묻어나온다

나는조선왕과 적절한 조약을 체결하는데 거의 희망을 잃어버렸다많은 나라에 심대한 영향을 끼쳐준 최근에 미군이 보여준 행위는 별효과가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10)

미국은 결국 교역에 성공하지 못하고 강화도에서 철수했다조선은 신미양요를 척화주전론의 승리로 인식했으며 흥선대원군은 척화비를 세워 통상수교거부정책을 재확인했다.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해를 하는 것이니화해를 주장하면 나라를 파는 것이 된다.(洋夷侵犯非戰則 和主和賣國 양이침범비전즉 화주화매국)”는 척화비 문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미양요는 서구열강에 대한 조선의 적대감을 높인 사건이었다-----------------------------미국은 제너럴 셔먼호오페르트 도굴사건신미양요 이렇게 3차례에 걸쳐 조선을 침탈하려 하였고 그 중 신미양요는 대대적인 준비를 갖추고 막대한 군사력까지 동원하여 덤벼들었으나 결국 조선 침탈은 실패로 돌아갔다결국 미국은 일본에 주목하기 시작했다신미양요를 이끌었던 로저스 제독은 일본으로 후퇴한 자리에서 일본 정부의 정한론 결행의지를 간파했다로저스는 일본은 조선침략을 열망하고 있다생각건대 일본은 조선침략전쟁을 감행할지 모르지만그것은 확실치 않다그러나 나는 이 두 나라간에 평화적 방법으로 수교할 것 같지 않다."11) 고 밝혀 일본이 향후 조선을 침략할 것임을 전망했다.이후 미국은 일본의 조선침략정책을 적극 지원한다. 1872년 1월 22일 뉴욕 해럴드 지는 미국의 태평양정책이라는 사설을 통해 일본과 힘을 합쳐 반드시 조선침략의 목적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미일동맹을 지지하였다또한 미국은 조선과 일본이 1876년 강화도조약을 맺자이를 이용하여 가장 먼저 1882년 조선과 조미통상수호조약을 체결한다.





<주석>

1) 강명세, 『미국의 전통적 외교안보 원리와 미국 세계전략의 변화』 (세종정책연구 2011-13), p.9

2) 이민식, 『여명기초 한미관계사 연구』 (정훈출판사, 1996), p.62

3) 조선 후기 외국선박이 나타나거나 외국인이 표류할 때 사정을 조사하기 위해 임시로 설치된 관직.

4) 서울특별시, 『셔어먼호 사건의 발생』, 서울 600년사, http://seoul600.seoul.go.kr/seoul-history/sidaesa/txt/5-1-2-2-2.html

5) 박규수 감사의 조선방문 목적을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① 왕성(王城)에 백탑(白塔)이 있는 것은 사실인가. ②조선정부는 왜 서양인 선교사를 학살했는가. ③ 야소교(耶蘇敎, 신교)는 천주교보다도 천하인민을 선도하는 교(敎)이다. ④ 불란서함대는 귀국의 왕성을 향하여 진행중이다. ⑤ 중국정부는 귀국에 외국과의 통상을 하도록 지령을 내리고 있다. ⑥우리들의 방한 목적은 셔어먼호에 적재되어 있는 화물을 귀국의 화물과 교역하려는데 있으며 결코 타의는 없다.」 서울특별시, 『셔어먼호 사건의 발생』, 서울 600년사,http://seoul600.seoul.go.kr/seoul-history/sidaesa/txt/5-1-2-2-2.html

6) 김원모, 『셔먼호 사건과 미국함대의 침입』 (단국대학교 동양학 연구소, 1998.11)

7) 서울특별시, 『셔어먼호 사건의 발생』, 서울 600년사, http://seoul600.seoul.go.kr/seoul-history/sidaesa/txt/5-1-2-2-2.html

8) 이민식, 『여명기초 한미관계사 연구』 (정훈출판사, 1996), p.106

9) U. S. Department of the Navy, Annual Report of the Secretary of the Navy on the Operations of the Department for the Year 1871(Washington:Government Printing Office, 1871), p.277 / 김원모, 『셔먼호 사건과 미국함대의 침입』에서 재인용

10) 이민식, 『여명기초 한미관계사 연구』 (정훈출판사, 1996), p.133

11) Rodgers Collections, Rodgers to Ann, December 9, 1871. / 김원모, 『셔먼호 사건과 미국함대의 침입』에서 재인용

