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9일 수요일

자주 민주 통일은 한국진보운동의 기치 [기고] 진보란 무엇인가 - 이의엽 전통합진보당 정책위 의장

자주 민주 통일은 한국진보운동의 기치
[기고] 진보란 무엇인가 - 이의엽 전 통합진보당 정책위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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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엽 기자 2013-10-10
▲ 통합진보당의 결의대회 모습     ©자주민보


‘자주없이 민주없다’는 명제는 엄연한 현실
 
왜 자주인가? 강대국의 속국 신세를 벗어나서 당당하게 자주적으로 살아가려는 것은 주권을 가진 독립국가의 본성적 요구다. 

2015년 말로 예정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가 한국 정부의 요청으로 사실상 재연기되는 수순이다.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의 연기 이후 두 번째다. 우리는 돌려달라고 하고 미국이 연기하자고 주장해야 할 터인데, 주객이 전도된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 정부는 나라의 군사주권을 한사코 돌려받기 거부하면서 주한미군의 방위비분담금을 더 지불하고 더 많은 미국산무기를 사겠다고 굽신대고 있다. 주권의 상징인 군 통수권을 63년간이나 다른 나라에 내준 나라는 지구상에 우리나라밖에 없다. 세계 10위권의 군사력을 자랑하며 북의 국내총생산보다 많은 한해 34조원의 국방비를 쓰는 나라가 이러고 있는 것은 결코 정상이 아니다. 군사주권 없이 독립은 없다.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여러 나라 대사관을 대상으로 미국의 정보기관이 무차별적인 도감청을 자행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해당 나라들이 모두 항의해 나섰지만, 유독 박근혜 정부만은 ‘사실관계를 알아봐야 한다’며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이것은 주권국가의 자존에 관한 문제이다. 미국의 주권유린이라는 제국주의적인 횡포 앞에서 항변 한마디 못하는 나라는 독립국이 아니다. 

미국은 한반도 정치군사문제에 긴밀한 이해관계를 갖고 군통수권을 유지해왔다. 전작권은 미국의 동북아시아 관여와 패권 유지에 지렛대 역할을 했으며 동시에 한국 정치에 깊이 개입하는 수단으로 활용돼왔다. 전두환이 1979년 12.12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하려하자 군대를 동원해서 반란군을 제압하게 해달라는 한국군의 요청을 승인하지 않았으나 반면에 1980년 5월 광주에 계엄군을 투입하는 것을 승인함으로써 학살 자행을 방조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미국의 군통수권 유지는 군사독재의 뿌리이자 배후였다. ‘자주 없이 민주 없다’는 명제는 엄연한 이 나라의 현실이다.
 

분단 극복 없이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없다
 
왜 통일인가? 한국은 지구상의 유일의 분단국가이다. 수시로 출몰하는 ‘종북’ 유령 소동으로 정국이 요동을 치는 데서 확인되듯이 북한 변수가 모든 현안을 압도하는 최대 변수로 작용하는 나라다. 국정원 대선 개입처럼 민주주의의 근간을 무너뜨린 국기문란사건조차 NLL 논란으로 물타기 돼 본말이 전도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 역시 분단체제의 자화상이다. 
 
수구세력의 종북공세가 작년 대선에서 야권연대를 파괴하고 박근혜 정권 등장의 결정적인 지렛대 역할을 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분단체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곧 종북유령소동을 물리치지 못하면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수구세력의 정권찬탈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2012년 대선의 뼈아픈 교훈이다. 

우물이 깨끗해지려면 밑에 가라앉은 오물을 걷어내야 한다. 오염원을 청소하지 않은 채 잠시 윗물이 맑아졌다고 마치 우물이 깨끗해진 것처럼 착각하는 현상이 생길 수 있다. 작금의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은 한국 사회의 속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통일을 말하고 진보를 자처하는 언론과 지식인들조차 민주화된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착각 속에 빠져서 눈앞에 나타난 국가보안법 체제의 분명한 모순에 대해 침묵한다. 분단체제 아래서 벌어진 민주화의 착시효과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구조와 조건은 국가보안법체제의 해체 없이 완전한 민주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냉전과 반공의 이데올로기, 그리고 그 제도적 화신으로서 국가보안법에 대하여 비판적이 않은 민주주의자는 없다. 언론인이나 지식인치고 공공연히 국가보안법을 옹호하는 이는 찾기 드물다. 하지만, 담론의 차원이 아니라 실제 국가보안법이 구체적인 현실로 자기 자신 앞에 다가왔을 때 보여주는 태도는 보기 민망할 지경이다. 시국에 대하여 한마디 언급할 때면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건만, 하나같이 말 머리를 붙이고 있다. 진보당을 지지하지 않으며, 이석기 의원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2013년 대한민국에 ‘십자가 밟기’가 다시 등장한 것이다. 분단체제의 극복 없이 사상과 양심의 자유도 없다는 것이 이 나라의 엄연한 현실이다. 
 
흔히 진보는 곧 복지로 이해되곤 한다. 우리나라처럼 분단체제가 유지되는 조건에서, 전쟁의 위험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과연 복지가 가능할까? GDP 대비 국방비가 OECD 평균의 두 배나 되는 군사비 지출 구조에서 복지는 무망하다. 한국의 GDP 대비 ‘국방비 등 질서유지관련 지출’의 비중은 OECD 주요국가 중에서 최고 수준이다. 평화 없이 복지는커녕 국민의 생명과 안전조차 보장받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엄연한 현실이다. 분단체제 극복과 평화통일이 빠진 유럽식 복지국가론, 군축을 선행하지 않고 증세를 앞세우는 복지국가론은 분단 현실을 외면한 착각이거나 주관적 관념에 불과하다.
 

평화와 통일 진전돼야 민주주의도 발전

이 땅의 민주주의 발전과정은 곧 반공반북 이데올로기의 극복과정이며, 한반도의 평화와 자주적 통일운동의 발전과정이기도 하다. 민주주의 운동이 확장되어야 평화 통일운동이 발전하며,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 진전되어야 진보정치의 활동공간이 확장되고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다. 분단체제가 극복되지 않는 한 이 땅의 민주주의는 반쪽의 민주주의일 수밖에 없다. 
 
한반도 상황과 남북관계를 말할 때는 늘 국가보안법과 색깔론의 벽이 쳐져 있다. 본 취지는 눈여겨보지 않고 지엽말단의 단어 하나, 말투 하나에 집착해 색깔론으로 공격해 매장하는 분단체제의 비이성적이 한국 사회를 짓눌러 왔다. 언제까지 1950년대의 매카시즘에 머무를 것인가.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한국전쟁의 상흔으로부터 우리의 일상에 깊게 각인된 매카시즘을 털어내는데 희생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감내하여 바꿔내겠다는 각오가 필요한 시국이다. 오늘 우리가 자주 민주 통일이 한국진보운동의 변함없는 기치임을 새삼 강조하는 이유다. 
 <이의엽 전 당 정책위 의장, 진보정치 628호>
기사입력 : 201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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