2013년 4월 5일 금요일

<레프트21> 101호 ‘종북’ 마녀사냥에 맞서 통합진보당을 방어하자


이석기·김재연 의원 자격심사‘종북’ 마녀사냥에 맞서 통합진보당을 방어하자



<레프트21> 101호 | 발행 2013-04-01 | 입력 2013-03-30  김종환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통합진보당 이석기ㆍ김재연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안을 공동으로 발의했다. 우파 정부를 비판ㆍ견제하라고 노동자들이 뽑은 국회의원을 멋대로 쫓아내려는 것이다.
무엇보다 ‘돈봉투 전당대회’, ‘차떼기 대선자금’ 등 온갖 부패와 추문의 장본인들이 누구를 심사하겠다는 것인지 어처구니가 없다. 본회의장에서 누드 사진을 검색하고, 온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 심재철이 얼마 전까지 국회 ‘윤리위원’이었다는 점만 봐도 자격심사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민주당은 이번 자격심사가 ‘사상 검증이 아니라 비례대표 경선 부정에 관한 것’이라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한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통합진보당 경선 부정사건’이 알려지기 전부터도 이미 통합진보당을 ‘종북’으로 매도해 왔다. “그런 사람들이 국회에 대거 입성”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떠들어 온 것이다.
게다가 검찰은 통합진보당 당원 명부까지 강탈하며 ‘먼지털기’ 식으로 통합진보당을 수사했지만 이석기ㆍ김재연 의원을 기소할 증거도 찾지 못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억울하다면 이번 자격심사를 통해 시빗거리를 풀”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총풍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이 1996년 총선을 앞두고 북한에 무력 시위를 몰래 요청한 사건.
이처럼 민주당이 돕고 나서자 기가 산 새누리당 일부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청구까지 해야 한다고 날뛰고 있다.
우파가 이처럼 마녀사냥에 혈안이 된 진정한 이유는 휴전선 너머 북한 때문이 아니다. ‘총풍’ 사건이 보여 주듯, 필요할 때는 북한 지배자들과 기꺼이 거래를 하는 저들이 마녀사냥으로 노리는 것은 따로 있다.
‘낙마 정국’을 거치며 위기로 치닿던 박근혜는 ‘종북’이라는 카드로 균열을 메우며 우파를 재결집하려 한다. ‘안보’를 내세우는 마녀사냥에 민주당을 끌어들여 정국 주도권도 되찾으려고 한다.
그동안 진보 의원들은 생생한 폭로로 지배자들의 더러운 치부를 들쳐내 왔다. 이석기 의원이 CIA 의혹을 제기해 박근혜의 ‘히든 카드’ 김종훈을 낙마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는 게 우파의 생각일 것이다.
이처럼 진보 의원들이 마녀사냥으로 쫓겨난다면 노동자나 사회적 약자의 요구를 담은 법안을 발의하고 제출할 길도 함께 줄어들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저들의 마녀사냥은 단지 진보 의원들에 국한하지 않고 진보운동 전체를 겨냥한 것이다. 통합진보당이 주도하거나 연대해 온 제주 해군기지 반대 운동, 반값 등록금 운동, 학교비정규직 노동자 투쟁, 한미FTA 반대 운동 등에 대한 공격이기도 하다. 
△우파가 통합진보당을 마녀사냥 하는 진정한 까닭은 그들이 우리 운동의 일부기 때문이다. ⓒ이윤선

원장님 말씀 

국정원은 ‘종북 척결’을 내세우며 “북한과 싸우는 것보다 민노총, 전교조 등 국내 내부의 적과 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반대하는 운동도 “어디로부터 지령을 받은 듯 조직적이고 일사불란”하다며 공격했다. 최근 대법원은 1ㆍ2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전교조 교사를 향해 다시 국가보안법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심지어 금융권 전산망 해킹까지 일단 무작정 북한 소행으로 몰며 진보진영을 공격하려고 골몰한다.
이런 공격을 통해 저들은 진보의 분열을 노린다. 진보진영이 스스로 ‘민주주의와 평화를 말할 자격도 없는 종북’을 솎아 내라는 것이다. “종북좌파 척결 방법으로 … 내부 사람을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국정원의 ‘원장님 지시ㆍ강조 말씀’은 이것을 보여 준다.
그러나 진보가 ‘레드 컴플렉스’ 때문에 피해를 입는 것은 진보 내 ‘종북’ 때문이 아니라, 국정원과 보수언론 그리고 이 나라 지배계급의 마녀사냥 때문이다.
따라서 정파를 초월해 마녀사냥에 맞서고 ‘종북’ 프레임을 거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진보정의당과 진보신당, 민주노총은 물론, 많은 개혁주의 단체와 좌파 들이 자격심사에 반대하는 논평ㆍ성명조차 내지 않고 있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상당수는 ‘통합진보당 경선 부정 사건’에 대한 기억 때문에 자격심사를 선뜻 반대하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경선 부정은 지금 마녀사냥의 빌미일 뿐이다. ‘1백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은 것보다 기소조차 되지 않은 것이 자격을 심사받을 일인가’ 하는 민주당 청년비례 의원 김광진의 말은 그런 점에서 옳다.
통합진보당의 북한에 대한 태도도 그들을 방어하지 않을 이유가 될 수는 없다. 20세기 초 독일의 혁명가 칼 립크네히트의 말처럼 “주적은 국내에 있다.” 북한에 대한 정치적 지향보다 남한 지배계급에 맞선 운동에서 한 구실로 그를 방어할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옳다.
따라서 마녀사냥에 맞서 무조건적으로 통합진보당을 방어해야 한다. 이것이 통합진보당 지도부의 정치적 입장과 문제점까지 무비판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자유로운 비판과 토론을 위해서도 방어를 우선해야 한다.
이미 진보운동은 2008년, 국가보안법으로 투옥된 민주노동당 당원들을 제명하라는 우파의 마녀사냥 앞에 분열한 쓰라린 기억이 있다.
당시 분열로 민주노동당은 ‘종북’이라는 딱지를 달게 됐다. 마녀사냥에 동요하다가 민주노동당을 떠난 세력 역시 오늘날 몇 갈래로 나뉘어 당시보다 정치적 영향력이 작아졌다. 이것은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조합 운동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
따라서 “작은 차이에 사로잡혀 등 돌리는 민주ㆍ진보 진영의 침묵이야말로 역사를 후퇴시킵니다. 부당한 자격심사와 시대착오의 색깔론 공격을 함께 막아내 주십시오” 하는 통합진보당의 호소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2013년 3월 30일 토요일

[Left21 101호] 사회주의자들은 SNS를 어떻게 봐야 할까? 장호종


<레프트21> 101호 | 발행 2013-04-01 | 입력 2013-03-30

새로운 매체의 등장은 언제나 사회주의자들의 관심을 끌곤 했다.

특히 거대한 자본이 필요한 방송에 비해 진입장벽이 낮은 인터넷 매체의 등장은 선전ㆍ선동의 기회에 목말라하는 사회주의자들에게 큰 기회로 여겨지기도 했다. 최근 가장 유력한 인터넷 매체로 자리잡은 SNS(트위터, 페이스북 등)도 이런 기대를 받고 있는 듯하다.

지난 대선 전에도 이 나라 진보ㆍ개혁 진영의 많은 사람들과 지식인들이 SNS로 무장한 새로운 세대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과장했다. 아랍 혁명에서 SNS가 한 구실도 종종 과장돼 왔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들은 인터넷 같은 기술 발전을 간단히 무시해 버리거나 활용 가치가 전혀 없는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되겠지만 결코 그것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

SNS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자기중심 커뮤니티”(한국언론학회, ≪한국사회의 정치적 소통과 SNS))라고 할 수 있다. ‘친구맺기’라는 말이 보여 주듯 기존의 인터넷 매체들에 비해 공동체적 성격이 강하고 각각의 사용자가 그 공동체의 중심인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어졌다.

SNS를 잘 활용하려면 가상과 실제의 차이를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의 활동과 연결지어 보자면 어떤 일들을 하는 데 SNS를 보조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먼저 에 실린 기사나 읽어 볼 만한 글들을 내가 관계맺고 있는 사람들에게 소개해 주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토론회나 포럼을 홍보하는 데에도 사용할 수 있다. 이런 광고를 보고 토론회에 참가한 뒤 우리 주장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고 단체에 가입한 사람도 있다.

페이스북 같은 곳에 글을 쓰는 것은 같은 신문에 기고하는 것보다 조금 편안하게 느껴질 수 있으므로 연습 삼아 자신의 주장을 짤막하게 정리해 볼 수도 있다. 실제로 편집자와 기자들은 이런 글들을 보고 독자편지를 보내 달라고 의뢰하기도 한다. 물론 직접 신문에 기고해 주면 훨씬 좋을 것이다. 페이스북 담벼락보다는 신문과 웹사이트가 훨씬 더 영향력이 있다. 


△ 좋은 활용 사례
페이스북을 일기장처럼 쓰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럴 때조차 좋은 일기가 있다. 힘나는 얘기들을 쓰고 서로 격려와 칭찬, 고무하는 일기는 서로에게 좋다.

그런데 이런 긍정적인 활용이 지속되려면 사용하는 사람 자신의 목적 의식이 분명해야 한다. 다시 말해 누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 하는 것인지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기장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그것이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대상과 메시지의 내용이 모호하게 될 위험을 늘 안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결국 SNS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그것의 성격과 한계를 분명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1. SNS와 운동
SNS를 잘못 활용하는 사례들을 살펴보면 많은 경우 인터넷 같은 새로운 기술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인상적으로 과대평가하는 데서 비롯한다.

물론 언론의 자유가 제약돼 있거나 다른 이유로 표현의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들이 운동을 건설하려 할 때 SNS 같은 매체는 일정한 구실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첫째, 투쟁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거나 심지어 혁명적 상황에 돌입하면 SNS의 중요성은 오히려 줄어든다.

“[2011년] 1월 25일 이집트 정권은 불만을 가라앉히려고 국가 인터넷망 전체를 마비시켰다. 그러나 시위가 승승장구하면서 이런 시도는 정권이 원하는 효과를 내지 못했다.

“단체들이 ‘한창 시위 와중에 트위터와 문자메시지로 정보를 교환하고 계획을 바꿀’ 수 있다는 주장은 규모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방식은 소규모 직접 행동의 경우에는 괜찮겠지만, 수십만 명이 행진하거나 노동자들이 파업 투쟁에 돌입하는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조니 존스, ≪마르크스21≫ 10호)

둘째, 온라인 매체가 오프라인 신문에 비해 더 효과적인 선전ㆍ선동 수단이라는 생각은 일상적인 시기에조차 사실이 아니다.

이런 생각은 한편에서는 단지 사회주의자들에게 충분한 발언 기회만 주어지면 수많은 노동 대중이 우리의 주장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선전과 선동을 조직이라는 문제를 분리해 사고한 결과다.

사회주의자들의 주장이 일상적 시기에 광범한 대중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단지 우리 신문이 모든 집마다 배달되고 있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고 자란 노동자들은 생애 대부분 동안은 자본주의적 사상을 받아들인다. 마르크스는 이를 두고 “지배적인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이라고 얘기한 바 있다.

다른 한편 자본주의는 주기적으로 노동자들을 투쟁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몰아간다. 그런 투쟁 속에서 노동자들은 새로운 사상들을 발전시킨다.

그래서 노동계급 내에는 두 종류의 사상이 공존한다. 한편에는 지배계급의 사상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투쟁 속에서 발전한 사상들이 있다. 이러한 사상들은 노동계급 전체에 불균등하게 퍼져 있다. 지배계급의 사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소수가 있는가 하면 본능적으로 자본주의를 거부하는 소수가 있다. 대부분은 자본주의적 사상도 일부 수용하고 반자본주의적 사상도 일부 수용한다.

이런 반자본주의적 사상들이 대다수 노동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것은 오로지 투쟁을 경험할 때만이다. 얼핏 보기에 지배계급의 사상을 모두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던 노동자들이 투쟁 속에서 단결과 연대와 호혜주의를 얘기하고, 당면한 투쟁에서 승리할 힘뿐 아니라 세상을 바꿀 힘이 자신들에게 있음을 자각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노동자 집단에 이런 자각이 균등하게 체화돼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선전ㆍ선동의 무기가 얼마나 효과적인가 하는 문제는 이런 투쟁에 어떻게,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가 하는 문제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모든 투쟁은 그 발전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마련이다. 그때마다 어떤 전술이 더 효과적인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진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상황 속에서 사회주의자들이 투쟁을 전진시킬 효과적인 전술을 제시하고 다수의 지지를 획득하려면 단지 느슨한 개인들로 존재해서는 안 된다. 잘 조직된 적들이 우리에게 충분한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데다가 투쟁에 나서기 전까지 노동자들이 받아들이던 사상들이 투쟁에 계속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노동자들의 혁명 조직이 필요한 까닭이다.

이런 관점 즉, 운동뿐 아니라 사회주의자들의 조직을 건설해야 하는 과제에 비추어 보면 SNS는 더욱 부차적인 수단이 된다.

사회주의자들의 조직이 앞서 말한 구실을 하려면 민주적 중앙집중주의 원리에 따라 조직돼야 한다. 즉 민주적인 토론이 충분히 이뤄져야 하고 이를 기초로 행동통일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응집력을 갖춰야 한다.

뒤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그러려면 가장 효과적인 의사소통 수단 즉, 직접 마주보고 토론하는 과정을 돕는 매체를 선택해야 한다.

“ 덕분에 우리는 매주 수천 명의 다른 활동가들과 대화할 수 있다. 의 장점 중 하나는 그것이 단지 가상 공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시간과 장소(특정 지역이나 작업장, 피켓라인, 집회)에서 판매되고, 얼굴을 마주 보며 상호작용할 수 있게 해 주는 물질적 생산물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다른 활동가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고, 그래서 우리 자신과 더 광범한 투쟁이 모두 강화될 수 있다.”(알렉스 캘리니코스, 2233호, http://www.socialistworker.co.uk/art.php?id=23522)

그래서 레닌은 “신문은 집단적 선전가이자 집단적 선동가일 뿐 아니라 집단적 조직자다. 이 점에서 그것은 건물을 세울 때 짓는 비계에 비유할 수 있다” 하고 말한 바 있다.

사회주의자들의 조직이 발행하는 신문은, 불특정 다수를 향해 방송하는 팟캐스트나, 구체적 조건이나 의식 수준을 알 수 없는 온라인 청중에게 전달되는 페이스북 메시지와는 구분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반면 ‘자기중심의 폐쇄적 온라인 네트워크’인 SNS에서 담벼락에 올리는 메시지가 ‘친구’들에게 어떻게 전달될지 판단하는 일은 전혀 쉽지 않다. 


△ 페이스북에서 실명 사용자의 비율(한국) - 폐쇄된 네트워크에서조차 상대방의 정체를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근래에는 정보의 결핍보다 과잉이 문제이듯,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이 적은 것보다 많은 것을 더욱 염려해야 한다. 자기를 팔로우하고 있는, 또는 자기가 팔로잉 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진짜 정체성을 알고 있는지, 얼마나 깊이 알고 있는지, 친구의 페이스북에 들어갔다가 새로 연결된 친구의 친구를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지, 그들의 한 마디 말이 그 사람을 얼마나 잘 나타낸다고 믿는지 하는 내용들이 모두 중요하다.”(나은영, ‘심리학적 관점에서의 소셜 미디어’)

셋째, SNS를 특정한 목적으로 활용할 때조차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가장 흔한 오류는 SNS만 보다가 현실 인식이 흐려지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일간지는 안 보면서 SNS는 온종일 끼고 사는 듯한데, 이처럼 “SNS 의존도가 높은 사람들은 SNS의 현실 대표성을 더 높게 지각한다.”

그러나 SNS는 다른 온라인 공간에 비해 ‘유유상종’ 가능성이 훨씬 크다. 친구를 직접 선택하므로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는데 실제로 일부 심리학자들의 연구에서도 “트위터에서 … 비슷한 사람들을 유의미하게 더 많이 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페이스북의 경우는 … ‘끼리끼리 커뮤니케이션’ 양상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 


△ 페이스북 사용자의 연령분포(왼쪽)과 인구 대비 사용자 비율
예컨대 페이스북에서 일부 급진 좌파 활동가들과 친구를 많이 맺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지난번 대선에서 박근혜가 되든 문재인이 되든 별 상관이 없다는 식의 일면적 주장을 자주 접했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아니다.

이럴 때 진실을 알고 싶다면 더 광범한 노동자들의 실제 정서를 알아보려 해야 한다. 노동계급 선진 부위의 정서를 파악하려는 노력은 단순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대체될 수 없다. 일간지도 읽어야 하고 다른 활동가들과 토론해 보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 봐야 한다.

다른 오류는 앞서 지적한 온라인 의사소통 문제와 연관된 것인데 짤막하게 쓰인 문장들만 보고 불나방처럼 달려들어 논쟁을 벌이는 것이다. SNS는 다른 온라인 매체와 마찬가지로 참가자 수가 늘어날수록 중요한 토론처럼 보이는데다가,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기 쉽다.

그러면 그 사건을 잘 알지 못하는 일부 사람들이 사건의 전체 그림에는 별 관심 없다는 태도를 보이면서도 지엽말단적인 것을 붙들고 늘어지거나 ‘다 좋은데 이런 것은 문제 아니냐’ 하며 꼬투리를 잡기 쉽다.

사건의 실체를 파악한 뒤에 효과적인 대응이 뭔지 함께 고민하려는 동지적 태도가 아니라, 전체적 맥락도 모른 채 누구의 이런 의견은 옳고 이건 틀렸다는 식으로 팔짱 끼고 훈수 두려는 개인주의적 태도가 발전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독자들에게는 거의 해당하지 않을 텐데 예브게니 모로조프가 ‘게으른 활동’이라고 부른 문제다. 모로조프는 “웹2.0 예찬론은 ‘게으른 활동’ 방식의 캠페인에 참가하는 이들에게 그저 페이스북에 가입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착각을 심어 준다” 하고 지적한다.

SNS 상의 ‘관계’도 웹 상의 ‘활동’처럼 그 실제 효과는 무척 약한데 SNS를 통한 관계는 ‘약한 유대’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을 때로는 위험할 수도 있는 급진적인 행동으로 이끄는 데에서는 별 도움이 안 된다.

그에 비하면 현실에서 활동가들이나 동료들이 맺고 있는 ‘강한 유대’는 실제로 여러 대중 운동에서 투쟁을 성장시키고 유지하는 데에 큰 기여를 한다.

개인용 컴퓨터나 스마트폰처럼 SNS를 사용하는 환경이 대개 사람들이 혼자 있을 때 혼자 사용하는 것이다보니 SNS 사용이 사용자를 개인주의적 관점으로 이끄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2. 온라인 의사소통
SNS를 잘못 활용하는 또 다른 사례는 온라인 의사소통이 가진 약점을 이해하지 못해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사회적 행동이 본능에 따른 것이라는 가설을 증명하려고 여러 가지 실험을 하는데, 내 생각에 아마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는 못할 듯하다. 여기서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는 유전자 결정론이나 사회생물학처럼 근본에서 환원주의적 가설이기 때문이다. 이런 접근법으로는 인간의 의식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들이 하는 다양한 연구들 중에는 흥미로운 것들도 있다. 인간이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한 연구들인데 실험을 해 보니 사람들을 아주 짧은 시간동안만(몇 초~몇 분) 마주보게 했는데도 그 사이에 1천 개가 넘는 정보를 얻더라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까닭은 실제 세계에서 인간은 자신이 가진 모든 감각을 통해 정보를 얻는데다 기억 덕분에 그런 정보들을 다양한 형태로 가공하고 발전시켜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이에 비춰 보면 온라인 의사소통은 대체로 짤막한 문장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기껏해야 몇 가지 이미지를 활용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실제 의사소통에 비해 훨씬 비효율적이다.

컴퓨터와 통신망을 이용한 인터넷 토론에서는 현실 세계의 토론에서 가끔 생겨나는 문제들이 훨씬 자주 극단적으로 생겨난다. 익명성이 낳는 여러 문제는 그 일부일 뿐이다.

문자로만 이뤄지는 인터넷 토론과 달리 현실에서 사람들은 ‘다중 채널’을 통해 의사소통한다. 눈빛ㆍ말투ㆍ몸짓 등 입체적으로 전달되는 정보[와 경험ㆍ기억]는 ‘소리’로 전달되는 정보를 명확히 하고 불필요한 오해와 과장을 걸러내는 작용을 한다.

의사소통은 기본적으로 개인이든 대중이든 상대방을 전제로 한 것이다 보니 상대방에 대한 인식이 토론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이런 인식은 불필요한 불신이나 적대감을 없애거나 혹은 그 반대 작용을 하는데 인터넷 토론에서 상대방을 인식할 수 있는 정보는 대체로 그가 한 ‘말’이 전부다.

그러다 보니 “아주 표면적으로 드러난 특성을 중심으로 상대를 파악하게 된다. 예를 들어 아군과 적군으로만 파악한다거나 ‘초딩’, ‘중딩’ 하는 식으로 싸잡아 이해하는 것이다.”

필요 없는 권위와 전문성도 있지만, 토론의 발전에 꼭 필요한 권위와 전문성도 있다.

토론에서 신뢰는 대단히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인터넷 게시판 토론에서는 토론을 발전시키는 데 대단히 중요한 요소인 ‘누가’, ‘어떻게’ 말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찾기가 어렵다. 의견 교환의 시공간적 제약을 완화한 대가로 정보 전달의 효율성을 일부 잃어버린 것이다.

‘편안함’은 효율적이라거나 편리하다는 것과는 약간 다르다.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통해 훨씬 효과적인 정보 획득 방법을 알고 있다. 알고 있는 사람에게 묻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 불편하다. 이런 행동은 스스로 경쟁에서 뒤처져 있음을 상기시킨다.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모르는 사람에게 말 거는 것 자체가 무척 부담스럽다.

자본주의 사회가 뒤틀어 놓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 때문에 사람들은 점점 더 ‘편안한’(얼굴을 마주할 필요도, 여러 가지 난처한 환경에 놓일 필요도 없는) 대화 방식을 선택하는 듯하다.

효율성으로 보자면 정보 습득은 아는 사람에게 묻는 게 빠르고 신뢰도도 높다. 의견 교환도 문자만 있는 것보다는 전화가 낫고 대면 접촉이 훨씬 효율적이다. 중요한 정보 획득 과정, 논의 과정은 대개 편안함과는 거리가 멀다.

( 장호종, 《마르크스21》 2호)

예컨대 당장 실제 현실에서 1백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모여 진지하게 토론회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야! 이 바보들아!’ 하고는 나가버린다고 생각해 보자. 이런 일이 현실에서 벌어질 수 있을까?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그런 일을 겪을 것이라고 걱정하지는 않아도 된다. 실제 사람들 사이의 접촉은 이런 불필요한 경계나 과도한 반응을 걸러주게 마련이다. 내가 토론에 필요한 권위와 전문성이 있다고 한 까닭이다.

그런데 온라인 공간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그러다 보니 온라인 상의 토론이 삼천포로 빠지거나 불필요하고 지엽적인 논쟁을 확대 재생산하게 된다.

또, SNS만 보고 있으면 분명히 협력과 숙고가 필요한 문제가 벌어졌을 때조차 손이 먼저 나가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진다. SNS의 장점으로 여겨지는 신속함이 낳는 약점이다.

예를 들어 트위터에서 대부분의 리플과 리트윗은 1시간 내에 벌어진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바꿔 말하면 1시간 내에 반응을 얻지 못한 글은 잊혀진다는 얘기다. 많은 사람들이 경험을 통해 이를 느끼고 있기 때문에 신속한 대응에 더욱 매달리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모든 문제를 1시간 내에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많은 실수를 저지르겠는가.

이런 특성들 때문에 SNS를 포함해 온라인 공간에서는 누구를 공격하고 비난하기는 쉬워도 이를 방어하기는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진정한 힘이나 영향력 같은 것은 쉽게 무시된다.

드문 일이긴 하지만 간혹 누군가가 SNS 상에서 터무니없는 누명을 쓰게 됐을 때도 당사자나 그 동료들이 SNS 상에서 진실을 규명하려 하는 시도가 부질없게 되곤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럴 때에는 과연 온라인 상에서 대응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혹은 불가피한지, 아니면 현실 세계에서 대응하는 것이 나은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우리가 모든 전장을 고를 수는 없지만 어떤 것들은 명백히 그렇게 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 SNS의 환상에 빠져 있어서는 이런 고민을 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일대일 대화와 다수를 상대로 한 대화 사이에는 차이가 있게 마련인데 – 사람들을 조직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대부분 알 수 있다 – SNS 상에서 대화에 집중하다보면 종종 그 사실을 잊기 쉽다.

마르크스는 인간이 자신이 태어날 환경을 선택할 수는 없어도 그 환경을 바꿔가는 존재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SNS에 중독된 사회주의자는 자신이 고른 환경에서도 그 환경에 노예가 되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3. SNS와 조직 내 민주주의
일부 독자들은 SNS를 활용해 조직 안팎의 문제들을 토론하는 것이 조직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여기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독자들 사이에서 신중하게 토론해야 할 문제들을 모임에서는 얘기하지 않다가 페이스북 같은 곳에 툭 하고 던져놓는 일들도 벌어진다.

그러나 온라인 의사소통이 가진 약점은 앞서 설명한 대로다.

또 언제나 모든 사람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방식의 토론이 더 민주적이라는 생각은 완전한 착각이다.

근본에서 민주주의는 한 배를 탄 사람들 사이의 의사결정 수단 즉,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의 운영원리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자들에게 어떤 전술이 더 효과적인지를 두고 개혁주의자들과 토론해 다수결로 정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또 노동계급 의식이 불균등하다는 것은 사회주의자들의 조직 내에도 어느 정도 그런 불균등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여기서 의식을 이데올로기나, 이론, 지식 같은 것으로 이해해선 안 된다. 계급 의식은 단지 이런 것들로 환원할 수 없고, 투지나 결의, 사기 같은 것들이 훨씬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런 불균등성을 고려하면 조직 내에서조차 모든 사람들이 모든 의사결정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은 민주주의와 별 관계가 없다.

물론 사회주의자들의 조직이라고 해서 조직 내 민주주의가 훼손될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다.

존 몰리뉴는 사회주의 조직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하지 않으려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래와 같이 말했다.

[사회주의] 조직이 관료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있나? 물론 완전히 보장할 수 없다. 혁명이 승리할 보장이 있나? 파업이나 시위가 성공할 보장이 있나? 마찬가지 문제다.

아나키스트들은 내적인 권력욕이나 레닌주의 조직의 권위주의적 유산 때문[에 공산당과 사민당 지도부가 타락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전자가 문제라면 아나키즘은 자신의 목표를 성취할 수 없다. 후자 즉, 권위주의적 타락은 레닌주의 정당뿐 아니라 모든 노동자 조직에게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나코-신티칼리스트 조직까지 말이다.

마르크스주의는 다르게 설명한다. 관료적 타락의 위험은 노동자 조직이 태어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해지는 다양한 압력 때문에 생겨난다.

한편에서 착취와 억압 그리고 노동 소외가 평범한 노동자들로 하여금 지도자들을 통제하는 데 필요한 자신감과 의식을 갖는 것을 방해한다. 다른 한편에서 자본주의는 그 본성상 지도자들에게 부패한 영향력을 끼친다.

이런 분석은 볼셰비즘에서 스탈린주의로의 타락을 설명하는 데에도 중요하다. 첫째 노동계급 자체가 분쇄 당했다. 내전과 기아, 전염병과 경제 붕괴가 건강하고 민주적인 노동자 통제를 무너뜨렸다. 지도자들의 관료주의가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다른 한편 이 관료들에 대한 자본주의적 압력(경쟁적 자본 축적의 압력)이 작용했다. 그 결과 국가자본주의로 변화했다.

노동조합 상근관료층이나 노동당 의원들에게도 다른 환경이지만 똑같은 압력이 작용한다.

혁명적 조직이 이런 타락에서 벗어나려면 네 가지 수단이 필수적이다.

1) 당은 노동대중의 매일의 투쟁에 개입해야 한다. 이는 자본주의적 압력에 반작용을 가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 낼 것이다. 반면교사로 삼자면 개혁주의 정당은 주로 노동계급의 수동성에 기반을 둔다.

2) 당은 혁명적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 이는 명망을 쫓는 인자들이나 그 정치적 배경이 되는 조작에 순응하는 인자들을 제거할 것이다.

3) 당내 역할이나 지위에 따른 물질적 특권이 있어서는 안 된다.

4) 당의 구조와 규칙은 민주주의(정책을 둘러싼 충분한 토론과 논쟁, 지도력에 대한 선거와 책임)와 중앙집중주의(다수결에 따른 행동통일)를 따라야 한다. 아나키스트들은 중앙집중주의나 규율을 위로부터의 권위주의적 통제 메커니즘으로 받아들이지만 사실 혁명 정당에 이는 민주주의를 위한 장치이다. 비민주적 중앙집중주의 조직의 리더들이 당의 정책을 가볍게 무시하거나 개인주의적으로 그것을 만들어내는 것과 달리 민주적 중앙집중주의 조직에서는 조직의 리더들이 당의 정책을 이행하게 하는 원리이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당이 계급 투쟁과 맺는 실제의 관계이다. 어떤 구조적 특징이 당의 부패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아나키스트들은 당을 거부함으로써, 특히 레닌주의 당을 거부함으로써 노동 계급을 정치적으로 조직적으로 무장해제시키는 데 기여할 뿐이다.

(John Molyneux, 《Anarchism – A Marxist Criticism》)

사회주의자들은 ‘연장’ 탓을 하기보다 ‘장인’이 돼야 한다. 체제가 낳은 결과들뿐 아니라 체제 자체에 맞서 싸우는 투사들이 돼야 한다. 자본주의에 맞선 행동과 의식은 우리의 사기와 자신감을 높여 자본주의적 타락 압력에 맞서는 해독제가 될 것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조직 내에서 필요한 논의를 툭 하니 던져 놓는 것은 사회주의자들의 조직을 물어뜯으려고 혈안이 돼 있는 일부 종파주의자들(또는 분파주의자들)이나 사냥개처럼 탄압의 구실을 찾는 경찰에게나 쓸모 있는 일이다. 일이 벌어진 뒤에 ‘난 그런 의도가 아니었어’ 하는 무책임한 태도도 독자들 사이의 신뢰만 갉아먹을 뿐이다.

“한국에서 특히 싸이월드에 열광했던 특성이 지금은 페이스북으로 옮겨 간 상태로 보인다. 그러나 페이스북은 트위터보다는 약간 더 폐쇄적인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싸이월드보다는 훨씬 더 개방적이며 따라서 개인의 정보가 개인의 통제를 벗어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사실을 아직은 크게 인식하지 못하는 단계인 듯하다.”(나은영, ‘심리학적 관점에서의 소셜 미디어’)

예브게니 모로조프는 ‘왜 KGB는 당신이 페이스북에 가입하길 바라는가?’ 하는 글에서 SNS의 무분별한 활용이 국가의 인터넷 감시를 돕는다고 지적했다.

SNS는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공간이 아니다.

4. SNS와 일기장

△‘좋아요’만 있는 것은 페이스북의 영업 전략이다.
어떤 독자들에게 SNS는 그저 일기장으로 사용되는 듯하다. 아무하고도 친구를 맺지 않고(그러면 알 수도 없겠지만) 쓰는 것이라면 할 얘기가 없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할 말이 있지만 하지 못할 때 마음속에 담아두는 수단으로 일기장을 활용하는 사람들이 많듯 페이스북도 그런 용도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어느 정도는 이해할만한 현상이다.

누구에게나 주변 사람들, 가까운 사람들의 인정과 지지가 모르는 사람들의 지지보다 큰 만족감을 준다. 그러다 보니 내가 한 말에 누군가가(특정인일 수도 있고 다수일 수도 있다) 어떤 반응을 보일지 떠보는 용도로 페이스북을 쓰기도 하는 듯하다.

문제는 그럴 때 반쯤 무의식적으로 자기가 누구와 친구를 맺고 있는지 잊는다는 것이다. 경찰도 보고, 중앙집중적 사회주의 조직에 반감을 보이는 다른 활동가들도 보고 있고, 옛 친구도 보고 동지들도 보는 곳에 “우울하다”, “하루 종일 잠만 잤다” 하고 한마디 남기면 도대체 어쩌라는 건가?

지친 마음을 위로받고 싶은 마음에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SNS를 통해서 문제가 해결되길 기대하는 것은 완전한 착각인데다 그런 친절한 동료가 있더라도 위로받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내가 쓴 글에 누가 ‘좋아요’를 누른다고 혹은 내가 누가 쓴 글에 ‘좋아요’를 누른다고 관계가 좋아지는 게 아니다. 모기 물린 자리를 긁을수록 더 가려워지듯 피상적인 관계는 상처를 곪게 하는 경우도 많다.

“미디어가 발전할수록 정보든 관계든 ‘너무 적은’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은’ 것이 문제가 된다. 대규모의 피상적 대인관계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면서도 SNS로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필요성의 압력을 느끼는 현재 상황은 ‘지속적인 주의분산’과 ‘관계의 과부하’를 가져온다.”(김은미 등, 2011)

“오프라인 친구 수는 많을수록 정보통제성ㆍ자기효능감뿐만 아니라 일반 신뢰가 증가한 반면, 페이스북 친구 수는 오히려 적을수록 정보통제성과 자기효능감이 크고 그에 따라 온라인 신뢰도 높게 나타났다.”(나은영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전화를 걸어라. 그리고 호프집이든 찻집이든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환경에서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누는 게 ‘좋아요’ 누르기보다 천 배 낫다.

5. 결론
새로운 매체와 기술이 등장했을 때마다 일부 사회주의자들은 그런 매체가 혁명적 조직 건설이라는 고도로 의식적인 노력을 대신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곤 했다. 그러다 보니 엉뚱한 데에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느라 주의가 분산돼 정작 신문 같은 핵심적인 수단이 약화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앞서 살펴봤듯이 우리가 실제로 겪는 어려움이 어떤 것인지 곰곰히 따져보면 어떤 첨단 기술이 그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가 얼마나 부질없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사회주의자들이 사용하는 기술적 수단은 자본가들과 공안기관들은 물론이고 우리와 전혀 다른 전략과 전망을 가진 운동 내 다양한 경향의 활동가들도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현대자동차의 노동자들은 아예 파업 돌입과 함께 노동조합 게시판을 폐쇄하기도 한다.

불가피하지 않다면 SNS를 이용한 토론과 논쟁으로 현실의 토론과 논쟁을 대체하려 하지 말자. 불가피할 때조차 앞서 언급한 주의사항들을 꼭 염두에 두고 현실세계로 나오려 해야 한다. 신선한 바깥 공기 한모금에 끝을 모르고 지리멸렬하게 계속되던 논쟁이 물거품처럼 사라지기도 한다.
SNS 활용은 면대면 접촉을 통한 조직을 대체할 수 없고 핵심적인 조직 수단이 될 수도 없다. 혁명적 신문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만나서’ 조직하고 모임에서 토론하고 전화를 이용하고 문자메시지를 사용하고 SNS는 그 다음이다.
개인적인 푸념이나 불필요한 조직 내부 정보를 꺼내놓지 말자. SNS ‘친구’들을 비효율적인 논쟁의 늪으로 끌고 들어가 오해와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고 최악의 경우 정보기관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
개인적인 용도로만 사용할 거라면 더 효과적인 수단을 쓰자. ‘좋아요’가 관계를 유지하거나 개선하지 못한다.
내 친구가 누구인지 점검하자. 그룹을 분리해서 사용할 수도 있다.
에 편지 쓰기를 두려워하지 말자. 페북 친구보다는 동지들을 믿는 게 현명하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로서, 의 기고자이자 판매자로서 SNS를 부차적인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생각을 한번씩 하고 ‘로그 인’하자.
2000년대 중반만 해도 싸이월드(미니홈피)가 지배하던 SNS(Social Network Service, 한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온라인 커뮤니티 서비스’라고 불렸다)가 스마트폰을 이용한 모바일 인터넷 시장의 성장과 함께 크게 달라졌다.


[참고] SNS가 기존 인터넷 게시판과 다른 점

△ 순방문자수 ⓒ출처 : 이정환 닷컴
싸이월드가 자유게시판 중심으로 운영되던 기존 웹사이트의 참여 공간과 다른 중요한 특징은 ‘폐쇄성’이었다.

웹사이트(left21.com을 떠올리면 된다)에서, 인터넷 카페, 블로그까지 진화한 인터넷 매체의 게시판은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드는 공간이었던 반면 싸이월드는 ‘일촌’을 맺은 사람들끼리만 볼 수 있는 훨씬 폐쇄적인 공간이었다.

무엇보다 싸이월드에서는 사용자 자신이 인적 관계망의 결절점 구실을 하는데(적어도 자기가 보기엔) 바로 이 점이 사회에서는 그렇게 여겨지지 못하는 많은 청년에게 큰 매력을 준 듯하다.

참가자가 누구인지 대강이나마 알 수 있고(대개 이미 알던 사람과 일촌을 맺는다) 덕분에 자유게시판을 통한 의사소통의 단점을 일부 보완하는 효과를 내기도 한다.

반면 이런 폐쇄성은 애초 온라인 세계의 장점으로 여겨지던 확장성을 가로막기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네트워크의 성장 속도는 더뎌지고 대체로 현실 세계에서 내가 맺는 관계들이 바뀔 때에야(이사, 입학, 취직, 가입 등) 새로운 관계들이 만들어지곤 했다.

폐쇄성도 계속 유지되기는 어려웠다. 싸이월드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일촌’도 늘어났는데(현실에서의 관계 때문에 거부하기 쉽지 않다) 이들과의 관계가 모두 같은 것이 아니다 보니 즉, 누구와는 연인이고 누구와는 직장 동료이거나 학교 친구이고, 누구와는 선후배 사이이다 보니 관계를 확대할수록 나를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의 성격이 모호해지고 점차 표현이 조심스러워지기도 했다.

오늘날 많은 청년이 이런 인터넷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SNS가 빠른 속도로 수입된 데에는 스마트폰의 보급도 영향을 끼쳤지만 이런 “자기중심 커뮤니티”(한국언론학회, 《한국사회의 정치적 소통과 SNS》)는 월 순접속자수가 2천5백만 명에 이를 정도로 익숙한 인터넷 환경이었다. 오히려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부터 다른 나라에서 크게 성장하던 페이스북이 국내 시장에서는 싸이월드에 밀려 빛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더 정확히 말하자면 국내 기업들의 방해로 한국 통신 시장에 스마트폰 보급이 오랫동안 지연되면서 이런 현상이 벌어졌다.)

위의 그림에서 보듯이 스마트폰 보급과 맞물려 빠르게 성장한 페이스북은 지금은 싸이월드 사용자들을 대거 흡수하면서 성장하고 있는 듯하다.

페이스북은 싸이월드보다는 개방적이고 트위터보다는 폐쇄적인 SNS다.

그런데 모바일 네트워크와 결합한 SNS는 이전에 인터넷 의사소통에서 나타난 모순 중 한 가지를 더욱 심화시켰다.

인터넷 의사소통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히는 것은 신속함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개방성이다. ‘쌍방향 소통’이라는 측면을 특별히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실은 그 신속함에 대한 찬사다. 어떤 종류의 매체에서든 쌍방향 소통은 이뤄진다. 그게 얼마나 빨리 또는 얼마나 폭넓게 이뤄지는지가 다를 뿐이다.

그런데 대체로, 신속함은 필요할 때 언제나 그런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매우 단순한 사건ㆍ사실에 관한 글일 때나 그렇다.

글이 조금만 길어지거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 사태는 순식간에 달라진다. 분 단위로 올라오는 수많은 글들을 읽고, 신속하게 판단해 자기도 그런 토론에 진지하게 참여하는 것은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하다. 과도한 신속함이 오히려 개방성을 침해하게 된다.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진행되는 트위터가 조금씩 인기를 잃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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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호 | 발행 2013-04-01 | 입력 201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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